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며칠째 된다. 정치적으로는 보수당에서 극우당으로, 변호사출신에서 검사출신으로 대권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차기 정권도 혁신과 변화를 부르짖겠지만 여느 정권과 다름없이 시간이 지나면 동맥경화에 걸릴 것이고, 국민은 언제나 고달플 것이다. 선거에서의 승패는 전투에서의 승패와 같아 병가상사(兵家常事)이니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시무룩할 것도 아니고, rule대로 진행되었다면 30%이기든 1% 이기든 이긴 것은 이긴 것이다. 이제 승리한 쪽에서는 포용과 대범함이 필요하고 패배한 쪽에서는 승복과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의 정치도 언제나 그러하듯 화석(化石)이 아니기 때문에 삼국지의 첫머리처럼 합하면 나뉘고 나눠지면 또 합해질 것이다.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제도권 언론이 소홀했고 간과했거나 아니면 애써 눈감으려 한 몇 가지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것은 정치에 앞서는 인간의식의 문제로서 ① 강남구를 비롯한 한강벨트 거주민의 투표 행태 ② 이재명후보의 고향 경북도민의 투표 행태 ③ 20ː80인 사회구조에서의 서민들의 투표 행태 ④ 조선, 중앙, 동아를 비롯한 문화, 국민, 한국, 서울, 세계 등 수구언론과 경제지들의 보도 행태 ⑤ 60대 이상의 투표 행태 ⑥ 정의당과 심상정후보의 선거운동 행태의 순으로 기술해 나갈 것이다.
첫째,
운석열후보는 이재명후보보다 전국적으로 24만 7077표차로 이겼는데 (표차0,73%), 서울에서 윤후보는 득표율 50,56%인 325만 5747표를 얻어 이후보의 294만 4981표(45,73%)보다 31만 766표를 더 얻었다, 그야말로 서울이 전국 승리의 발판이었고 승리를 가르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윤후보는 강남구를 비롯한 서초구, 송파구뿐만 아니라 마포, 용산, 성동 등 한강벨트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중 강남구 압구정동에서는 광기(狂氣)라고 할 수밖에 없는 84,47%의 몰표를 얻었다. 여기에서 이후보가 얻은 표는 고작 13,8%였다. 또 윤후보는 대치 1동 80,97%, 도곡 2동에서 80,89%을 얻었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있는 제1, 제2 투표소에서는 각각 90,56%와 91,16%, 타워팰리스가 있는 도곡 제3, 제4 투표소에서는 90,09%와 90,32%를 얻었던 것이다. 오세훈시장이 34대 서울시장으로 재선될 때, 그때도 물은 손가락사이로 새는 줄 알았는데 다 죽은 오시장을 살려준 것은 강남사람들의 몰표였다. 이러한 경악을 금치 못하는 현상을 식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후보에게 투표하는 「계급투표」라 부르고 있다.
심상정후보는 대통령후보 토론에서 「공시지가 15억 5천만원 실거래가 30억 집에 살면서 72만원, 재산세까지 4백만원 낸다.」고 하며, 「지금 청년들은 1년 월세로 8백만원을 내는데, 이게 어째 세금폭탄이냐?」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윤후보에게 향한 표심은 혜택은 누리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못 지겠다는 놀부심성인 것이다. 이 사람들의 투표행태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무런 고민이나 망설임 없는 조건반사식 투표행위인 것이다. 이들에게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앞장서서 싸운 영국의 상류층이나 부자증세를 했으면 좋겠다는 미국의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같은 기개를 바란 우리가 잘못이고. 결국 이들도 우리와 같은 참새무리, 닭 무리, 오리무리였던 것이다. 계급을 뛰어넘는 지성과 비젼, 도덕적 책무속의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역시 너와 나는 별반 다르지 않는 족속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이었다. 마르크스도 이것은 몰랐을 것이다. 노동자나 농민이 아니라 부자들이 계급투표를 할 줄을-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설이 틀렸다고 증명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이를 실천하고 부추기는 아이러니는 한국적인 현상이리라. 이들은 명예 대신 이익을 택한 것이다. 이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설과 유물사관으로 똘똘 뭉쳐있고 충실히 따르는 그 제자들이라고 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는 금융과 산업인 등 독일 유력층의 지지로 정권을 잡았는데, 강남구를 비롯한 한강벨트의 투표행태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한다.」고 말하였을 것이다.
둘째,
사회구조는 옛날 봉건왕조시대나 현대 공산주의 국가나 민주주의 국가나 20ː80의 구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합리적 차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20%의 사람들은 기득권을 지키려하고 80%의 사람들은 이를 변경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다면 산술적으로 따져보아도 최소한 30%의 서민들이 윤후보를 지지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30%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하는 것이다. 민생이 파탄 난 것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대안세력을 지지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야당은 권위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라 정권교체의 열망에 비해 그리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고 볼 것이다. 그런데도 30%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급투표를 하는 부자들과는 달리 이후보에게 등을 돌렸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무지와 허세 때문이라고 본다. 무지하니 부화뇌동했을 것이고, 옛날 안자의 수레를 몰던 마부처럼 허위의식과 허세가 이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셋째,
경상북도는 이후보의 고향이다.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이후보가 얻은 경북에서의 득표율은 23,8%로 매스컴은 5년 전 문재인후보가 받은 21,73%보다는 많고 역대 최고 성적이라고 하며 상당히 약진한 것이라 떠벌린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이는 표면만 본 것이고 적어도 이후보는 이곳에서 50%는 나왔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이념도 고향산천이나 고향사람과 비교하거나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송나라의 소순은 변간론(辨奸論)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잘 아는 제환공이 재상 관중이 죽어갈 때 그에게 누구를 중용할 것인가를 묻는 대목이 있다. 제환공은 수조, 역아, 개방을 중하게 쓰면 어떠하냐고 하자 관중은 차례로 수조는 환공의 측근 내시가 되기 위해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다는 것으로. 역아는 세 살 박이 자식을 요리로 만들어 바쳤다는 것으로. 개방은 위나라에 있는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가지 않았다는 것으로 불가하다고 말한다. 인정(人情)에 어긋나고 인심(人心)에 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경북사람들이 이후보를 배척한 것이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오래된 말을 따라한 것이라도 문제이고, 그렇다고 여기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정치의식이나 정치수준이 높아 사사로운 것을 버리고 나라를 위한 투표를 했다고 믿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순박하고 순진한 사람들을 이념의 도구로 쓴 사람들은 누구일까? 무엇이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가 「허망한 정열」이라고 정곡을 찌른 정치나 이념에 경북사람들을 가둔 것은 무엇이었을까? 초한지를 보면 항우는 강동의 정병 5000명을 이끌고 나와 싸우는 쪽쪽 이겼으나 마지막 전투 해하성 싸움에서 패하여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뱃사공이나 후대의 시인 두목은 「강동에는 뛰어난 자제가 많다. 江東子弟多材俊」며 고향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할 것을 권하는 장면이 있다. 그민치 고향은 실수나 실패도 받아주고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는 아늑한 어머니의 품안 같은 곳이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이육사나 조지훈이 다시 살아나서 이를 보았다면 무엇이라 할까? 사람이 너무 의로워지려 하는 것도 문제이려니와 사람이 이념을 쫓으면 그 끝은 인성의 황폐화이다.
넷째,
소위 조·중·동이라고 부르는 수구언론과 모든 경제지들의 보도행태이다. 선거기간 이전부터 「정권교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이후보를 떨어트리고 윤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동과 선전을 펼친 언롱이었고, 그래도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에는 지면을 아끼지 않았던 예전의 그 언론도 아니었다. 이들 언론들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 파안대소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앞서가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밴드-왜곤효과(승수효과)를 전파하고 넉넉히 150만―200만 표 차이로 이길 것이라는 장담과는 너무나 다른 겨우 0,73%의 차이로 신승한 것에 대해 아마 벌레 씹은 표정일 것이다. 오늘날 신문사나 방송사의 지분을 보게 되면 부동산 재벌 등 기득권중의 기득권이 이들임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아무도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라거나 공기(公器)임을 믿지 않는다. 그들도 기업인 이상 기업에 손해 볼 일은 안한다고 볼 것이다. 과연 지금의 언론이 명나라 해서가 관을 마련해 놓고 상소한 것이나 조선시대 조헌이나 최익현이 웃옷을 벗고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한 정신을 알기나 할까? 지금의 언론들은 한 개인, 한 집안, 한 정파의 선전물이나 기관지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번 선거에 이 언론들은 혹 뒤끝이 개운치 않고 무언가 찜찜할 것이다. 언론생활을 오래한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유신독재 때, 유정회가 국회의원의 ⅓을 뽑아놓고 치른 총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여당인 공화당보다 표를 조금 더 얻었는데, 그때부터 정국은 격랑 속에 휩쓸려 들어간 것을- 준열한 자기단속이 없는 언론은 이미 언론의 자기부정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칼로 흥한 자는 반드시 칼로 망하게끔 돼 있다. 나는 단언한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망하거나 위태로우면 그것은 지금의 언론들 때문일 것이라고. 옛날 중국 한나라의 선제는 자기 아들 태자 유석(뒤의 원제)이 장차 한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섯째,
이번 선거에서 60대 이상에서 윤후보에게로의 쏠림현상이다. 윤후보는 60대에서 64,89%, 70대 이상에서 69,9%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과연 윤후보가 60대 이상에서 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은 이들에게 자유스럽고 민주적인 것은 방종과 무책임, 혼란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권위체제나 독재체제에 익숙하고 자율적인 것보다 타율적인 것에서 안정을 찾고 안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번 돈인데 국가에 의해서 사회재분배정책에 의해 내 재산에 손해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생장과정이 힘들었던 시기였던 탓으로 교육수준이 낮고 세계관이 좁다는 것과 6·25동란 등의 「레드 콤플렉스」 영향, 노인 특유의 경직성과 완고함도 그 원인들일 것이다.
나이 50이 넘으면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는 것을 지비(知非)라 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 오십에 이르자 「나는 앞집의 개가 짖으면 따라 짖는 개였다.」 며 자책하고 반성했다. 우리 6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아쉬운 대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여섯째 마지막,
정의당과 심상정후보의 정치력에 대한 의문이다. 진보는 역대 선거에서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태를 종종 보였었다. 만약 이번에 심후보가 안철수후보처럼 이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단일화를 했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 선거도 이제 과거가 돼버렸고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아마 그랬다면 지금 웃고 있는 사람은 이후보일 것이다. 심후보가 얻은 표는 총유효득표율 2,37% 803,358표였다. 심후보에게 던진 표가 이후보보다 더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그중의 반인 40만 표라도 이후보에게 주어졌더라면 대한민국의 역사와 장래는 당연 달라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진보는 2014년 동작을 보궐선거에서도 단합되지 못하고 분열되었다. 당시 새누리당 나경원후보는 38,311표를 얻어 37,382표를 얻은 노회찬후보를 겨우 930표차로 따돌리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시 강경파 나경원에 의한 국회의 파국은 지금도 상처로 남아있다. 이때도 새정치연합 기동민후보와 노후보간의 늦은 단일화 성사로 인한 무효표가 1,403표 그리고 노동당 김종철후보가 얻은 표가 1,076표였다. 이번 대선처럼 진보진영이 표를 더 얻었으나 개인의 공명심 때문에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된 것이다. 이번에 이후보는 대통령중임제, 다당제 등 그동안 정의당이 요구하고 바라던 정치개혁을 약속하고 심후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 안철수후보는 명분을 잃었지만 실리를 얻었다.
그러나 심후보는 명분과 실리를 다 잃었다. 결국 이들은 나라의 장래나 운명보다는 당리당략을 취한 것이 되고 이것은 앞으로 정의당이 행로에 족쇄로 작용할 것이다. 정의당과 심후보는 과연 일보후퇴를 통한 이보전진을 몰랐을까. 아니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이었을까. 만약 정의당의 선거 전략가들이 노회한 사람들이었다면, 심후보가 아니고 남자후보였다면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그만 과녁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동안 정의당이 외치던 가치들은 송두리째 부정당했고, 전술도 전략도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들이 그동안 말한 정의나 공정은 허무맹랑한 것이 되었고, 그들의 슬기롭지 못한 배짱은 역사의 퇴행을 가져왔다. 정의당은 가항(街巷에서 병정놀이하는 아이들같고, 가까이하기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정당인 것이다. 정치와 역사에서 때로는 항복문서도 필요하고 때로는 회군(回軍)도 필요한 것이다.
2022,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