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6장 56절 모두가 곁을 떠나고 홀로 남았을 때, 그래도 구하라
사람은 혼자라고 생각될 때 큰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혼자가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별을 했거나, 이혼을 당했거나, 자녀가 군대를 갔거나, 친하게 지내던 옆 집 이웃이 말도 안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거나, 가족중 누군가가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났거나, 누군가가 배신을 했거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받고 외로움 가운데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기 이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과 더불어 외로움을 느낍니다. 마음 한 구석에 허탈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마지막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담 하나만 만드셨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외로워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만들어 아내로 주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아담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자 마음은 또다시 외로워졌습니다. 죄는 사람을 고립시키며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에게서 떠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몸은 같이 있어도 마음이 먼 친구도 있고, 부부도 있고, 가족들도 있고 직장 동료나 동네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만나기는 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멀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외로워지고 곤고해져서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을 찾아가서 자기에게 피해를 준 사람, 또 자기 마음을 안좋게 만든 사람에 대하여 험담을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개인주의적인 도시는 이런 일이 적을지 모르지만 공동체성을 뛰고 있는 시골 동네는 이런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험담을 들었던 사람은 험담의 대상자를 미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서 “이 사람이 당신 이야기를 이렇게 하더라”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의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분열되고 외로움은 더 극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몸이 같이 있다고 해서 마음도 같이 있는 것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몸과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는 몸과 마음을 같이 하는 믿음의 공동체이며 영적인 가족입니다. 가족은 의무이상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무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의무 이상의 사랑이 있어야 진정한 가족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은 같이 있어도 마음은 외로운 이상한 공동체가 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 남편과 아내간에 대화가 단절되어 서로 외로움을느끼면서도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 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요즘 보면 마음에 상처를 크게 받아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시골로 이사를 가는 사람도 있고, 산과 섬으로 들어가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떠나지만 또 다시 그 지역에 사는 누군가와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잡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잘 해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마음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비록 그런 마음의 치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자신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용납하시는 주님을 만났기에 그리스도인 자신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고 용납하며 사랑을 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지 않습니까? 무엇이든지 쉽게 만들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오랜 시간의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물론 성령이 임하시면서 마음의 변화를 받아 급격하게 변화가 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는 오랜 시간 지속된 관계를 통해 변화가 됩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언젠가는 떠나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비록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그동안은 후회없이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과 “어차피 헤어질 거 마음을 줘서 뭐해”하면서 그 사람에 대하여 형식적으로 대하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이 동네 할머니를 만나 “왜 동네 어르신들이 새로 이사오는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말합니다. “기껏 정을 주고 나면 이사를 가니 정을 줘봐야 뭐해요. 금방 이사갈 걸”
그런데 이사를 왔다가 얼마 못살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아니 이사를 오신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사를 가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말합니다. “동네가 삭막하고 따뜻함이 없어요” 저는 이 문제를 가장 해결하기 좋은 곳이 바로 교회라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연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교회는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해줘야 합니다.
교회는 생명의 복음을 예수님께 받아가지고 있으며, 또한 사랑의 복음을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진 교회의 특징은 은혜와 진리가 역사합니다. 증인들에게 주시는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진리로 인해 서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가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 항상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은혜와 진리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율법과 다르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이 말씀은 교회가 율법에 사로잡히면 서로가 누가 옳으냐에만 집중하게 되고, 이로인해 서로를 정죄하고 미워하게 되어 마음이 나누어지고, 냉랭하며, 몸은 같이 있어도 마음은 개인주의로 빠지고 외로워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면 서로가 그리스도의 생명의 기쁨을 누림으로 인해 풍성한 사랑을 가지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교회는 치료가 일어나고 화평하며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교회가 서로 사랑하는 꼴을 못봅니다. 가정이 사로 사랑하는 꼴도 못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든 공동체는 그것이 어떤 교회나 선교단이나 직장이나 어느 사역단체든지 간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연합한 꼴을 못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간질 시키고 오해하게 만들어서 분열을 시키고자 합니다. 그로인해 분열된 선교단과 교회들,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깨어 있어야 하는데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서로를 좀 더 알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자신에게 너무 집중해서 자기의 마음 감옥에 갇혀 있지말고 문빗장을 열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을 시켜야 합니다. 물론 마귀의 종들은 여러분들이 경계하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크고 작은 믿음이 있고 이제 막 태어난 성도도 있고 완전치 못한 모습이나 모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성도님들의 마음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용납함으로써 분열을 막고 악한 자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좋게 만들어가신 다는 사실을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가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또 완전한 사랑을 이루셨던 예수 그리스도에게 닥치신 일을 보게 합니다. 예수님에게 닥친 일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의지를 벗어나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루어지는 섭리의 한 가운데서 당하는 고난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사역하실 때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는 베드로가 휘두른 단검에 말고의 잘라진 귀를 고치신 것 외에는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거부된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깊이 있는 기도를 드리셨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처럼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을 구원하시기 위한 어떤 표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홀로 두신 것처럼 예수님을 위한 직접적인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로인해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 56절을 보면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까웠던 친구들이며 가족이었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함께 동거동락했던 예수님과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을 잡으려고 군대가 동원된 것을 본 제자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을 쳤습니다.
이 위기의 상황에 이르자 전날까지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호헌장담했던 모든 제자들, 다른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떠나도 나만은 절대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치며 자신하던 제자들이 예수님만을 남겨둔 채 다 도망을 친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런 친구나 가족들을 다시 받아들이실 수 있습니까? 배신감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습니까? 그 당시 예수님의 외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극심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외면을 받았고, 목숨까지 내주겠다고 하던 제자들은 도망을 쳤고, 심지어 하나님 아버지까지도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버려짐을 당하셨다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고백했지 않습니까? 이런 지경이 되면 자신을 위해 살던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무엇 하나 자기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나게 분노하여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삽니다. 또 어떤 사람은 평생 자기를 혼자두고 떠난 사람들을 욕하며 삽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곁에서 떠나 여러분을 혼자 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 상처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영원히 떠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사람들이 하는 약속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처럼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대로 영원히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떠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사랑의 정도 밖에는 안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요한복음 13장 1절을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하고 계십니다.
이 사랑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을지라도 변함이 없이 끝까지 사랑하셨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도 역시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외로워도 여러분들이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기만 한다면 여러분들은 외로움을 극복하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항상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과 유대인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것이 예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함을 잃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여러분들과도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도 역시 이 부분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 가운데 행하는 사랑이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하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신 사랑에 비하면 지극히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이 없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여러분들이 가서 비추는 조그만 사랑의 빛조차도 그들에게 위로와 힘과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통하여 비추는 은혜와 진리 안에서 주시는 사랑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이 여러분들과 하나되게 하신 공동체인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여러분들과 절대로 나눌 수 없는 하나된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많은 복을 담고 여러분들을 자신의 몸인 교회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하여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에베소서 1장 23절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충만하게 하실 때 교회는 외로움이 없어집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물론 육신의 가족들까지도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외면을 하고 다 떠날지라도 교회는 언제나 여러분들을 사랑으로 맞이하고 품어주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일으켜 세워주고 힘을 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세상의 수많은 공동체들과 다른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이 본질을 잃어버려서 아픔을 겪고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는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내치지 않으시고 새롭게 변화시키셔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세상을 쫓지 말고 예수님을 쫓아야 합니다. 그럴 때 외로움에 빠진 성도가 회복되고 외로움에 빠진 교회가 회복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신 세상에 들어가 개인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국가의 도움이 미치지 못하는 구조적인 외로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서 그들에게 영원한 친구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 가운데 임하여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그리고 교회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게 임하면 외로움이 사라집니다. 인간 영혼의 심연 깊은 곳에 있는 외로움을 주는 빈 공간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셔서 거기서부터 생수의 강을 흘려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에스겔의 성전에서 나오는 물로 인해 강이 풍요를 이룸으로 인해 물고기와 어부들이 몰려들고, 강주변에 수많은 나무들로 인해 가축들과 새들이 몰려들 듯이 교회에 진리의 생수의 강을 마시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몰려들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늘로부터 임하는 예수님이 주신 큰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다 떠나서 외로움에 빠져 계신다면 그 자리에 여러분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마음의 귀퉁이가 아니라 중심의 가장 귀한 자리에 계시도록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며 함께 주님이 이루려고 하시던 일을 여러분들과 함께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외로움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기쁨과 사랑이 은혜와 진리 가운데서 충만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예수님을 떠났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사도가 되고 예수님의 증인들이 되었듯이 여러분들을 떠났던 사람듧분만 아니라 더 많은 귀한 사람들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면서 도움이 되고 함께 일하며 큰 기쁨을 나누는 그런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 곁을 떠나는 날이 올 수도 있고, 또 여러분 역시 누군가로부터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떠난다고 해서 사랑을 주는데 아까워하거나 인색하지 마십시오. 샘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나옵니다. 만약 그것이 아까워서 퍼내지 않는다면 그 물은 죽음의 물이 될 것입니다.
산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옹달샘물은 순한 동물들만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납고 난폭한 동물들도 마십니다. 이처럼 교회도 역시 순한 사람들만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외로움을 느껴 하나님과 진정한 이웃을 찾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면 줄수록 새로운 관계들이 맺어지고 여러분들의 삶은 하나님이 채우시는 은혜와 여러분들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로 인해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아끼고 주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외로움 가운데 혼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우리 제석교회의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