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1 - 나라에서 기차로 교토에 도착해 다음날 히가시 혼간지 절을 구경하다!
벚꽃이 만개한 2019년 4월 7일 나라(奈良) 의 호텔에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맡기고는
10여분을 걸어 나라역 에 도착해 JR 기차를 타고는 미와역 三輪駅 에 내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로 술의신 오모노누시 를 모신다는 오미와 신사 (大神神社)를 구경합니다.
미와역으로 돌아와 JR 기차를 타고는 사쿠라이시 에 내려 사철 긴테츠 전철 을 타고
마쓰즈카역 松塚駅(송총역) 에 내려서 편의점에 부탁해 택시를 불러 타고는...
고료정 구다라무라 (廣陵町 百濟村 백제촌)에 백제사(百濟寺) 절 3층탑을 구경합니다.
대기시켜둔 택시를 타고는 하시오역(箸尾駅) 에 도착해 전철을 타고 킨테츠 신오지역에
내려 옆에 자리한 JR 오지역 으로 가서는 다시 JR 기차를 타고는 호류지역 法隆寺駅
(법륭사역)에 내리는데 걸어가자면 북문으로 나가야 하지만, 남문으로 나가 버스 시간표
를 보니 한참 기다려야 하는지라... 졸갑증에 택시를 타고는 호류지절 바로 앞 까지 갑니다.
호류지 法隆寺(법륭사) 에서 5중탑 과 콘도(金堂 금당)의 금당벽화 를 보고 다이호조인에서
구다라간몬 (百濟觀音 백제관음)을 구경한후 유메도노(夢殿 몽전)에서 구세관음상 을
보고는 버스로 호류지역 에 도착해 JR 기차를 타면 나라역 으로 바로 갈수 있지만, 우린
간사이 쓰루패스 가 있는데다 나라시 서쪽에 야쿠시지 절을 보기위해 사철을 타기로 합니다.
호류지역에서 JR 기차로 오지역 에 내려서 옆에 긴테쓰 오지역 (近鉄 王寺駅) 으로 가서는
간사이 쓰루패스 로 사철을 타고 27분후 이코마역 生駒駅(생구)에 내려 긴테쓰 전철을
환승해 10분만에 야마토사이다이지 大和西大寺(대화서대사) 역에 도착해 또다시 긴테쓰
기차를 갈아타고 니시노쿄역 西ノ京駅(서노경역) 에 내려 야쿠시지 (藥師寺) 절을 봅니다.
걸어서 북쪽에 도쇼다이지 唐招提寺(당초제사) 절을 찾아가는데 신라 사람 최치원 이 공부
했던 당나라 양저우 대명사의 승려 간진 鑑眞(감진) 이 759년에 쇼무왕의 초청으로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와서 세운 절 이라는데.... 외관만 보고는 기차역으로 돌아와
사철 킨테츠 전철을 타고 야마토 사이다이지 大和西大寺(대화서대사) 역에서 내립니다.
킨테츠 전철을 타고는 킨테츠 나라역 에 도착해서 호텔로 가서는 아침에 맡긴 배낭을
찾아 메고는 다시 킨테츠 나라역 近鉄奈良駅 으로 돌아와 전광판을 보니....
17시 09분에 출발하는 쾌속 열차 는 18시 10분에 교토에 도착하는데, 다음 열차는
17시 40분에 출발하는 좌석이 편한 특급 열차 라 어느 기차를 타야할지 갈등이 생깁니다.
한참동안이나 망설이다가 특급 은 편하기는 하지만 특급권을 별도로 구입 해야 하는
데다가 출발시간 마저 늦은지라.... 그냥 긴테쓰 쾌속열차 를 타니 이 기차는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 역에서 환승할 필요없이 바로 교토(京都) 까지 갑니다.
18시 10분에 교토(京都 경도) 에 도착해서는 배낭을 메고 역을 나와 지하도로 내려가서
간사이 쓰루패스 를 이용해 지하철 을 타고 1정거장 고조 五条(오조) 역에 내리는데
나라에서 교토 까지 오늘 하루 여행 일정을 생각해 보니 JR 기차 4번, 사철인 긴테츠
전철 8번, 버스 1번, 택시 3번, 지하철 1번등 대중교통을 모두 17번 을 탔는가 봅니다?
지하철 고조 五条(오조) 역에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니 방향을 분간하기 어려운데
밤이 되어 캄캄하고 어두운지라 바로 앞에 대로가 동서로 인지 아님
남북로 인지 헷갈리는지라.... 해서 행인에게 시조 四条(사조) 로 가는
길을 물으니 옆으로 돌아가라고 대답하는데 그럼.... 여긴 동서로 인 모양 입니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길 건너편에 맥도널드 가 보이는지라 방향을 파악하고는 좌회전을 해서
가라스마도리 를 걸어 만수사도리(万寿寺通) 도로를 건너 마쓰하라도리(松原通) 도로
못미쳐 우리 호텔 도요코인 교토 고조카라스마(東橫 inn 京都 五条烏丸)에 도착하는데
2인 1박 합계에 벚꽃철 최성수기 에도 오늘(일)은 6,460엔 이고 내일(월)은 7,885엔 입니다.
배낭을 방에 넣고 바로 나와서 북쪽으로 걷는데 이 부근은 번화가 이지 싶은데도 네온등이
적은 탓인지 어두운데 시조 四条(사조) 에 도착해도 썩 번화가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적당한 이자카야 를 발견하지 못해 되돌아오다가 흐름한 식당으로 들어가니 중국집 이라
기계에서 표를 사서 짬뽕 을 한그릇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서 텔레비젼을 트니
엔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마감 을 아쉬워하는 분위기 를 느낍니다.
하룻밤을 자고는 다음날인 2019년 4월 8일 로비로 내려와서는 도요코인 호텔
에서 주는 뷔페식 아주 간단한 아침 을 먹고는 바로 호텔을 나옵니다.
오늘 원래 계획으로는 이세신궁 을 보는 것이었으니... 교토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
(名古屋) 에 도착해 기차를 갈아타고 이세시(伊勢市) 에 가서는 도보로 외궁인
도요우케다이진구(豊受大神宮)를 구경하고 내궁 內宮 (이세신궁 伊勢神宮)을 보러 갑니다.
이세진구의 내궁(內宮) 은 51번 버스를 타고 10분(430엔) 만에 오카게요코초 おかげ橫丁
에 내려서 오하라이마치를 걸어서 우지다리(宇治橋) 를 건넙니다... 이스즈가와라
(五十冷川) 강은 속계와 신계를 구분 한다는데 내궁 가구라전과 정궁 고다이진구 를
구경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지라 고민하다가 교토 시내 를 보기로 합니다.
호텔을 나와 큰 도로인 가라스마도리 烏丸通(오환통) 를 따라 걸어내려가 고조(五条 오조)
거리를 만나 네거리를 건너니 오른쪽에 보이는 큰 사원은 히가시 혼간지 (東本願寺) 입니다.
히가시 혼간지 (東本願寺)는 진종 오오타니파 본산 의 통칭으로 정식 명칭은‘真宗本廟
( 진종본묘 )’인데 '니시 혼간지' 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히가시 혼간지'
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오히가시(お東) 라고도 불리며 문의
수장(門首) 은 1996년 부터 이어온 오타니 초오켄 (大谷暢顯, 淨如) 이라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1600년 동서 20만 대군이 격돌한 세키가하라 전투 에서
서군을 격파해 일본의 실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에도 막부도 열기 전에
1602년에 거대한 사찰인‘혼간지’(本願寺) 의 힘을 약화 시키기 위해 혼간지
절을‘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와‘니시혼간지’(西本願寺) 2개로 분리 시킵니다.
원래 절인 니시 혼간지 는 1272년 히가시야마산(東山) 에 창건된 것을 159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라고 하는데..... 본파(本波) 라고 불리며 일본
불교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신란(親鸞) 을 모신 사당으로 경내에는 국보와
중요 문화재가 많고 또한 1581년에 지은 일본 최고의 노(能) 무대 가 있습니다.
1602년에 혼간지에서 갈라져 나온 히가시 혼간지 (東本願寺) 는 1895년에 재건
했다고 하는데, 크기는 나라(奈良) 동대사의 다이부쓰덴 (大佛殿 대불전)
다음으로 일본 2위의 목조 건물 인 '고에이도(御影堂)' 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정문을 어영당문(御影堂門) 이라고 부르는데 교토 3대 문 의 하나로 높이가
27미터 이고 길이는 31미터 이며 기와장 숫자가 6만장 에
이른다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방문자로서는 자연스레 위압감 을 느낍니다.
누각 위에는 이 도량이 정토진종의 근본 도량 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진종본묘 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또 석가여래 본존과 아난존자 및 미륵보살 을 봉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진종 의 근본 경전인 무량수경(無量壽經) 을 석가세존 께서 아난존자와 미륵보살
에게 설파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니..... 이 문을 들어서면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고, 문을 나가면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의미 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20세기에 이르러 정치적 불화와 재정 스캔들 그리고 종파 분쟁 등으로 시끄러워졌고,
결과적으로 많은 하위 종파로 쪼개졌으니 통계에 따르면....
히기시 혼간지 최대 종파인 신슈 오타니파는 550만명 에 이르는 신도 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히가시 혼간지 는 소가 료진, 기요자와 만시, 가네코 다이에이
그리고 하야 아케가라스 와 같은 영향력 있는 사상가 들을 배출해 냈다는 평을 듣습니다.
히가시 혼간지 는 신란 성인 의 가르침인 본원염불(本願念佛) 을 수행하며 정진하는
도심속 포교 도량으로... 어영당문 외에 아미타당(阿彌陀堂) 과 어영당(御影堂)
이 있으며 어영당((御影堂) 은 세계 최대 목조건물 로 정면 72미타, 측면 58
미터에 높이 38미터니 기둥만도 90개로 내부에는 다다미 927개 를 깔아 놓았습니다.
1994년에 세계 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다는 히가시 혼간지 를 둘러보다가 문득 내가
사는 부산의 신창동 에 일본 진종 대곡파(真宗 大谷波) 본원사의 별원 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동본원사 부산별원 (東本願寺釜山別院) 의
주소는 부산시 중구 신창동 1가 6번지 인데, 현재 대각사(大覺寺) 위치 였습니다.
오쿠무라 엔신 (奧村圓心)의 "조선 포교 일지" 에 따르면, 1877년 일본인 거류지
는 동관과 서관 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거류민의 대부분이 동관 쪽에 살아
비어 있던 서관의 양국 대사 응접소 3동 중에 한 동 을 빌렸으며, 그후
가메야마 리헤이타(龜山理平太) 이사관에게서 영구 차용의 인가 를 받았다고 합니다.
1877년 11월 5일 창립된 동본원사 부산별원은 일본 진종 대곡파 본원사(眞宗大谷派本願寺)
소속으로 조선에서 포교를 시작할때, 임진왜란 직전 정탐 을 목적으로 조선에 파견
되었던 오쿠무라 죠신 (奧村淨信)의 후예라 여겨지는 오쿠무라 엔신 을 부산에 파견합니다.
엔신이 죠신의 후손 인건 성씨 가 같은 오쿠무라(奧村) 이니 한국은 성씨가 3백개 (본을
나누면 3천개) 밖에 안되니 같은 성이라도 친족인지 확신할수가 없지만, 일본은 성씨가
108,000개 이니 같다고 보는건데, 한국인은 조선초 성이 없던 사람들이 50% 가 넘었으나
양반 족보를 사거나 기존 성씨를 사용 했기 때문으로 중국은 성씨가 2만 3천개 라고 합니다.
인구 5천만 한국에서 성이 없던 사람들이 기존 성씨 를 칭하니 3천개 성씨 중에 불과 30개가
인구의 50% 에 달하니..... 金(김) 씨는 1,070만명이고 그중 김해 김씨는 412만명 인데
인구 1억 3천만인 일본에서 1위 사토씨는 189만명 에 불과한데... 이는 메이지유신후
일본인들중 성이 없던 사람들은 친족들이 모여 새로운 성씨 를 만들었는데 비해, 한국인
들은 조선시대 기존 성씨 를 사용했으니 양반도 3% 에서 구한국말에는 95% 로 늘어납니다!
오쿠무라 엔신 은 참판관(參判官) 관사를 빌려 본원사 출장소(本願寺出張所) 라 칭하고
조선 포교에 착수 하였으며 1878년 12월에 대곡파 부산 별원 (大谷派釜山別院)
으로 개칭하였는데... 일본인 거류민들에게 조선어를 교습시키기 위한 한어학사
(韓語學舍) 를 부설하고 사립 유치원 과 일본 부인회 등을 설립· 운영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문에 보니 D일보 조유라 기자는 교육계가 "유치원" 이라는 이름을 "유아학교"
로 바꾸어 달라고 건의 했다는데.... 십수년 전에 일제 잔재인 "국민학교" 라는
이름이 "초등학교" 로 바뀌었듯이 "유치원" 도 독일의 "킨더가르텐 Kindergarten"
을 일본이 "幼稚園(유치원)" 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빈민 구휼 을 목적으로 설립한 부산자선교사 (釜山慈善敎社) 는 1904년 봉공부
(奉公部) 를 두어 러일 전쟁 출정 군인의 가족 구호 에 진력하기도 하였다는데
사찰의 경영에 있어서는 창립이래 여기 교토 히가시 혼간지의 보조 를 받았으나...
1902년 부터 신도들의 희사금, 화장장 이용료 및 임대수입 등으로 독립 경영을 합니다.
신도 호수(戶數)는 1931년 조사에서 일본인 3,690호, 조선인 82호 였으며 해방후 경남불교
종무원 으로 사용되다가 현재의 대각사 가 되었는데... 6·25 전쟁 시기와 1959년
11월 23일에 큰 화재를 입은 것을 1969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으며 시내 중심지니
1979년 부마항쟁 과 1987년 6월 항쟁 시에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토 히가시 혼간지 는 부산 외에도 1930년에 목포 에서 지원 을 세웠는데 1957년
에 목포 중앙교회 로 바뀌었으며... 대구 히가시 혼간지 는 가톨릭 대안
성당 이 들어서고, 니시 혼간지 자리는 천리교 대구 교회 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히가시 혼간지 는 저 세 도시외에도 서울, 원산, 인천, 광주, 군산, 진남포, 평양, 신의주
영산포, 삼랑진 및 정령도 등 모두 26곳에 포교소 를 세웠는데, 본파(니시 혼간지) 는
1895년 나카야마 가 부산에 포교소를 세운이래 대구와 용산 등 몇몇 도시에 진출 했습니다.
히가시 혼간지 어영당 은 정토 진종의 종조 신란 성인의 진영을 봉안 하고 있어 어영당
이라고 부른다는데, 어진영 좌우에는 진존본묘의 급사와 불조를 숭경해온
역대 종정의 작용 을 한자로 나타내는... 歸命盡十方無碍光如來(귀명진시방
무애광여래) 와 南無佛可思議光如來 (나무불가사의광여래) 라는 명호 가 걸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