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특수교육 전문가인 최진희 서초구립 한우리정보문화센터 조기개입연구소 부소장이 물었다. “매일같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들은 일단 치료실 밖에서 대기해요. 치료사들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죠. 적게는 5명, 많게는 10명 넘는 아이들이 한데 모여 같은 작업을 반복해요. 더러는 효과적이어서 지체장애 아이가 블록을 능숙하게 쌓기도 하죠. 그런데 엄마들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아요. 치료실에서는 잘 노는 아이가 집에 오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최 부소장은 “가족 중심 조기개입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낯선 ‘가족 중심 조기개입’은 미국에서는 2004년 장애인교육법(The Education for All Handicapped Children) 개정안에 따라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최 부소장은 지난 20여년간 미국과 한국의 현장에서 조기개입 프로그램을 실시해 왔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구립 한우리정보문화센터에서 만난 최 부소장은 치료사들을 교육하려 한국에 왔다고 했다. 지금 최 부소장이 사는 곳은 미국 버지니아. 조지워싱턴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며 현장에서 치료사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일을 담당한다. 미국에서 잠시 한국에 들른 것인 줄 알았는데, 오는 8월부터는 완전 귀국한다고 한다.
“2014년부터 한우리정보문화센터의 지원으로 조기개입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지더군요.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기관도 점점 늘어나는 만큼 여름부터는 아예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려고요.”
안정된 가정생활을 위한 교육
최 부소장이 말하는 조기개입의 대상은 만 3세 이하의 장애 영아들이다. 지금까지 장애 영아들을 치료하려면 부모들이 일상생활을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유명한 사설 치료기관에 입소하려면 1년 넘게 대기해야 하고, 매일같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며 분야마다 다른 치료기관에서 치료받느라 가계는 파탄이 날 지경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더 이상 권장하지 않는 치료 방법입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여러 영아들이 모여 똑같은 치료를 받는 방법이죠. 치료실 밖을 벗어나면 달라지는 것이 없고, 장애 문제와 정도가 각각 다른 영아들이 같은 치료를 받고, 한 아이에게 집중하지도 못해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장애인교육법 등을 통해 아이들을 가급적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분리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비장애인과 비슷한 환경에서 교육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개정된 한국의 장애아동복지지원법도 미국에 못지않게 제정돼 있어요. 다만 현실이 법에 못 따라갈 뿐이죠.”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1장 제1조는 장애아동에 대한 지원은 “장애아동이 안정된 가정생활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사회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장애아동 가족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에 맞는 방법이 바로 가족 중심 조기개입”이라는 것이 최 부소장의 말이다.
대상은 발달이 늦은 모든 아동이다. 꼭 장애 아동만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발달 수준이 느린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부모와 함께 쌓아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전반적으로 발달이 늦은 2세 영아를 대상으로 조기개입 한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가족들이 있는 집에 찾아가 발달 검사를 실시한다. “검사는 두 번 이뤄집니다. 검사를 하는 주체는 가족이에요. 처음 보는 치료사들은 모르는 부분을 가족들이 직접 평가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벽을 짚고 몇 발자국을 걸어갈 수 있다”는 식의 검사다.
관리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주(主)치료사가 정기적으로 집을 방문한다. “아이를 데리고 낯선 치료실을 방문하는 게 아닙니다. 치료사가 가정에 찾아가는 거예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주치료사가 대개 방문하게 되지만, 아이에 대한 지원은 팀(team)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말이 늦는 아이에 대한 치료는 언어치료뿐 아니라 물리치료도 같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언어치료사가 주치료사로 방문하되 물리치료사가 한 달에 한 번 가는 방식입니다.” 가르치는 내용도 가정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친다. “아이와 늘 함께 있는 가족이 전반적인 생활 속에서 아이를 발전시킬 수 있고, 치료에 모든 것을 빼앗겨 가족의 일상 생활도 망가지지 않는 방법입니다.”
적은 비용으로 개성에 맞는 교육을
즉 가족 중심 조기개입은 일상생활 속에서 부모의 역량을 강화하는 수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치료의 무대가 됩니다. 맥도날드, 도서관에서도 수업이 이뤄져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돌봐야 할 부모를 가르칩니다.” 특히 만 3세 이하 영아의 두뇌 발달은 향후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두뇌 발달 수준에 맞는 종합적이고 개성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강조했다.
처음에 최 부소장 혼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이제 안산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도 실시하고, 연수기간을 맞아 50명 가까운 관계자가 교육을 받는 프로그램이 됐다. 특히 안산에는 다문화가정이 많고, 한부모나 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장애아동도 많다. “기존의 비싸고 품이 많이 드는 장애아동 교육에서 소외돼 있던 아이들이, 늘 밀착돼 있는 가족의 보호 아래 나아지는 것을 보고 이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시켜야겠다는 의무감까지 들었습니다.”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에 미국 뉴욕주립대로 건너간 최 부소장의 ‘한국 현장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간혹 1~2년씩 한국에 머물기도 했다. 한번은 20년 전에 담당했던 아이를 20년 만에 다시 만난 일이 있었다. “제가 무척 충격을 받았던 것이, 20년이 지나 이제는 성인이 됐는데도 혼자서 밥을 못 먹더라고요.” 이 일로 “한국의 장애영아 교육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최 부소장은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장애아동에게는 바우처가 주어지는데, 이게 가정방문 교육의 경우에는 제공되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부모들이 부담스러워하기도 해요.” 그러나 가족 중심 조기개입은 선진국에서는 의무적으로 행하는 원칙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법의 제정 목적에도 맞는 방침이다. “정부와 관련 기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알맞은 교육을 받도록 도와줘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