ㅁ 애향 조환국의 시 세계 인식의 승화와 순응의 미학 김 송 배 (시인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나의 향기’와 운명적 인식 현대시에서 ‘나’를 인식하는 것은 시적 발상과 동기 그리고 주제의 투영 등에서 자연스럽게 발현(發現)되고 있는데 이는 그 시인이 소중하게 간직한 체험이 상당한 기간 동안 여과(濾過)한 후에 완숙된 진실로 분사(噴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험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직접 접하거나 겪었던 인생의 행로에서 절감(切感)한 불망(不忘)의 일들이 다시 상상력의 재생을 통해서 한 편의 작품으로 창조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직접 체험 외에도 독서를 통하거나 인생 선배들의 경험을 경청(傾聽)하고 공감하는 다양한 삶의 지혜를 습득하는 방법으로 정서를 환기(換氣)시켜서 시적인 진실로 승화(昇華)하는 시법(詩法)을 많이 대할 수 있는데 우리들의 체험은 ‘나’를 재인식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애향 조환국 시인의 첫 시집『바다에 닿을 때까지』를 일별하면서 이와 같은 자아(自我) 인식의 문제를 먼저 거론하는 것은 수록된 시편들이 첫 시집답게 ‘나의 향기’가 포괄(包括)하는 사유(思惟)의 지향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조환국 시인의 잔잔한 그 향기 속의 시정(詩情)은 우선 ‘나’를 인식하는 근원을 시적 구도(構圖)로 설정(creation)하고 자신의 심저(心底)에서 깊게 흐르고 있는 의식(consciousness)이 순응(順應)의 미학으로 형상화하는 특징을 읽을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주어진 복만큼 일하고 웃기도 울기도 하는 게 돌고 도는 인생사라지만 나는 내 앞의 운명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값진 기쁨과 행복을 향해 내가 나를 스스로 칭찬하고 사랑하면서 일어나는 마음 주워모아 보석처럼 사랑하렵니다 기쁨 걱정 근심 사랑 이 모두가 스스로 이뤄가야 할 나의 향기이기에 내 모습 그대로 진리에 순응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렵니다. 이 작품「사랑하는 수선화」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대할 수 있는 외적(外的) 사물 ‘수선화(꽃말-자만심, 자존심,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를 통해서 ‘나의 향기’를 분사하면서 인식의 감도(感度)를 상승시키고 있다. 이처럼 조환국 시인의 내면에서 분출하는 인식의 절정(絶頂)은 바로 ‘나는 내 앞의 운명을 / 거역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시적 화자(話者)의 진솔한 표정에서 진지(眞摯)하게 형용(形容-modiflation)하고 있어서 그가 ‘수선화’라는 소재에서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임으로써 꽃말과 같이 자존심(이는 심리적인 고결한 결단이다.)의 입지(立志)와 상관성을 갖는 이미지를 창출(創出)하고 있다. 그는 다시 ‘내가 나를 스스로 / 칭찬하고 사랑하면서’라는 어조(語調-tone)에서 알 수 있듯이 운명적으로 자아를 ‘그대로 진리에 순응하면서 / 앞만 보고 달려가렵니다.’라는 결연(決然)한 순응의 미학을 실현하려는 그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삼세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 인과보응의 진리를 깨달으며 살아온 세월 몸과 입 마음으로 지은 업보 깊숙한 골짜기의 심사까지 파고 들어 병마에 흔들린다. --「흔들리는 배」중에서 그동안 미워했던 마음 애착 탐착 원착을 태우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보자. --「소각장」중에서 그렇다. 조환국 시인에게 내재(內在)된 인식의 원류에는 성찰의 지혜가 동반하고 있다. 이는 그가 평소에 천착(穿鑿)하는 신심(信心)과 무관하지 않으며 굳건하게 수행 실천하려는 인생의 목표인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삶의 지표(指標)이며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삼세를 통해서 /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의 진리’의 깨달음을 돌이켜 재생하는 체험 속에서 새롭게 인식하는 진실이 바로 성찰이다. 그것이 ‘몸과 입 마음으로 지은 업보’는 ‘환멸에 찬 참회를’하면서도 지금까지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서서 / 서성거’리고 있다. 이것이 ‘애착 탐착 원착을 태우고 /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그가 구가(謳歌)하는 내면의 진실이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 그 고독함과 외로움을 / 동행하며 살으리(「홀로 가는 길」중에서)’라거나 ‘시간과 공간속에 / 모든 생명과 같이 /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 나는 행복합니다.(「나는 행복합니다」중에서)’, ‘배려와 포용력으로 업어주고 싶다(「그대로 보는 너」중에서)’ 그리고 ‘ 운명이란 / 그어진 실금따라 가는 / 아련한 인생길 / 묻지않고 가야할 곳--//중략--//행운의 빛으로 / 맑은 샘 솟는 힘 되리라.(「자욱한 안개 속」중에서)’는 등의 어조와 같이 성찰된 그의 심연(深淵)에서 잘 정돈된 시정이 ‘나의 향기’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2. ‘삶의 참맛’과 가치관 창출 조환국 시인은 이와 같이 자아를 성찰하면서 ‘삶의 참맛’이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를 인생의 재음미와 동시에 발현하는 시법을 구사하고 있다. 일찍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참회록」에서 ‘삶의 의문에 대한 나의 탐구는 마치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경험한 것과 똑 같은 경험’이라고 했다. 이러한 논지(論旨)와 같이 우리들은 삶에 관해서 정서나 사유의 중심축에서 지향하는 ‘참맛’을 탐구하고 구명(究明)하려는 지적 혜안(慧眼)이 시인의 주제로 형상화하는 시적 경향을 많이 대할 수 있다. 바닷길 건너는 편주 한 척 쉴새 없이 달려드는 격랑 여기저기 산적한 암초 만나면 부드러운 미소로 입맞춤 하리 살며시 넘나드는 사바세계에 오직 한길로 달리는 가슴 피할 수 없고 물러설 길도 없이 부딪히며 가야할 인고의 시절 언젠가 돌아올 그 날 뱃전에 세울 평화의 깃발이 축복이라 여기는 고귀한 사연. --「삶의 참맛」전문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편주 한 척’의 고뇌와 갈등이 조환국 시인의 경험에서 맑게 여과하는 ‘사바세계에 / 오직 한길로 달리는 가슴’으로 변환(變換)하면서 ‘삶의 참맛’을 모색(摸索)하고 있다. 이러한 심중(心中)의 요동은 모두가 ‘부딪히며 가야할 인고의 시절’이며 미지의 미래에서 만나게 될 ‘축복이라 여기는 고귀한 사연’으로서 그의 시심(詩心)에는 견고한 인생관이 확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다 건너 밭에 간다 날마다 건너는 뱃길 암초 여기저기 산적하고 파도 고요할 날 없다 뭍 떠난 편주 한 척 엄습해오는 격랑 피하는 날은 죽는 날 피할 수조차 돌아설 수 없는 길 물러 설 수도 없고 당 할 수만은 없다 건너야 산다 이겨야 한다 침몰이란 시어 나는 모른다 부딪힘은 삶의 맛이다. --「마음 바닷길」전문 또한 여기에서는 조환국 시인이 앞에서 본 ‘편주 한 척(한 척의 조각배)’과의 이미지가 동일한 감성으로 발현되고 있다. ‘바다’라는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의 위기의식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현실적인 삶(real life)에서 추출(抽出)한 고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사의 위기는 시인들의 고차원의 해법을 요구하고 있어서 어떤 철학적인 경지를 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환국 시인도 그러한 번민(煩悶)을 해소하는 해법으로 그의 인식이 단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견뎌야 산다 이겨야 산다’라는 강렬한 어조가 이를 명민(明敏)하게 적시(摘示)해 주고 있다. 그가 우선 ‘파도가 고요할 날 없다’라는 전제 아래 이 ‘엄습해오는 격랑 / 피하는 날은 죽는 날’이라고 단정하지만, 그는 ‘침몰이란 시어 나는 모른다 / 부딪힘은 삶의 맛이’라는 결론으로 새롭고 확고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이전에 ‘세상 경계들 / 때로는 폭풍 속에 마음 조이는 시간 / 때로는 비바람 더위 추위 앞에 / 당당하게 서 있는 시간(「인생의 소중한 보물」중에서)’이거나 ‘숫한 날 풍우와 싸우며 / 힘겹게 지탱해온 이 몰골 / 엄습한 상고대 못 이겨 / 이 모습 야위어 간다(「국화 한 송이」중에서)’ 그리고 ‘비바람 홍수 몰아쳐도 / 목 베이고 발굽에 밟혀도 / 후회도 탓할 겨를 없이 / 뿌리 더 깊이 뻗어 / 일어나 꽃 피워야 한다(「잡초 풀꽃」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그는 많은 시련(試鍊)들과 화해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안(事案)들이 조환국 시인에게서 그의 지고(至高)한 사유와 결합하면서 더욱 위대한 가치관으로 승화하고 있는데 ‘섭리 따라 살리라 / 새봄에는 새 몸으로 / 새 마음 새 생활 위해 / 땅 속 깊이 밭을 갈리라.’거나 ‘원망도 질시도 / 외로움도 아픔도 / 어차피 체념해야 할 일 / 숙이고 순응하기 때문이다.’라는 순응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3. 신앙적 기원 의식의 승화 조환국 시인에게서 또 하나의 삶에 관한 진정한 의미와 그 의미를 주제로 투영하는 작품들을 일별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현실적인 삶에서 ‘삶의 참맛’을 구현하려는 지향 의식이 순수한 정감(情感)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작품「너」에서 ‘마음 속 잡초 언제 뽑을까 / 부정적인 뿌리 / 원망. 욕심. 시기 질투 보이지 않는 / 뿌리를 찾아서 오늘도 내일도 뽑아야겠다’는 단호한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가치 있는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우리들의 지적인 정서를 스스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깊은 심지 부러워 선망의 대상인 향나무 네 품격 닮고 싶다 볼수록 말 걸어볼수록 상흔 자국마다 쌓인 버릴 것 하나 없는 네 지혜 돋보인다 성한 지체 하나 없고 멍든 곳 하 많은 것은 풍우가 쌓아준 훈장 그 인격 진지하다 뿜는 은은한 향기 마를수록 진하고 죽은 후 더 짙은 억겁 세월 향로이면 좋겠다. --「香木 한 그루」전문 보라. 조환국 시인은 이처럼 그의 ‘잡초’와 ‘원망. 욕심, 시기 질투’ 등의 ‘부정적인 뿌리’를 제거하는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순정적인 기원(祈願)의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바로 보조 형용사인 ‘.....싶다’를 구사하여 그가 성취하고자 하는 의식을 진지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는 ‘네 품격 닮고 싶다’거나 ‘억겁 세월 향로이면 좋겠다’는 등의 간절한 희구(希求)의 기원을 통해서 ‘香木과 같이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지혜‘와 ’인격‘을 닮고 싶은 그의 진실이 승화하고 있다. 그는 작품「날려버리고 싶다」에서도 ‘근심 걱정 없는 곳 / 유랑의 천국 / 극락으로 날려버리고 싶다.’거나 작품「칠불사의 만추」에서 ‘펄럭이는 도포자락 / 누가 채색한 작품인지 / 모든 사람에게 떳떳이 / 이글이글 타고 싶다.’ 그리고 작품「뚜벅 뚜벅 걸어서」에서 ‘긴 잠에서 깨어난 그대에게 / 행복천사 되어 / 미래를 열어 주고 싶습니다.’라는 어조와 같이 그의 내면에 잠재한 의식에는 이러한 기원의 간구(懇求)가 충만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환국 시인의 이러한 간구는 그가 숙명으로 동행해야 하는 신앙이 그의 가치관과 동일한 지향성으로 인생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원불교 교무로서 주어진 은혜로운 삶의 이행이 바로 그의 삶이며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님과 만남은 우연만은 아닌 동아줄 인연입니다 님께선 보고 싶은 인연일까 눈 돌리는 미움일까 미운 털이고 싶지 않습니다 앎을 비추어 주시고 꽃 길 보여주시는 님은 미루나무 꼭대기 발자국 따르고 싶습니다 사막에도 사금 있고 밀림에도 옹달샘 있듯 먹구름 속 한 조각 인연 한 방울 뿌리고 싶습니다. --「만남은 인연이다」전문 조환국 시인의 심연에 침잠(沈潛)해 있는 깊은 정서의 골간(骨幹)은 이러한 ‘인연’의 궁극적인 현상으로 이미지를 창출하거나 형상화하여 실질적으로 그가 수행하고 실천하는 일원상의 신앙적인 법어 또는 그 교법에 따른 정각 정행 등의 원리를 작품 속에 연결함으로써 ‘님’에 대한 경외(敬畏-reverence)를 통한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시적 화자 ‘님’은 ‘앎을 비추어 주시고 / 꽃 길 보여주시는 / 님은 미루나무 꼭대기 / 발자국 따르고 싶습니다’는 간절한 기원과 같이 이는 그가 삶의 범주(範疇)에 가장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는 신심(信心)에 전심전력으로 숭앙(崇仰)하는 대상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진실은 ‘님(임)’을 작품과 교감함으로써 그에게 내재한 원망(願望)이 하나씩 화해를 하는 진정한 인생의 해법이 잘 표징되고 있는데 ‘기다려 달라고 기원 하면서 / 한 평생 임 찾아 헤매고 있다. (「고목」중에서)’거나 ‘우주의 삼라만상이 / 바로 님의 모습이라면-중략-내 안에 빛을 내는 하나의 촛불이 / 꺼지지 않도록 합장합니다(「님 앞에서」중에서)’ 등의 어조로 발현되고 있다. 이 밖에도 그의 신앙과 관련된 작품들은「몸에 내리는 비」「햇살에 젖어」「둥그신 님」「스승님의 은혜」「차 한 잔」「바로 지금 여기서」「연꽃」「서원의 밤」등에서 많은 절감의 메시지를 대할 수 있다. 4. 자연 교감과 그 서정성 조환국 시인의 서정성은 남다르다. 그는 모든 자연 사물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면서 서정시를 구상(構想)한다. 자연과의 교감은 시간성도 동류(同類)의 이미지를 제공하면서 다채로운 정서의 변화를 보여준다. 자연 서정의 향기를 음미하는데는 평자(評者)들의 말에 의하면 시인 자신이 자연을 끌어와서 그 향훈(香薰)을 발산하는 동화(同化)의 시법과 자신이 자연 속으로들어가서 자연으로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투사(投射)의 시법이 있다고 한다. 조환국 시인의 자연 서정은 자연 앞에 서서 대화형식을 취하는 개관적인 시법으로 자연과 동화하는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친 자연은 대체적으로 시간성의 변화에 따라서 그 이미지도 변화하는 것이 시인들의 시각이며 정서의 관점(觀點)으로 나타난다. 국화꽃 향기 뿌리며 알밤 주렁주렁 일렁이고 황금 들녘엔 허수아비 쓸쓸한데 빨간 고추잠자리 장독대에 앉아 님 기다리고 있는가 채우고 또 채워도 부족한 너 저 노을빛 따라 홀로 걸어가야 하는 길 내 어찌 감당하리 마른 바람에 묻어 들려오는 또륵또륵 귀뚜라미 소리 들으며 가을밤 시향에 젖어드는구나 --「추야(秋夜)」전문 땅속 꿈틀 거리는 소리 귓가에 들려오는데 대지 위에 촉촉히 내린 빗물 적시며, 엄동설한 깊은 고뇌 뼛속 되새기며 솟구치는 욕망 꿈꾸는 소녀 마음 같이 기쁨 감추지 못하고 얼굴 내민다, 먼 산 허기진 곳부터 봄 나래를 채우며 님의 허리 감싸듯이 녹음이 이곳저곳에서 아지랭이 소리 들려오고 한 마리 나비로 이리저리 그리운 님 찾아 훨훨 날아오고 있구나. --「새싹 길)」전문 여기 두 작품은 모두 객관적인 자연 사물의 접근이다. ‘추야’라는 계절적 이미지는 ‘가을 밤, 시향’이 넘쳐나고 있다. ‘추야’의 고적(孤寂)함이 절절한 심사(心思)의 한 단면이 ‘채우고 또 채원도 부족한 너’라는 상대성에서 서정의 원류를 확인하고 있어서 ‘국화꽃’과 ‘빨간 고추잠자리’, ‘노을빛’, ‘귀뚜라미’ 등의 가을 이미지가 ‘님’과 동시에 서정을 발산하고 있다. 또한 ‘봄’의 서정이 풍기는 ‘새싹의 길’에서도 ‘대지 위에 촉촉이 내린 빗물’과 ‘아지랭이 소리’와 ‘한 마리의 나비’ 등의 이미지가 자연과 교감하는 조환국 시인에게 내재(內在)한 서정시의 창출을 직접적으로 표면화하는 시법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의 서정성은 ‘흐르는 물소리 / 희망의 노랫소리로 / 우리들의 마음에 / 기쁨을 주는구나(「푸름의 희망」중에서)’ 또는 ‘땅도 사람도 목말라 하는 소리 / 새벽녘 / 창문 밖 비가 내리고 있다 // 이제는 / 모든 사람에게도 식물에도 / 단비가 되어 / 갈증 풀어주는 은혜로운 물 // 똑딱뚝딱 / 한참 동안 비와 동행 하는 /고마운 단비(「아름다운 멜로디」전문)’와 같이 미학(美學)에 근거한 자연 현장에서 흡입(吸入)된 ‘물소리’와 ‘고마운 단비’의 조화가 돋보인다. 어떤 시론가나 평론가들이 말하는 서정시의 양상은 서정시는 서정과 감정을 드러내는 시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서정시는 객관 세계의 일이나 사건을 모두 자아 속에 흡수하여 내면화 혹은 주관과 객관의 융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서정시는 세계와 삶의 단면만을 보여주면서 시적 구도가 과거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현재의 시간성에 녹아 있다. 그리고 시의 음악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이를 노래하는 시인이 바로 서정적 자아라는 기반(基盤)을 중심으로 작품이 창작되는 것이다. 조환국 시인도 이러한 서정시의 기반에 정서의 축을 형성하고 보편적인 삶의 단면만이 아닌 자연 생태와 밀접한 교합(交合)의 정신세계에 머무는 치열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친 자연의 광범위한 무한(無限)의 이미지를 모두 옮겨 펼칠 수는 없겠으나 그가 천성(天性)으로 간직한 평소의 신념이 시로 승화시키는 순응의 미학이 적나라(赤裸裸)하게 그리고 명징(明澄)하게 분사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조환국 시인이 ‘보름달’ ‘시냇물’ ‘벚나무’ ‘산수유’ ‘배봉산’ ‘산골길’ 등등의 사물과 접했을 때 이에 응하여 나타나는 그 생각과 느낌이 그의 삶과 바로 직결되거나 어떤 지향적인 변화를 정감 있게 부르는 서정시인의 경지를 정립하고 있는 순정의 아름다움을 읽게 하고 있다. 이제 그가 처음 상재한 시집 『바다에 닿을 때까지』를 마무리하면서 그가 얼마나 시에의 집념이 깊게 그의 가슴에 인식되고 각인(刻印)되었는가 하는 열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가 탐색하는 삶과 인생의 최종 목표인 올바른 가치관의 성취와 그 여망을 접근할 수가 있었다. 그가 ‘저 멀리서 / 들려오는 명상의 음성 / 어두운 밤하늘에 / 새 별을 본듯해 들려오는 소리 // 당신으로 하여금 / 은혜를 알게 되고 / 행복을 보았습니다. // 다정한 말 한마디 / 영원히 가슴속에 / 깊숙히 간직 할래요‘라는 작품「시냇물」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순박(淳朴)한 심성과 시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 전체를 통해서 스스로 운명적인 삶에 관한 인식과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고차원의 지적 정서의 분출 등을 탐구하면서 신앙적인 의식을 승화하는 시법은 ‘님’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과의 ‘인연’을 가장 중시하는 신조(信條)가 그의 작풍(作風)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그 시인의 감정이 해방된 것이 아니며 그 감정으로부터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라 인격의 탈출이라는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이는 너무 감상적이거나 감정의 노출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누구의 말처럼 사람들이 시의 마력적(魔力的)인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 때부터 아름다움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말이 실감(實感)나게 하고 있다. 시는 최상의 행복, 최선의 정신, 최량이고 최고의 행복의 순간을 기록한 것이라는 영국의 열렬한 낭만파 시인 P.B. 셸리의 명언처럼 최선의 정신이 작품의 구성과 주제로 투영되는 여과장치가 필요한데 이는 조환국 시인에게서는 이미 그가 신봉하는 신앙이 이를 강건하게 뒷받침하고 있어서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다음 시집에서는 더욱 새로운 주제로 형이상시(形而上詩)의 경지로 몰입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