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목련

[지금은노년]

오르막길은 간 밤에 내린 눈으로 미끄럽다.
미끄러울 텐데 정자로 오르는 마누라의  뒤 모습이 편안하게 보인다. 그런데 휘청하며 넘어진다.

"일어서지 말고 그냥 넘어진 채로 가만히 있어라"하고 소리 지르며 달려갔다. 아무  데도 다친 데는 없다.
정자에 올라 한참을 쉬면서 서로 말이 없었다

내일 부터는 교리 초교로 가야겠다 .

약속인 운동장 10바퀴 도는 것이다
1시간 30분 내에 걷는 것으로 했다. 어찌나 씩씩하게  걷든지 보조를 맞추려면 나는 띄어야 했다.
어느 날 도는 것을 멈추려고 할 때 시간을 보니  좀 이른 것 같아 "한 바퀴 더 돌아야 한다"  라고 하니
"아니야 10바퀴 다 돌았어" 소리친다.

그 모습을 보니 "힘들어도 참고 걸었구나 "생각했다

하루는 걷는 모습이 힘들어 보여 "애들에게 별일 없다는 사진을 보내야 " 하는데 "그렇게 힘들어 보이면
안된다 "라고 하니 양손을 머리 위에 올려 하트 모양을 하며 미소를 짓는다
의무를 다하겠다는 엄마의 장엄한 미소였다

항암치료도 하고 걷기 운동도 하고, 식단 조절도 더 열심히 하고, 하루라도 더 행복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 주려는 엄마의 강인함이었다.

교실 앞 화단에는 1학년 1반이라는 팻말이 꼿혀있다.
목련의 가지 끝에는 내년 봄을 기약하는 겨울눈이 보인다.
봄에  단아한 꽃을 피워낼 목련은 겨울에는 아담한 겨울눈을 피운다
겨울눈은 붓대와 같이 곧게 뻗은 가지 끝에서 동그란 단면이 점점 좁아지는 원뿔꼴을 하고 있다
이 겨울눈은 대체로 하얀빛을 띠지만
보는 위치에 따라 회색이나 짙은 녹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목련의 겨울눈이 물가나 냇가의 갯버들이 피우는 봄꽃보다 귀티나게  보인다.

내년에 꽃눈이 먼저 터져 꽃을 피운 후 잎눈이 터지면 커다란 목련 잎이 피어 날 것이다

겨울눈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나무들의 생존본능이다
겨울눈 속의 꽃눈이나 잎눈이 없다면 앞으로 생식(生殖)이나 광합성을 할 수 없어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목련나무 가지에 맺힌 겨울눈을 본 지기 어꺼제인데
소복으로 치장한 목련을 보게 되다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되돌아 봐야겠다

늣가을 무서리에 잎이 진 나목은
비 오면  쏟아지는 빗소리 듣고
눈이 오면 쌓이는 눈소리 듣고
벌거벗은 채로 삭풍을  견디며
잎 보다 먼저 싹이 튼 꽃망울은
날아드는 새들의 날개 짓을 바라 본다
펄쩍 뛰는 개구리를 바라 본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 온다.
하얀 목련을 닮은 보고 싶은 사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많이도 흥얼 흥얼 읊고 많이도 들었다
"시인의 사유가 어디까지 일까"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사랑하는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니~
시 한편이 장편소설 몇 권을 능가할 수 있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겪어 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침 4시경 일어나 마누라 컨디션을 살핀 후  동래시장에서 구입한 5년산 도라지와 과수원을 하는 지인이 준 배로
중탕을 만들어 두면 일어나자 마자 300cc정도 마신다

매주 토요일 오후 마누라와 나는 일주일의 피로도 풀고 데이트도 겸하여 기장 온천에 간다..
주차장에서 두서너 바퀴 돌아 겨우 비어 있는 주차면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자
'다른 차와 접촉한 것 같다'라고 한다.
특정 차에는 연락번호도 없고 아무리 봐도 접촉한 흔적이 없어 그냥 가자 해도 "그러면 뺑손이 된다"라고 해서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은 쪽지를 앞 유리창에 붙여 두었다.

목욕 마치고 나올 시간을 약속해 둔다.
항상 먼저 나와 대기실에 조용히 앉아 내가 보이면 유의미한 미소를 보내던 사람이 안 보인다
약속시간 보다 내가 먼저 나오면 항상 불안했는데
이날은  목욕탕에 걸린 시계를 잘못 봐 30분이나 일찍 나와 기다렸다.
10여 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 도우미에게 "집 사람 이름이 곽영혜인데 별일 없는지 불러 보세요"
토요일마다 함께 오니 우리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급하게 2층으로 달려간다.
"곽영혜님 곧 나오신다 합니다"

목욕 후 두건을 쓰고 나오는 마누라의 모습은 싱그럽고 매력적이었다,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마누라가 저렇게 농염한 여자였나"라고 느꼈다.
마누라가 화난 표정으로 다가왔을 때 오히려 깨물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 다를까 어떤 아줌마가 물통을 두 개 가지고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어
옆에 앉으려니 "왜 남의 물통을 쓸려고 하느냐"라고 소리친다
"같이 좀 앉읍시다" 맞대거리 하며 지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옆에 있던 손님이 자리를 권했다.  남과의 다툼에는 먼저 물러서든 사람이 전에 안 보였던 행동을 보였다.
목욕하고 나오니 전화도 차도 없었다.
그다음 날에 전화로 '차를 구입한지 며칠 안되어 자신들이 처리하려고 했는데 '하면서  보험 처리해 달라고 한다.
"그렇게 하라"라고 했다고 한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겠다는 마음은 알겠는데, 뭔가 손해 본 기분이다.

부산대학병원에서 "의심된다" 라는 1차 검사를 받고 서울대학병원에서 확정 판정을 받아을 때
마누라는 나에게 "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았다"  하자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아픔을 외면한 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예전과 다름없이 보내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샤워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달라진 것은 나 혼자 출근한다는 것이다.
우리 둘은 소파에서 긴 포옹을 한다.
나보다 마누라가 더 힘있게 나를 안아 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나를  안평 전철역까지 데려다준다.
"운전 하는데 힘들지 않나"라고 물어본다.
"앉아서 하는데 뭐 이 힘들겠냐"
내가 전철역 앞 계단을 다 오른 것을 보고 난 후 간다.
어떤 때는"마누라가 아픈 기 맞기는 맞나"라는 생각도 한다.
나도 가고 난 후에 갈려고 차가 출발하는지 지켜본다
에레베이트가 내려오면 에레베이를 탄다.

점심은 내가 삶아 둔 고구마와 두유를 먹고 집에 혼자 있었다​​.
굉장히 외로울 텐데 잘 견뎌낸다.
다행히 유치원 마치고 돌아오는 윤재를 받으러 해주집에 가는 것이다.
"윤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을 홱 던지고 편의점부터 뛰어간다."그리고 먹고 싶은 거를 가지고
도망친다고 한다.
"윤재를 잡으러 갈 힘이 없구나"안타까울 뿐이다.

운동 좀 했나 물어 면 "집 주변을 두 바퀴 돌았다" 컨디션이 좋으면 "학교 주위를 크게 두 바퀴 돌았다"라고 한다.
"왜 낮잠 좀 자지"
"잠이 들면 못 일어날 것 같아 안잔다." 한다.
어느 날 마누라가 가지고 있는 "ㅇㅇ에 대한 나의 옛 감정" 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풀어 줄려고 하다가
긁어 부스럼 만들까 그만두었다
대신 출근하며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천천히 느껴봐라"라고 했다.
퇴근해서 오니 "여보 오늘 이때까지 살아온 일들이 파노라마같이 지나갔다" 라고 한다.
기분은 괜찮게 보였다
마누라의 파노라마에 내가 등장했는지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가 걱정스러웠다.
나는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 파노라마에서 내가 차지하는 부분이 제일 크고 가장 멋있는 역할을
담당했다"라고 해다오

서로가 머지않아 "헤어져야 한다"는 진실을 애써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잠들기 힘들면 "나를 꼭 안고 있어"라고 했다.
포옹은 어두운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하염없는 사랑의 카타르시스다.
가슴에 새롭게 피는 불씨로 너의 몸을 태워주리라.  과거는 무의미하며 없는 것이다 .
현재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항암 치료가 끝나자 방사선 치료를 권유해서 거부했다.
방사선 치료라면 먼 거리인 동아대 병원 보다 동남권 원자력 병원에 가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했다.
동아대 마지막 진료 그 날 저녁에 통증이 온다고 했다.
택시를 불러 동남권 원자력 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를 맞고 집으로 왔다.
다음 날 관련 서류를 들고 병원에 가니 담당 의사가 입원을 권유했다.

[동주고시남]

生老病死에서 앞으로는 病자가 없어질 날이 온다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애틋하고 마음 고생이 심하겠네.
소생도 작년에 심장 박동기 달고 괞찮은가 했는데 심부전3기 증상이 와서
좌심방에 펌프를 넣어야 란다는데 한약으로 버티고 있다네.
이 나이까지 잘 놀았으니 삶에 미련을 갖는게 아무래도 욕심인것 같아서리...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고맙고 장하네. 힘내자 친구 pkq!!!

[김이훈]

욱곤씨 ‘’하얀목련 ” 글제도 잘지어셧네^^ 꽃말이 고귀함 숭고한 아니든가 어느 철학자에게서 들은 말씀이 생각나네 삶은 희망의 연속이라고～～
밥 잘챙겨드시고(영부인을 위해서라도) 힘내시게나~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기억이나네

[김이훈]

그대가 쓴 글 곳곳에서 영부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묻어묻어나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