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改革)”은 급진적이거나 본질적인 변화가 아닌, 사회의 특정한 면의 점층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고쳐나가는 과정 사회 운동의 하나입니다. 개혁 운동은 혁명과 같은 더 급진적인 사회 운동과는 구별됩니다. 그러기에 개혁을 통해서 혁명을 막고자 했던 통치자들이 많았지만 개혁을 통해 혁명을 방지한 지도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 개혁은 언제나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늘 많은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입에 ‘개혁’을 달고 살지만 그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별로 없을 겁니다. 대부분 시늉만 내다가 그만두게 되는 것이 개혁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개혁이든 혁명이든 기득권이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되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권 후반기에 국회를 장악하고도 개혁할 것들을 그냥 둔 것은 자기들이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어 개혁을 하려고 하니 쌍수를 들어 반대하거나 자신들이 포기했던 일을 새 정권에게 떠넘기는 태도로 일관하니 과연 저들이 무슨 민주화를 했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습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후 회고록을 통해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금융실명제 시행 과정에서 엄청난 반대를 겪었기 때문이다. 원래 금융실명제는 제5공화국이던 1982년에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처음 추진됐다. 개혁 과제가 늘 그러하듯 사회 각계 반발이 거셌고 번번이 도입이 지연됐다. 10년이 지난 1993년에 이뤄졌는데, 이조차도 비밀리에 준비해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으로 시행했기에 가능했다.
시행 후에도 사회 각계 반대는 여전했고 헌법소원심판 청구까지 나왔지만, 현재 금융실명제는 문민정부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 과제를 들고 나왔다. 이 중 연금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하기 위해선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 연금개혁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인데 이를 위해선 보험료를 더 내거나, 수급액을 덜 받거나 늦게 받는 등 국민 입장에서 손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더 내고 ‘더 받는’ 개혁도 있지 않냐고 하는데, 이는 현재의 연금 재정 구조는 물론 미래 세대를 고려치 않은 포퓰리즘적 발언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 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연금개혁안을 반려한 경우다.
연금 상황은 위태롭다. 2018년 정부는 제4차 재정 추계에서 국민연금 기금이 2057년이면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고갈 전망을 2054년으로 3년 앞당겼다. 이유는 단순하다. 국민이 내는 연금 보험료보다 받는 연금 수령액이 더 많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에서 연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될까. 이 역시 간단하다. 보험료를 더 걷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 연금처럼 정부 세금으로 충당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감당 규모 자체부터 다르다. 제4차 재정 추계에서 2057년 기금 소진 후 2088년까지 누적 적자는 1경7000조 원에 달한다. 세금으로 보전하다가 나라가 거덜 날 수 있다.
연금개혁 없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 보험료는 현행 월 보수의 9%에서 2057년이면 31∼33%를 내야 한다. 포퓰리즘 발언처럼 ‘더 받는’ 개혁이 가능하려면, 월급의 절반 이상을 보험료로 내도 될까 말까다.
사실 연금개혁의 방향은 다들 알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연금제도 검토보고서’를 통해 보험료율을 가능한 한 빨리 올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월 보수의 9%인 보험료율은 OECD 회원국 평균(18.3%)의 절반이 안 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8일 개최한 전문가 포럼에서는 보험료율을 15%까지 인상하고, 수급 개시 연령도 2048년까지 5년마다 1세씩 늦추는 방안이 제시됐다. 역시나 전문가 방안이 공개되자마자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고, 정부는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해명까지 내놔야 했다.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정부는 지지율이 하락할 수 있고, 개혁안을 의결하는 국회의원들은 2024년 총선에서 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연금개혁은 모든 대선 후보가 공약에 넣었을 만큼,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부와 국회라면 반드시 이뤄야 하는 개혁 과제다. 정부와 국회가 방울을 달기만 하면 된다.>문화일보. 이용권 사회부 차장
많은 국민들이 문제가 있는 것들은 바꿔야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자신에게 득이 없는 것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해가 되는 것은 바꾸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합니다. 이게 개혁의 가장 큰 문제일 겁니다.
하지만 개혁을 할 시기를 놓치면 결국은 혁명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 막게 만들 때가 많았습니다. 호미로 할 수 있는 일이 개혁이라면 가래로 할 일은 혁명일 겁니다. 옛날에 콩과 보리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을 '숙맥'이라고 했는데 이 말의 원말은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온 말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콩과 보리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호미와 가래를 잘 알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삽질로 할 수 있었던 일을 굴삭기로 하게 되었다는 얘기로 보면 좋을 겁니다. 개혁이 삽질이라면 혁명은 굴삭기질입니다.
지금 당장 눈앞의 이해에 매달리면 뒤로 갈수록 그 폐해가 자신들과 우리 후손들에게 돌아갈 것임을 숙고했으면 좋겠습니다. 개혁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혁을 하려는 것은 그것을 방치했을 때에 더 큰 고통이 오기 때문일 겁니다. 무슨 개혁이든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은 자신들의 눈앞에 이익 때문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