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꽃에 관한 시모음 16)
미스킴 라일락 /김혜천
북향 창가에 두었더니
늦게 피었으나 향이 진하다
잘라주고 동여매고 틀어주었다
반향의 징후가 여기저기 분출한다
잔가지는 풍성하게 뻗었고
둥글게 꽃을 달아 일가를 이루었다
양지에서 웃자란 나무나
그늘에서 여리게 크는 나무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주름 많은 나무가 무늬가 깊듯
부딪침 많은 사유의 힘에서 나온 지위만이 견고하다
다음 해 더 새로와진 표현을 위해
향유했던 시간들을 잘라내고
긴 동면에 든다
라일락꽃 연가 /정심 김덕성
가슴에 스며드는 향기
보랏빛 꽃향기 은은하게 풍겨오며
미소 짓는 순수한 사랑의 그리움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4월의 빛나는 햇살 속에
가슴에 희망을 담을 이만 때가 되면
그리움 밀려오는 사랑의 그림자
꿈처럼 떠오른 사랑의 계절
연보랏빛 환하게 흩어지며
꽃잎 하나하나 사이로 꿈틀거리는
가슴에 스미는 연보라 빛 그리움
그녀 볼수록 불꽃 달아올랐다
맑은 햇살은 쏟아지고
티 없이 고운 해맑은 연보라 꽃잎에
유혹하는 라일락 꽃향기에 취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라일락 꽃잎이 떨어지면 /황광주
바람은 의미 없는 발걸음을 하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다가오는 당신은
오늘도 나의 빈자리에 눈이 멀도록
향기로운 입맞춤을 한다
따가운 햇살이 나뭇잎에 부서지고
초록 그늘 위로 라일락 꽃잎 떨어지면
당신의 빈자리에 마주 선 못난이는
바보 같은 그리움을 왈칵 쏟을 것이다.
라일락 블라썸 /강효수
어쩌다 내 삶이
작은 공간을 허락해 준다면
처음 사랑을 시작한 라일락으로
고작 혼자 숨을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야지
그 몽환의 향기 속에
태풍에 쓰러진 나무로 만든 작은 의자와
소주 한 병 시집 한 권 놓을 수 있는
탁자를 놓아야지
밤이면
향기에 미친 별들이 쏟아져 내리도록
그리운 얼굴만큼
하늘 창을 열어 놓아야지
별에 찔려
백혈이 낭자한 밤을 사르다
아침이면
연보라 꽃물 든 시집에 얼굴을 묻고
처참하게 죽어 있어야지
라일락꽃 필 때 /고재종
초록이 나를 만진다
초록이 만지니 나 바람난다
바람나서 나서니
바람의 빛인 라일락꽃
향기가 나를 저민다 온몸에
번지는 향기를 따르니
점입가경이다 풍경의 생각이
나를 뒤흔들어 나는
마음도 없이 웅숭깊어져
안에서는 분홍강이 흐르고
밖으로는 다다다다
물을 차고 비상하는 비오리 떼,
나는 오만잡색으로
반짝이고 글썽거리며
네 눈에 빛나는 진주를 본다
라일락의 담 /이원문
송이 송이 네 꽃만큼이나 못 잊을 그 향기
기억은 그 향기를 어찌 못 잊는지
담 넘어 살짝이 나만이 그랬을까
처음의 향기가 네 향기였어
누가 볼까 혼자만이 괜스레 부끄러웠지
가지 휘어 얼굴에 대어 보면
어찌나 더 멋적게 부끄러웠던지
그리 부끄러웠던 너의 꽃이였었는데
이제는 추억만 이 마음 속에 핀 너의 꽃
아직도 그 향기 못 잊고 있어
라일락, 향기로운 기억 /목필균
성급하게 찾아온 봄 빛
작은 꽃들이 뭉쳐 노래한다
연보랏빛 향기로운 음계
라일락, 그 향기로운 기억
바람도 머물러 조용히 듣는
아름다운 목소리
초미세먼지도 뚫어내는
맑고 깊은 그리움이
한가롭게 그네를 탄다
라일락 /하은혜
꽃샘바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초 사월 아침에
무심결처럼 만나는 그녀
가녀린 몸매
살포시 패는 볼우물 입가에
퍼지는 새침한 향기가
여학교 때 그녀를 닮았다
라일락 꽃을 좋아한다며
수줍게 미소 짓던
연보랏빛 그녀가
사뭇 그리워지는 날이다
미스김라일락 /김용화
삼각산 바위틈에 자생하던 수수꽃다리가
태평양 건너가 서양물 먹고
파란 눈의 미스 김이 되어 돌아왔다
진보랏빛 꽃망울이 연보라를 띠다
백옥같이 흰옷으로 살짝 갈아입고
짙은 향기 멀리멀리 내뿜어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키 작고 당돌한 우리 귀여운 아가씨
미스 김이 돌아와
까치발 구두 개미허리 드레스 걸치고
5월 하늘 아래 서 있다, 새벽이슬 매달은 채
# 미스김라일락은 미국인 식물 채집가가 북한산에서 채취한수수꽃다리를 가져가 개량한 품종
으로 당시 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함
라일락 계절속으로 /이기영
해 지고 은하수 띠 따라
너와 내가 걸어가면
라일락 나무마다 꽃 피어있는 곳
꽃으로 목걸이 엮고
꽃 반지매어주면
연 보라색 띄는 그때 사랑
희끗희끗 머릿결
꽃 그림자 염색하고
주름도 메워야지
담 넘어 꽃 내
어둠과 섞인 채 밀려부는 바람 끝자락
살포시 감싸면
별빛으로 지붕이고
문 틈달빛으로베게 삼아 잠 이루겠지
라일락
라일락 가슴으로
라일락이 피는 까닭 /정연복
수수한 연보랏빛
꽃도 예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윽한 향기
더욱 매력적인
라일락이
해마다 피는 까닭을
알고 계신지요.
나의 꽃향기를
맡는 사람들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내면이
더 아름다운 사람
꽃마음 꽃영혼의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라일락 꽃 앞에서 /정심 김덕성
시리게 빛나는 햇살
봄바람 살랑살랑 가볍게 스칠 때
라일락 꽃향기 은은히 스미면
떠오르는 사랑의 그림자
보랏빛 언덕 위에 흩어진
꽃잎 하나하나 사이로 꿈틀거리며
가슴에 설렘으로 스미는 추억
연보라 빛 첫사랑 그녀
라일락꽃 바라보노라면
햇살처럼 떠오르는 부드러운 눈빛
라일락꽃 밑에서 처음 본 그녀
맑은 눈빛에 사로잡힌 나
그 사랑 불타올랐지만
세상은 그녀와 맺어주지 않아
한낱 빛바랜 사랑이야기가 되어
지금도 라일락꽃 필 무렵이면
그녀가 몹시 그립다
라일락 사랑 /미송 오보영
그때
거기서도
향기를 뿜어
내게 활기를 주고
날
북돋워주던 당신
이곳에 와서도
여전히
은은한 향기로
날
감싸주네요
낯선 풍경에
다소
어설퍼하는
날
포근히
안아 주네요
사월의 라일락 /이 선
그날도 라일락이 피었지
움푹 팬 눈으로 문을 나섰을 때
꽃은 지고 없었지
다시 핀 라일락은 이제
다시 핀 라이락이 아니다
침몰하는 배가 담장에 걸려 있다
술렁이던 창가, 돌아오지 못한
꽃숭어리 숨결들이
돌아온 사월의 담벼락 저만치 아픈
몸을 뒤척이며 꽃잎들이 잠꼬대를 한다
나도 깨어날 수 없어
라일락이 피었다고
라일락이 피었다고
수수꽃다리 /이재환
수수하게 피어나는
자줏빛 꽃다발
낮보다는 밤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향기를 더 뿜어대는
짜릿한 전율
처음 만난 그날처럼
잊히지 않는 향기
젊은 날의 좋았던 추억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라일락 /소산 문재학
부드러운 훈풍(薰風)에
향기로 출렁이는 라일락
무리를 지어
알알이 피어나는
유혹의 미소가 눈부시다.
풍성하게 펼치는
보랏빛 향연
달빛에 젖어 내리는
황홀한 숨결은
심신을 매료(魅了)시켰다.
코끝을 달구는
그윽한 향기는
고뇌(苦惱)를 씻어내리고.
앙금처럼 남아 있는
젊은 날의 추억은
라일락 향기를 타고
행복의 빛으로 살아난다.
라일락 아래에서 /장승규
리라꽃
너의 이 별호를
나는 좋아한다
어머니 젖냄새 같은
너의 이 향기를
나는 좋아한다
새벽에 각혈하듯 지는
너의 이 낙화를
나는 좋아한다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는
너의 이 긴 여운을
나는 좋아한다
저무는 라일락 꽃그늘 아래 /유하
저무는 봄날
라일락 꽃그늘 아래
그늘진 마음을 기대면
모든 몸 받은 이들
꽃잎같이 씁쓸해 보인다
이 몸 지고 또 져도
라일락 꽃그늘처럼
무심할 세상아
빛이 꽃그늘을 만들 듯
향기도 몸이 만드는 것이니
몸이 저물면
몸이 만든 그늘이여
슬픔이여
자취도 없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