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뒤에 오케스트라석 앞의 단상에서 사회를 맡은 엠씨 저승사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댄스곡을 연주하던 악단이 연주를 잠시 멈추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참석해주신 내외빈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잠시만 동작을 멈추시고 자리를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서 플로어에서 춤추던 이들이 플로어 바깥 테이블에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럼 지금부터 예정된 순서에 따라서 행사를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먼저 내빈 인사가 있겠습니다." 사회자는 손에 펼쳐 쥐고 있던 메모지를 보며 옥황상제님을 비롯해서 귀빈석을 쭉 훑어보았다. "먼저 천상본국에서 귀한 걸음을 하시어 이 자리를 빛내주시는 전지전능하신 옥황상제님과 황후마마 옥황상녀님을 소개합니다!" 사회자가 말하며 옥황상제님과 옥황상녀님을 가리켰다. 오케스트라 악단이 짧은 팡파르를 연주했다. 그리고 단상 아래에 위치한 자리에서 각 왕국의 대왕들과 모든 저승사자들 천상시녀들이 일어나서 박수로 환영했다.
옥황상제님과 옥황상녀님은 자리에 앉은 채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으며 팔을 들어서 흔들어 보였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에 또.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사회자가 장내 정리를 한 후 저승의 각 왕국 대왕들을 차례대로 인사 시켰다. 마지막으로 황녀궁의 성주이자 이번 댄스 페스티발의 호스티스인 하주공주를 인사 시켰다. 또한 장승백도 이번 행사의 중요한 주인공으로 개별 인사를 했다. 그가 꾸벅 절을 하자 옥황상제님이나 하주공주 못지않게 박수소리가 터졌다. "이상으로 내빈 소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바로 이어서 예정된 댄스 시범 공연이 있겠습니다. 라틴 댄스 단체전 포메이션과 단독 시범 공연을 바로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선수들 준비되시면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안쪽 대기실을 향해 소리쳤다.
플로어 안쪽 문 안으로 시범 공연팀 대기실이 있었다. 대기실 안에는 댄귀모 회원들의 라틴 포메이션 공연 팀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빈 소개를 마치고 어느새 장승백과 하주공주도 그들과 함께 개인 시범을 위한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장승백은 간단히 검은색의 꼬리가 길게 늘어진 연미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댄귀모의 포메이션 팀을 지휘했다. "자 긴장들 말고 평소 준비한 대로 편안하게 하시면 됩니다. 긴장들 푸세요." 장승백은 공연 팀의 긴장을 풀어 주려고 애썼다. 포메이션 팀의 여성 천상시녀들은 짧은 깃털이 달린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색깔은 진한 분홍색이 반 백색으로 반씩 홍학과 백학을 상징했다. 남성 저승사자들은 검은 색 상하의로 통일되게 입었다.
포메이션 팀은 초선낭자와 감찰대장 저승사자가 이끌었다. 감찰대장은 늦게 합류 했으나 초선낭자의 적극적인 도움과 본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포메이션 공연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건 초선낭자의 헌신적인 도움과 그녀로 인해서 그의 동기부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성 한 줄 여성 한 줄 두 줄로 맞추세요. 제가 신호하면 나가 주세요." 장승백이 지시를 하고 대기실 문턱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향해서 손짓을 했다. 사회를 보는 저승사자한테도 동시에 신호를 보냈다. 곧바로 사회자의 멘트가 나왔다. "자, 댄귀모 회원들 나와 주십시오!" 사회자의 멘트와 동시에 악단이 음악을 연주했다. 힘찬 행진곡으로 파소도블레 곡이었다.
그걸 신호로 해서 댄귀모 팀들이 플로어로 입장을 시작했다. 가장 앞에서 감찰대장이 초선낭자의 손을 잡고 음악 율동에 맞추어서 행진을 했다. 그 뒤를 이어서 포메이션 팀원들이 남성이 여성의 손을 잡고 뒤를 따랐다. 그들이 나가서 공연을 할 동안 하주공주는 무척 바빴다. 자신의 단독 시범을 위해서 화장과 치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 몇 명의 전속 시녀들이 둘러싸고 화장하랴 머리 장식하랴 드레스 입느라 그야말로 정신없이 눈코 뜰 새 없었다.
댄귀모 포메이션 팀은 플로어의 가운데로 가서 각 모서리로 네 명씩 갈라졌다. 여성의 깃털 달린 미니스커트가 분홍색과 백색은 각각 대각선 방향으로 네 명씩 흩어졌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서 각 종목별로 구성된 안무대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입장 행진과 모서리로 흩어지는 과정은 파소도블레로, 곧 연결해서 차차차 음악이 이어졌다. 네 모서리에서 남성들은 제 자리에서 음악에 율동만 했다. 여성들은 사방 네 모서리에서 신나는 차차차 음악에 맞추어서 중앙으로 집결했다. 홍학과 백학이 군집을 했다. 이어서 남성들이 다가가서 홀드를 하고 경쾌하게 남녀가 차차차를 추었다. 바로 음악은 끊이지 않고 자이브로 연결 되었다. 남녀가 어울려서 신나고 코믹한 동작으로 자이브를 방방 뛰었다. 차차차도 신났지만 경쾌한 자이브 음악이 나오자 관중들도 음악에 어울리게 박수를 쳤다. 관중들의 호응과 격려로 공연은 더욱 생동감 넘치고 활기찼다. 공연의 열기도 점차 더해 갔다. 온갖 익살스런 동작으로 보는 이들을 즐겁고 재미있게 해주었다. 더군다나 언제나 위엄만 부리던 저승재판정의 재판관 저승사자도 포메이션 공연 팀에 포함되어 있었다. 평소 근엄하기만 하던 것과는 사뭇 딴 모습이었다. 제 흥에 못 이겨서 주체를 못했다. 온 몸을 흔들고 꼬고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재판관 저승사자뿐만 아니라 감찰대장 저승사자도 그 큰 덩치와 험상궂은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온갖 기교와 재주를 부리느라 난리법썩이었다. 그들 뿐 아니라 지옥 경비대장도 옥졸 저승사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뽐내며 공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관중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자신들의 파트너인 아름다운 천상시녀들과 함께 춤추고 공연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또한 저승세계지만 댄스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마음 하나로 단결시켜 주었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열게 했다. 상대를 존중하고 파트너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아무리 흉측하고 무서운 저승사자들이라도 아름다운 천상시녀들 앞에서는 양처럼 순해졌다. 댄스는 파트너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어서 서로를 존중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하주공주조차도 파트너가 없으면 댄스는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경쾌하고 코믹한 자이브가 끝난 뒤에 끈적거리는 룸바 음악으로 바뀌었다. 여성 천상시녀들은 남성 저승사자들 앞에서 갖은 교태스런 눈빛과 몸짓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연기를 했다. 지켜보는 관중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삼바 음악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남녀가 엉켜서 롤 동작으로 바깥으로 퍼졌다가 다시 모여 들었다. 홍학과 백학이 군무를 펼치는 듯 했다. 공연 팀들이 가운데로 집결하자 음악이 멈추었다. 포메이션 공연이 끝을 맺은 것이었다.
관중들의 박수가 터졌다. 그들의 공연은 젊은 선수들만큼 생동감 넘치고 파워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짧은 연습 기간과 그들의 신체 나이를 감안한다면 프로페셔널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연기 못지않게 훌륭한 공연이었다. 관중들도 그 점을 높이 인정하고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
감찰대장과 초선낭자는 팀원들을 정렬 시켜서 귀빈석 쪽으로 이끌고 갔다. 그리고 옥황상제님과 옥황상녀님 그 아래로 각 대왕들이 앉은 쪽으로 인사를 했다. 옥황상제님과 옥황상녀님이 얼굴 가득히 웃음 지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포메이션 댄귀모팀은 방향을 돌려서 사방을 향하여 인사를 하고 퇴장했다. 대기실 문 앞에는 장승백과 하주공주가 그들을 반겨 주었다. 장승백도 댄귀모의 포메이션 공연이 잘 마무리 되자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들의 단독 공연이 바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