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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개방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여행한다.
여행지를 보면 천차만별이다. 만리장성을 보기 위해서, 시안의 진시황제의 병마용갱을 보기 위해서, 계림, 장가계, 원가계, 황산, 위난 등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서, 홍콩의 야시장 구경을 하고 면세품을 사기 위해서, 상하이에서 발 맛사지를 받기 위해서, 심지어 무작정 모험적인 실크로드 코스나 차마고도의 코스를 정해서 중국여행을 떠난다.
이들이 여행에서 돌아와서 하는 말은 한결같이 '좋더라' '대단하더라'라고 말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제 각각 본 것을 토대로 서로 다른 이야기할 것이다. 심지어 발 맛사지 자랑도 한다. 중국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던 보람찬 여행이었을까?
중국여행은 일본이나 태국과 같은 나라의 여행과는 다른 관점에서 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첫 째로, 중국은 땅덩어리가 큰 대국이기 때문이고, 둘 째로 이 큰 땅덩어리 위에서 오랜 동안 역사가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지방에 따라 그 특색, 즉 지역성을 지니고 있기 떄문이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태평양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대국(大國)이다. 얼마나 큰 나라일까?
중국의 국토 크기를 보면 959만 6,960㎢로 독립국가연합(러시아), 캐나다 다음가는 3대국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남한) 면적의 96배, 남북한 면적의 43배나 된다.
중국과 미국의 영토 비교(검정색이 미국)
중국의 영토는 동쪽으로 북한,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등과 접하고, 남쪽으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북쪽으로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국경을 이루어 국경선의 길이가 약 22,800㎞에 달한다. 남쪽은 황해, 동중국해, 남중국해에 접하여 해안선 길이가 약 1만 1,000㎞나 된다. 최북단인 헤이륭강(북위 53˚)과 최남단인 남사군도(북위 4˚)간의 위도차가 49˚(남북 직선거리 약 5,500㎞)에 달한다.
중국과 인접국가
귀성열차 속의 풍경. 며칠 동안 열차를 다고 가야하기 때문에 귀성객들은 기차속에서 그 동안 먹을 음식과 침구를 준비한다. 최근 고속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남쪽으로 부터 아열대, 온대, 냉대기후가 분포하고, 최동단인 헤이륭강과 우수리강의 합류지점(동경 135˚)과 최서단인 신강위구르자치구(동경 73˚)간의 경도차가 62˚(동서 직선거리 5,200㎞)로서 4시간의 시차(時差)를 보인다.
중국의 기후 분포
중국이 세계 4대 문명 중의 하나인 황허문명이 발생한 국가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구나 중국은 다른 문명발상지와는 달리 동일한 정치적, 문화적 영향하에서 오랫동안 역사속에서 문화가 누적되어 온 세계적인 문명국이다. 또 BC 2,500년 경에 황허와 그 지류인 위수(渭水)에서 발달한 고대문명이 그 인접국가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이다.
중국의 국가적 발전은 북쪽에서 시작하여 점차 남쪽으로, 나중에는 서쪽과 북쪽으로 확대되었다. 중국의 고대문명은 초기에는 중국의 북서지역에만 확산되었으나, BC 3세기경 진(秦)과 한(漢) 시대에 이르러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성립됨에 따라 중국 전체로 확산되었다.
중국 영토의 역사적 변천
진왕조의 시황제(始皇帝)는 중국 북부에서 최초로 통일국가를 형성하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진출하여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만리장성을 축조하여 그 북쪽 스텝지역의 유목민의 침략을 저지하였다.
한 왕조는 위수의 황토지대에 근거를 두고 중국을 정복하여 중부와 남부에 문화의 확산시켰으며, 그 영향이 양쯔강 이남의 해안지방과 안남(安南)산지까지 미쳤다.
한 왕조의 멸망 후, 중국은 삼국시대와 그 후의 진(晉)에 이어, 양쯔강 유역의 한족 왕조와 화북의 유목민족이 대립하는 남북조시대에는 유목민족과 접촉을 통해 그 문화를 수입하였다.
그러나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는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과도한 토목공사와 대외원정의 실패로 당에게 패망하였다.
당나라는 제도를 정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전제국가를 이루어 중국문화를 발전시켜 인접국가에 많은 영향을 주어 동부아시아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당대에는 오랜 평화와 개방정책을 통하여 동서교류가 활발하여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당의 문화는 통일신라, 일본, 베트남 등 인근 민족에게 영향을 주어 한자, 유교, 불교, 율령 등을 공통적 특색으로 하는 동부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중국의 국력영향은 서구의 동양 진출이 시작된 15세기 말엽부터 약화되기 시작하여, 서구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19세기 중엽까지 지속되었다. 아편전쟁(1839-42년)을 계기로 개항한 후 프랑스와 독일에게 조차지 부여, 일본의 대만 점령과 만주 및 본토 침략, 러시아의 만주 강점 등의 굴욕과 국공내전을 경험하였다. 17세기부터 일어난 만주족은 그 세력을 확대하여 청(淸)나라를 세우고 중국 전역을 지배하였으나 19세기에 이르러서 그 국력이 약화되면서 보수적이고 패쇄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다. 교역을 앞세워 밀려오는 서구의 압력에 견딜수가 없었다.
중국의 문호를 개방하기 위하여 영국이 일으킨 아편전쟁(1839-42년)에 패하여 5개 항구를 개항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계속된 서구열강의 압력으로 프랑스와 독일에게 조차지를 허락 했다. 일본은 타이완을 점령하고, 러시아는 만주를 강점하여 철도부설권을 얻게 되었다.
1927년 공화국의 국민당 정부는 난징(南京)에 새로운 수도를 정하고 장개석(將介石)의 지도에 의하여 국가 재통일의 전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일본의 대륙침략 정책이 시작되었다. 1931년에 일본은 만주를 공격하여 합병한 후 이어서 중국본토 침략을 시작하였다.
서구열강의 침략과 지배로 얼룩진 이러한 중국의 근대역사 때문에 중국의 해안지역에 서구열강들이 이루어 놓은 상하이를 비롯한 당시의 도시들이 남아있으며 이것이 오늘 날 중국관광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일본과 중국공산당과의 전투에 직면하여 국민당 정부는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패전하여 타이완으로 후퇴하였고 중국본토는 중국공산당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중국공산당은 중국본토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면서 주변지역으로 확대해 나갔으며 소련의 통치형태를 답습함에 따라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가속화 되었다.
195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의 내륙지향적인 개발정책으로 정조우(鄭州), 시안(西安), 우한(武漢), 란조우(兰州拉) 등의 내륙도시가 급속한 성장을 보였으나 내륙개발정책이 큰 실효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딩사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1970년 대 말부터 ‘4대 근대화’에 의한 경제개혁을 단행하여 외자의 유치를 위해 해안지역에 5개 경제특구와 14개 경제개발구를 설정하여 개방정책을 폈다.
오랜 역사속에서 중국 영토는 그 국력의 강약에 따라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였으며 그 결과 중국의 거대한 영토위에 상반된 2개의 지역이 존재하고 있다. 즉 항상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한족(漢族)의 주 거주지역인 중국 본토(China Proper, 중심부)와 이민족의 주 거주지역인 주변지역(Outer China)이 그것이다.
중국본토는 만리장성 남쪽과 티벳고원 동쪽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핵심지역으로서 18개 성(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족이 주로 거주하는 한다. 반면에 주변지역은 티벳, 신장(新藏), 몽고(蒙古), 만주(滿洲), 꽝시(廣西) 등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중국의 세력 확장으로 이민족의 거주지역이 흡수된 결과이다. 이 때문에 중국 본토와 주변지역은 정치, 인종, 문화 등의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행정구역과 민족분포
한편 근대에 서구열강의 침략과 지배로 중국의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의 해안지역에 서구열강들의 지배 흔적이 남아있고, 1970년대부터 딩사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외자의 유치를 위해 개방된 해안지역에 선전(深玔), 주하이(珠海), 샨터우(汕頭), 샤먼(廈門), 하이난(海南) 등의 5개 경제특구와 다롄(大連), 친황다오(秦皇島), 톈진(天津), 옌타이(煙台), 칭다오(靑島), 롄윈(連雲), 난퉁(南通), 상하이(上海), 닝보(寧波), 원쪼우(溫州), 사먼(厦門), 광저우(廣州), 쭈하이(珠海), 웨이하이(北海) 등 14개 경제개발구가 전통적인 중국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특구와 개방도시
개방도시, 칭다오(靑島)
개방도시, 상하이(上海)
경제특구, 선전(深玔)
이러한 역사적 변천 때문에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지역에 따라 주민들의 모습, 생활 및 건축양식이 전혀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중국본토(중심부)에서는 한족 중심의 주민 모습과 생활양식이 우세하지만 주변지역으로 갈 수록 소수민족 중심의 모습과 생활양식이 우세하다. 특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 수록 전통적인 한족 모습에서 아랍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또 해안지역에 있는 도시와 내륙에 있는 전통도시가 전혀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1970년대 개혁개방정책이후 탄생한 경제특구와 개방도시는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성장한 기존의 중국 전통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심지어 자본주의 국가의 도시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이 내키는대로 무계획적으로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많은 시간과 금전을 소비하고도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인들 조차도 자기네 명소를 모두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고 한다.
한정된 시간과 금전으로 현명한 중국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변천과정과 그로 인해 이루어진 중국본토(중심부), 주변지역, 개방지역 등이 지닌 지역성(지역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여행을 결정해야할 것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여행이라면 중국본토를, 소수 민족이나 특이한 관광을 위한 여행이라면 주변부를, 서구의 지배 흔적이나 경제개방 이후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해안지역을 여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틀 속에서 세부적인 여행지역의 선정은 여러 분의 취향과 사정에 따라야 할 것이다.
추가적으로 알아 두어야 중요한 사실은 중국에는 유적은 있으나 주요 유물은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이 중국에서 철수하면서 중국의 중요한 유물들을 모두 군함에 실어 타이완으로 가져 갔기 떄문이다. 중국의 주요 역사적 유물은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베이에 있는 궁정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소장한 유물의 양이 엄청나기 떄문에 매월 전시유물의 종류를 바꾸고 있으며, 전시된 유물만 보는데 한나절이 걸린다. 중국의 유적을 보기 위해서는 중국, 유물을 보기 위해서는 타이완으로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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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타이완이 좋은가 보네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거이 보내셨는지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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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주시어 잘읽어 보구 갈깨요
금욜
남은 시간두 편안한 시간 보내시어욤
감사합니다. 예쁜 여인들을 보내 주셔서...좋은 저녁 시간되시길.....
★³°″″´· 잘★³°″″´·읽고★³°″″´·갑니다★³°″″´·
★³°″″´·기쁨이★³°″″´·넘치는★³°″″´·좋은날★³°″″´·되시길★³°″″´·
도성님도 좋은 밤 되세요
여행지 잘 읽어보고 갑니다
편한밤 되십시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