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俗談(속담)에 '닭잡아 먹고 오리 발 내민다' 는 말이 있다.
옳지 못한 일을 저질러 놓고
엉뚱한 酬酌(수작)으로 속여 넘기려 하는 일을 比喩的(비유적)으로 하는 말이다.
나에게 와서 眞理(진리)를 공부하고 山精氣(산정기) 까지 받고서는
外面(외면)하고 돌아서는 小人(소인)이 이에 比喩(비유)된다.
또 '꿩 대신 닭'이라는 俗談(속담)이 있다.
文字(문자)로 雉代身鷄(치대신계) 이다.
꼭 適當(적당)한 것이 없을 때 그와 비슷한 것으로
代身(대신)하는 境遇(경우)를 比喩的(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卽(즉) 꿩고기가 필요 한데
꿩을 當場(당장) 求(구)할 數(수) 없으니
꿩을 닭으로 代身(대신) 한다는 意味(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찾는 것이거나
또는 입에 맞는 飮食(음식)을 찾다가 그것이 없으면
그와 類似(유사)한 다른 飮食(음식)으로 代替(대체)한다는 뜻이다.
닭과 꿩은 差異(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첫째 닭보다 꿩이 훨씬 華麗(화려)한 恣態(자태)를 나타낸다.
鳥類界(조류계)는
숫컷이 通常的(통상적)으로 암컷보다 훨씬 華麗(화려)하다.
수닭이 암탉보다 훨씬 아름답기는 하나
장끼인 숫꿩에는 比較(비교)가 안된다.
둘째 닭고기 맛보다 꿩고기 맛이 훨씬 좋다고들 말한다.
특히 陽氣(양기)가 消盡(소진)되어
힘 빠진 患者(환자)에게는 꿩고기가 藥(약)이 된다.
火旺節期(화왕절기)를 代辯(대변)하는 動物(동물)이 꿩이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北方(북방)은 豚(돈)으로 돼지요,
東方(동방)은 龍(용)이고 南方(남방)이 바로 치(雉)로 꿩을 상징한다.
풍수지리적으로는 朱雀(주작)이다.
후천을 연다는 상징이니
후천 천자될 인물은 天主神(천주신)인 鳳(봉)이다.
음양합덕으로 神人合一 時代(신인 합일 시대)라
大頭目(대두목)이 龍(용)으로 출현하여
천지합덕의 龍鳳旗(용봉기)로 등장하게 된다.
셋째 닭은 家畜(가축)으로 購(구)하여 먹기가 容易(용이)하지만
꿩은 野生(야생)으로 쉽게 求(구)할 수가 없다.
하여 接(접)하기가 흔치 않으니 自然(자연)히 貴(귀)한 것이다.
넷째 꿩고기는 그래서 닭고기 보다 값도 비싸다.
다섯째 닭은 뭍에서 家畜(가축)으로 拘束(구속)되어서 살지만
꿩은 野山(야산)에서 自由(자유)롭게 산다.
하여 기름기 많은 닭고기에 비해 기름기가 적어 담박하다고 한다.
닭고기는 기름기가 많으므로
韓藥處方時(한약처방시)에 禁忌視(금기시)하는 理由(이유)이다.
여섯째 닭은 周易(주역)에서 巽木卦(손목괘)로
東南方(동남방)의 春(춘)에 該當(해당)하는데 比(비)해서
꿩은 離火卦(리화괘)로
陽火(양화)의 南方(남방) 여름을 뜻하니 差異(차이)가 크다.
周易(주역)에서 離(리)는 麗也(려야)라
困(곤)한 木道(목도)를 따르면 화려한 미래인 극락에 인연을 지을 것이요,
또한 離(리)는 離別(이별)한다는 뜻이니
臨時方便(임시방편)으로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응큼한 짓을 繼續 反復(계속 반복)하고 산다면
父母兄弟 親舊(부모형제 친구)들과
아주 永遠(영원)히 離別(이별)하는 亡(망)하는 자가 될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과 類似(유사)한 말이 많은데
첫째 臨時方便(임시방편)이라는 말이다.
갑자기 생긴 일 을 優先 簡單(우선 간단)하게 둘러 맞춰 處理(처리)한다는 뜻이다.
둘째 臨時變通(임시변통)이라는 말로 앞의 말과 뜻과 같다.
셋째 臨時處變(임시처변)이다. 역시 같은 뜻이다
넷째 彌縫之策(미봉지책)이라는 말이다.
가득할彌(미), 꿰멜縫(봉) 자를 써서 計策(계책)이라는 말이니
어떤 일 을 臨時方便(임시방편)으로 解決(해결)한다는 뜻이다.
다섯째 下石上臺(하석상대)이다.
아랫 돌을 빼내어 윗 돌로 괴고 윗 돌을 빼내어 아랫 돌에 괸다는 뜻이니
亦是 臨時變通 (역시 임시변통)으로써 이리 저리 둘러 맞춘다는 뜻이다.
여섯째 姑息之計(고식지계)라는 말이다.
같은 뜻으로 臨時方便(임시방편)으로
當場 便利(당장 편리)한 것을 擇(택)하는 方法(방법)이라는 뜻이다.
小人衆生(소인중생)은 當場(당장)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祭(제)지내기 위하여 깎아 말리려고 꿰어 걸어 놓은 곶감을
말리기도 前(전) 먼저 하나 하나 다 빼 먹는다면
將次 祭需(장차 제수)로 쓸 수가 없게 되듯
現實(현실)에 우선 잘 먹고 잘 지내기 위해서
臨時方便(임시방편)의 手段(수단)으로 삶을 持續(지속)하게 된다면
未來(미래)가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强調(강조)하고자 하여 이 글을 쓴다.
說使 當場(설사 당장)은 힘들고 不편(불편)하지만,
그리고 괴롭고 어렵다 하더라도
未來指向的(미래지향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大人(대인)의 길은
비록 白頭(백두)의 貧賤(빈천)한 野人(야인)으로 지내므로
困窮(곤궁)한 環境(환경)일지라도
修行(수행)하여 大道(대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幼穉(유치)한 짓 하지 않고
꿩대신 닭으로 臨時方便(임시방편)으로 삼지도 말아야 한다.
즉 오리 대신 닭도 아니고 꿩 대신 닭은 더 더욱 아니며
鳳凰(봉황)의 大人君子(대인군자)를 찾아
正道(정도)의 大路(대로)를 따라 가야 한다.
오리가 아니고 닭도 아니며
꿩을 찾아보고 꿩보다 朱雀(주작)이나 鳳凰(봉황)을 찾아내야 한다.
꿩 잡는게 매라 하였다.
天下事公道(천하사 공도)에서는
매와 같은 英雄(영웅)의 神將(신장)과 接(접)할 수 있는
靈能力(영능력)을 具備(구비)해야 한다.
꿈속에 오리, 닭, 꿩, 칠면조 새끼를
野生(야생)의 상태 그대로 家畜(가축)삼아 함께 기른다면
人性(인성)과 人格水準(인격 수준)이
各己(각기) 다른 여러사람들을 모아 가르친다는 뜻이고
오리, 닭 보다 꿩이 가장 잘난 人材(인재)이고
칠면조는 조화의 재주를 지닌 인물이라는 뜻이다.
七面鳥(칠면조)는 七星神(칠성신)의 상징이다.
鳳凰(봉황)에 比肩(비견)되니 큰 인물을 뜻한다.
開闢間(개벽간)에 쓸 큰 人材(인재)라는 상징이다.
꿩은 先 后天(선 후천)을 判別(판별)하는 離卦(리괘)를 상징하고
꿩이 현실적으로 화려함이란 봉황에 比肩(비견)되는
칠면조는 靈的(영적)인 神靈(신령)한 차원을 뜻하기 때문이다.
내게 工夫(공부)하러 다니며
神明(신명)난다는 後學道伴(후학 도반)의 꿈에
오리, 닭, 꿩, 칠면조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堂主(당주)와 堂母(당모)가 와서 꿩 두 마리와 칠면조 새끼를 달라고 하여
각기 꿩 한 마리를 가져가는 길에
당주와 당모가 손 흔들어 離鼈(이별)의 人事(인사)를 하였단다.
헌데 칠면조 새끼도 달라고 하였는데
칠면조는 아직 어려서 더 키워서 드리겠다고 했다는 靈夢(영몽)이다.
平素(평소)에는 50년간 僧侶生活(승려생활)을 했기에
승복차림의 꿈이나 영험을 했었는데
이번의 꿈은 平服(평복)차림이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僧(승)의 次元(차원)이 아닌
第三(제삼)의 차원으로 천하를 주관한다는 뜻이다.
이를 秘訣(비결)에 非僧非俗(비승비속)이라 한다.
절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세도 아닌
非山非野(비산비야)의 곳의 인재라야 된다는 뜻이다.
오리나 닭은
衆生小人輩(중생소인배)무리에 該當(해당)되기에 그대로 두고
꿩만 들고 이별하였으니
先 后天交叉機(선 후천 교차기)의 開闢狀況(개벽상황)이 이러하다는 뜻이다.
아직 君主(군주)는 세상에 드러날 시일이 안되었다는 뜻이 있다.
또한 君子(군자)될 참 人材(인재)가 아니면
選擇(선택)받지 못하고 쓰임이 되지 않으니
離別(이별)로 버려진다는 뜻이다.
칠면조는 心性(심성)이 大人格(대인격)이라면
鳳凰(봉황)에 比肩(비견)되지만
心性(심성)이 俗人(속인)이라면
術數(술수)부리는 者(자)이니 잔재주 꾼으로 교주 될 자이다.
그러한 자는 天地父母(천지부모)로부터 選擇(선택)받지 못한다는 뜻이니
오리나 닭이 아닌 꿩이나 봉황이 되어야 한다는 靈驗(영험)이다.
[출처] #2669 나는 누구인가? - 닭,오리,꿩 그리고 칠면조|작성자 금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