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여론 조사의 비밀

[하동희]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지율이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지지율을 18.9%p 가량 앞서고 있다. 한길리서치에서 지난 5월 16~17일 양일간 서울시민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9일 공개한 ‘6·2지방선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후보의 지지율은 47.1%, 한 후보의 지지율은 28.2%보였다. …한편 이번 여론조사는 전화면접 방법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4.0%p다.”
지난 2일 지방선거가 끝나자,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여론조사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실제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지방선거 여론조사와 실제 결과의 오차가 이렇게 많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론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요?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인 여론은 무엇이고, 이를 대변하는 언론의 구실은 무엇일까요? 여론조사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해 함께 알아봅시다.
기획·편집 조동영 기자

[여론 정치]
정치 과정에서 국민의 정치적 요구가 수렴되지 못하면 국민의 정치적 불만과 소외,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싹터 정치 체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국민의 정치적 요구나 기대는 여론으로 표출되므로 정책 결정 과정에 여론이 최대한 반영되어야 국민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론은 현대 민주 정치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민주 정치를 여론 정치라고도 한다. 그러나 여론의 분산이 심하거나, 비합리적이고 변동적일 경우 이를 그대로 정책에 반영하면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고 사회적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고등학교 <정치> (대한교과서) 가운데

여론조사 전문가들 “아…” 한숨, 왜 빗나갔나



“아….”

6·2 지방선거 투표 결과가 공개되자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일제히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러야 했다. 선거 전 여권의 ‘압승’을 예상했던 전망치가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이다.

“현장 민심과 조사결과 차이 보여 당혹”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 결과가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먼저 여론조사 방법의 ‘기술적 약점’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선거 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예측 결과가 틀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더피플’의 육창균 조사팀장은 “이번처럼 판세 예측이 어려운 적은 없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바닥 민심과 조사 결과가 차이를 보여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신뢰도 높은 표본 확보 어렵고, 응답률도 낮아

여론조사가 현장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는 무엇보다 신뢰도 높은 표본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현행 여론조사는 집전화 응답자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 손전화와 ‘070 전화’가 일상화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조사가 시행되는 시간에 집에 있는 경우가 드문 20~30대 젊은층의 샘플 확보가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또 잦은 여론조사에 따른 ‘피로감’과 ‘의도적 조사거부층’의 증가로 응답률이 낮아져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때 30%대에 육박했던 전화자동응답(ARS)조사와 전화면접조사의 응답률은 각각 5~10%, 10~15%대로 뚝 떨어졌다.

20~30대 여당 견제론도 영향 있는 듯

전문가들은 선거 막판에 ‘견제론’의 불씨가 급속히 되살아났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사장은 “바닥에 두텁게 깔려 있었으나 천안함 침몰 사태에 묻혀 있던 견제론이 막판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여당의 과도한 ‘강경 북풍몰이’에 맞서 야당이 제대로 된 대응논리를 만들지 못하자 막판까지 주춤했던 유권자들이 ‘그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투표일에 움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도 “특정 정당 편중이 심한 영호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유권자들이 막판까지 확실한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막판에 움직인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 근거로 54.5%에 이르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 그중에서도 야당 성향이 강한 20~30대의 투표율 상승을 지적했다. 그는 “선거 막판 경기도 유시민-심상정 후보의 단일화에 이어 방송인 김제동씨의 ‘외압 하차설’ 등이 전해지며 젊은층에서 여당 견제론이 살아나 투표장으로 나가게 하는 변수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선거 1주일 전에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여당의 압승으로 나타난 게 투표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발표가 여당 지지 성향 보수층의 결집을 느슨하게 한 반면에 야당 지지층의 견제심리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질 것 같은 후보에게 동정표를 몰아주는 일종의 ‘언더도그 효과’가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이정애 기자, <한겨레> 2010-06-04,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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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Q&A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된 여론조사 관련 궁금한 점들을 Q&A 형식으로 알아봅시다. 편집자

Q. 누구를 대상으로 하나요?

한국통신(KT) 전화번호부에 등록돼 있는 ‘집전화’를 무선(random)으로 표집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실제 투표자가 아닌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투표결과와 차이가 많다는 점과, 집전화보다 휴대폰 사용이 빈번한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이 여론조사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의 여론조사를 ‘전업주부 조사’라 말하기도 합니다.

Q. 어떻게 조사하나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신문사마다 여론조사 결과가 들쭉날쭉했는데 그 이유는 여론조사 방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전화면접조사를, <한겨레>는 자동응답(ARS) 방식을 택했습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동응답(ARS) 조사의 경우 현 정권에 부정적이거나 정치에 관심 많은 사람들의 응답률이 높아 야권후보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반면, 전화면접조사는 선거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인지도가 높은 현역 후보로 답하는 분위기가 있어 여권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Q. 1000명 대상 여론조사면 1000명이 다 응답한 건가요?

지난 5월15일 <조선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서울시장 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 자료를 보면, ‘서울시 만 19세 이상 유권자 503명을 지역구별 인구수 비례 무작위 추출했다’며 ‘응답률은 19.1%’라고 했습니다. 전화조사는 503명을 대상으로 했지만 실제 응답자는 96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96명은 실제 유권자수 800만명의 0.0012%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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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도그 효과와 밴드웨건 효과

1. 언더도그 효과

언더도그(underdog)는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여서 질 것 같은 사람이나 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언더도그 효과란 이런 사람이나 팀을 동정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가리킵니다. ‘동정 효과’라 불리기도 합니다.

2. 밴드웨건 효과

축제 행사 때 악대(band)를 태운 마차(wagon)가 군중을 끌어 모아 계속해서 몰고 다닌다는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승자의 편에 서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 우세한 후보자가 계속 높은 지지를 얻게 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편승 효과’라 불리기도 합니다.

민심 못 읽는 여론조사 ‘집권세력 오만’ 불렀다

겉만 보고 가다가 속은 건 여권뿐 아니라 야권도 마찬가지였다. 선거기간 내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숨은 표’가 있다고 주장했던 야당도 개표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의도 전체’가 놀란 것이다.

“여론조사 오류, 민주주의 시스템 심각한 장애”

이번 6·2 지방선거의 결과는 그동안의 여론조사란 ‘거죽’과 민심이란 ‘알맹이’가 얼마나 불일치했는지를 보여줬다. 그동안의 여론조사가 현장에서 느껴지는 이른바 ‘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를 빼고는 사실상 모든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가 엉터리였다. 여론조사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거가 없는 평상시엔 여론조사가 민의를 가늠하는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이런 결과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작동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한 것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50%에 이르는 높은 국정운영 지지율에 기대 반대 여론이 높은 4대강 사업 등을 일방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의 근본 문제가 잘못된 여론읽기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고 되레 여론을 왜곡하는 일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우선, 여론조사의 기술적 결함을 들 수 있다. 대부분 국민들이 손전화를 많이 쓰고 인터넷 전화 가입률도 높은데 통신사에 등재된 집전화 번호만 갖고 여론조사를 벌이는 것은 애초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응답자 표본을 추출할 때 성별·연령별·직업별·지역별로 구분하는 것 또한 적극적 투표 의사층의 힘을 반영하지 못한다. 박동천 전북대 정치학과 교수는 “여론조사기관이 관성에 빠져 있다. 현행 조사방법이 왜곡됐다고 한다면 이를 바꿔볼 기법들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냥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여론조사 정확성, 민주주의 진전도와 비례”

정치적 환경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네르바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인터넷에서 경제 위기를 분석하는 글을 썼다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된 누리꾼 ‘미네르바’를 보면서, 국민들이 점차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의사 표현을 삼갔다는 것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민주주의의 진전도와 비례한다”며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솔직한 의사 표현을 하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소심한 응답자들은 이에 영향을 많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재천 전 열린우리당 의원도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자기 마음을 표현하면 기록에 남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게 됐기 때문에 엠비(MB)를 욕할 때도 자기 주변 사람하고만 얘기한다”며 “그러다 보니 여론조사가 왜곡되고, 그 왜곡된 결과에 자신감을 가진 정부가 ‘오버’하고, 그러다 보니 그것을 표로 심판하는 연쇄구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보수진영 ‘제 논 물대기’ 여론조사도 문제

일부 언론들이 여론조사를 통해 보수진영의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착시현상을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보수언론들은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자신들한테 불리한 이슈는 아예 여론조사도 하지 않고 기사화하지도 않았다”며 “보수적 어젠다만 갖고 스스로 자위하다 보니 비판적 인식이나 진보적 어젠다는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언론·보수정당·보수적 시민들이 ‘인스턴트 여론조사’를 이벤트로 만들며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였다”고 짚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 것만 발표하다 보니, 민심 바닥에 앙금으로 남은 ‘심판 의지’는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높은’ 국정운영 지지율 오판도 한 몫

한나라당이 이번 참패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데는 이명박 대통령 지지기반이 탄탄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국정운영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심판론이 별로 먹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는 청와대가 국정운영 지지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조용휴 폴앤폴 대표는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기 5일 전 조사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47%였다. 50%대는 별로 공고한 수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그러나 선거에서 패배하자마자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금방 20% 중반대로 떨어졌고, 이후 열린우리당이 책임론으로 분열할 때 10% 후반대로 하락했다”며 대통령 지지율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이유주현 기자, <한겨레> 2010-06-04,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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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가 필요한 여론조사

20세기 초 미국 언론에선 여론조사가 유행이었습니다. 미국 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의 경우 당시로선 엄청난 여론조사 물량 작전을 펼쳐 잡지계 정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잡지는 19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1600만명의 유권자에게 설문지를 우편으로 발송했고, 1928년에는 1800만명에게 인기투표 용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1936년 선거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공화당 후보는 앨프리드 랜던, 민주당 후보는 현직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였습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1000만명에게 설문지를 발송해 230만장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집계를 해보니 공화당 랜던이 압승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이 잡지는 이를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선거에선 민주당 루스벨트가 유효투표의 60%를 얻어 재선했습니다. 이로 인해 잡지는 큰 망신을 당했고, 이후 2년을 버티다 결국 1938년 폐간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표본(sample)이었습니다. 이 잡지는 구독자 주소록과, 전화 가입자, 자동차 보유자 명단을 토대로 표본을 산출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이들은 대부분 부유층이며 공화당 지지자였습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표본 크기가 아니라 표본 추출 방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고, 특정 계층만 상대로 조사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당시 대학교수이자 광고회사 임원이었던 조지 갤럽은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1930년대 초 과학적인 샘플링 기법을 개발하고 나섰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여론조사 기관으로 유명한 갤럽(Gallup)이 만들어진 계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80년 가까이 지속돼 온 ‘갤럽’ 형식의 여론조사 방법도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집전화에 기반한 표본 선정방법에도 큰 문제가 있을 뿐더러, 단순한 질문 위주의 조사방법으론 오늘날 유권자를 대변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성용 강남대 교수는 이에 대해 “정치적 성향의 여론조사에서 벗어나, 공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회조사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헛짚은 여론조사’ 언론도 책임 있다





































지방선거의 출구조사 결과가 언론의 예측과는 딴판으로 나온 지난 2일 저녁, 한 방송이 송영길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에게 소감을 물었다. “판세가 역전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송 후보는 “역전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기는 줄 알고 있었는데, 언론이 그렇게 보도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민심 읽기에 실패한 중앙언론사들

다음날부터 언론은 선거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상황을 분석하느라 바빴다. 현직 언론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예상 못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결론은 예외 없이 “여론조사 탓”이라는 쪽으로 모아졌다. 이들은 주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침묵하는 경향을 뜻하는 ‘침묵의 나선효과’, 그 결과 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는 ‘숨어 있는 야당 표’ 등등을 거론하면서 여론조사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이와는 달리 지역 언론의 편집자들은 자기지역에서의 한나라당 참패를 예견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충청의 경우 세종시 문제로, 경남의 경우 김두관 이달곤 두 후보의 인지도 격차로, 인천의 경우 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으로 한나라당 후보들이 처음부터 고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참패를 예견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언론인들이 “예상 못한 결과”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예상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는 민심 읽기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

여론조사의 구조적인 한계는 이제야 불거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언론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선거 판세를 현실에 가깝게 분석해 내는 나름대로의 틀을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언론이 흡사 여론조사의 한계를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얼버무릴 때 흔히 쓰는 수법이다.

언론은 선거상황의 종합적인 취재와 분석을 통해 판세를 읽어야 하며, 여론조사 결과는 그 수단의 하나이다. 선거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는 여론조사와는 별도로 판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처럼 이명박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중간평가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경우, 지역 유권자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여론의 흐름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예상 못한 결과”라는 현직 언론인들의 증언은 다른 말로 하면 “선거 판세를 읽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고백이 된다. 이들의 잘못이 게으름에 있다면 차라리 문제는 쉽게 풀린다. 다음 선거 때 열심히 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들의 오판은 보다 구조적일 수가 있다. 이들의 접촉범위가 중상층 이상에 한정되어 있어 유권자의 절대다수인 현장여론에 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선별적 여론만 받아들이는 언론인은 실패자

만나서 편안한 사람들만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공통된 속성이다. 그러나 언론인이 자신과 학력이나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사람들만 만나고 다니면, 우리 사회의 진정한 동력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언론인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 만남으로써 이 부류의 생각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이들의 생각에 맞추는 자기검열의 습관에 빠지고, 자신의 선입견에 맞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실패한 언론인으로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한겨레> 2010-06-09,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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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의 여론관, 그리고 언론관

글쓴이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여론조사 결과 해석에만 급급했던 중앙언론사들을 비판합니다. 이는 권력을 견제하고, 민심을 대변하는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여론은 무엇이고, 이 시대 언론의 설 자리는 어디인지 들어봅시다. 편집자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연호, 오마이뉴스, 2009)를 보면 여론과 민심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의가 나옵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여론은 ‘그때그때 움직이는 것’이었다면 민심은 ‘좀더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의 시대정신’을 의미했습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그래서 여론에 귀는 기울여야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 대신 ‘역사의 눈높이’라는 차원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9월 ‘방송의 날’ 축사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언론의 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국가우위, 국가권력 우위의 시대에 언론은,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시민의 권력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그 민주주의는 유산자(有産者) 민주주의였습니다만, 어쨌든 (언론은)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언론의 구도는 변하고 있습니다. 시장권력이 국가권력을 넘어서는 ‘시장 우위의 시대’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변화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 언론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요? (언론은) 시장권력의 대변인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시민권력의 대변인이어야 할까요? 저는 (언론이) 시민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소비자의 자리에서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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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나선 이론 (Spiral of silence)

1966년 독일 사회과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이 자신의 책〈여론과 사회 통제〉에서 제시한 이론입니다. 이는 하나의 특정한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정되고 있다면,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소수 사람들은 고립에 대한 공포로 인해 침묵하려 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노이만은 또 그의 책 <침묵의 나선 이론 - 여론 형성 과정의 사회심리학>에서 ‘침묵의 나선’은 다음과 같이 4단계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① 권력자가 주목 받지 않았던 화제를 꺼낸다. ② 주목 받지 않았던 화제에 대해선 곧바로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대중들은 일단 옳은 것으로 인식한다. ③ 이후 나오는 비판에 대해선, 옳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려 배제를 유도한다. ④ 소수파가 된 비판 세력은 다수의 압력을 받아 결국 비판을 포기한다.

내 마음은 숨어있지 않다



해적들이 많아지면서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는 군함을 공격하다가 붙잡히는 해적도 생겨나고 있단다. 군함을 상선으로 착각해서 생기는 일인데 착각의 이유가 흥미롭다. 해적들로선 큰 배를 납치할수록 뜯어낼 수 있는 돈이 많아지니 그것이 군함이든 상선이든 큰 배만 보면 돈다발이라는 생각이 앞서서 그런 어이없는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과도 한 자루 들고 전투태세를 갖춘 특공부대를 털겠다고 뛰어드는 격이다. 자기 이익이나 목표에만 집중하다 보면 언제든 그런 일이 생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 대로만 행동하니 당연한 결과다.

‘숨은 표’에 호들갑 떠는 건 무지의 소산

이번 지방선거에서 ‘숨은 표’ 논란을 촉발한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의 행태가 바로 그렇다. 사람들의 실제 의견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에게 불리한 이슈나 사실은 쏙 빼놓고 자기 진영의 카르텔을 형성해 착시현상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그래 놓고 언제부터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숨은 표’의 의미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기 전부터 사과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그 시점부터 사과가 땅에 떨어지기 시작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행위는 삼류 코미디이거나 무지의 소산이다.

게다가 ‘숨은 표’의 의미를 정부여당의 성실성과 치적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대목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아무리 국정운영의 중대 기조가 홍보지상주의적이란 평을 듣는 정부라 해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여론조사 기관의 신뢰도를 걱정하며 ‘숨은 표’를 찾아내기 위한 선진 조사기법의 도입을 역설하는 언론의 행태도 화를 북돋우기에 손색이 없다. 언론이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을 한 셈이 되었다는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하마를 지목하며 입을 오므리는 입 큰 개구리처럼 당사자가 아닌 양 처신한다. 정부여당은 국민을 마음 없는 유령인간 취급하고 동조언론은 발맞춰 계몽한다.

‘나’를 집단화하는 ‘그들의’ 촌스러운 인식

이번에 투표한 유권자는 2200여만명이다. 그중에는 자신이 찍은 후보가 당선된 유권자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고 애초에 당선권 밖에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특정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도 있다. 어떤 경우든 개별적 사연이 존재하는, 존중받아 마땅한 나의 권리다. 배우 송강호의 말처럼 천만 명을 설득하는 힘과 한 명을 설득하는 힘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부, 정치인, 여론조사 기관, 언론은 ‘나’라는 개별적 존재가 가진 속마음은 도외시한 채 2200만이라는 거대한 무리의 무색무취한 분자로만 ‘나’를 취급한다고 나는 느낀다.

한 명을 앞에 놓고 진지하게 눈을 맞출 타이밍에도 천만 명을 대상으로 연설하듯 공허한 제스처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겐 ‘숨은 표’가 늘 의외일 수밖에 없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된 현재의 사회적 환경이나 침묵의 나선이론 같은 심리적 이유 등도 ‘숨은 표’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나’를 집단의 한 구성분자로만 취급하는 ‘그들의’ 촌스러운 인식이다. 나는 마음을 숨기고자 한 적 없는데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숨은 표로 취급하고 또 스스로 놀란다. 나에 대해 말한다면서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 것이 전부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나’를 무시한 여론조사와 언론, 그 결과는?

9·11 테러가 발생하기 직전 의미심장한 정보보고가 있었다. 한 항공학교에서 비행기술을 배우면서 착륙 방법을 배우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착륙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었던 그 훈련생은 조종 자격을 딴 후 비행기를 몰고 빌딩으로 돌진했다.

위험신호는 언제나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이 외면하거나 왜곡할 뿐이다. 이번 선거의 ‘숨은 표’ 논란은 그런 위험신호의 하나로 보인다.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하다 보면 서너 명이 개인화기 몇 점 들고 중무장한 군함을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해적 신세가 된다. 결과는 몰락이다. 국민의 마음, 민심이란 그런 군함 같은 것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한겨레> 2010-06-10,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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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에 눈이 멀어 보아도 보지 못하는 ‘그들’

글쓴이는 이 글에서 ‘자기 이익이나 목표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심리로 인한 엉뚱한 행동양식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먼저 글 서두에선 소말리아 해적들이 겁도 없이 군함을 공격하는 심리를 예로 듭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이러한 행동 뒤편엔 ‘큰 배를 납치할수록 뜯어낼 수 있는 돈이 많을 것’이란 단순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른바 ‘돈에 눈이 먼’ 상태입니다.

글쓴이는 이를 가지고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의 행태를 비판합니다. 원래부터 눈에 띄었는데 자기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를 ‘숨은 표’로 둔갑시켜 해석하는 행태는 마치 소말리아 해적들이 ‘돈에 눈 먼’ 것과 같은 심리에서 비롯됐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나’를 집단의 한 구성분자로만 취급하는 ‘그들의’ 인식이 촌스럽다고 말합니다.

집단동일성의 신화에서 벗어나려면

독일의 사회철학자이자 예술철학자인 아도르노(T. W. Adorno, 1903~1969)는 나치의 집단폭력을 경험하고, 이 뿌리를 찾는 일에 전념하던 중 그 근간에 근대의 ‘계몽이성’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아도르노는 근대의 계몽이성은 중세의 신화와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으나, ‘동일성’이란 신화에 사로잡혀 자연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착취하고, ‘집단동일성’으로 개인의 자연스런 본성마저 억누르게 됐다고 봤습니다. 결국 ‘뒤집힌 계몽이성’은 개인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파시즘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아도르노는 ‘뒤집힌 계몽이성’을 다시 뒤집어 동일성의 신화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진정한 계몽의 가능성을, 동일성을 본질로 하는 ‘과학’이 아닌 개성(또는 비동일성)을 본질로 하는 ‘예술’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대중문화의 집단동일성에 저항하는 ‘예술’이야말로 개인의 비판적이고 반성적이며 창의적인 개성을 일깨우는 진정한 계몽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지금 세상은 ‘대중’을 기반으로 한 모더니즘에서 ‘개인’이 주축이 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의 헛발질은 자기 이익에 사로잡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아하한겨레 NIE 논술][정치] 쉿! 여론조사의 비밀 (박문논술카페) |작성자 산풀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