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에게 빌다
유 종 덕 7남매를 낳은 35세의 다둥이 엄마가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대학 4학년 때 결혼하여 쌍둥이 딸을 두 번이나 낳아 딸이 넷, 그리고 연년생 아들 셋을 둔 평범하지 않은 주부였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지만 엄마로서 희생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가지 많은 나무에 열매가 많다’ 며 남편의 든든한 후원에 대한 고마움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육아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 어 풍족하지는 않지만 젊은 부부의 기뻐하는 모습을 카메라는 클로즈업한다. 아홉 살 손녀 ‘지효’ 하나밖에 없는 나는 프로그램이 끝 날 때까지 한눈팔지 않고 시청했다. 지효 동생 하나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해가 갈수록 점점 짙어진다.
작년, 계사년 추석은 유난히도 날씨가 맑았다. 저녁 무렵 가족 모두 과천의 대공원으로 놀러갔다. 매표소에는 가족단위 관람객들로 만원이다. 한참을 기다린 뒤 입장하여보니 바이킹, 롤러코스터, 회전목마를 비롯하여 우리세대 어렸을 때는 못 보던 이름 모를 놀이기구가 불빛을 번쩍이며 빠른 속도로 솟아올랐다 내려오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면 아이들은 함성을 지른다. 지효도 놀이기구를 태워주니 싱글벙글, 좋아라고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무대공연도 보고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몇 가지 놀이기구를 더 즐기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후문으로 향했다. 아들은 자동차를 가지러 맞은편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청계산 위에 걸려있었다. 우리처럼 자동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다른 가족들도 환하게 비추는 둥근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효 옆에 있던 어떤 엄마가 지효 또래의 그 집 아이에게 달님에게 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 그러자 그 집 애는 가만히 있는데 엄마 손을 잡고 있던 우리 손녀 지효가 느닷없이 “달님! 달님! 지효에게 예쁜 동생 하나 보내주세요.” 하면서 커다란 보름달에 소원을 빌었다. 순간 그 엄마는 지효가 하는 소리를 듣고 “어머나” 하면서 우리 지효와 며느리를 번갈아 쳐다본다. 며느리는 묘한 표정으로 말없이 지효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기분이 좋아진 지효는 엄마의 표정은 아랑곳없이 밝은 달을 향하여 이번에는 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외로운 지효에게 예쁜 동생 하나 보내주세요.”를 반복한다. 미술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크고 작은 상을 타오더니 평소 엄마 뱃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기모습을 화첩에 그려놓고 ‘내 동생’ 이라고 커다랗게 써 놓던 지효가 달님에게 소원을 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실 삼대독자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내가 하고픈 말을 지효가 대신하고 있는듯했다. 딸, 아들 구분 없이 아기를 하나 아니면 둘 낳는 세태에, 친구와 말다툼하던 초등학생이 친구의 형한테 얻어맞고 돌아와 엄마한테 “형 하나만 낳아주세요”하면서 울더라는 웃지 못 할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가끔 아들에게 “나는 아범 같은 튼튼하고 훌륭한 아들이 있는데 아범은 지효 하나밖에 없으니 나중에 지효 시집가면 외롭지 않을까?” 하며 미온적인 암시를 하다가, 급기야 ‘시험관 아기’ 같은 직설화법으로 기다림을 표시한 적도 있었다. 물론 아들과 단둘이 있을 때 한 얘기였다. 이순이 지난 우리세대는 귀여운 손녀도 좋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아직까지는 손자 하나 쯤 안고 싶은 고정관념이 남아 있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여기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이 하나 낳아 기르는 비용이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년에 1천만 원 내지 2천만 원이 소요되어 대학까지 뒷바라지 하는데 대략 3억 내지 4억이 소요된다는 심층 분석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생활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우유 값에 어린이집에, 학교에 입학하면 과외 까지 한 달에 1백만 원 이상 소요된다니 어디 적은 돈인가? 인구가 적을 때, 옛 어른들은 저 먹을 것 모두 가지고 태어난다 하셨지만 요즈음은 엄마 아빠가 경제적으로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친정에, 시댁에 황혼육아를 부탁하거나, 시설에 아기를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라 정책이 미흡하여 이렇게 아이 낳고 키우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아들과 며느리 아직 30대로 젊고 몸 건강히 출근하니, 하나 더 낳아도 지금처럼 할멈이 보살피고 할아버지인 나도 퇴직을 하여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우니 육아는 큰 걱정 안 해도 될 성싶다. 남동생이 생기면 그 더욱 좋겠지만 여동생이 생겨도 지효의 외로움을 해결할뿐더러 나라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구증가에도 기여하니 애국이 따로 있겠나. 지효 혼자는 너무 외롭기도 하거니와 공동생활에 필요한 인성교육이 아무래도 걱정되어 딸 아들 구분 없이 하나는 더 낳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믿음의 구분 없이 이름난 성지를 두루 찾아 기도하고, 지난달에는 설악산 봉정암을 끝으로 5대 적멸보궁을 모두 순례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렸으니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께서 어여삐 여기셔 손주 하나 더 점지해 주시지 않을까? 둘째가 생기면 새벽마다 정화수 떠놓고 삼신 할머님께도 “우리 며늘아기가 아무 탈 없이 순산 하도록 굽어 살펴주소서!” 하고 부탁드려야지. 그리되면 지효와 열 살 정도 터울의 늦둥이를, 아내와 내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정성으로 돌봐주련만····. “며늘아기야! 달님에게 빈 지효 소원 딱 한 번 들어주면 얼마나 좋겠니?”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수필문학가협회회원, 춘주수필 회원. |
첫댓글![모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7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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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의 지성이 하늘에 닿으면![~](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좋겠습니다. 우리집에도 사실 딸만 셋일 뿐 대가 끊겼습니다.![키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68.gif)
저희 두 아들도 손녀만 하나씩 두었기에 유선생님의 글이 더욱 공감이 갑니다.
딸 아들 상관없이 손주 하나 더 낳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소원 꼭 이루시길 빕니다.
간절한 마음이면 하늘이 도와 줄 겁니다.
저는 손자만 셋 ~~~예쁜 손녀 하나만 있었음. 며느리나이 32세 기대를 해 봅니다.
복도 많으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우리 손녀 무척 똑똑하고 예쁜데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보리여사님! '세상사 역지사지' 라는 말이 실감이 나네요. 두 아드님 중에서 손녀 하나 생산하겠지요. 손자 손녀 구분없이 하나는 너무 외로운것 같습니다.
인천 세미나 끝나고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습니다. 건강하세요.
유선생님! 동시대의 사람이라 더욱 동감이 가는 글이네요. 여전히 유려한 글로 잔잔한 감동을 주시는군요.
슬쩍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불쑥 댓글을~~~ 그기도가 이루어지시길 함께합니다.
졸작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 합니다.
아이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나보다 더한 분이 계셨네. 나는 그래도 친손자 만 남매인데. 정월 대보름 날 봉의산에 올라 ![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1.gif)
맞이 하며 빌엇더니 손자생기고 이년 뒤 또 그리했더니 손녀 생겼는데 ...... 유박사님도 한번 해 보시지요. 그런데 둘째가 왜 딸이 됐는지 압니까![?](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시각을 잘못재서 지각을 햇거든요. ![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1.gif)
이 둥실 떠오른 다음에 절을하고 빌엇더니 그만 딸이 됐지 뭡니까. 그러니까 아들을 원하거든 미리 올라가 기다리는게 좋을것이고 딸을 원하거든 천천히 오르세요. 농담한다고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