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종주 (+ 계곡 트레킹) 후기 III [글]

[소그미]

[4] ‘누리로’

일년 전과 똑 같은

익숙한 방법으로 청량리에 도착했지만

일년 전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이곳 저곳에 마스크 관련 안내문과 경고가 즐비하지만

그와 반대로

대합실에는 빈 좌석이 태반이었다.

COVID-19 때문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원주의 방점을 찍는 도보에 혁혁한 기여를 한 누리로는

기존 무궁화호 열차와 조금 달랐다.

우선 늘 익숙한 차량 번호와 행선지가 열차 바깥에 적혀 있지 않았다.

내가 타야 할 차량 번호가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은 후에

행선지와 차량 번호는

차량 가운데 위쪽에 LED로 점등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마치 버스 앞쪽의 위에 번호화 행선지를 표시 하는 것과 같았다.

누리호는 무궁화호보다는 조금 업그레이드 된 기차였다.

좌석은 조금 깨끗하고, 또한 비행기처럼 개인 tray가 있었다.

그래서 팔걸이에서 tray를 꺼내서 펼쳐 놓고

그곳에 휴대폰을 얹어 놓을 수도 있었다.

또한 차량 중앙 통로 위에는 display도 있었는데

열차 광고만 열심히 하지 정작 정차역 같은 정보는 표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커튼도 기존의 천 방식이 아니라 블라인드 식이었다.

한마디로 조금 모던한 기차였다.

그런데 신림역행 이 누리호는 약간 문제가 있었다.

전철과 함께 달리는 지평역까지는

덕소역, 양평역, 용문역을 제외하고 거의 서지 않았는데

지평역 다음부터 신림역까지는 거의 모든 역에 정차하는 것이었다.

작년 원주를 다니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역들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왜 신림역에 09:05분에 도착하는지.

그래서 청량리역부터 신림역까지 2시간이나 소요되는 것이었다.

2시간이면 고속도로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가는 시간인데..

작년과 비교하여

청량리 출발 시간은 동일한데 도착 시간이 30여분 늦는 것이 조금 이상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역시

세월이 가면서 좋아지는 것보다는

그 반대인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예약하고 출발할 때는

아무 생각 없었고

또한 기차가 있는 것만이라도 좋았다라는 막연했던 느낌이

‘9시5분’이라는 신림역 도착 시간이

“작년보다 30분 늦게 도착” 이라는

상대적 비교의 축에 놓이면서

마음이 조금씩 급해지기 시작했다..

[5] ‘정신이 번뜩’

접근 계획은

신림역에 도착하면

신림역사를 한번 둘러 보고,

굽이길 스탬프 함도 잘 있나 한번 보고

그리고 서편 수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용소막 성당을 보고선

다시 신림역으로 돌아와서

치악산 남쪽 들머리로 가는 것이었다.

결과론적이지만 이래도 전혀 문제 없었다.

그런데

기차가 원주역을 지나

그 다음 정차역인 반곡역 즈음 도착하고

그 다음역인 목적지인 신림역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신림역에서 성남 탐방지원센터까지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동안

지도에서 위치를 살펴 보고

길이 있는지, 어떻게 가야 돌아가지 않은지 등 루트만 체크해보았지

정작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계산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대폰을 얼른 꺼내서 체크해보니

세상에….

무려 8.1km였고

도보로 2시간 가량 소요된다고 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저 도보 속도보다야 빨리 걸을 수 있지만, 그래도 긴 거리였다.

5km 정도는 크게 무리 없는 들머리, 날머리로의 접근 거리로

생각하고 있는데, 8km라니..

허걱~ 큰일이었다.

9시 넘어 도착을 하고 그 때부터

2시간 동안 걸으면

11시가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산행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에 뚜껑이 열렸다.

‘아~ 이걸 내가 왜 사전에 미리 체크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원주를 너무 잘 안다고 자만했기 때문에

다른 때와는 달리 깊이 분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신림역에서 성남 탐방지원 센터 가는 길의

한 3킬로 넘는 구간은 원주 굽이길 14코스와 동일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미 아는 길’이기 때문에

이미 아는 길을 지난 이후에 ‘길 방향’만 신경 썼을 뿐이지

정작 전체적인 거리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략 5km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

아뿔싸…

11시에야 들머리 도착한다면,

그건 지리산 종주 천왕봉 올랐을 때의 시간과 같은 시간이고

그때면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맙소사~.. 큰일이었다.

지리산 산행 때와의 비교를 하게 되니

시급함에 대한 체감도가 확 올라 버렸다.

결국 코스 접근을 잘못 설계한 것을 깨달았다.

즉 원주역에서 열차 하차를 하고,

그곳에서 성남탐방지원센터 (23번 버스)로 남쪽 들머리로 바로 가거나

또는 원주역에서 열차 하차를 하고,

그곳에서 구룡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구룡사로부터 사다리 병창을 올라

남진을 했었어야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중간 지대인 어정쩡한 상태로 온 것이었다.

머리 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잘 안다고 하는 것에 항상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빨리 수습을 해야 했다.

신림역이 코 앞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신림역 역사 둘러보기와 용소막 성당가기는 스킵하기로 했다.

일단 열차에서 하차를 하면

신림역은 철로 반대편에 있어서

신림역을 둘러 보려면

철로를 건너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한다.

그래서 패스 하기로 했고

용소막 성당은

신림역사에서 또 한참을 가야 하므로 자동 취소였다.

신림역으로 온 주요 동기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었다.

에고~

그리고 그 다음 할 일은

버스 정류장을 알아 보는 일이었다.

신림역에서 원주 굽이길 14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코스의 마지막 지점

즉 원주 굽이길 15코스 시작 지점에 자동차 도로가 있고 그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일단 있는지 없는지 여부만 확인을 해보았는데

마침 버스 정류장이 원주 굽이길 14-15코스 전환점 바로 옆에 있었다.

빙고~..

그렇지만 버스 시간은 확인해보지 않았다.

왜냐면 신림역에서 그 정류장까지 3km가 넘고

또한 버스 시간을 미리 알아봐야

마음만 급하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운 좋으면 시간이 맞는 것이고

운이 안 좋으면 안 맞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왜냐면

‘원주’이니까…

[6] ‘원주 굽이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치악산과 원주 굽이길과 매칭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그렇지만

신림역부터 내가 들머리로 택한 성남 탐방 지원센터까지의 도보 길은

자연스럽게 원주 굽이길 14코스 ‘용소막 성당 길’의 일부와 동일하다.

지리적으로는

신림역부터 신림중학교를 지나 신림교회 근처까지의

대략 3~3.5킬로 정도 거리다.

일단 그 길은 참으로 눈에 익은 길이었다.

신림역에서 나오면

초입은 철로와 나란히 평행하게 철로를 따라가는 길이다.

그런데 하늘색, 노란색 조합의

굽이길 리본들이 대체로 많이 낡아 있었다.

때도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고, 빛 바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울 둘레길 같은 곳은 자원 봉사자들이 계속

낡은 리본을 바꾸는데

이곳은 그런 시스템이 갖추어진 것 같지는 않다.

거의 누더기 수준이다.

아마 각 코스별로 지킴이는 있어도

워낙 시골 동네이고,

또한 걷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길도 힘들고.

자원 봉사자에 대한 지원도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리본만 봐도 관리 상태를 훤히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니

일년 전 일들이 무릇무릇 생각났다.

그때 신림역부터 영월 입구인 황둔까지

원주 굽이길 14코스 잔여구간 (신림역 ~ 신림교회),

원주 굽이길 15코스와 16코스를 한 번에 걸었는데

그 날이 가장 힘든 날 중의 하나였다.

비는 오고, 산 속에는 구름 안개가 자욱하고…

그나마 그 힘듬을 달래준 것이

찐빵이었다.

황둔이라는 곳은 찐빵 집으로 유명한데,

그곳에서 모듬 찐빵을 사서 먹었던 기억이다.

도로 변에 한 열 군데도 넘는 찐빵 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신림 교회 근처에 도착하니

원주 굽이길 15코스 안내판이 보였다.

오랫만에 보니 반가웠다.

원주 굽이길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15코스 싸리치 옛길…

단종이 이 힘든 길을 정말 가셨을까 싶기도 하다…

[수명산]

예전에 원주에서 군복부할때 서울에 한 번 오려면 5시간을 기차를 타야했지요. 사실 그시절 군인들은 거의가 무임승차할때였지요. 원주역 개구멍을 통과하고 보광도 살적이니 서빙고에서 개구멍을 통과하던 시절입니다. 현재는 1시간 정도밖에 안걸리니 좋은 세상입니다. 신림역에서 접근거리가 8km 우리네 같으면 시작부터 지칠 거리인데 정말 대단합니다. 또 하나의 추억거리 남겼군요. 멋집니다^^*

[소그미]

사실 8km를 알았다면 저도 신림길을 피했을 건데, 멋모르다가 그리로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한 보상은 있었던것 같습니다. 신림역은 원주 굽이길을 걸을 때 몇 번의 인연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스러져 가는 역이라서 조금더 애잔한 마음도 있은것 같습니다.

덕분에 좋은 곳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