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퇴의 시점을 중심으로 5개월여 간의 극도의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지금의 나는 약간의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3년간의 나의 활동에 관한 성찰의 시간들로 보내고 있다. 성찰의 시
간은 이렇게 큰 일을 겪고 나서 반성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제와서 뼈저
리게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물론 후회없는, 부
끄럽지 않은, 완벽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난
3년을 회상하면서 그동안 나는 노조를 등에 업고 오만하게 활동했다는
것, 그 알량한 권력의 힘을 빌어 나는 쉽게 단정을 지었고 그들의 입장
을 들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소통하려고 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에게 폭력
을 행사했고 상처입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
기도 한 것이다. (이번 검찰과 대통령과의 대화를 보면서, 검사들의 오만
방자함, 자신들은 일부(?) 정치 검사와는 별개이며, 오히려 자신들이 군
사독재 시절의 주구였나 라는 반문을 국민들 앞에서 뻔뻔하게 할 정도의
모습을 보면서도 느낀것이다. )
장애인의 속도로 행진하기
이번에 3.8 여성대회에 색다른 어울림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의 집회
를 다녀오면서 나는 2001년의 <차이가 힘이 되는 여성연대>의 중심에서
집회를 준비하고 평가 했던 기억들을 찬찬히 떠올리게 되었다. 10여개의
조직들이 모여 처음으로 소수자 연대의 꿈을 키웠던 차이연대, <침묵에
서 반란으로, 중심에서 주변으로, 여성의 새로운 역사를!> 이란 구호 아
래 모였던 사람들 속에서 나는 집회 이후 여러가지 문제 제기에 대해 대
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던 것이 사실이다. 열띤 취재로 인한 아웃팅의 염
려, 남성 노동운동을 닮은 권위적인 집회진행, 집회 이후 한 개인이 여성
영화제의 부대 행사에서 동의도 구하지 않은채 필름 공개 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그저 입장차이라고만 받아들였고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
다. 이후 끼리와 캠프의 탈퇴에 대해서도 그쪽의 입장을 듣고 문제제기
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너무도 부끄럽
게도!!! 나는 "그쪽의 피해의식일 뿐, 우린 잘못한 것이 없다. 회의에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이제와서 왠 딴소리냐" 는 정씨의 의견에 동의하
고 말았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작태인가, 소수자 연대라는 말이 얼마나
허울좋은 트랜드였었던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색다른 어울림의 집회에서는 늘 똑같은 어투와 구태의연한 구호들이 난무
하는 말들이 아닌, 나름대로의 자신의 입장에서 표현하고자 했었다. 그것
은 퍼포먼스로, 댄스로, 발언으로, 노래로, 거리행진으로 이루어졌다. 무
엇보다도 여성성소수자의 아웃팅을 방지 하기 위해 취재진을 엄격히 제한
하고(취재를 위해서는 다른식으로 협조하는 등) 모두가 다 무지개 버튼을
(동성애자의 상징) 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중요한 한가지를 배웠다. (영
화 '인앤아웃'에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아웃팅을 당한 학교 선생님을 위
해 졸업식장 학생들과 부모들이 줄줄이 "저도 게이입니다."라는 선언을
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나는 이번 노조 사건의 피해를 겪으면서 그 고통과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누구의 우려처럼 운동에 대한 염증이 아니
라, 어떤 운동이 필요 한지를, 마지막 한사람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 모두
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도, 민주적인 의사 구조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 어떤 대의도 권력 집중을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당위와 목적에 대해서
도 말이다.
나와 나의 몇몇의 지인들이 반성했던 것 처럼,
"겸손해야 한다."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를 끊임없이 가슴에 새
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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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