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AI와 만나다] 병실 ‘쿵’ 소리에 AI 낙상 발생 경고… 기계, 보는 것 넘어 이제 듣는다
딥러닝 기반 소리 분석 AI 업체 코클
병실 발생 소리만으로 환자 상태 추정
폐차장 유리 깨며 소리 수집... 미 공군과도 손잡아
2011년부터 데이터 구축, 애플도 앞서
VC “소리 인식 AI 분야서 챗GPT 역할”
배동주 기자
입력 2024.01.08 06:00
“403호에서 낙상 발생이 추정되니 확인 바랍니다.”
일본 도쿄 인근의 한 요양병원 후지노엔. 간호사실 모니터에 붉은색 원과 함께 낙상 추정 경고 알림이 뜨자 간호사가 급히 403호 병실로 향한다. 병실에는 한 환자가 바닥에 허리를 잡고 누워 있다. 환자가 떨어지면서 난 ‘쿵’ 소리를 청각 인공지능(AI) ‘코클 센스’가 인식했다.
AI가 소리도 파악하기 시작했다.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 ‘악’하는 비명은 물론 고성이 오가면 싸움이 일어났다는 경고까지 낸다. AI가 소리를 듣자, 감시용 CCTV 설치가 불가능했던 병실의 안전까지 챙길 수 있게 됐다. 후지노앤은 50개 병실 전체에 코클 센스를 구축했다.
코클 API가 적용된 스마트폰이 주변의 소리를 인식해 글자로 나타내고 있다. /배동주 기자
AI는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율주행에 이르기까지 ‘눈’의 영역이 탁월하다. 반면 소리만큼은 불가능의 영역으로 분류됐었다. 그나마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직접 하는 말을 그대로 듣고, 통·번역하는 음성 인식 기술 정도가 청각 AI의 전부였다.
AI의 핵심은 개와 고양이 사진을 꾸준히 보여준 뒤 각각의 정답을 제시, 학습시키는 것이다. ‘이건 개’ ‘이건 고양이’를 반복해 결국은 스스로 알게 하는 식이다. 그런데 소리는 다르다. 일상의 소리는 중첩된다. 개와 고양이가 겹친 이미지에서, 정답을 구분해야 하는 일인 셈이다.
예컨대 사람의 귀는 소리를 선별적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기계는 할 수 없다. 병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환자 옆으로 쿵 소리가 들리면 이게 노래인지 낙상인지 기계는 알 수 없다. 각각의 소리를 아무리 학습시켜도 기계는 계속해서 이를 중첩된 하나의 소리로 인식해 버렸다.
그랬던 AI에 코클이 진짜 귀를 달았다. 코클은 후지노엔 병실에 코클 센스를 설치한 국내 청각 AI 기술 스타트업이다. 영국 런던대에서 음악 분석을 전공한 한윤창 대표가 2011년 서울대 박사 과정으로 택한 소리 인식 AI 기술을 차츰 발전시키다 2017년 회사를 열었다.
“요양병원의 소리 기반 안전 체계는 청각 AI 기술 상용화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한 대표를 최근 서울 강남구 코클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는 코클의 기술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지난해 6월 65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주도한 신영성 인터베스트 이사도 함께했다.
한 대표는 “개와 고양이를 인식하는 것도 못 했던 AI의 비전 인식 기술이 10년 전부터 폭발적으로 발전하더니 이제는 달리는 자동차가 사물을 인식하는 단계에까지 왔다”면서 “청각 AI 기술도 마찬가지로 학습의 양을 늘리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일찍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코클 이전까지 AI의 청각 인식은 사례와 정답을 무한 반복해 스스로 학습하게 하는 딥러닝 기반의 AI가 아니었다. 가령 3000헤르츠(Hz)의 음이 40데시벨(㏈)로 나타나면 여자의 비명이라는 식으로 사람이 최대한 통계치를 짜서 규칙에 맞는 답을 내는 이른바 반쪽짜리 AI였다.
코클은 정석을 따랐다. 비명을 직접 모은 다음, 비명이었다는 정답지를 계속 주는 식으로 AI 학습을 진행했다. 그렇게 확보한 청각 AI 알고리즘으로 코클은 2017년 미국 전기공학회 청각 기술 AI 대회에서 우승했다. 규칙 기반 AI를 들고 온 아마존, IBM마저 눌렀다.
벤처캐피털 인터베스트에 따르면 청각 AI 기술은 소리 인식 방법론마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코클은 해당 알고리즘 분야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회사로 분류된다. 스마트폰과 AI 스피커에 소리 인식을 넣고자 하는 애플과 구글마저 2020년 들어서야 개발을 시작했다.
신영성 이사는 “기계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각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대단히 많은 소리를 선별해서 인식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과거의 규칙 기반 방식은 정확도가 너무 낮았다”면서 “코클은 소리 인식 AI 쪽에서 딥러닝 방식으로 접근한 최초의 팀”이라고 말했다.
코클은 애플과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이 소리 인식 AI 기술 개발에 나섰음에도 인식 기술에서의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2011년 이미 악기 소리를 녹음해 AI 학습을 진행해 온 데다 2017년 설립 이후 그 어느 곳에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소리 학습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자신에서다.
한 대표는 “차량 유리 깨지는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폐차장을 직접 찾아 앞 유리를 깨고 뒷유리를 깬 것은 물론 망치와 녹음기까지 달리했던 게 2017년이었다”면서 “이후 가까이는 회사 앞 동물병원, 멀리는 미국 공군기지와도 손잡고 소리 데이터를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차량에 부착된 코클 센스가 주행 중 인식한 소리를 분류해 나타내고 있다. /코클 제공
차량에 부착된 코클 센스가 주행 중 인식한 소리를 분류해 나타내고 있다. /코클 제공
실제 코클의 딥러닝 알고리즘을 결합한 오디오 AI 플랫폼 코클 센스는 2022년 기준 일상의 소리 35개 이상을 구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조사였지만, 87.5%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애플은 17개, 구글은 11개에 그쳤고, 정확도마저 68% 수준으로 코클에 뒤처졌다.
신 이사는 “코클 센스는 다양한 소리를 비교적 정확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어떤 장비로 해당 소리를 듣느냐와 관계없이 해당 소리를 분별하는 것이 강점”이라면서 “애플은 아이폰 마이크만을, 구글은 AI 스피커 알렉사로 들어온 소리만을 인식해 범용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코클은 AI가 소리를 인식하는 학습 데이터에 한 가지 녹음 장비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저가 마이크부터 고가 마이크를 모두 이용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 녹음도 가리지 않는다. 소리 인식 AI 기술을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형태로 제공,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기 위해서다.
코클의 코클 센스는 요양병원은 물론 스마트공장에도 적용,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자동차 도어모듈 현대차 협력사인 피에이치에이는 제품 생산 마지막 단계인 품질 테스트에 코클 센스를 도입, 이상 소음 감지 기술 검증을 마쳤다. 올해 미국 조지아 공장 도입을 정했다.
소리 인식 AI는 특히 국방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넬리스 공군기지는 코클의 AI 기술을 사용 중이다. 마이크를 부착한 보행 로봇이 돌아다니며 각종 소리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한 대표는 “소리로 총기나 비행기의 종류, 나아가 적의 위치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LIG넥스원이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진행하는 396억원 규모 잠수함용 지능형 임무지원시스템 통합 자동화 기술 사업에 나서며 코클을 택했다. 차세대 잠수함의 소나(음파탐지기) 장비에 코클 센스 기반의 탐지‧추적 및 식별‧위험평가 기능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한윤창 코클 대표(오른쪽)와 신영성 인터베스트 이사. /배동주 기자
한윤창 코클 대표(오른쪽)와 신영성 인터베스트 이사. /배동주 기자
신영성 인터베스트 이사는 “코클은 오픈AI의 챗GPT와 같이 API 제공을 핵심 사업으로,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기술 실증 작업을 진행해 왔다”면서 “소리 인식 AI 쪽에서는 챗GPT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했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게 되고 있다”고 말했다.
코클은 올해가 AI 기술 실증 이후의 사업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미국의 CCTV 솔루션 업체로의 차 유리 파손 감지 기술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한 대표는 “2022년 1억7000만원 매출을 낸 이후 작년 8억원으로 매출이 늘었고,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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