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와 편견 – 이호규(7)
1) 얼마 전, 아버지는 보청기를 새로 맞추셨다. 최근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퇴원을 거듭 반복하셨다. 후유증으로 집에 못 가시고 부득이 고향 가까이 요양원에 새 터전을 마련하셨다. 그전부터 청력이 떨어져 불편한 점이 많아도 그냥 참고 지내셨다. 그러나 새로 입소하고 단체 생활을 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으신 듯했다. 예전에도 보청기를 착용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지만 최신 보청기를 하나 장만했다.
2) 며칠 후, 어느 방송사 건강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나와서 청력 손실에 대하여 강의하고 있었다. 눈이 안 좋으면 안경을 맞추어 사용하는데 귀는 잘 안 들려도 보청기 하는 것은 기피 한다고 했다. 한쪽 귀가 안 들려도 다른 쪽이 들리기에 큰 불편을 모르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심한 상태로 진행이 되어야 비로소 병원을 찾고 보청기를 알아본다고 했다.
3) 시력이 좋지 않으면 안경이나 렌즈를 끼는데, 청력이 떨어졌는데 왜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는가? 안경이나 보청기는 노화에 따른 신체 기능 저하를 보완하는 중요한 보조기구임에도 선입견이 있다. 도수가 높은 안경을 착용해도 일반적으로 아무런 인식이나 편견이 없다. 그러나 보청기를 끼게 되면 장애가 있는 것처럼 사회적 편견이 남아있다. 흔히들 불러도 답이 없으면 귀먹었냐고 타박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4) 선천성 청각장애우들은 처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기에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후천적 청각 상실자들은 그 답답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같이 글을 배우던 문우 한 분도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을 잃으셨는데 그 답답함을 표현한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글 속에 ‘차라리 눈이 안 보이고 소리를 한 번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 부분이다. 얼마나 한이 되셨으면 그런 글을 적었겠는가? 다행히 그분은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건축사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분이셨다.
5) 또 한 명의 후천적 청각장애인이 있다. 친구의 딸인데 중학교 때 귀에 문제가 있었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영구적으로 청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어린 소녀는 주어진 처지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이공계의 최고 학부를 졸업했다. 엄마의 재능을 이어받아 문학가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과학 전공자답게 SF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고 큰 상도 여러 개 받았다. 요즈음 그녀가 하는 특강 주제는 주로 우리가 지닌 편견과 차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언급한다고 했다.
6) 청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배려와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청각장애를 단순한 신체적 결함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의 능력이나 잠재력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편이다. 어떨 때는 고용이나 교육, 사회활동 등에서 차별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부 장애인들은 본인의 장애를 극복하고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은 위축된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이 요즈음 현실이다.
7) 아버지는 전쟁통에 왼쪽 청력을 거의 손실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입대하셨다. 전투 현장에 투입되어 바로 옆에서 떨어진 포탄 소리에 그만 청력을 잃고 말았다. 그때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그대로 살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머지 한 쪽 귀의 청력도 떨어져 일상생활이 불편하였다. 그 후 장애등급을 받고 보청기를 마련하셨지만 착용하시지를 않았다. 불편도 하였지만 다른 사람들 눈도 의식하시는 듯했다.
8) 오랜 시간 불편한 채로 살아온 결과는 난감했다. 최신형 보청기를 선택했지만청각을 담당하는 뇌 신경 부분이 퇴하 되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는 잊어버려 새로 배우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 보청기만 귀에 착용하면 금방 소리가 잘 들릴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계속 불편을 호소하셨다. 수개월 간 연습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려도 제대로 못 들으신 것 같다. 그러나 본인에게 필요한 것은 또 알아듣는 듯했다.
9) 후천적 청력 손실의 50%는 유전적 요인이라고 한다. 주변 환경이나 생활 습관 때문에 청력 손상을 입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적인 현상으로 청력이 손실된다고 한다. 시력이 더 나빠지기 전에 안경을 착용하듯이 청력도 보완 차원에서 보청기를 선행적으로 해야 한다. 아버지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 형제도 청력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10) 보청기 착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환이 시급하다. 편견과 차별 없이 신체적 불편을 신의료기술로 보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도록 서로 배려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청각 장애인의 권리와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도 계속 따라야 할 것이다. 집에 계신 노부모님의 청력 상태가 어떤지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새로 나온 최신형 보청기 하나씩 선물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