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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피는 너른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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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 읽기 스크랩 [이기철 ]시인 시 모음 1
曉暻 /들꽃 추천 0 조회 113 13.01.15 17: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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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 시 모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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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

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했고,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
시집

『낱말 추적』 『청산행』 『전쟁과 평화』 『우수의 이불을 덮고』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 『시민일기』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열하를 향하여』 『유리의 나날』
김수영문학상(1993), 후광문학상(1991), 대구문학상(1986),

금복문화예술상(1990), 도천문학상(1993) 등을 수상.

현재 영남대 교수와 영남어문학회 회장으로 재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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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에 기대어 ·1 / 이기철



별리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간 이파리 하나쯤 떼어 가는 아픔이야
별리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 있으랴

마음보다 치장이 아름다운 서풍이여
너의 안식의 기도 앞에서 몇 사람은 저녁 수저를 들고
몇 사람은 길 위에서 이슬처럼 깨어지기 쉬운 약속을 한다
저녁으로 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
모든 언약들이 반짝인다

우리는 이제 이른 저녁을 먹고
들 가운데 서서 오늘보다 아름다울 내일을 말할 차례다
펄럭이는 내일의 치맛자락을 끌어당기며
만남보다 진한 이별을 말할 차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문 밖에서 바람은 흰 피륙을 짜고 있다
서쪽으로 가면 왠일인지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가 있을 것 같아

오늘도 들판 끝을 헤매다
서풍의 옷자락에 싸여 돌아온다
선사로 가고싶은 장엄한 몸짓의 서풍이여
너의 치마 끝에 내리는 놀의 물감으로
오늘 우리는 주홍빛 이별을 기록해야 한다

될 수만 있으면 바위에 기록하리라
어둠 뒤에서 마지막 한 겹 솟옷마저 벗고
알몸으로 초록 위를 부는 서풍이여
이맘때쯤 바람과 능금나무의 화간에도
우리는 박수치리
그리고 세상의 푸름들이 시들기 전에
우리는 필생의 편지를
한 사람의 이름 앞으로 보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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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의 성찬 / 이기철


금기는 짧고 방임은 길어라
내 어린 처녀들의 작은 침실에
면사포같은 행운이 찾아오고
꽃다운 신부들은 오늘 밤 첫 아일
가질 채비를 한다

이제 비탄의 노래는 부르지 마라
어둔 하늘엔 별들이 작은 어행을 서두르고
저물수록 어둠들은 서로를 불러
한 식구가 된다

어느 탕자가 저 붉은 노을에 장가들 수 있으랴
노을은 다만 노을일 뿐
벌레들의 귀 속으로 초저녁 달빛이
흘러 들어간다

열광이란 저렇게 찬란한 것임을,
한 사람의 생애에 마침표가 찍히는 시간에도
내 친척들은 찬탄을 기다리며
대문을 닦는다

그러나 아직은 기다려라
저 저녁놀의 성찬에 가기 위해서는
내 사랑하는 처녀들이 바삐 단추를 풀고
수밀도같은 알몸으로 목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은쟁반같은 손으로
너무 멀리 가버린 환희를 불러
형벌조차 초대할
저녁 식탁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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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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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기나긴 봉헌문자도
막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좀더 고함이었다면, 차라리 악담이었다면
아직 이 가시밭쯤이야 꽃밭으로 알고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 오래된 헌사 한 구절도
폐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돋는 열무 잎새 하나만 보아도 생이 아려
이제 다신 안 흘리겠다던 어제의 눈물
또 흘렸습니다만

어디에도 가두어 둘 수 없는 마음의 혈흔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랑처럼 바라봅니다

만나기도 어려운데 또 한 사람과 이별해야 하다니요
새들 나비들 떠난 자리보다 사람 떠난 자리
더 크다니요

눈썹 끝에 세운 왕국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가물거려서 아름다운 그 나라가 마음의 주인이
될 줄이야

불 밝혀 길 인도하지 않아도
어둠은 익숙히 제 자리를 찾습니다
걸어도 발에 걸리지 않는 어둠 속에
오래 발 묻고 서 있습니다

이런 슬픔이야 한낱 사치려니
스스로를 나무라는 어둠 속에서
별자리 우러르고 내려다 보는 신발 끝에
갑자기 툭 - 하고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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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 이기철


봄풀 파릇파릇 돋아나는 날
나는 햇볕 바른 언덕에 누우리

내 곁에 털이 흰 짐승
울음이 고운 새
내 살아 있는 날 부를
가혹하게 그리운 이름들

내 신던 신, 입던 옷 입고
해 오르면 꽃빛으로 차츰 데워진
언덕에 누우리

3월이라 부르지 않아도 3월이 제 걸음으로 오는
아무리 가꾸지 않아도 꽃들이 제 기쁨에 피는
해마다 병으로 도지는 살풀이의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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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1 / 이기철


이 곳에 오면
서쪽 길이 잘 보인다
무너진 다릿목이 보이고
다릿목에서 죽은
물새의 꿈이 보인다

백 년 전에 핀
안개꽃이 보이고
동구 밖에 묻힌
흰 달빛도 보인다

이 곳에 오면
늙은 느티나무의 생애가
보이고
서쪽 길이 잘 보이고
가을에 우는 새의
그리움이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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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잠으로 누워 / 이기철


바람같은 것 먼지같은 것 더불고
이 봄을 난다
겨울에 말랐던 꽃들이 피어나는 논둑에
추위 타는 마른 쑥잎 터지는 소리
가다가 멈춰서서 깊은 생각에 잠기는 강물이
얼음 풀고
낱낱이 흩어지는 모래들이 제 모습 감추며
천의 얼굴을 씻어 내린다
헐벗은 것들 많이도 모여
찾가리고 우는 인동초
금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아래서
굴뚝새의 소문이 궁금해
혼자 산을 오른다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무용한 일들에
부심해 왔는가
반짝이는 은화와 부질없는 논리와
주말까지는 관습으로 걷는
반이나 닳은 구두창

어제 띄운 두어줄 편지는 도착했는가
긋고 지운 부끄러운 말의 조각은 전해졌는가
걸레 조각같은 데라도 손을 닦고
돌아돌아 보이는 마을을 두고 푸섶길 밟으면
인종의 저녁연기 두근거리며 산 아래 흩어진다

너무도 많은 봄을 놓쳐버린 들판을 보며
개울물 한 가닥 하늘로 띄워올리는
봄잠 가운데 눕는 이 조그만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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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자 / 이기철


나는 아직 아름다운 여자를 노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가 본 아름다운 여자
한국의 여자, 미국의 여자, 터키의 여자,
그리스의 여자를 노래하리라
그들은 모두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어머니이다
그들은 모두 부엌에선 익숙하고 시장에선 활발하다
그들은 모두 어둠 속에서도 도마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시장의 어느 쪽에
연어가게가 있는 지를 안다
그들은 남편의 허리 둘레와 제 아이의 발의 크기를 잘 알고
시금치가 웃자라는 계절을 알고 포도가
단맛을 익히는 계절을 안다
그들은 식탁의 채소와 육류의 배합을 잘 안다

내가 본 아름다운 여자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식단을 짜고
휘파람을 불면서 양말을 깁는다
한국의 여자는 한국말로 전화를 걸고
그리스 여자는 그리스말로 편지를 쓴다
그들은 생애에 두 번 저를 닮은 아이를 낳는다
수밀도같은 유방을 꺼내어 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뭉게구름같은 내일을 꿈꾸며
나무처럼 푸르게 자라는 제 아이를 바라본다

아름다운 여자는 아름다운 남자와 아름다운 아이를 갖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는 제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 누워
솜처럼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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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들은 모두 필라델피아로 간다 / 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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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을 꺾어들고 애인들은 모두 필라델피아로 간다
금빛 치장을 한 거리 끝으로 델라웨어강은 흐르고
이제 갓 사랑을 안 처녀들은 자작나무 아래서 제 애인을 기다린다
모트를 젓던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자작나무숲이 적당하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흰 둥치와 처녀의 흰 다리가 강물위에 비친다
굴곡이 없는 자작나무 둥치가 물결을 재우고 굴곡이 아름다운
처녀의 흰 다리가 물결을 일으킨다

자작나무 둥치에 기대어 흰 살을 맞대면
그들의 아랫도리에 힘이 솟아올라
오늘밤은 어둠이 오기 전에
한 처녀의 폴리에스트 치마가 벗겨지리라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애인들은 모두 필라델피아로 간다
애인들의 몸이 뜨거워질 때 강물이 더워지고
씨앗들은 들판의 깊은 살 속으로 제 뿌리를 내린다

젖어 있는 풀밭에선 오늘밤이 오기 전에
달맞이꽃이 피리라
필라델피아의 애인들은 오늘밤 모두
목화송이같은 아이를 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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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노래 / 이기철


움 돋는 나무들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흙 속에서 초록이 돋아나는 걸 보면 경건해진다
삭은 처마 아래 내일 시집갈 처녀가 신부의 꿈을 꾸고
녹슨 대문 안에 햇빛처럼 밝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의 이름과 함께 생애를 살고
풀잎의 이름으로 시를 쓴다
세상의 것 다 녹슬었다고 핍박하는 것
아직 이르다
어느 산 기슭에 샘물이 솟고
들판 가운데 풀꽃이 씨를 익힌다

절망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지레 절망을 노래하지만
누구나 마음 속에 꽃잎 하나씩은 지니고 산다
근심이 비단이 되는 하루
상처가 보석이 되는 한 해를 노래할 수 있다면
햇살의 은실 풀어 내 아는 사람에게
금박 입혀 보내고 싶다

내 열 줄 시가 아니면 무슨 말로
손수건만한 생애가 소중함을 노래하리
초록에서 숨쉬고 순금의 햇빛에서 일하는
생의 향기를 흰 종이 위에 조심히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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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막살이 집 한 채 / 이기철


시든 채송화의 얼굴 곁에 앉으면
잊고 있던 농구의 이름이 떠오른다
청석 밭에 자라던 갯풀 이름이 떠오르고
무 뽑힌 백 평의 빈 밭이 떠오른다
초겨울엔 바람 차가와 밤벌레들 울지 않고
여울물 소리 그칠 때
풀잎이 무거운 이마를 숙인다
주름 많은 가업들이 골마다 누워있고
작은 씨앗들은 맹목으로 자라
포만한 들 가운데 숙연한 생애를 붇는다
누가 들길 밖에 나아가 잎 벗은 나무로
설 수 있을까
누가 무욕으로 저 산하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하늘엔 추운 새 날고
마음엔 채찍질 잦아
이 겨울에는 아무래도 무너지고 말
적은 누에도 자주 묻히던
오막살이 집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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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푸른 이름 / 이기철


아직 이르구나
내 이 지상의 햇빛,
지상의 바람 녹슬었다고 슬퍼하는 것은
아직 이르구나
내 사람들의 마음 모두 재가 되엇다고
탄식하는 것은

수평으로 나는 흰 새의 날개에 내려앉는
저 모본단같은 구름장과
우단같은 바람 앞에 제 키를 세우는 상수리 나무들
꿈꾸는 유리 강물
햇볕 한 움큼씩 베어문 나생이 잎새들
마음 열고 바라보면 아직도 이 세상 늙지 않아
외출할 때 돌아와 부를 노래만은
언제나 문고리에 매어둔다

이제 조그맣게 속삭여도 되리라
내일 아침에는 이 봄에 못 피었던 수제비꽃 한 송이
길 옆에 피고
수제미꽃 옆에 어제까지 없던 우체국이 하나
새로 지어질 것이라고
내 귓속말로 전해도 되리라
오늘 태어나는 아이가 내일 아침에는 주홍신을 신고
가장 따뜻한 말을 싸서 부치러
우체국으로 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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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 이기철


오늘 우리가 걸어온 길가에는
이름 없는 들꽃이 피었더군요
내일 우리가 걸어갈 들판에도
이름 숨긴 들꽃이 피겠습니까
먼길 걸어 지친 자의 문간에도
절망의 가루를 털며
어제와 다른 하루를 몰고 오는
아침은 열리겠습니까
문득 길가에 넘어진 고목등걸에 앉아서도
짧은 울음을 남기고 죽은 사슴처럼
참혹하게 깨우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거친 나무껍질도 유순해지는 넉넉한 밤이
이불로 덮여오기를 바라기에는
지은 죄가 너무 무겁다 하겠습니까
모난 돌멩이들이 밀알같이 부드러워지는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형벌입니까
오늘 우리가 바라본 하늘에는 별이 푸르더군요
내일 우리가 바라볼 하늘에도 별이 푸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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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 꾸는 자 / 이기철


찢어진 신문지 한 장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고도
나는 내 생애의 반쪽이 뒤척이는 것을 보았네
우리는 모두 꿈 꾸는 자
꿈 꾸면서 눈물과 쌀을 섞어 밥을 짓는 사람들이네
오늘 저녁은 서쪽 창틀에 녹이 한 겹 더 슬고
아직 재가 되지 않은 희망들은
서까래 밑에서 여린 움을 키울 것이네
붉은 신호등이 켜질 때마다 자동차들은 멎고
사람들은 하나씩 태어나고 죽네
우리는 늘 가슴 밑바닥에 불을 담은 사람들
꺼지지 않은 부리 어디 있을까마는
불 있는 동안만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네
발 뒤꿈치에 못이 박혀도
달려가는 것만이 우리의 숨이고 목숨이네
우리는 꿈 꾸는 자
눈물과 쌀을 섞어 밥을 짓는 사람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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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 이기철


이 세상 아름다운 사람은 모두
제 몸 속에 아름다운 하나씩의 아이를 갖는다
사과나무가 햇볕 아래서 마침내
달고 시원한 사과를 달 듯이
이 세상 아름다운 사람은 모두
제 몸 속에 저를 닮은 하나씩의 아이를 갖는다

그들이 가꾸어온 장롱 속의 향기가
몰래 장롱 속을 바져나와
잠든 그들의 머리카락과 목덜미와
목화송이같은 아랫배로 스며들어
이 세상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의 크기에 알맞는 하나씩의 아이를 갖는다

그들이 가꾸고 싶은 세상은
아침숲처럼 신선한 기운으로 충만하다

그가 담그는 술은 길이 향기롭고
그의 치마는 햇볕 아래 서면
호랑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간다
그의 어깨는 좁아도 그의 등 뒤에는 언제나
한 남자가 누울 휴식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아름다운 사람은 제 몸 속의 샘물로
한 남자를 적시고
세상의 목마른 아이들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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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를 쓰는 남자 / 이기철


바람타는 나무 아래서 온종일 정물이 되어 서있는 남자
정물이 되지 않기 위해 새들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고전적인 늑골을 들고 서있는 남자
벽돌집 한 채를 사기에는 형편없이 부족한 시를
밤 늦게까지 쓰고 있는 남자
아파트 건너집 주인 이름을 모르는 남자
담요 위에 누워서도 별을 헤고
백리 밖 강물소릴 듣는 남자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개울물에 발이 빠진 남자
주식시세와 온라인 계좌를 못 외는 남자
가슴 속에 늘 수선화같은 근심 한 가닥 끼고 다니는 남자
장미가시에 찔려 죽을 남자
거미줄같은 그리움 몇 올 바지춤에 차고 다니는 남자
민중시인도 동서기도 되기에는 부적합한 남자
활자보면 즐겁고 햇살보면 슬퍼지는 남자
한 아내를 부채로만 살아가는 남자
가을강에 잠긴 산그늘같은 남자
버려진 빈 술병같은, 지푸라기같은 남자
서정시를 쓰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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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들은 그리워할 줄 모른다 / 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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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는 새 신을 신고 걸어가고 싶다
오전에는 아직 못 만난 사람 처음으로 만나
아이처럼 싱싱한 말로 그의 이름 불러주고 싶다

잎 핀 가지를 보면 불현듯 생의 한 쪽이 밝아 오고
언덕을 바라보면 짧고 환한 노래들이
참새처럼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지붕들은 아무리 햇빛이 쌓여도 무너지지 않는다
처마들은 남쪽으로 기울고
복사꽃 향기는 먼 곳까지 간다

송아지 울음에서 초승달이 돋고
버들가지 흔들릴 때마다 청호반새가 날아오른다

죽은 사람들은 그리워할 줄 모른다
그리워하는 일은 산 사람의 몫이다

움돋는 나무를 보면
불현듯 삶이 향기로워진다
언제나 아침, 언제나 5월
언제나 봄강물인 신생을 위하여
사람들은 오늘도 수저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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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 이기철


납가새 조개풀들 우거진 채 하늘 가려
홀로 채어로운 향초잎 내밀 하늘이 없다
자락마다 못에 찔린 슬픈 꿈들을
온 아침 새로 내린 이슬 한 방울로 씻는다

미농지 같은 봄풀이 사나운 억새 되기까지는
경건한 귀를 가진 시인이여, 유독 나무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대 가슴 좁아 저토옥 풍만한 여름 다 껴안지 못해도
수천의 잎사귀로 대지 위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저 뿌리의 땀 밴 노동을 그대 아니면 주가 노래하리

낙타 등같이 굽은 산 아래
제 아이 이름 부르듯 풀 이름 부르며 사는 사람이여
봄날은 항상 고통으로 다가와서
계절을 펄펄 끓여 놓고 떠나지만
이마 맞댄 처마들 낮아 그 아래 신발 벗어 놓고
잠드는 사람이란
무 배추의 연명 아니면 날선 고통을 어떻게
제 몸 지켜 쓰다듬을 수 있을까

내 먼지 묻은 소맷자락으로 눈물 닦아
그 먼지 눈시울에 다시 묻혀도
사람들이 지나간 길에 남루와 증오 대신
따스한 노래 한 가닥 남을 수 있기를,
귓전을 스치는 노래 한 가닥이면
삶의 잉걸불에 데인 몸에 새살 돋을지니

나는 노래 부르는 사람
오늘 저녁 한끼 식사도 추청쌀 한 움큼 솥에 안치며
그 아궁이의 불빛에 낯붉히며 노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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