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게까지 일기 쓰고 자서인지,
아침 일찍부터 머리맡에서 공사하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정말이지 잠을 못 잤다.
일어나기 싫은데 공사소리에 포기하고 일어나서 씻고 정리하는데,
어제 위에서 떨어뜨린 양말이 생각나서 꺼내고 싶지만 잠을 자고 있기에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일행의 가방에 있던 라면이 부서져서 라면과 오랜만에 맥심커피를 타 마시면서 좋을 뿐이다.
여기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오더니 lady, lady하면서 나를 부른다.
무슨 일인가 가보니 sheet, sheet를 계속 말한다.
한참을 실랑이 하다가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 싶어서 알았다고 한 뒤.
(알겠다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OK를 힘주어서 말했던 기억이)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얘기냐고 물으니 "I have no idea." 란다.
ㅋㅋ 나만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은 하지만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아저씨 다시 와서 제스처를 보이는데, Lady, sheet를 걷으며 no.란다.
남자들에게는 Hey, sheet를 걷어 보이며 ok? 란다.
제스처에 의하면 여자는 놔두고 남자들은 걷어놓으라는 말씀인 듯.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재미있다가 나가니 어제 거의 대부분의 관광지는 답습이 끝나서 뭘 할까가 걱정이다.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긴 후 우리는 구시가지로 들어가서 오늘은 어제 못 보았던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보니까 왠지 터키의 바자르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곳 저곳 떠도니 이런 골목길~~~-,ㅡ-)
까페에 앉아 쉬면서 얘기를 해보니, 일행은 여기에 있다는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원래 미술에는 많은 관심이 없었고,
서유럽에서의 지겨움을 맞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에 있기로 하고,
일행과는 짐을 찾는 곳에서 시간에 맞춰 보기로 했다.
<유난히 붉은 것 같은 강이 인상적이지만 슬퍼보이기도 한다.>
나는 전망하고 싶어서 건너편을 보니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이쪽으로 올라가서 보니, 위에는 판자촌 같은 곳이 보인다.
사실은 중심 쪽을 지나서 좀 가다보면 관심이 가던 박물관이 있었는데,
돈도 없이 가려니 마음이 착잡해서 관두고 마을을 걸어다니면서 신기한 것이 있나 쳐다보는 식이었다.
<언덕길을 힘차게 올라가서 본 모습.
힘들긴 하지만 정말 위에서 보는 모습이 더 좋은 것 같다.>
<언덕에는 이런 판자집도 많은 것 같다.>
<언덕을 올라가고 보니, 이런 대사관과 판자촌이 함께 있다>
잠깐 세찬비가 오기 시작해서, 근처의 괜찮아 보이는 까페에 들어가려 했지만 자리가 없단다.
하긴.. 이렇게 비가 오는데 나가고 싶은 사람은 어디 있겠는가??
<공원에서 이렇게 체스를 넓은 판(?)에서 하고 있는 모습.
재밌는 건 체스룰을 전혀 모르는데 굉장히 재미있고 보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장기를 알아서 그런건가??>
그래도 앞의 공원의 벤치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그런지 비는 맞지 않았다.
강줄기를 따라 걸어보고 있으니 마치 우리 동네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 특이하고 인상적인 까페였다.
밖에도 이렇게 테이블이 있었지만 비가 갑자기 와서 모두 젖어 버리고,
더 이상 자리가 없어서 가보지는 못하고 이렇게 사진만-ㅡ->
<해질 무렵의 강의 모습. 조금은 여운이 남는 것 같다.
비가 와서 그렇지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4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보기를 몇 시간이 지나 이제는 다시 만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약속장소에서 만나 짐을 찾고 간단하게 씻고 나서 택시타고 가기로 했다.
택시 아저씨와 얘기하는데 20KM 이란다.
원래는 15KM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서 깍아서 간신히 18KM에...
아저씨의 영어가 굉장하다. 왠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고, 설명까지 해 줄 정도라니...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전쟁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영토전쟁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원래는 종교전쟁으로 알고 있었다).
사라예보 내에서는 세르비아 인들이 사는 루카비차에서 세르비아로의 이동이 가능했다는 것으로,
우리가 있던 중심광장에서 산 하나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15Km정도를 사이에 두고 경찰관이 지키고 있어서 통과해야 했다.
마치 남 북한의 경계선을 통과하는 느낌이다(가깝지만 어떤 통행을 거쳐서 가야하는...).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헤어지고 표를 끊는데 헉... 29KM이란다.
원래는 25KM정도로 알고 있었고, 이에 맞춰서 아껴 쓰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황당하고,
남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그렇다고 ATM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로화는 이미 다 써버린 지가 오래 되어서 게다가 일행에게 꾸려고 해도,
큰돈의 유로화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계산이 불가능한 때였다.
쿠나를 가지고 있던 것이 있어서 이걸로 대충 매움하면 될 것 같아서 얘기해 보니 쿠나는 받지 않는다고,
우리가 사정이 있어서 꼭 거스름돈은 필요 없으니 무조건 해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어디론가로 전화하더니 Kn를 받고 나머지를 잔돈으로 준다. 간신히 끊었지만 짐이 문제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가 버스표와 1KM을 낸 영수증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짐 값 일거라고 추측으로 했지만 나중에는 큰일이 난다.-m-
출발시간까지는 3시간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여행과 여러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세르비아 사람이 다가온다.
남자가 우리가 좋다는 식으로 나오고,
영어는 할 줄 모르고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하고
무시하려고 했지만 뭔가를 그려 설명하고, 계속 좋아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대기실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고
나름대로 경찰들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하자는 생각은 했지만
함부러 소리치면 안 될거 같아서 그냥 두고 있었다.
하지만 얘기는 길어지고 계속 두면 우리의 할 일도 할 수 없고 문제가 될 것 같아서
그에게 e-mail주소를 주는 걸 마지막으로 만나서 반가웠다며 나가버렸다.
그렇게 떨어졌지만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대기실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있기로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버스가 왔다.
타는데, 1KM티켓은 일종의 터미널이용료로 쓰고 있었던 것.
이런~ 우리는 짐 값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5유로를 내미니 8KM을 건네준다.
이런, 소액권도 아까 저녁을 먹는다고 3KM정도를 썼는데, 흑, 아까울 뿐이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나니 사람이 꽉차서 움직일 수가 없다.
옆, 앞으로는 캐나다 여자애들이 꽤 시끄럽다.
이제 버스는 달리고 있고, 계속 앉아있었던 여파로 다리가 저려서 헤멘다.
가다가 국경에서 여권검사 때, 버스기사가 거둬서 가져간다.
자국민과 근처 유로국가는 제치고 옆의 캐나다와 우리의 여권만 계속 여러 번 본다.
결국 국경초소로 가져가서 보는데, -,- 내 여권의 베트남비자가 좀 이상하게 보이나 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위장한 게 아닌지 열심히 보는 듯한 분위기??
그래도 갈 수 있게 풀어(?) 준 것 같다.
이름을 부르면서 주는데, 발음이 정말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