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은 대구의 유화가 1세대들의 화실에서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워서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수상하는 등 어릴 때부터 천재화가로 불렸습니다. 1930년대 초 일본 유학 후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이인성은 한국전쟁기인 1950년 취기로 벌어진 경찰과의 사소한 시비로 총에 맞아 숨진 불운의 화가였습니다. 1944년 마지막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그의 작품 <해당화>는 같은 해에 숨진 만해 한용운의 시 “해당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봄은 지나갔으나 오지 않은 “님”을 기다리며 어찌할 바 없는 애잔한 심사를 그린 한용운의 시와 이인성의 그림은, 식민지 말기 한국 상황을 너무나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피는 해당화, 바다 위 조각배, 평화로이 거니는 말, 나뒹구는 조개 껍질 등은 어딘가를 향한 여인의 표정과 함께 그 무엇에 대한 갈망과 희구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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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미술 주제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아시아적 전통에 비추어볼 때 매우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20-40년대의 폭발적인 시기를 중심으로, 거리의 걸인, 노동자, 농민, 일반 민중의 삶에 미술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이러한 인식은 제 2차 대전 이후에도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극단적인 지점으로까지 나아갔다. 노동자, 농민, 예술가, 지식인 계층의 구분 자체를 부정한 채, 노동자 이미지를 영웅화하는 작업이 계속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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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부스 수다르소노, 인도네시아,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 1960년, 캔버스에 유채,137 x 68cm, 싱가포르국가유산위원회 소장 Trubus Sudarsono, Indonesia, Women with Chicks, 1960, Oil on canvas, 137 x 68cm, Collection of National Heritage Board, Singapore
트루부스는 인도네시아의 민족적 미술경향을 대변하는 수조요노와 함께 민중의 화가(People's Painter) 그룹에서 활동했습니다. 식민지배자의 시선이 아닌, 실제 민중의 언어로회화를 그려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그는 인도네시아의 토착적 주제에 몰두했습니다. 병아리와 함께 있는 작품 속의 여인은 자바인의 전통의상인 블라우스 케바야(kebaya)를 입고 있습니다.
이 주인공의 친척으로 보이는 다른 여성이 머리를 빗겨주고 있는데, 그녀는 자바 전통의 머리핀인 콘데(konde)를 장식할 머리 매듭을 짓기 위해 오랜 빗질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이 아마도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화면 아래 막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암시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여인의 인상적인눈빛은 일반적인 민중의 소박한 의식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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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풍모이, 말레이시아, <선수이 노동자>, 1967년, 91 x 60cm, 캔버스에 유채, 말레이시아국립미술관 소장 Lai Foong Moi, Malaysia, The Sun Sui Worker, 1967, 91 x 60cm, Oil on canvas, Collection of National Art Gallery, Malaysia |
라이 풍 모이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1954년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서 유학했고, 싱가포르 난양 미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이 시기 드문 여성 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는, 마찬가지로 독신으로 살기를 결심한 선수이 여성노동자의 모습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선수이” 여인이란, 중국의 “선수이”라는 지명에서 나온 것으로, 이 곳에 고향을 둔 채 독신을 서약하고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에 이민해 들어온 여성노동자 집단을 일컫습니다. 이들은 똑같은 빨간 천 모자와 샌달을 착용하고, 주로 건설 노동자, 주석광산 노동자 등 고되고 험한 노동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비례에 맞지 않을 만큼 크게 묘사된 손과 발로, 이제 막 고된 일을 마친 여인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국가건설의 실제적인 주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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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국가들이 20세기에 직면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현실 중의 하나는 “총력전”으로서의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2차대전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는 미술형식으로서 “리얼리즘” 회화가 유행하는 중요한 이유를 제공했다. 전쟁 상황을 기록하고, 전후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며, 승전을 기념하고 선전하는 목적을 위해 리얼리즘 회화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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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깨안, 베트남, <1972년 하노이 크리스마스 폭격>, 1985년, 보드에 옻칠, 95 x 175cm, 위트니스 컬렉션 Phan Ke An, Vietnam, Hanoi Christmas Bombing of 1972, 1985, Lacquer, 95 x 175cm, Witness Collection |
판깨안은 인도차이나반도를 식민지화했던 프랑스에 의해 1925년 설립된 “인도차이나 에콜 드 보자르”의 마지막 입학생이었습니다. 학생시기부터 비엣민의 지지자로 일본과 프랑스 저항운동에 참여했고, 호찌민의 전속 초상화가로도 활약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이 북 베트남을 파리협정으로 끌어내기 위해, 하노이에 11일간 공습한 유명한 하노이 크리스마스 폭격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사건 발생 13년 후에 그려졌습니다. 전쟁의 기억을 환기하는 일은 국민단합을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전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지금도 하노이의 한 호수 위에는 미군 공군기 B52의 잔해가 남아있습니다). 작가는 베트남의 전통공예기법인 옻칠을 활용하여, 여러 색상의 층을 덧입히는 특별한 수공예적 방식을 통해 회화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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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대부분 식민지적 상황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지만, 여전히 식민지적 사회구조의 반복, 정치적 부정,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지식인으로서의 예술가에게 다양한 예술적 화두를 제공했다. 공산주의를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 1950-60년대 추상미술이 “제도화”되는 시기를 거친 후, “리얼리즘”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등장했고, 한국,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발언을 예술의 존재 근거로 주장한 “새로운 리얼리즘” 운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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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한국, <속·농자천하지대본>, 1984년, 쌀부대, 170 x 100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Lee Jong-gu, Korea, Sequel-Agriculture Formsthe Basis of the World’s Existence, 1984, Acrylic on rice paper, 170 x 100cm, Seoul Museum of Art, Korea
이종구는 충남 서산시 오지리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미술운동에 참여했다. 고향 오지리에서 농부로 생활하는 작가의 아버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풍요로운 농부”의 선전적인 이미지 대비를 이루면서, 늙고 힘들고 고통에 겨운 “실제” 농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쌀부대 종이를 그대로 활용하여, 그 위에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초상화를 그리고, 농업을 권장했던 국가로부터 아버지가 받은 상장들, 힘든 일상을 진솔하게 담은 아버지의 편지 등을 콜라주 했다. 작가는 이상화된 농촌의 이미지와 실재하는 농촌의 현실이 지니는 괴리에 대해 지적 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리얼리티”에 대한 인식 자체를 재고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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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사기토, 인도네시아, <나는 누구인가!>, 1988년, 캔버스에 유채, 72 x 90cm, 인도네시아국립미술관 소장 Ivan Sagito, Indonesia, To understand myself, 1988, Oil on canvas, 72 x 90cm, Collection of Indonesia National Gallery |
이반 사기토는 자바의 말랑(Malang) 출신으로 족자카르타 미술고등학교와 인도네시아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고, 1980년대 이후 활동적으로 작가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과 신비로운 힘의 존재를 믿는 인도네시아의 오랜 전통을 반영하면서 그의 화면은 불가해한 이미지들로 가득한 기묘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이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이반 사기토는 주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언급합니다. 개인의 감정 표현과 내적 의문, 개성을 억누르는 사회와 맞닥뜨릴 때, 거의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마주칠 때, 수용할 수도 소통할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해 개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그러한 질문 자체가 거의 “초현실”적인 화면 위를 유령처럼 맴돌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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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 저같이 음악들으며 보는 사람에겐 최고의 선물이군요 ㅎㅎㅎ 감사하게도 잘 읽었습니다 ^^
우와~공부까지 시켜주시구 감사함니당..근데 그림속에 변정수가..ㅋㅋ
역시!! 세심하신 보스코님~ 전시관람에 많은 도움 될꺼 같아요^^ 잘 읽었습니당~
최수앙展 정보는 우미갈 전시 리뷰의 박하님 글(No.230)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시는 괜찮더라구요.. 근데.. 리얼리즘의 정의가 좀 불분명한(?) .. 여튼.. 즐겁게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