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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친우 여러분
'60-70년대는 다방이 응접실 구실을 하고 사업차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장소로 큰 사랑을 받은적이 있었지요..
지금은 "'옛날식 다방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시골에 가야 다방이란 간판을 만나보는 정도지요..
우리친구들도 이런 다방에 얽힌 추억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요즘은 커피숍"'으로 리모델링 된지 오래고 "'옛날과 다르게.. 나이드신분들이
커피숍이용하는경우도 드물지요..
<<<최초의 일고43 블로그..2001년2.7 개설.. 14살이 되었군요>>>>>
70년대 서울의 모큰호텔에 다방이 두개 있었는데..젊은이가 꼬이는곳은 "'이름이 "트모로우"'
나이드신 분들이 꼬이는곳은 "'이예스터데이.."" 비틀스 노래 제목같군요..
한때티켓다방이 온나라를 뒤흔드는 일진 광풍의 시대도 있었답니다..
어떤 큰섬의 감귤수확철이 되면 "'과수원 주인 아자씨와 다방 아가씨가
과일 매상액을 갖고 "'야반도주"'하는일이 많아 큰 사회문제 된적도 있었답니다...
"'한복입은 마담이 보선신고 흰고무신에 아침일찍가면..
쌍화탕에 계란 노른자 넣어주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 눈에 선하다..
열대어가 헤엄치는 큰 어항이 있고... 해운대 엘레지.. 그 겨울의 찻집"'
노래가 연거퍼 자지러지게.. 귀창을 때리는 아!!!그때 그시절 그리운 시절... 보고잡다..
거기서 ""이쁜 여자""들도 많이 만났는디.... "
"젊었을때는 우리가 주로 "'오프라인"'에서 활발히 만났지만...
나이 드니 시대의변화에 발맞춰.. 컴퓨터나 인터넷에도 ""우리시대의 물건은 아니지만...
"'온라인에서 활발히 만날 필요가 제기된것이지요
그래서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가 속속 만들어져.. 사교의 장으로
정보교환의 광장으로 "'심심풀이 땅콩"'으로 필요성이 무장 무장 증가하게 되었그만이롸...
우리카페의 "'오리진"'은 2001년 2월7일 태일거사<강우길>친구의 수고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얼마있다 다시 홈페이지로 "'개편 확장"하게 되었군요..<,2005.7 홈페이지이사>>
그때는 많이 알려지지도 않고 우리세대가 요즘 세대처럼 학교에서 "'컴터"'를 배우지 못한
첫세대가 되어 아쉽게도 많은 친구들이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초창기의 우리 카페 홈페이지의 "'내용"'을 압축파일로 한번 되돌아 보는것도
큰 의의가 있을거같습니다..<온고지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여기 첨부한 사진들은 개포선사(우길)의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된것입니다..
모든사람은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 이 세상에 나왔을것입니다..
우리카페도 이와같이 2001.2.7 개포선사가 씨를 뿌려서 싹을 티우고
물을 주고 욕을 먹어가면서도 운영한결과 오늘의 카페로 발전 한것입니다..
다시한번 "'개포선사"".. ""수류화개 웅산 친우 정다운""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수고 많이 했습니다..우리카페의 전설은 초연이 쓸고간 전장터의 비목처럼
오랫동안 기억될것입니다....>>>>
<<2005년 7.26 친우 송효섭의글:.... 홈페이지로 이사온 날이 2005년이란 야그네요...>>>
<"'까불지마라는 마느라 야그 듣고 남자가 하는말..>
어이 마누라야 웃기지 마라 (겁이나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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