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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선 시끌벅적 장터가 열렸다. 노인들은 나물과 채소를 들고 나와 자리 잡았고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는 가훈을 써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마중물을 넣고 물을 길어 올리는 체험을 하고 있고, 한편에선 떡방아를 쳐 보는 파란눈의 외국인도 있다. 지난 2007년 12월 1일 '치타슬로 (Cittaslow) 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인정받으면서 일어난 변화다. 17개국 123개 도시가 가입했고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의 창평을 비롯해 완도, 장흥, 하동, 예산이 슬로시티로 인정받았다. 자연친화적인 농업을 사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중심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느릿느릿 소가끄는 달구지를 타고 마을을 구경해 볼수 있다. 담양지역, 특히 창평면은 예로부터 농사짓기 좋은 곡창지대였다. 이곳이 풍요로운 고장임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 남아 있는 옛 가옥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곳에서 물길이 모인다는 뜻의 '삼지내 마을', 창평의 작은 마을에 모여 있는 고택들은 넉넉한 크기의 곳간을 갖고 있다. 곳간에는 쌀이 가득했고 겨울이면 쌀을 이용해 한과를 만들고 엿을 만들어 먹었다. 곳간이 가득 차니 인심도 후하고 문화도 발달했다. 현대사적 의미도 갖고 있다. 마을의 남쪽에는 월봉산이 있는데 멀리서 보면 크지도 높지도 않은 완만한 산세를 갖고 있다. 이 산에는 상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은 고려 경종 1년(916)에 창건된 대자암의 절터다. 추제 김자수가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상월정을 창건했고 손자사위 성풍 이씨 덕봉, 이경이 사위 학봉 고인후에게 양도해주면서 김, 이, 고씨의 3개 성씨가 이곳에서 연을 맺게 된다. 바로 여기서 창흥의숙을 연 춘강 고정주, 신학문을 배운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인촌 김성수, 취봉 고재호, 심강 고재욱 그리고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한기, 고재필 선생이 공부를 한 곳이다. 월봉산에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고 하니 문화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효를 이용하여 만드는 전통음식은 슬로시티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느긋한 걸음으로 둘러봐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면사무소에서는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었다. 군데군데 포장도 되지 않은 돌담길을 자전거로 달려보니 기분이 색다르다. 걸을 때 보다 조금 높아진 눈높이는 담벼락 건너편이 훤히 들여다보여 새로운 시계를 선사한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고택으로 들어섰다. 골목 초입에서는 집의 대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높은 담을 쌓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구조가 엿보인다. 옛 선비들은 사람이 불쑥 나타나면 상대방이 놀라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문을 들어섰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큼직한 곳간채와 문 옆에 붙은 문간채까지 제대로 갖춘 한옥이다. 사랑채와 안채는 서로 보이지 않도록 집 안에 담벼락을 두었다. 듬성듬성 돌이 박혀있는, 논의 흙을 가져다 바른 전통양식의 담벼락이다. 보여주는 일면이다. '슬로시티'로 유명세를 타서 인지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간혹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고 주민들은 얘기한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무언가 큰 기대를 하고 왔기 때문이라는 것. 슬로시티의 뜻은 전통을 지키며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데 왜 길을 넓히고 집을 수리하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그냥 옛 모습을 지켜 나가는 것이 슬로시티에 어울리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슬로시티가 갖춰야 할 조건에는 전통문화와 가옥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음식이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음식이 있어야 하고 지금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계승해야 한다. 창평면 삼지천 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통방식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평의 슬로푸드로 알려진 것은 엿, 한과, 장류다. 담벼락을 따라 걷다보면 대문에는 '창평 엿 판매'같은 간판이 붙어있다. 한집 건너마다 있을 정도다. 이곳을 안내해준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쌀이 풍족하니 겨울에 엿과 한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국을 통틀어 35명에 불과한 '식품명인' 가운데 4명이 이곳 담양에서 배출됐다. 묵은 간장에 해마다 햇간장을 부어 만든 '진장'의 명인 기순도 명인을 비롯해 창평 쌀엿의 유영군 명인, 대잎술의 양대수 명인, 엿강정의 박순애 명인이 이곳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숯공예의 양정자, 천연염색의 김명희, 전통약다식의 이순자, 한과의 안복자씨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가는길
광주광역시에서 승용차로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서 나와 창평 읍내로 들어서면 우측 면사무소 뒷편이 슬로시티 삼지천 마을이다. 내비게이션에는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 82-2 (창평면사무소)'를 입력하면 된다.
버스로 찾아올 때는 광주광역시를 거치는 것이 편리하다. 광주 문화동 버스터미널에서 창평방면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소풍 유치원 아이들이 창평 슬로시티로 소풍을 왔다. 배추가 심어진 마당을 지나 개량 한복을 입고 돌담길을 걷는다. 햄버거와 피자를 찾는 아이들에겐 슬로시티의 슬로푸드가 어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극루 마을 논 가운데 세워진 남극루. 1830년대에 장흥인 고광일을 비롯한 30인에 의해 지어졌다. 평지에 건립된 2층 누각 형태로 다른 건물에 비해 특이성을 갖고 있다. 규모 또한 웅장해서 향토유형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됐다.
돌담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쌓고 남는 공간은 황토 흙으로 채웠다. 그 위에는 기와를 얹었고 사이사이에서는 담쟁이 넝쿨이 자라고 있다. 마을의 돌담길 산책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춘강 고정주고택 춘강 고정주(1863~1933)의 고택이며 창평지역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학숙과 창흥의숙의 모태가 된 곳이다. 입구의 담장은 곧게 뚫리지 않아 대문을 열어놓아도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양쪽 지붕보다 조금 높게 올라선 솟을대문을 비롯해 전형적인 부농의 한옥 모습을 보여준다.
달팽이 시장 매월 둘째 토요일. 아이들의 학교가 쉬는 '놀토'가 되면 슬로시티에는 장터가 열린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를 본따 일명 '달팽이 시장'이라고 부른다. 인근 주민들이 가지고 나온 나물과 채소들, 담양지방의 대나무로 만든 각종 물건들이 시장에 늘어선다.
부침개와 막걸리 달팽이 시장이 열리면 부침개는 공짜다. 단, 직접 부침개를 부쳐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말이다. 면사무소 앞에 마련된 마당에서 부침개를 부쳐 막걸리 한주전자를 마시면 마을을 둘러보느라 쌓인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멀리 서울에서 창평을 찾아왔다는 젊은이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월봉산 마을 남쪽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바로 '월봉산'이다. 사진의 가운데 두개의 봉우리가 겹쳐있는 곳이다. 산에는 상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했다. 지금도 고시공부를 위해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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