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빛을!
- 사목 의안 연구
펴내는 말
1. 전국 사목 회의와 사목 의안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200주년을 맞이하여 전국 사목 회의를 개최하여 ‘사목 의안’을 결의하였다. 사목 회의는 “순교의 200년대를 보내고 증거의 300년대를 향해 떠나기 위한 준비”로서 한국교회가 내적, 외적으로 쇄신될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려는 시도였다.
사목 회의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서 전국 사목 회의 전반을 총괄한 정의채 신부는 사목 회의가 지닌 특별한 의의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2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천주교회는 사상 처음으로 하느님의 백성 전체 즉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같이 참여하는 사목 회의를 소집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도래케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사목 회의는 마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온 교회와 전 세계에 대하여 한 바와도 같이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새로워진 모습을 지향하고 밖으로는 온 겨레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유감없이 전하여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려는 것이다. 특히 사목 회의는 온 교회와 더불어 이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시하여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의에 따라서 사목 회의 위원회에서 각별히 유의하겠다고 밝힌 세 가지 목적은 이러하였다: “첫째, 사목 회의는 이미 알려진 신앙의 원리 원칙에 충실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목표와 방법을 연구 검토하여 한국 교회의 참된 성숙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목적 회의가 되도록 노력한다. 둘째, 사목 회의는 보편적 교회 안에서 자리하면서 한국 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계시의 빛으로 조명, 수용하고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토착화의 가능성을 탐구하여 적극 추진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땅의 민족 문화 창달과 인간다운 삶을 증진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셋째, 200년 교회사를 회고하면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터득하고, 민족 복음화라는 목표를 위하여 오늘의 현상을 분석 검토하고 미래 지향적인 선교 대책을 수립하고자 한다.”
이상 의의와 목적에서 알 수 있는 바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과를 한국교회에 적용하고자 주교회의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의제를 선정하는 기준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준하여 모든 문제를 내성(內省. Ad intra)과 대화(對話. Ad extra)의 분야로 대별하였다. 교회를 내적으로 성찰함에 있어서는 그 구성원과 영성 생활과 사목 활동과 교회 운영이라는 네 분야로 세분한 다음, 구성원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나누고, 영성 생활은 ‘전례’와 ‘신심 운동’으로 나누었으며, 사목 활동은 지역 사목과 교리 교육과 가정 사목과 특수 사목으로 나누었고, 그리고 교회 운영은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독립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세상과 대화함에 있어서는 선교와 사회라는 두 분야로 나누되, 사회에서는 사회 정의와 언론과 사회 개발과 사회 복지 그리고 교육으로 더 세분하여 다루었다.
이러한 내적 성찰과 외적 대화를 위하여 전국 사목 회의에서는 총 12개의 의제와 전국 각 교구에서 건의한 313개의 제안을 수용하였다. 이 전국 사목 회의는 1980년부터 1984년까지 5개년에 걸쳐서 총 다섯 단계로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단계는 사목 회의를 12개 분과 체제로 출범시키고 각 분과에서 의제를 선정하는 과정이었고(1980.11~1981.11), 두 번째 단계는 각 분과별로 10~15명의 전문위원이 위촉되어 의안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으며(1981.12~1983.2), 세 번째 단계는 교구별 회의를 통하여 의견을 수렴한 교구 사목 회의였고(1983.3~12), 네 번째 단계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참석한 가운데 개막된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 회의’(1984.5~12)였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전국 사목 회의에 참석한 대의원들과 각종 위원회 대표 등이 함께 참석하여 본 회의에서 결의한 사목 의안을 표결로 확정지은 폐막회의(1984.11.30.~12.1)였다.
당시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이 전국 사목회의의 결과물로 나올 사목의안이 실질적으로 교회 쇄신에 밑거름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그동안 사목 회의는 수많은 사회 조사, 갖가지의 연수회를 통하여 그리고 각 교구 차원의 각종 사목 회의와 각 수도 단체, 평신도 단체들에 이르기까지 현장의 의견들을 폭넓게 들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여 왔음도 우리는 익히 보아 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가 내놓는 공식 의안이기에, 또 이 땅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하는 의안이기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도 높이 평가합니다. 또한 각 의안은 끝부분에 현장의 극히 현실적인 제안들을 담은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 담고 있는 내용이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내적, 외적 문제 전반에 걸친 것이기에 어찌 완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본 주교는 한국 천주교회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이런 역사적 계기에 초유의 사목 회의를 갖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며 이 의안들은 우리가 선교 300년대를 지향하는 사목 향방 설정에 큰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같은 교회 쇄신의 의지는 사목 회의 위원장이었던 박정일 주교의 다짐에서도 뒷받침되었다: “이제 한국 교회 앞에 또 한국 사회 앞에 내놓는 이 의안들이 당초에 사목 회의가 교회 전래 300년대를 바라보며,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하고 밖으로는 민족 복음화를 이루며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같이 있는 교회되고자 한 의의와 목적을 실현하는 데 큰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2. 사목 회의 폐막 10주년, 20주년 그리고 40주년의 상황
사목 회의가 폐막된 지 10년이 되던 1994년에는 『사목 회의 의안 해설집』이 한국 그리스도 사상연구소에 의해 발간되었다. 이 해설집은 사목 의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회 내의 관심이 부족하던 차에 위 연구소가 이에 대한 해석과 해설 작업을 꾸준히 펼치고자 1993년 가을과 1994년 봄에 개최한 ‘한국교회 정신연구 강좌’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발표된 내용들을 모아 발간함으로써 교회 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그 다음 해인 1995년에 주교회의에서는 드디어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를 발간하였다: “한국 주교회의는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건의들을 반영하고 우리 현실 여건에 부합하는 지침서를 펴냄으로써 한국 교회의 모든 사목 활동을 보호하고 격려하며, 교회의 일치된 모습을 더욱 잘 드러내고자”(이문희) 한다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으나, 이 ‘사목 지침’은 주교회의에서 공포한 한국교회의 지역교회법이다. 따라서 이 사목 지침에 사목의안에서 제안된 총 313개 의제가 다 반영되기는 구조적으로 어려웠다. 이렇게 미흡하게 반영된 까닭은 “의안을 실천하기 위해 교구, 본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공의회 정신대로 살겠다는 정신과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유흥식). 그러니 이 사목 지침서 발간으로만 그친다면, 공의회 정신과 사목 회의에서 결의된 의안대로 교회를 쇄신하려는 의지보다는 사목 의안의 취지를 최소한도로만 반영함으로써 교회의 현상을 유지하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교회법과 사목 지침은 뼈에 해당된다. 그 나머지가 살과 피라 할 것인데, 뼈를 튼튼하게 다졌으니 이제는 살을 찌우고 피를 돌게 하는 숙제를 남겼다고 하겠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흐른 후 사목 회의 폐막 20주년을 맞이했던 2004년에 와서 평가해 볼 때에도, 사목 의안에 담긴 전망과 방향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변화된 사회 안에서도 의안의 내용과 제안들은 현실적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삼천년기」에서 개별 교회들이 실천할 것을 촉구한 내용에 해당하기도 한다”(심상태). 그리고 그로부터 또 다시 20년이 흘러서 전국 사목회의 폐막 후 40주년을 맞아 주교회의에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 회의 의안집』을 정식으로 발간하였다. 이는 ‘사목 지침서’에서 다루지 못했던 교회 쇄신 과제들을 교회 구성원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역사적 초유의 사목 회의가 시대를 뛰어넘어 주님의 영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전통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안고 내일을 오늘로 힘차게 살아가는 이 시대 그리스도교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면서”(이용훈) 펴낸 것이다. 그러므로 사목 의안에 대한 연구나 교육 그리고 실천의 과제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서둘러야 하고, 늦은 김에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교황권고 「아시아 교회」에서 한국교회에 대해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한 선도적 역할까지 부여하고 나섰다. 그뿐만 아니라, 기회가 될 때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교회에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껏 살펴본 바와 같이, 40년 전에 사목 회의를 마치면서 내세운 거창한 교회 쇄신의 실현 과제도 아직까지 지지부진한데 왜 보편교회를 대표하는 교황은 아시아 복음화에 앞장 서달라는 더 원대한 목표까지도 제시하여 한국교회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일까? 그 사연을 이해하자면 한국교회를 둘러싼 현실을 좀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이 둘러보아야 한다.
3.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 노력
3.1. 공의회의 영향과 사목 회의의 영향
돌이켜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교회는 다방면의 쇄신과 변화를 시도해왔다. 공의회를 통해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신원을 새롭게 발견했으며, 거룩함을 향한 보편적 소명을 재확인하고 교회 생활의 원천인 전례 개혁을 추진하였다. 다양한 성소를 촉진시키고, 그리스도교 일치, 타종교와의 대화, 전통 문화, 종교의 자유, 양심의 존엄성, 사회 참여 등 모든 분야에서 공의회 문헌들에 표명된 지침에 따라 교회 쇄신과 민족 복음화의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그러다가 1984년에 선교 200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전국 사목 회의를 개최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목 회의가 폐막되고 나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지난 40년 동안에는 사목 지침서에서 교구 간 사목 행정과 전례 생활 통일을 위한 노력이 있었을 뿐 교회 쇄신을 위한 노력은 지지부진하였다.
3.2. 아시아 복음화의 새 이정표
반면에 아시아 주교들은 지역별 주교회의를 권장한 공의회의 지침에 따라 1974년에 아시아 주교 연합회를 출범시키고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을 발견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시아 복음화 과업이 ‘삼중(三重)의 대화’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첫째 아시아의 종교들과 대화를 해야 하고, 둘째 아시아의 문화들과도 대화를 해야 하며, 셋째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복음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을 말한다.
새로운 이정표가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근세 이래 서양 선교사들이 아시아의 종교와 문화들을 미신이나 우상숭배 종교로 취급하여 모진 박해를 자초했던 선교 실패 사례를 반성하는 뼈아픈 성찰이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에 선교할 때와는 달리 아시아에는 군인들이나 상인들을 대동하는 대신 사제 학자들만이 선교사로 파견되어 현지 문화에 적응한 연후에 아시아의 엘리트들을 상대로 한 선교를 펼쳤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 열매로 나온 한역서학서들이 한국교회의 탄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4백 년이 지난 오늘날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엘리트들을 상대로 한 적응주의 선교 노선은 참담하고 빈약한 성과만을 남겼다. 그리스도인들이 아시아 대륙 전체 인구 중 겨우 3%에 불과할 만큼 종교적으로 선교 성과가 빈약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아시아의 대다수 인구가 여전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따라서 이제는 서구화 교육을 받아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교회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아시아 엘리트들이 아니라 아시아의 종교적 심성과 문화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고 아시아 대륙 전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과 대화를 함으로써 그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서양 선교사들이 들여온 그리스도교가 모진 박해를 받은 가운데에서도 유독 한국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이례적인 교세 신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18세기 이래 그리스도교 문화가 전통적인 한국 문화와 만나서 지금까지 한국-아시아 문화와 서구-그리스도교 문화가 융합되는 토착화의 과정을 겪어 오고 있는 중이다. 급격한 서구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한국 전통 문화의 맥락 안에서 생활하고 활동한다. 이 경험을 살려서 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이 자국의 아시아적 전통 종교 및 문화들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것이 종교와 문화의 복음화 국면이다.
또한 한국은 백 년 간 혹독한 박해를 거친 후 식민지배를 당하고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의 쓰라린 경험을 하면서도 경제와 국방 그리고 문화의 성장에 힘쓴 결과, 오늘날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반면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는 지지부진하며 그 결과 가난한 이들이 인구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빈곤과 소외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발전이야말고 지구촌 전체의 현안이거니와 아시아 대륙에서도 이 과제는 절박하다. 따라서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이 대륙의 가난한 이들을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한 공동선 증진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 점에서도 한국교회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제를 이룩한 한국사회의 도움을 받아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 이것이 사랑의 문명 복음화 국면이다(심상태).
3.3. 아시아 주교들의 통찰
대희년을 앞두고 열린 아시아 주교 시노드에서 아시아 주교들은 다음과 같은 통찰을 담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건의하였고, 교황은 이를 수용하여 1998년에 교황권고 「아시아 교회」를 반포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시아에서 태어나셨다. 아시아에서 자라난 그분의 교회도 이 아시아에서부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되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고 교회가 출현한 이스라엘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지점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은 동진할 수도, 서진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지중해 문명의 중심이었던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다가 끝내 이 제국이 그리스도 신앙을 공인하도록 만들면서, 교회의 로마화와 더불어 복음화의 방향이 서진하게 되었다. 그 후 교회가 제1천년기에는 유럽 대륙에 십자가를 세우고 제2천년기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는데, 서진하여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이 제3천년기에는 아시아 대륙에서 ‘사랑의 문명’을 이룩함으로써 예수께서 당부하신 선교 명령을 완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사실 제1, 제2천년기 동안에 보편교회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온 동방 ‘제1교회’와 라틴 ‘제2교회’는 오늘날 신앙의 활력이 현저하게 쇠퇴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교회에서는 유럽 이외의 대륙인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 세워진 ‘제3교회’가 제삼천년기에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교회 등 ‘제3교회’가 속한 지역에서의 대다수 민중은 여전한 고질적인 빈곤과 만성적인 사회부조리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에서는 인구 대비 신자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여러 지역교회들이 이슬람교나 힌두교, 불교 등 다른 전통 종교들의 위세에 눌려 현상유지에 급급하거나, 더 나아가 거의 만회불가능한 침체상태로 빠져드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보다 사정이 나은 일본과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이 나라의 교회들은 현상유지도 힘들 정도로 침체일로에 처해 있는가 하면, 공산 사회주의 국가들인 중국과 북한의 교회들은 신앙의 자유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거나 존재감도 없는 실정이다.
3.4. 한국교회에 거는 기대
그런데 이러한 세계적이고 아시아적인 교회의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지난 70년대 이래 높은 경제 성장력을 이룩한 사회 안에서 이례적으로 경이적인 교세 신장을 이룩하였다. 한국교회는 5백만의 신자들을 포용하면서 인구 대비 10%를 상회하는 신자율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한국교회는 아시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경제적 안정을 이룩한 결과 대규모의 본당, 회관, 학교, 병원, 복지시설 및 기타 시설을 다수 건립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가운데 본당 사목과 사회복지 사목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중이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70년대 이래 인권이 제약되는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하에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및 민주화 실현을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범국민적 신뢰를 받으며 사회적으로도 다른 어느 집단에 못지않은 높은 위상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며, 많은 신자들이 사회 주류층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등 실로 괄목할만한 활력을 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필리핀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한국교회와 같은 강력하고 드높은 위상을 사회적으로 확보한 지역교회는 없는 실정이다. 이것이 삼중의 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아시아 교회로서 보편교회에서나 아시아 교회에서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이유이다(심상태).
3.5. 두 교황의 방한 메시지
한국교회에 대해 기대하는 보편교회의 메시지는 한국을 방문했던 두 교황에 의해 감격스럽게 전달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5년 동안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늘 기도목록에 ‘한반도’를 올려놓고 기도해 주었다. 그의 기도 안에서 공식적으로 한국교회를 가리킨 표현들만 살펴보아도 그 진정성이 물씬 묻어난다. 즉, 세계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자생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선각자들의 땅, 백년 박해를 보란 듯이 이겨낸 순교자들의 땅, 그러면서도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갈라진 땅, 이 한반도에서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섭리가 빛을 발하여 신앙의 진리가 평화의 진리로 피어나기를 요한 바오로 2세는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이는 비단 한민족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교황의 기도 안에는 240여 년 전 놀라운 섭리로 한민족을 이끄셨던 하느님께서 다시 한 번 한민족을 이끌어주시기를 간청함으로써 하느님을 잊어버린 채 갈라져 있는 인류가 한민족을 통하여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목격할 수 있기를 바랐던 원대한 지향이 담겨 있었다. 이런 이유로, 첫 번째 방문은 한국교회가 청했지만 두 번째 방한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청하였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페 2,14)라는 성경 말씀을 주제로 정해주어 서울에서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도록 권유함으로써,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주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바야흐로 한민족에 의해 시작될 인류 평화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게 하였다. 두 번의 방한 후에 한국 사회에는 ‘가톨릭 붐’이 일어났고 ‘교황 신드롬’까지 생겨났으며 1980년대 초에 150만 명에 미달하던 신자들이 1990년 초에는 300만 명 이상으로 교세가 급신장하였다.
그런데 2014년에 교황직에 취임한 후 아시아 교회 중에서는 첫 번째로 한국교회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주교단에 대해서 매우 강한 어조로 교회 쇄신을 촉구하였다: “세속화와 능률화의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사랑의 이중 계명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바쳤던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의 지킴이가 되고, 그 순교자들이 증거했던 바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복음 진리에 대한 희망의 지킴이가 되십시오.”
그러고 나서 교황은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거행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서,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어머니의 삶과 그 품위를 천상의 상급으로 심판해 주신 승천의 신비로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표양이요 목표임을 언급하면서 일종의 영적 전투에 임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를 상기시켰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빕니다.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
그 다음 방한 일정의 주요 행사였던 124위 순교자 시복미사에서는 이렇게 강론하였다: “순교자들은 그들의 모범으로, 신앙생활에서 애덕의 중요성에 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 증언의 순수성이었고,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녔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대의 엄격한 사회구조에 맞서는 형제적 삶을 이루도록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는 데 대한 그들의 거부였습니다. … 막대한 부요함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니까 일반 신자들에게는 사회 복음화를 위한 메시지와 영적 성숙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두 차례에 걸쳐 전해 준 것이다.
이처럼 주교단과 일반 신자들에게 각기 다른 결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한 교회 쇄신의 메시지는 1980년대에 두 번이나 방한하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보낸 바 있었던, 그리하여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룩하게 한 총론적 메시지 위에 보탠 각론이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다른 나라 교회에 비해 복음화 역량에 있어서 뒤쳐서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민족이 분단되고 전쟁까지 겪은 후 70년째 그 분단을 이어오는 등 유난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놀라운 경제성장과 교세신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하여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를 받고 있기 때문에 복음화를 위한 교회 쇄신에 있어서 ‘직무유기’를 하지 말라고 촉구한 셈이었다.
3.6. 민족 복음화의 선행조건
두 교황의 메시지를 종합해 보면, 보편교회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한국교회에 거는 기대와 함께 장기적인 포석과 훈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한국 교회는 아시아 지역교회들 사이에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삼중 대화를 선도할 역량을 보유한 교회로서 아시아 복음화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라고 아시아의 지역 교회들은 물론 보편교회에서까지도 이구동성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토록 한국교회에게 공을 들였던 숨은 이유가 아시아 복음화에 나서달라는 뜻이었는데, 원대한 이 목표를 위해 나서기 위한 채비로 교회를 쇄신하라는 뜻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 그토록 절절했던 것이었다. 그리되면 우리 민족의 그토록 바라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 복음화는 덤으로 주어지리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구하면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선물로 주어질 것이라던 예수님 말씀(마태 6,25-34)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아울러 깔고 있는 복음적 훈수였다. 따라서 제3천년기를 맞이한 한국교회의 새 복음화는 민족 복음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내적 사목을 겨냥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거시적 안목으로 아시아 내지 인류 복음화를 자기 본연의 새 복음화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교회의 한국교회에 대한 여망이다.
이러고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교회에 촉구한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 역할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하여 선교적이면서도 복음적인 교회 쇄신을 단행할 것을 선행조건으로 한다. 여기에 이미 주어진 좋은 전범(典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사목 의안이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시에 던진 메시지들은 이미 이 사목 의안들 속에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담아 12개 주제별로 자리잡고 있었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회의는 아시아 대륙에서는 물론 여타 다른 대륙에 있는 지역 교회들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실로 예언자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기에 이 회의에서 4년 간 하느님 백성이 모여 숙고한 의안들이 선교 300년대를 지향하는 사목 향방 설정에 큰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막상 1995년에 출간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 전국 각 교구들 사이에 법적이고 행정적이며 전례적인 통일성을 기하고자 위해 일부 반영되었을 뿐이고, 아주 실망스럽게도 더 많고 커다란 제안 사항들은 까맣게 잊혀진 채로 사장되어 왔음은 언급한 바 있다. 최근에 주교회의에서 12개 분야에 걸친 「전국사목회의 의안집」을 새삼스럽게 발간한 까닭도 이 사목 의안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한국 현실에 맞추어 수렴한 값진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목 의안은 선교 3세기를 이미 한참 살아가고 있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아직 유효하고 살아있는 예언적 메시지이다. 한국교회에 주어지고 있는 섭리를 알아듣고 우리 교회가 이 예언적 메시지에 따라 교회를 쇄신하는 일이야말로 하느님께서 한반도 평화와 민족 복음화라는 선물을 주실 수 있는 값진 봉헌이 될 것이다. 또한 아마도 한국교회가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이 두 교황의 메시지를 잘 받아들여 아시아 복음화를 지향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사목의안을 통해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복음화를 위한 교회 쇄신에 진지하게 나서게 된다면, 보편교회의 여망에 따라 교황청에서도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 과업을 주도할 수 있도록 걸맞는 책임과 자율성을 허용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이 같은 여망과 기대를 감안할 때, 이제부터라도 사목 의안은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하고 밖으로는 민족 복음화를 이루며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같이 있는 교회되고자 한 의의와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박정일). 지난 40년의 지지부진함을 딛고 한국교회가 선교 3세기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에 큰 길잡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본 ‘사목 의안 연구’에서는, 사목 의안 위원회에서 애초에 천명했던 대로, 한국교회의 참된 성숙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편교회의 흐름 안에서 한국 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계시의 빛으로 조명하고 수용함으로써 신앙 토착화의 가능성을 실사구시적으로 탐구하는 한편,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봉헌하는 교회 쇄신의 길을 모색함으로써 하느님께로부터 민족 복음화의 선물을 받게 되기를 기도하고자 한다.
첫댓글 사목회의 의안집을 구입하고 읽을 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시네요.
<한국교회에 거는 기대>
교황님 들의 방한 특히 제가 경험했던 1980년대의 여의도 광장에서의 일들이 기억되어집니다.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하고 밖으로는 민족 복음화를 이루며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같이 있는 교회되고자 한 의의와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아주 작은 공동체에서 실현해야 할 나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깨어 있는 신앙인으로 나아갈 방향을 배워 나가겠습니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