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여기, 누구나 불을 끄고 켤 수 있는 이 방에서, 언제든 문을 잠그고 나갈 수 있는 이 방에서, 그토록 오래 웅크리고 있었다니
묽어가는 피를 잉크로 충전하면서
책으로 가득찬 벽들과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서류 더미들 속에서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옮겨 다니며
종이 부스러기나 삼키며 살아왔다니
이 감옥은 안전하고 자유로워
방문객들은 감옥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지
간수조차 사라져버렸지 나를 유폐한 사실도 잊은 채
여기서 시는 점점 상형문자에 가까워져 간다
입안에는 말 대신 흙이 버석거리고
종이에 박힌 활자들처럼
아무래도 제 발로 걸어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썩어문드러지든지 말라비틀어지든지
벽돌집이 순식간에 벽돌무덤이 되는 것처럼
종이벽이 무너져내리고 잔해 속에서 발굴될 얼굴 하나
종이에서 시가 싹트길 기다리지 마라
그러니까 오늘, 이 낡은 방에서, 하루에 30분 남짓 해가 들어오는 이 방에서, 위태롭게 깜박거리는 것이 형광등만은 아니라는 걸알게 되다니
- 나 희덕 시 ‘종이감옥’
* 2017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 마눌님이 보고 싶어 해서 더블어 ‘소풍’이라는 영화를 보고, 제목에서 부터.., 내키지 않았지만, 씁씁한 말년의 노인의 삶을 들여다 보고, 소태처럼 쓰디쓴 입맛을 ‘소금맛 사탕’ 하나로 달래 보았다. 이튿날 원래 보고 싶었던 ‘파묘’를 보러 몰래 예약을 하고 출발하려 하니 도서관에 외출 하려던 마눌이 외출을 미루고 따라 붙는다. 좌파와 우파의 영화상영 전쟁으로 퍼졌다며 ‘모르는 얘기’도 하며 ,, 문득 나 희덕의 이시가 연상되며 ‘아내감옥’인가! 하여 웃었다.
웃기는 짬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