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 14세기 세르비아 보조 부대
이 인물은 14세기 세르비아의 장비를 나타내는 1,309~1,314년 경의 프레스코화에 기초하였다. 14세기의 불가리아인들과 마찬가지로 비잔티움의 그것과 거의 다른 점이 없었지만, 세르비아인들은 아몬드형을 계속 선호했던 비잔티움 제국과는 달리 삼각형 방패를 더 좋아했기에 일부는 그것을 썼다.
그들의 선호하는 무기 조합은 랜스(여전히 자주 어깨 위로 들어올려 썼다.), 검, 철퇴 그리고 복합 장궁으로 나타나며, 13~14세기의 세르비아 무장 기병이 마상 궁사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칸타쿠제누스의 자서전과 세르비아 문헌의 삽화에서 확인된다.
1,259년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니카이아 제국군에 있었던 세르비아인들은, 확실히 마상 궁사였다.
E2: 1,345년 경의 불가리아 보조 부대
회화 자료들은 비잔티움과 불가리아 장비 사이의 유사성이, 불가리아가 14세기 말에 오스만 제국에게 망하기 전까지 지속되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불가리아의 복식은 독특한 발칸적 양식을 유지했다. 이 인물의 출처는 가벼운 몸체 갑옷(불가리아의 메일이나 러멜러 코르슬릿은 허리나 엉덩이까지만 있는 경우가 잦았다.)을 숨기는 경우가 잦았던 긴 가운을 나타내는 삽화인, 짜르 이반 알렉산드르(1,331~1,365)를 위해 만든 마나세스 코덱스다.
모든 불가리아 기병은 복합 장궁으로 무장하는 게 관례였지만, 중기병이면 최소한 랜스 하나는 가지고 다녔다.
E3: 15세기의 세르비아 기사
세르비아는 14세기 후반기 내내 받는 오스만 제국의 항구적인 압박 아래 하에서, 서방,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베네치아와 롬바르디아에서 무구들을 점점 더 많이 수입하기 시작했다.
15세기 즈음의 보다 잘 무장된 세르비아 군인들은, 방패를 유지(아마 오스만의 궁시에 대한 방어책일)하는 것 외에는 이탈리아 군인들과 분간이 불가능해져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르비아 중기병 분견대는 15세기 초반 중 오스만의 야전군 대부분에서 나타나면서, 그 근접 돌격의 유효성으로 유명해졌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을 때는 1,500명의 정예 세르비아 분견대가 참여했을 정도였다.
F1: 관복-Court Dress-을 입은 비잔티움의 고위급 관료.
1,342년 경의 삽화에 기초한 이 인물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1,341~ 1,347년의 내전을 의도적으로 촉발한 교활한 조종자, 1,340~1,345년의 메가스 둑스인 알렉시오스 아포카프코스다.
그는 요안네스 칸타쿠제누스 덕택에 조정에 처음 발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을 방문 중에 정치범에게 살해당하기 전까진, 요안네스의 적수인 황태후 안나의 부정의 여지없는 으뜸 지지자였다.
그의 길고 화려한 가운의 양식은 늘 밝은 색상 계열에 비싼 자수가 놓아졌고 금실이 놓아지는 경우가 잦았던, 13~15세기 비잔티움의 전형적인 상류층 복장이다.
F2: 12세기의 투르크 용병
우쩨족과 셀주크족은 1,170년대까진 큰 수효로 고용되었으며, 우리는 미리오케팔론 전투(1,176)의 전말들과 설명들로부터, 이들이 의도와 목적 모두에서 분간이 어려웠음을 알고 있다.
예상하는대로 대부분은 경기병 궁사였지만, 일부는 갑옷을 입었다.(예를 들면 킨나모스는, 1,16년의 셀민에 있던 비잔티움 군대에 있던‘갑옷 입은 투르크인 연대’에 대해 기록한다.)
비잔티움 제국에 정착한 투르크인들은 비잔티움 문화를 수용하면서 비잔티움인 아내를 자주 얻었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일도 잦았으며, 때문에 제국의 위계 체제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투르크인을 발견하는 것이 드문 현상이 아닐 정도가 되어 있었다.
F3: 14~15세기의 투르크 보조 부대원.
비잔티움이 고용한 오스만족 군인들은 으레 경기병으로 구성되었다. 복합 장궁으로 무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며, 대부분은 사브르도 가지고 다녔고 일부는 가벼운 랜스도 소지했다.
작은 원형 나무 방패도 드물지 않았으며, 그들의 복장은 발칸의 복식에 깊은 영향을 받아 헐렁한 바지, 겹쳐 입은 여러 긴 무명 로브 그리고 가볍고 방수도 되는 것으로 묘사된 긴 외부 가죽 로브로 구성되었다.
15세기 즈음에는 활동하지 않을 때는 묶는 것이 통상인, 세로로 찢어진 매우 긴 소매도 갖춰지게 되었다. 긴 로브들은 행동의 자유를 위해, 헐렁한 바지의 꼭대기 부분에 접어 넣는 때가 잦았다. 물결무늬가 있는 가죽 장화와, 둥글고 긴 붉은 모자 주변을 감싸는 터번(백색이 보통이었다.)을 갖추면, 그들의 복장이 완성된다.
첫댓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