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그 달콤 쌉싸름한 매력
녹차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씁쓸한 맛에 익숙해지기 어려울 것같다고 느끼다가 어느 순간 쓴 느낌 보다는 구수하고 달큰한 맛과 향기에 반하고 만다. 그것이 바로 차의 매력인 것 같다. 이번 강의에서는 중국의 차에 대해 알아보자.
차의 기원
중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음차(饮茶:차 마시는 것) 기록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느 연대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히 조사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연대는 추측이 가능하며, 세계 여러 지방의 음차 습관은 중국으로부터 발원했다는 증거 또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따라서 음차 습관은 중국인이 처음 개발한 것으로서 세계 여러 지방의 음차 습관과 차나무 재배는 직간접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음차 습관이 꼭 중국인들만이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와 같은 기타 일부 지역 또한 음차 개발지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823년 영국 군대의 소령이 인도에서 야생 차 나무를 발견하면서, 일부 사람들은 차의 발원지를 아직도 인도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도 야생 차나무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중국의 서남지방과 감숙성, 호남성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차나무는 예부터 존재해왔던 일종의 쌍떡잎 식물로서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 내부에서는 차나무의 최초 원산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대부분 몇 가지 설로 압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차나무의 최초 원산지는 운남성(云南)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어떤 학자는 운남성 남부에 있는 다이족 위주의 소수 민족 자치주가 차나무의 원산지라고 단언하고 있기도 하다. 인공적으로 차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한 최초의 문자 기록은 서한(西汉)의 몽산차(蒙山茶)로서 《사천통지(四川通志)》에 기재되어 있다.
"茶" 자와 음차 습관에 대한 유래 중국 고대 사료 가운데 “다(茶)”를 가리키는 명칭은 많았으나 결국 “다(茶)”가 진정한 명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茶)”자는 당나라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도(荼)”로 씌어졌다. 이 “도(荼)”라는 글자 한자는 다의성(여러 뜻을 가짐)을 지니고 있었으며, 찻잎도 그 여러 가지 의미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찻잎 생산의 발전으로 음차의 보급이 나날이 확대되면서 “다(茶)”라는 문자의 사용 빈도도 높아지게 되었고, 차라는 존재를 더욱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해 결국에는 “도(荼)”자에서 획 하나를 지워 지금의 “다(茶)”자가 일반화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다(茶)”자의 자형(字形:글자 형태)이 형성되기 전에 “다(茶)”라는독음(글자를 읽는 소리 또는 발음)은 이미 서한(西漢)시대에 확립되었다. 즉, “다(茶)”라는 자형이 형성되기 이전에 벌써 그 음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대에 “다(茶)”의 형(形:글자형태), 음(音:소리), 의(意:뜻)가 통일되었고, 이후 육우(陆羽)의 《다경(茶经)》이 광범위하게 알려지면서 “다(茶)”라는 글자는 더욱 그 위치가 확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국 고대 문헌에 따르면, 중국 차는 서한시대에 최초로 국외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한무제 때 인도에 사신을 파견하여 황금과 비단 그리고 찻잎을 전했다고 한다. 남북조시대 제무제 때에는 중국 찻잎이 비단과 도자기 등 물품과 함께 터키로 전해졌다고 하며, 당나라 순종 때에는 일본의 최징선사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 중국의 차 종자를 가져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부터 중국의 차는 세계 각지로 전파되었으며 여러 국가들이 차를 재배하기 시작해 음차 습관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다경 (茶经) 과 육우 (陆羽) 다경(茶经)이란 약 8세기 중엽에 나온 최고의 다론서로서 저자는 당나라 사람인 육우(陆羽)이다. 이 다경의 주요 내용은 차의 기원과 제조기구, 만드는 법, 다기, 자차(煮茶)방법, 마시는 법, 생산지 등을 총 10편으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다경을 쓴 육우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육우(陸羽 733-804)의 자(子)는 홍점(鴻漸) 또는 계자(季疵)이며, 호(號)는 경능자(竟陵子), 상저옹(桑苧翁), 동강자(東岡子) 등이고, 일명 질(疾)이라고도 한다. 당현종(唐玄宗) 개원(開元) 733년에 경능군(竟陵郡 현재 호북성(湖北省) 천문현(天門縣)에서 태어났다. 735년 경능군 소재 용개사(龍蓋寺) 주지스님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서호(西湖) 물가에서 울고있는 3살 먹은 고아 육우를 자신의 사찰에 데리고와 길렀다. 지적선사는 자신의 성(姓)인 육(陸)씨와 역서의 점괘와 연결시켜 고아의 이름을 육우(陸羽) 호는 홍점(鴻漸)이라 지어주었다.
다경 (茶经) 과 육우 (陆羽) 어린 육우는 절에서 불경 공부외에 주지스님의 차 끊이는 일도 맡아 했다. 비록 절에서 생활하지만 어린 육우는 불경 공부보다는 유학(儒學) 공부에 더 매력을 느껴 점차 절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육우가 9살이였을 때 어느날 주지스님에게 유교(儒敎)에서는 자식을 두지 않는 것이 제일 큰 불효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불효를 범하고 출가할 수 있습니까? 라고 대들기도 하였다. 그런 후 12살이 되던해 용개사(龍蓋寺)에서 뛰쳐나와 극단에 들어가 단역배우로서 광대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후에 그는 해학(諧謔) 3편을 쓰기도 하였다. 육우는 비록 얼굴은 못 생기고 말마저 심하게 더듬었지만 성실하고 재주가 많아 뭇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746년 경능태수(竟陵太守) 이제물(李濟物)이 연극 관람중 육우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그를 화문산(火門山)에서 유교(儒敎)를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었다.
752년 새로 경능으로 부임한 태수 최국보(崔國輔)와 의형제의 망년지교를 맺은 후 그는 상류층 인사와 번번하게 접촉하여 많은 인간관계를 맺게된다. 755년 안록산(安록山)의 난을 피해 24~25살 때 절강성(浙江省) 호주(湖州)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후세는 호주의 정착을 가르켜 육우의 제2고향 이라고 불러기도 한다. 차의 명산지인 호주에 정착한 육우는 어린시절 용개사(龍蓋寺)에서 터득한 차에 관한 지식을 십분 활용하여 차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이 시절 육우는 당대의 시인이자 차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비구승 교연(皎然)과 교분을 갖는다. 교연(皎然)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육우는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차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28세 때 다경(茶經)의 초고(草稿)를 완성한다. 774년 육우는 호주자사(湖州刺使) 안진경(顔眞卿)이 운해경원(韻海鏡源)을 저술할 때 작업에 참여하여 차의 역대 이야기를 수집하였고 그 줄거리를 자신의 저서 다경의 칠지사(七之事) 편에 보충 편집하여 비로소 다경(茶經)을 탈고하였다. 이렇게 육우가 10여년 세월에 걸쳐 정립한 다경(茶經)은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로서 뿐만아니라 후세 차에 관한 모든 학문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는 다성(茶聖) 이란 호칭이 어울리는 듯 비교적 장수하여 72세가 되어서야 호주(湖州)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차문화의 형성과 발전 중국 차문화는 그 원류가 멀지만, 일반적으로 파촉(巴蜀:현재 사천성 일대)이 중국 차 산업과 차문화의 요람으로 불리고 있다. 육조(六朝)이전 시대의 역사 자료에 따르면 중국 차 산업은 파촉에서 최초로 흥기되었으며, 찻잎 문화의 형성은 파촉이라는 지역의 정치와 풍속 및 찻잎 음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삼국(三國)이전 – 차문화의 계몽 여러 서적들은 차의 발견 시기를 AD2737-2697년으로 정하고 있어, 그 역사는 거의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한(東漢)시대 화타의《식경(食经)》에는 차의 의학적 가치를 기술하고 있으며, 서한(西漢) 시대에는 차의 원산지를 “도릉(荼陵)”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현재 호남성의 “다릉(茶陵)”이다. 또한 삼국 중 하나인 위나라(魏) 때의 《광아(广雅)》에서는 최초로 병차(饼茶:차를 동그랗게 압축시켜 만든 것, 일명 떡차)의 제조법과 음용을 기록해 두었다. 이렇듯 차의 출현은 기타 인문 과학에 까지 그 영향을 주었고 차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진(晋)대, 남북조(南北朝)시대 - 차문화의 맹아 문인들 사이에서 음차 문화가 유행하면서 차와 관련된 시와 가사가 점차 많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차는 이미 음식이라는 의미에서 탈피하여 하나의 문확권에 진입하여 사회와 정신 세계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당(唐)대 – 차문화의 형성
“自从陆羽生人间,人间相学事新茶”란 말이 있다. 풀이하자면, “육우가 세상에 나온 후부터, 세상에서 배워야 할 것은 새로운 차로다”이다. 당나라 때 육우의 다경은 차문화의 발전을 한층 이끌어 내어 차문화의 형성기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다경은 차의 자연적, 인문과학적 두 측면에서의 내용을 개괄하여 음차 예술을 심도 있게 논하고 있으며, 유,불,도의 세 종교를 차와 융합하는 등 중국 다도정신을 처음으로 개창했다. 당대 차문화의 형성은 특히 선불교의 흥기와 관련 있는데, 차가 정신을 맑게 하고 해갈 기능이 있어 옛 사찰에서는 차 마시기를 숭배했고, 사원 주변에 차 나무를 심고 다례(茶禮)를 제정함은 물론 다당(茶堂)를 건설하기도 했다. 이렇듯 당대에 형성된 중국 다도는 궁정 다도와 사원 다례, 문인(文人)다도로 각각 이어지게 되었고, 다경은 그 이정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송(宋)대 - 차문화의 흥기
송대 차산업은 이미 큰 발전을 이루었으며, 찻잎 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문인들 사이에서는 전문적으로 차를 감상하는 모임이 생기기도 했으며. 송태조는 궁중에 차사기관을 두고 궁중용 차에 그 등급을 매기기도 했다. 차의 의미는 이미 차라는 하나의 기호식품을 넘어서 황제가 대신들이나 친족 그리고 국외 사신들에게 하사품으로 내리게 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혼할 때는 “하차(下茶)”, 혼일할 때에는 “정차(定茶)”, 합방할 때에는 “합차(合茶)” 등으로 차문화가 민간에까지 보급되었다고 한다.
명(明),청(淸)대 - 차문화의 보급 이 시대에는 각종 차가 등장했음은 물론 차를 우려내는 법에 대한 연구로 그 핵심이 변해가고 있었으며, 많은 시인과 선비들이 《品茶图》 등과 같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차 종류도 크게 증가했으며, 차를 우려내는 기법에도 차이를 두었고, 다구(茶具:음차를 위한 도구)의 디자인과 제질, 문양 등도 매우 다양해졌다. 명대 사람들이 중국 다도 정신의 발전과 업그레이드를 이루었다면, 청대에 이르러서는 찻잎의 수출이 이미 하나의 산업으로 형성되었으며, 차 관련 서적 및 시 등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다.
현대 - 차문화의 발전 현재 중국은 국제차문화세미나를 개최하여 중국 전역은 물론 홍콩과 대만,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의 참여가 늘어가고 있으며, 중국 각 성과 시에서는 “Tea Day(茶叶节)”를 제정해 차 산업을 확대시키고자 노력 중이다. 복건성 무이시는 “岩茶节”를, 운남성은 “普洱茶节”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차의 분류
중국 10대 명차
백차 중에서도 최고급 품으로 봄에 나온 어린 싹만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차잎 표면에 흰색의 솜털이 붙어 있어 은백색을 띤다.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차잎이 하나씩 세워져 마치 꽃잎이 춤을 추는 듯이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모양이 매우 우아하다. 또한 향기가 좋고 단맛이 남아 떫은 맛이 적기에 녹차보다 오래 보관하여도 향미의 변화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중국 녹차의 대명사인 차로써 중국 절강성 항주의 서호(西湖)주변의 산에서 생산된다. 예전에는 용정에서만 생산되는 차를 용정차라 했지만, 요즘은 용정 외에도 사봉, 운서, 호포, 매오 등지에서도 생산된다. 아주 어린 싹만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제조과정이 까다롭다. 처음 볶는 과정에서 최종 제품이 될 때까지 솥 안에서 볶고 비비기를 하여 편평한 모양의 차가 되도록 만든다. 맛이 부드럽고 향이 독특해 녹차의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격인 차이다.
중국의 녹차로서 소주 오흥현 동정호의 동산과 서산에서 생산된다. 벽라춘은 향기가 높고 맛이 부드러우며 잎이 가늘고 어리며 우려낸 빛깔이 벽록색이다. 만들어진 찻잎은 나선형이고 잎에는 녹용에 있는 털과 같은 것이 있다. 차색은 벽록색이고 찻잎은 소라 고동처럼 나선형이며 동정산 벽록봉 아래에서 난다고 하여 벽라춘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벽라춘은 7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 낮은 등급으로 갈수록 잎이 크고 털이 적다. 그러나 급이 낮을지라도 다른 녹차보다 그 잎이 더 어리다. 이것은 벽라춘이 아주 이른 시기의 춘분과 곡우 사이에 생산되기 때문이다.
모봉차가 생산되는 황산은 중국 안휘성의 유명한 명승지로서 중국의 5대 명산 중 하나이다. 황산모봉차는 작고 흰 은빛털이 찻잎을 덮고 있는 차이지만 중국의 차 소개서에는 백차로 분류하지 않고 녹차로 분류하고 있다. 높은 향기와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이 자랑이다. 찻잎의 빛깔은 황록색이고 우려낸 탕색은 맑고 투명하다. 우려낸 잎 또한 선명한 황록색을 띠고 있다. 찻잎은 넣고 물을 부으면 찻잎이 둥둥 뜨다가 계속해서 물을 부으면 천천히 가라앉는다. 모봉차 제조법은 청차와 녹차와 같다.
君山은 중국 호남성(湖南省) 악양현의 동정호(洞庭湖) 가운데 있는 섬으로서 이 동정호 근처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이 차는 중국의 唐代에서 비롯하였고 淸代에는 황실에 상납되었던 귀한 차이다. 군산에서는 원래 녹차를 생산하다가 후대로 가면서 황차로 바꾸어졌다. 이 차는 청명(淸明)전후 3-4일에 걸쳐 어린잎을 따서 먼저 솥에서 열처리를 한 뒤, 1차 건조를 시킨다. 다시 수분 함량이 50-60% 정도에서 종이로 싼 뒤 목상자나 철제상자에 넣고 40-48시간 저장시켜 만드는데 향기가 맑고 맛은 부드럽고 달고 상쾌하다. 우려낸 차의 빛깔은 밝은 등황색이다. 차싹은 백호가 많고 잎의 모양은 곧고 가지런한 것이 담황색을 띄고 있다. 이 차에 더운 물을 부으면 차싹이 곧게 뜨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철관음(鐵觀音)이란 이름은 중국 청나라 때 복건성의 안계현에 살고 있던 농부가 매일 관음상에 차를 공양하다가 우연히 관음상 옆의 바위 사이에 차나무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유래되었다. 태양을 뒤로 하고 있는 차나무의 모양이 관음상과 같이 빛나고 있어 농부가 이 나무를 집으로 옮겨 심은 뒤, 차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더니 차맛이 진하면서 부드럽고 뒷맛이 달게 느껴지며 치자꽃과 같은 향기가 났다고 한다. 관음이 주신 차나무로서 잎이 철과 같이 검고 무겁다하여 철관음 이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철관음은 높은 향기가 오래 유지되고, 차맛이 달고 입안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리고 마신뒤에는 입안에 과일의 향기와 같은 향이 감돈다. 이 입안에 감도는 향기를 여느 향기와 구분하여 철음운(鐵音韻) 이라 한다.차의 탕색은 금빛이 감도는 선명한 등황색이고 잎은 두텁다. 차잎을 말린 것을 보면 둥근 원형을 하고 있다.
동정오룡차(凍頂烏龍茶)
대만의 중부지역인 남투현 녹곡향(鹿谷鄕)의 동정산(凍頂山) 주변 다원에서 생산되는 차. 무이암차가 전래된 것으로 대만의 대표적인 차이기도 하다. 차맛이 부드럽고 향기가 강하며 마시고 난 뒤 입안에 단맛이 남는 것이 특징이다. 청심오룡의 품종으로 잘 만들어지면 검은 녹색을 띠고 청개구리처럼 반회색의 점을 가지고 있다. 잎의 모양은 선형에 가까운 녹차와 구형의 철관음의 중간형. 차를 우려내면 밝은 황금색을 띠는데 우려낸 찻잎을 보면 찻잎 둘레가 붉고 그 안은 담녹색을 하고 있다. 다른 지방의 차보다 비싸기 때문에 다른 지방에서 생산되어 차가 동정오룡차 브랜드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이 차는 대만의 국책사업으로 등급은 매화의 갯수로 표시한다. 즉 다섯송이 매화는 최고의 품질이고, 포장에서 선명한 붉은 색은 반발효차이고 암홍색은 발효차이다.
대홍포차(大紅袍茶) 한 선비가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무이산을 지나가다 병이 생겨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그러자 근처 사찰의 한 스님이 원숭이를 시켜 절벽에 있는 찻잎을 따오게 해서 차를 달여서 먹이자 병이 완쾌돼 무사히 과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선비는 과거에 장원을 하였을 뿐 아니라 왕의 부마로 책봉되어 공주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신세를 진 부마는 은혜를 갚고자 스님을 찾아가 절을 새롭게 단장해 주었다. 어느 날 왕비가 병이 생겨 천하의 명의를 불러 치료를 하였으나 차도가 없어서 부마가 스님에게 차를 부탁해 왕비에게 먹였는데 역시 질병이 완쾌되었다. 이에 왕은 자신의 홍포를 벗어 나무위에 덮어 주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왕이 둘이 될 수 없듯이 왕의 옷을 입은 차나무는 점점 말라 죽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부마가 홍포를 걷어내자 오색찬란한 빛이 생기고 차나무는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무이산 대홍포차에 얽힌 전설은 이와 같다. 맛이 깊고 향기가 진한 편이다.
기문홍차(祁門紅茶)
홍차의 원산지인 중국에서 생산된 세계 3대 명차중의 하나로 중국 안휘성의 기문에서 생산된 홍차. 수확기는 6월-8월로 비교적 짧으며 8월에 생산된 것이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 수색은 밝은 오렌지색으로 훈연한 것과 같은 향기가 있다.
보이차(云南普洱茶) 중국의 운남성(雲南省)에서 생산되는 후발효차. 운남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드는 차로서 보이현에서 모아서 출하하기 때문에 보이차 라고도 한다. 알칼리도가 높고 속을 편하게 해주며 숙취제거와 소화를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기름기가 많은 음식에 잘 어울리며 곰팡이균을 번식시켜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있다.홍콩이나 싱가폴, 광동지방에서 주로 많이 소비되고 있으며 오래 숙성시킬수록 가격이 비싸다. 일반적으로 좋은 보이차의 숙성연도는 10년이 넘어선 것이 좋다.
우려낸 찻물의 색
쉬어가는 페이지~
찻잎의 영양강이라는 측면에서는 고급 녹차를 성분과 약용성분은 일반적으로 그 품질 등급이 높을수록 많으며, 녹차가 홍차보다 많다. 따라서 영양과 건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생활 습관과 신체조건, 직업과 거주지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자신에게 적절한 차를 골라 마시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비교적 쇠약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홍차를 마시는 것이 좋으며, 홍차를 마실 때 설탕을 조금 첨가해 마시면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홍차 속에 든 영양성분도 섭취할 수 있다. 발육이 한참 왕성한 청소년기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영양성분이 필요하므로 녹차를 마시는 것이 좋으며, 여성들은 월경 전후나 갱년기 때의 예민한 정서 상태를 전환하는데 화차(花茶)가 좋다고 한다. 화차는 또한 월경 주기를 일정하게 맞추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여성 여러분들은 한번 관심을 가져 보시길 바란다. 비교적 뚱뚱한 체격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다이어트가 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차(沱茶:(운남, 사천에서 나는)사발모양으로 압축시킨 차(茶))나 우롱차 등을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성 지방 섭취가 많은 사람들은 소화를 돕는 발효차인 전차(砖茶:몽골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차잎을 쪄서 벽돌의 형태로 굳힌 차), 병차(饼茶) 등 진압차(紧压茶:차잎을 증기로 익혀서 연하게 한 후 덩어리 모양으로 눌러 만든 차)를 많이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뇌의 사용이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뇌의 민첩성을 높이고, 정신을 맑게 해주며 판단력과 기억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각종 우수한 녹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각종 다구
다호(茶壺) : 차 주전자 다배(茶杯) : 찻 잔 다해(茶海) : 따름 잔 자수기(煮水器) : 물을 끓이는 주전자 다반(茶盤) : 쟁반
중국 다도 먼저, 스크립트를 읽은 다음 동영상에서 그 모습을 확인해보세요. 중국어로 된 동영상자료라고 너무 부담갖지 말구요, 시범을 보이는 분의 모습을 집중해서 봐주시길 바래요. ^^
오늘 준비한 차는 청향감이 감도는 철관음(鐵觀音)인데요, 일단 물을 끓여야합니다.일반적으로철관음을 우리기 위해서는 수온이 약 98도는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차를 우리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모든 다구를 데워서 온도를 높이는 일인데요,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차를 우리는데 수온이 98도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다구를 데우지 않으면 애써 끓인 100도씨의 물이 다구에 부어지는 순간 그 온도가 갑자기 10도 정도 내려가게 되거든요. 이렇게 되면 수온을 맞추기 어려워서 차의 맛을 100% 살릴 수가 없게 되겠죠?
그 다음 과정은 바로 찻잎을 넣는 건데요, 분량은 차잎의 상태에 따라 그 양을 결정합니다. 지금 우리가 넣어야 할 양은 약 찻잔의 1/3이나 1/2 사이의 양이 되겠네요. 찻잎을 넣은 다음 찻잔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몇번 쳐주세요. 청향감이 감도는 철관음은 90도 정도의 수온으로 우리는데요, 찻잔에 물을 따를 때는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돌려 붓구요, 동시에 아랫쪽에서 위쪽으로 이동하면서 물을 붓습니다. 이러한 동작이 세심할 수록 우려낸 차 맛 또한 더욱 깊답니다.
처음 우린 찻물을 "원룬파오(溫潤泡)"라고 부르는데요, 일반적으로는 마시지 않습니다. 따라낸 찻물은 다구를 데우는데 사용한답니다. 첫번째 따른 이 찻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찻잎이 처음 물에 우려질때에는 차의 향기와 맛이 고루 잘 우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첫번째 따른 이 찻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자, 차를 따르고 나면 찻잔에 배인 차의 향기를 감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차를 제조하는 과정 중에 나쁜 이물질 등이 섞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마시면 좋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구요, 또 어떤 사람들은 처음 따른 찻물에 가장 많은 영양소가 녹아 있으므로 마시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첫번째로 우려낸 찻물을 마실지 말지는 개인의 주관에 따라 결정하세요.
자, 그럼 ("쩡파오(正泡)") 정식으로 차를 우려 볼까요? 먼저, 아까 작은 찻잔에 따라 두었던 "원룬파오(溫潤泡)" 찻물을 따라 버립니다. 이렇게 물을 따르고 날때 쯤이면 찻물이 잘 우러나 있을겁니다. 이번에 우려낸 찻물이 정식으로 우려낸 첫번째 차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우려낸 첫번째 찻물을 각각 작은 잔에 따르고 나면 손님들께 대접할 수 있는 차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손님에게 차를 낼때는 유의해야 할 사항이 몇가지 있습니다. 연배가 비슷한 손님들일 경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찻잔을 배분하구요, 연장자가 있을 경우는 연장자에게 먼저 찻잔을 드리는 것이 기본 예의가 되겠습니다.
자, 차를 음미할 때는 찻잔을 이렇게 들구요, 먼저 찻잔에 든 찻물의 색을 감상합니다. 그 다음에는 차의 향기를 맡고, 마지막으로 차의 맛을 음미합니다. 차를 음미하다라는 뜻의 "핀차(品茶:품차-차를 음미하는 것)"는 한모금 한모금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핀차(品茶)"와 "인차(飮茶:음차-차를 마시는 것)"는 그 개념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차(飮茶:음차-차를 마시는 것)"의 목적은 갈증을 해소하고 신체에 수분 공급을 위한 것인 반면, "핀차(品茶)"의 의미는 차의 색과 향기 그리고 맛을 감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핀차(品茶)"할 때에는 찻잔에 든 차를 세번에 나누어 마시는데요, 왜냐하면 "品"자는 "口(입 구)"자 세개로 이루어 진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차를 음미하고 난 다음에는 빈 찻잔에 배어있는 차의 향기를 다시 감상합니다. 대만에는 차향을 잘 느낄 수 있도록한 길쭉한 찻잔이 별도로 있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철관음의 파오차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보통 차는 7-8번 정도 우려 마실 수 있습니다. 차의 종류에 따라 어떤 차는 14번도 우릴 수 있구요.
여러 가지 다호 구경하기 중국의 다호는 단순히 차를 우리는 목적뿐만 아니라 그 예술성에 있어서도 뛰어나 중국 사람들의 이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호를 고를 때에는 빛깔이나 모양도 중요하지만 직접 물을 넣어 따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물을 찻잔에 따를 때 그 따라지는 물의 모양이 부드럽고 끊김이 없어야 하며, 주둥이로 깨끗하게 떨어지는 맛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따를 때의 소리도 경쾌하고 아름다운 것이 좋다. 특히 중국에 가게 되면 선물용으로 이런 저런 다호를 사오게 되는데, 너무 싼 것은 쓰기 좋은 것이 못되니 너무 저렴한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