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에 모습을 숨긴 무리들이 보였다. 그들은 검 등으로 무장을 한 채 긴장이 아닌 익숙한 모습으로 숨을 죽여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마차가 풀숲 방향의 길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오자 그들의 대장이 지시를 내렸다.
"지금이다, 쏴라."
풀숲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뭔가가 마차를 향해 날아갔다.
휘이이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마부의 가슴에 화살이 관통하고, 그 충격에 마부는 마부석에서 떨어졌다.
와아아아.
풀숲에 숨어있던 무리들이 뛰어나와 마차를 둘러싸기 시작한 후 마차를 중심으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무, 무슨 일이냐?"
마차 문이 열리며 중년의 남자가 마차에서 내렸다. 화려한 복장과는 달리 수척한 얼굴의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함을 증명하듯 이마에 구슬땀이 생글생글 맺혀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시선들은 당황한 모습을 비웃듯이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여, 비싸게 입은 걸 보니 귀족인가?"
"오호, 귀족 나으리께서 호위하는 사병들도 없이 어딜 가는 거지?"
"너, 너희들은 무엇이냐?"
귀족남자가 말을 하자, 무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 너희들은 무엇이냐고? 웁, 푸하하하……."
"우, 우리들은 도, 도적이다. 푸웁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우스운 지, 그들은 연신 배를 잡았고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두건을 쓴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이 대사도 지겹지만 우리 입장과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말해주지, 가진 것을 모두 내놓는 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차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이제야 마차 안에서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비명소리는 대장의 성질만 긁었을 뿐이었다.
"닥치고 이리 안나와? 저것들을 콱! 이봐 데슈, 안에 것들 끌고 나와."
데슈 라고 불린 사내는 무표정으로 대답한 후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마차 안에는 귀족남자의 부인인 듯한 중년의 여성과 그들의 아들, 딸로 보이는 소년, 소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검 끝으로 가리키며 나오라는 표시를 했다. 허나 서로를 더욱 끌어안을 뿐 나올 기미가 없으니….
"데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끌고 나와."
대장이 재촉하자 할 수 없이 그는 중년의 부인에게 검을 들이댔다.
"나오세요."
그제 서야 목숨이 위태로움을 느낀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마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여, 여보"
"아버지!"
자신의 아내와 아들, 딸이 끌려나오자 귀족남자는 안 그래도 수척한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곧 그의 머리 속에는 정말로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 우리도 가진 것이 없소, 제발 우릴 놓아주시오."
갑작스럽게 도적단에게 습격을 당한 귀족남자는 겉보기에도 화려한 옷을 제외하고는 가진 것이 없어 보였다. 수척한 얼굴에 호위병도 없고 마부와 가족 네 명이 다였으니….
"가진 것이 없는 놈이 이 마차는 어디서 났지?"
"그, 그건…."
"볼 거 없군, 지금 내놓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찾지, 물론 너희들이 시체가 된 후에…."
"아, 아니오. 마차 안의 보따리 안의 상자에 200골드 있소, 하, 하지만 우리도 조금 남겨주면 안되겠소? 그게 내 전 재산이란 말이오."
"살려주는 것으로도 감사하지 못할 망정, 조금 남겨달라고? 별 웃긴 놈도 다 있군, 데슈, 보따리에서 상자를 꺼내와라."
여전히 데슈는 무표정으로 대답한 후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보따리를 풀어 상자를 발견한 그는 확인을 위해 상자를 열어본 후, 멈칫하고 눈을 크게 떴다. 상자 안에는 분명히 100골드 묶음이 두 개 있어야 되는데 그의 눈에는 세 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제 서야 그는 귀족남자의 말을 이해했다.
[남겨달라는 말이 그런 뜻이었군, 300골드 중 100골드는 남겨달라….]
귀족이지만 귀족답지 않게 수척한 얼굴의 그를 잠깐 떠올린 후 손을 움직였다. 상자에서 100골드 묶음 하나를 빼서 보따리의 구석에 숨긴 것이다. 그리고 상자를 다시 닫은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상자를 들고 나와 귀족남자를 외면한 채, 대장에게 건넸다.
"호, 200골드라…. 오늘 봉 잡았군."
상자를 열어 금액을 확인한 대장은 만족한 얼굴로 귀족을 바라보았다.
"더 숨긴 건 없겠지?"
"어, 없소. 그게 내 전 재산이오. 제발 조금이라도 남겨주시면 안되겠소? 우리도 살아야하지 않겠소."
"이게 살려줬더니 이젠 돈을 뺏으려하네?"
"그, 그런…."
"그런데 보석 같은 건 없고 왜 돈 뿐 이지? 더 있는 것 아니야? 이봐, 보따리 가져와 봐!"
보따리 안에는 데슈가 귀족남자의 가족을 위해 숨겨 논 100골드가 있었다. 그렇기에 데슈는 대장에게 서둘러 말을 꺼냈다.
"제가 보따리 안을 뒤져보니 몇 가지 옷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 음,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군. 하긴 이 정도면…."
대장이 자신의 말을 믿고 만족하자, 데슈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만약 대장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보따리를 살펴보았다면 귀족남자는 돈을 숨겼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저들의 모습을 봐서는 꼭 어디서 도망쳐온 것 같은데, 저들도 먹고살아야지…….]
비록 도적이었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착한 사람이면 뭐 하는가? 이미 그의 무리는 마부를 죽이고 귀족남자의 돈을 갈취했다. 어찌했던 간에 그들은 목적을 달성했고 일주일 목표량을 오늘 한번에 채워 만족해있었다.
"대박 손님인 만큼 특별히 살려주지. 자, 얘들아, 돌아가자!"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귀족남자와 그의 가족들을 두고 도적단은 그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 듯한데, 이렇게 또 도적단을 만나 소지금을 털리고 나니 삶의 의욕을 잃은 표정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데슈는 보따리를 살펴보란 말을 남겨주고 일행을 뒤 따라 갔다. 그리고 잠시 후엔 이들의 얼굴에 희망이 떠올랐다.
마이티파운드 선술집.
발데르트 왕국의 아이헨 영지 중심가에 있는 선술집이다. 사내라면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꼭 들려야 할 곳이 되어버린 이 곳은 밤이 깊어지면 언제나 사내들의 거친 함성과 잔이 부딪히는 마찰음이 요란하게 들렸다. 허나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무리들이 한 테이블 자리 잡고 있었으니.
"대장은 왜 안 나오는 거야?"
신경질 적인 말투, 그들은 마차를 습격했던 도적단이었다. 그들의 말로 오늘은 대박이 터졌기에 오늘 일(?)은 마치고 모두 선술집으로 온 것이다. 물론 데슈라는 사내도 무리에 끼어 맥주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한 사람 당 얼마나 돌아올까?"
"200골드면 100골드 상납하고 나면 일인 당 10골드는 되겠지?"
도적단의 인원은 총 열 명이었다. 열 명으로 무슨 도적질을 하냐하겠지만 이들은 소규모상단이나 여행자들을 노리며 실적을 쌓고 있었다. 도적질을 함과 동시에 그들은 범죄자 목록에 올라 현상금이 붙었지만 그 것도 그들 대장의 이름인 사크와 사크 도적단이었을 뿐, 도적단의 개개인에 대한 현상금은 없었다.
"시드, 넌 언제쯤 이 짓에서 벗어 나냐?"
시드라 불린 이는 밝은 얼굴이 귀여워 보이는 갈색머리 소년이었다. 소년은 열 다섯 이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들 도적단과 함께 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부르실 때요."
시드의 아버지는 이 곳 아이헨 영지의 도둑길드 마스터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자신처럼 어려서부터 경험을 쌓길 원했고, 그에 따라 열두 살에 소매치기를 시작하여 열네 살부터 도둑길드에서 운영하는 도적단에 합류시킨 것이다. 비록 열 다섯 살에 불과하지만 삼 년의 시간은 소년을 동심에서 벗어나 현실을 걷게 만들었다.
"저기 오는군."
선술집 구석의 술 창고에서 사크 대장이 굳은 얼굴로 나오고 있었다.
"여, 대장! 왜 똥 씹은 표정으로 나오는 거유?"
사크 대장은 대답 없이 테이블로 다가와 자리에 앉아 주머니를 꺼냈다.
"대장, 뭔 일 있수?"
"마스터가 정말 똥이라도 먹인 거유?"
부하들의 농담에도 사크 대장은 대답이 없었다. 부하들은 서로 의문이 담긴 시선을 교환할 뿐 대장의 심각한 분위기에 말문을 닫고 있었다. 한참 뜸을 들인 사크 대장은 그제 서야 입을 열었다.
"오늘 부로 도적단을 해체한다. 오늘은 상납금 없이 일인 당 20골드다."
"에, 엑?"
부하들의 경악을 뒤로 한 채, 사크 대장은 그저 묵묵히 20골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금 20골드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질문공세를 시작했다.
"아, 아니 왜 잘나가던 우리 사크 도적단을 해체한다요?"
"우, 우리 상납금도 빠짐 없이 다 잘 냈잔수?"
"사유가, 사유가 뭐요, 대장?"
사크 대장의 청천벽력 같은 선언에 부하들은 황당과 당황 사이를 오고 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도적단의 일에 익숙해 있었다. 부하들의 질문 공세에 대답 없던 사크 대장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드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우린 시드의 경험을 위해 잠시 구성된 도적단에 지나지 않는다. 마스터께서는 시드를 수도에 있는 도둑길드의 길드원으로 보낼 예정이시다. 그에 따라 우리 사크 도적단은 오늘 부로 해체하고 마스터의 명에 따라 본업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허탈한 표정과 경악한 표정은 이내 분노의 화살이 되어 시드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시, 시드, 네 녀석이!"
"해체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군."
"시드, 네 녀석 이렇게 될 걸 알고있었지!"
그들의 분노에 시드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들이 화내는 건 이해하지만 정작 가장 경악한 사람은 시드였다. 그저 아버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도적단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었지만 도적단 자체가 자신 때문에 구성되었고, 또 자신 때문에 해체된다는 사실이 믿기 지 않았다.
"저, 전 몰랐어요. 저도 모르는 일이에요!"
시드가 몰랐다고 하자, 그들의 표정도 조금 풀리고 있었다. 일 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시드에 대해 잘 알게 됐기에 시드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드는 자신의 윗사람들에게 싹싹한 소년이었다. 그들의 분노는 시드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한 순간의 충동이었다.
"하긴, 시드가 알았다면 얘기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후, 우리가 그저 시드의 경험을 위한 들러리였다니……."
그 사이 사크 대장은 이들의 앞에 20골드 식 던져 놓고 있었다.
"자, 일단 돈부터 챙겨 넣고, 다들 너무 우울해 하지 말라고. 혹시 알아? 나중에 시드가 마스터가 되서 우릴 잘 봐줄지? 크크."
자신들의 앞에 있는 돈을 갈무리 한 후, 그들은 시드를 향해 하나둘 씩 입을 열었다.
"시드, 우리와 함께 한 시간들 잊지 않겠지?"
"내가 가르쳐준 부싯돌 사용법 기억하지?"
"이봐, 난 검술을 가르쳐줬다고!"
"그게 검술이냐? 난 문 따는 법도 가르쳐줬어!"
"도둑 길드원 중에 문 따는 법 모르는 인간도 있냐?"
시드에게 말하던 것이 어느새 그들 사이의 말다툼이 되고 있었다.
"조용! 아직 전달사항이 남아있다."
그들을 가라앉히며 사크 대장이 말했다.
"여기서 시드와 함께 수도에 있는 도둑길드로 갈 사람 있나? 마스터께서는 내가 지정하라 하셨지만 일단 지원자가 있는지 보겠다."
"에? 시드 혼자만 가는 거 아니었수?"
"너 같으면 혼자 가고 싶겠냐? 마스터께서 시드를 그나마 배려하신 내용이다. 지원자가 없다면 부득이하게 내가 지명할 수밖에 없다. 자, 지원자 있나?"
새로운 얘기에 그들은 서로 수군거릴 뿐, 정작 지원하는 자는 없었다. 수도로 가는 길이 멀 뿐더러, 수도인 만큼 치안이 가장 엄격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그만큼 도둑길드원들의 활동도 어려웠다. 또 그들의 가정과 터전이 모두 아이헨 영지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시드와 함께 수도로 가려 할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을 애절하게 바라보는 시드의 시선을 피한 채, 누가 지명될 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가 가지요."
그들의 침묵을 깨고 지원한 자는 선술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맥주만 홀짝거리고 있던 데슈였다. 짧은 검은색 머리와 검은 눈동자, 작고 날카로운 눈매의 차가운 인상을 가진 그는 시드가 말을 걸기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시드는 뜻밖의 지원자에 눈을 휘둥그래 뜬 채 놀람을 표시했지만 이내 함께 갈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했다.
"아, 데슈, 네가 가면 시드도 안심이겠지."
지원자가 없을 것을 예상하고 껄끄럽지만 자신이 지명을 해야할 거라 생각한 샤크 대장은 데슈의 지원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나마 데슈는 다른 이들과 달리 아이헨 영지에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데슈가 도둑길드에 처음 들어왔을 때를 회상했다.
[꼬맹이 녀석이 겁도 없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었지.]
"사크, 어떤 꼬마가 도둑길드가 어딘지 묻고 다닌다는 데?"
"뭐? 꼬맹이가?"
"지금도 마이티파운드에서 손님들한테 묻고 있다나?"
"다 찾아놓고선 도둑길드가 어디냐고 묻고 있군. 그래, 마스터는 뭐래?"
"너보고 꼬마를 데려오라던데?"
"크억, 왜 그걸 이제 말해!"
사크가 마이티파운드로 달려가니 그의 말대로 아이 하나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평범한 손님인양 아이에게 다가간 그는 아이를 붙잡고 말을 건넸다.
"크크. 꼬마야, 도둑길드는 왜 찾지?"
사크가 말을 걸자, 꼬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심부름? 그래, 아저씨가 도와주마, 크크."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도둑길드 안으로 들어가게 된 꼬마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 채 마스터의 앞에 서게 되었다. 마스터와 꼬마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후로 그 꼬마는 길드 안에서 생활하며 도둑의 일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그렇게 14년이 흘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명되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 곧 떠나게 될 시드와 데슈를 걱정하고 있었다. 도적단의 막내인 시드와 이제 갓 스물 한 살인 데슈는 비록 도둑길드원이며, 도적단원으로 생활을 했지만 그들의 눈엔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한 풋내기였다. 허나 사크 대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식, 뭘 모르는 군. 데슈는 길드에 몸담은 지 벌써 14년이야. 니들이 소매치기부터 시작할 나이에 데슈는 이미 간단한 트랩정도는 해체할 정도였지."
"뭐? 그럼 일곱 살 때 소매치기를 시작했단 말야?"
그들은 경악했다. 자신들이 시드 만한 나이 때 도둑길드에 몸담은 것을 생각하면 데슈는 자신들 보다 십 년 가까이 빠른 것이다.
"일곱 살인 데슈를 도둑길드로 데려온 것도 바로 나였지."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한 양 우쭐해있는 사크 대장이었다.
"그럼 그 어린 핏덩이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게 바로 대장이란 말유?"
한 사내의 질책에 사크 대장은 모두에게 경멸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난 그저 마스터의 지시를 받은 것뿐이라고!"
"어찌 했던 간에 그걸 실행한 건 대장이잖수?"
"그, 그건……."
괜한 것으로 우쭐하던 사크 대장은 어느새 부하들에게 집단린치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도 데슈는 맥주만 홀짝거리고 있을 뿐이었고, 시드는 그런 데슈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잔과 잔이 부딪히며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취기가 고조되어 막판에 이를 무렵, 데슈는 그들을 뒤로한 채 선술집을 빠져나왔다.
"데슈!"
"응?"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를 따라 나왔는지 그를 부르고 있는 시드가 있었다.
"시드구나."
"네, 데슈가 나가는 걸 따라 나왔어요."
데슈와 친한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를 위해 용기를 내어 데슈를 따라나온 시드였다. 그런 그를 아는지 데슈는 시드와의 얘깃거리를 물색했다.
"음 그럼 같이 달이나 볼까?"
"달이요?"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고만 있어도 시원하거든."
시드는 데슈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며 달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데슈는 항상 달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도적단에서 함께 한 일 년 동안 시드는 데슈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었다. 직업(?)의 특성상 항상 밤에만 만날 수 있었고, 소년인 시드는 차가운 인상의 데슈에게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항상 그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달빛은 항상 우리를 비췄지."
달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데슈의 얼굴은 차가운 인상이 아닌 밝고 따뜻한 인상이었다.
"달의 여신 루나는 언제나 어둠 속을 헤 메는 우리들을 달빛으로 비춰주며 길을 제시해준단다."
시드는 데슈의 말에 동화되어 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데슈는 그냥 달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구나…….]
둘은 그저 멍하니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데슈는 달을 바라보던 시선을 시드로 옮겼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 내일, 아니 달이 지고 있는 걸 보니 오늘이군. 오늘 마스터를 뵈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지. 지금이 일찍은 아니지만……."
데슈의 말에 생각에서 깬 시드는 그의 차가워진 얼굴을 확인했다.
"데슈는 차가운 얼굴 때문에 다가가기 힘들어요. 달을 볼 때처럼 항상 밝은 얼굴이었으면 좋겠어요."
시드의 말에 데슈는 얼굴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내가 차가워 보이나?"
"잘 생기면 뭐해요, 말을 걸기 힘들 정도인걸요."
잘 생겼다는 말에 데슈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내, 내가 그런가? 어, 어찌 했던 나는 이제 가봐야겠다. 너, 너도 빨리 올라가라."
시드의 집은 바로 선술집의 2층이었다. 시드의 집이자 도둑길드인 그 곳은 마이티파운드 선술집의 2층에 위치해있었다. 물론 정상적인 계단을 이용하면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시드의 집이 나오겠지만, 선술집의 술창고를 이용하면 같은 2층이지만 평범한 가정집이 아닌 도둑길드가 나타난다. 그렇기에 시드는 아버지인 마스터가 설치한 비밀문을 이용하여 벽 하나 사이인 집과 길드를 오갔다. 도둑길드로 들어가려면 선술집의 술창고를 거쳐야하는 데, 마스터나 시드가 선술집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도 도둑길드로 출입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네, 그럼 저도 이만 올라갈게요. 내일 뵈어요."
그렇게 그들은 하루를 마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한 편 선술집 안엔 시드와 데슈가 이미 집으로 돌아간 사실도 모르는 사크 대장과 그의 부하들이 고주망태가 되어 혀를 꼬고 있었다.
"내가 말이지, 딸꾹, 삼십 대 일로 싸웠는데, 딸꾹."
"훌쩍, 그래서 삼십명 중에 대장이 속해 있었다고유. 딸꾹."
그렇게 그들의 밤은 지나갔다.
2. 조우
아이헨 영지의 외성벽 가까이에 위치한 통나무집, 그리고 그 앞의 우물에서 물을 길러오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가 그 곳에 집을 지은 까닭은 그저 우물이 가깝고 위치 상 조용하기 때문이었다. 가끔 외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이 물을 길러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사내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처럼 물을 길러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마스터를 뵈러 가기 전에 집안부터 정리해야겠군.]
그 사내는 바로 데슈였다. 시드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동이 틀 때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14년 간 살아왔던 이 도시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막상 지원은 했지만 마음은 착잡한 모양이었다. 허나 지원한 이유도 14년 동안 살아왔던 이 곳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기에 그는 착잡한 마음을 달래며 겨우 잠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바라보았다.
[3년 동안 덕분에 잘 지냈지. 나의 집…….]
그가 집을 지은 것은 3년 전이었다. 도둑길드 내에서 생활하던 그가 이곳에 집을 짓게 된 이유는 도둑길드의 책장에 있는 책들을 거의 다 읽었기 때문이었다. 17살에 이르러 책들을 대부분 독파했고, 그는 이미 충분히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도둑길드원이었다. 그 후로 그는 간단한 통나무집을 설계했고, 매일 나무를 하러 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5개월이지나 18살이 되던 해에 집을 완성했다.
그는 학자는 아니었지만 착실한 학생이었다. 그가 번 돈들은 대부분 책값으로 들어가기 일쑤였으며, 그는 그 책들을 스승으로 삼아 지식을 습득했고, 그 때문에 그의 지식세계는 꽤 높은 수준이었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발데르트 왕국역사" 부터 대현자 지그와이어의 "종족에 대한 고찰" 까지 그가 독파한 책은 다양했다. 물론 도둑이 책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그리 신빙성이 없는 얘기였다. 그도 어릴 적엔 소매치기부터 시작하여 도둑질을 배웠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혼란을 느꼈고, 그 후로는 정보수집이나 트랩설치, 그리고 길드의 지시에 의한 특수업무만 맡았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 소수정예의 도적단을 구성한다는 마스터의 명으로 도적단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찌 했던 그가 도둑이 된 것은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선 후, 길러온 물을 식탁 위의 주전자로 부었다.
[이제 정리를 시작해야겠지.]
한편, 시드는 이미 마스터를 만나고 있었다.
"아버지, 갑자기 왜 절 수도로 보내신다는 거죠? 또 도적단이 저 때문에 구성되고 이제 와서 해체시킨다는 건 뭐 에요?"
도둑길드의 마스터이면서 또한 아버지인 헤인리스 마이어. 그는 발데르트 왕국 내 두 곳뿐인 도둑길드중 한 곳인 아이헨 영지의 길드마스터였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열두 살부터 시드를 도둑길드의 일원으로 들인 후 시드에게 자신의 길을 그대로 밟아가게 하고 있었다. 그는 악당은 아니었지만, 악당들의 두목이었다. 아니, 직접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것을 지시하는 자는 그였으니 그가 바로 진정한 악당일지도 모른다.
"난 네게 경험을 쌓아주려 했을 뿐이다. 그리고 수도로 가는 것도 다 널 위해 서란다."
"알아요. 하지만 어젠 그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에요."
"아들아, 처음부터 도적단을 구성하는 이유를 말해줬다면 네가 순순히 내 말을 따랐겠느냐?"
"당연히 싫다고 했겠죠."
시드가 소매치기를 시작할 때도 헤인리스는 그에게 잠자리와 식사 등을 일절 주지 않으며 스스로 돈을 벌어오게 만드는 식으로 훔치는 법을 익히게 했다. 그렇게 2년 동안 도둑질을 하게 되면서 시드는 아버지의 성장과정을 몸소 체험했고, 14살이 되던 해에 그는 아버지로서가 아닌 마스터의 지시를 받아 도적단에 합류했다. 그리고 도적질 도중 한번 식 일어나는 전투에서 14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살인을 하게 된 시드는 한 동안 죄책감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드, 난 네가 부모에게 의지하는 약해빠진 것들처럼 되길 바라지 않는다. 비록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덕분에 넌 이제 남에게 기대지 않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지 않느냐?"
"하지만 전 도둑은 싫어요."
시드는 헤인리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헤인리스는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었음을 깨달았다.
[3년이면 될 거라 생각했거늘…….]
그러나 3년이란 시간도 시드를 진정한 도둑길드원으로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일에 자괴감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도둑이 싫으면 뭘 하고 싶으냐?"
시드는 어릴 적부터 꿈꾸던 것이 있었다. 하지만 헤인리스에 의해 도둑길드원이 된 후, 그 꿈은 그저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가 자신에게 뭘 하고 싶은 지 묻자, 시드는 간직하고만 있던 꿈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 전 기사가 되고싶어요!"
"기사? 기사가 되고싶다고?"
헤인리스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반문하자,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은빛이 나는 갑옷을 입고 시르네아스를 외치는 기사가 되고 싶어요."
헤인리스는 진지하게 설명하는 시드의 말을 듣고는 할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드가 설명하는 은빛이 나는 갑옷을 입고 시르네아스를 외치는 기사들은 자신이 알기론 하나밖에 없었다. 시르네아스는 발데르트 왕국의 공주였고, 공주의 이름을 외치는 기사단은 바로 프린세스 기사단이었다. 프린세스 기사단은 발데르트 건국기에 만들어진 기사단으로, 적대국 사크라크 왕국의 왕자가 화친을 빌미로 발데르트 왕국의 시르니엔 공주를 요구하자, 이를 반대하는 기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기사단이다.
"시드, 시르네아스를 외치는 기사는 말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단다. 넌 평생을 독신으로 지낼 수 있느냐?"
헤인리스의 물음에 시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시르네아스 공주님과 결혼하면 되죠."
시드의 말에 헤인리스는 맥이 풀림을 느꼈다. 그와 반대로 시드는 더욱 자신감을 얻어 말을 이어 갔다.
"아버지, 전 기사가 되고싶어요. 어머니도 제가 도둑길드원이라는 걸 못마땅해 하셨잖아요. 제가 기사가 된다면 어머니도 무척 좋아하실 거예요."
시드가 어머니 얘기를 꺼내자 헤인리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녀는 2년 전 마스터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탄 길드 내의 반란으로 인해 마스터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그 때 시드는 다행히 소매치기 도중 병사에게 붙들려 한참 설교를 듣고 있었기에 죽음을 면했다. 곧 연락을 받고 돌아온 헤인리스에 의해 반란은 하루만에 진압되어 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목을 잘랐지만 부인을 잃은 그는 한동안 슬픔에 잠겨 식음을 전폐했다. 물론 시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랬지. 그래, 맞아."
헤인리스의 긍정에 시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그럼 허락해주시는 건가요?"
시드는 2년 전 그 일이 일어난 후 한번도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헤인리스에게 꺼내지 않았고 헤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허락하마. 미안하다. 그동안 내 생각만 했구나."
헤인리스가 허락하자 시드는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되고싶다고 누구나 기사가 되는 건 아니지. 네가 수도로 가는 건 동일하다. 다만 넌 도둑길드원이 아닌 학생이 되는 거지."
날아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시드는 학생이라는 말에 머리를 갸우뚱했다.
"학생요?"
"발데르트의 기사가 되려면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지. 수도인 발데르티아엔 인재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이 있다. 그 중 기사학부에 들어가면 되겠구나."
헤인리스의 설명은 시드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헨 영지 주변에서 벗어나 본적 없는 시드는 수도와 지방의 차이를 여기서 느꼈다. 아이헨 영지는 수도 발데르티아에는 못 미치지만 발데르티아 다음가는 도시였다. 그렇기에 발데르트에 두 곳뿐인 도둑길드 중 하나가 이 곳 아이헨 영지에 자리잡고 있었고, 언제나 사람이 붐 비는 아이헨 영지였다.
시드는 기사학부를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후,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좋아요! 언제 출발하면 되죠?"
"지금 바로 출발하면 좋겠지만, 일단 너와 동행하기로 한 친구에게 따로 설명해놓을 것이 있으니 오늘은 떠날 준비만 해놓거라."
"아, 네. 그럼 전 빨리 준비하러 가야겠어요. 아버지, 이따 봐요!"
시드는 말을 마치고 바쁜 듯이 비밀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
[녀석, 시르네아스를 외치는 기사라…….]
그저 자신의 뜻대로 도둑으로 살아갈 줄만 알았던 아들이 기사가 되고싶다고 하자 무척 당황했던 헤인리스였다. 2년 전의 사건 후 시드와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던 그는 오늘의 대화로 인하여 시드의 꿈을 알았고, 또 그런 시드를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 했던 것을 깨달았다.
[여보, 미안하오. 시드의 마음을 미처 알아주지 못했구려.]
헤인리스가 그렇게 상념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아, 들어와라."
헤인리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며 들어오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오오, 데슈구나."
그의 앞에 서있는 사내는 데슈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스터."
데슈가 그의 앞에 부복하자, 그는 손을 휘저었다.
"됐네, 그래 무슨 일인가? 책밖에 관심 없는 자네가 날 찾아오다니 말야."
"시드와 함께 수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음, 자네가 같이 가게 되었군. 허, 참 기묘하군."
"무슨 일이라도……."
헤인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는 14년 전 날 찾아왔을 때를 기억하나?"
14년 전이라 함은 데슈가 도둑길드를 수소문하다 사크 대장에 의해 도둑길드로 들어왔을 때였다. 데슈는 자신이 무척 어릴 때의 얘기라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마스터와의 만남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은 납니다."
"그래, 자넨 어머니의 심부름을 왔다고 했지."
헤인리스는 뒷짐을 지며 말을 이어갔다.
"한 사내가 있었지. 그는 일개 병사였지만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단다. 왜냐면 그에겐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도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지."
헤인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꿈에서 깨게 되었지. 그녀에겐 다른 남자가 있었고, 곧 그 남자와 결혼을 해버렸거든."
데슈는 묵묵히 헤인리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사내는 슬픔에 잠겼지. 연인에게 배신을 당했으니 마음의 상처가 컸을 거야. 어찌 보면 예상했던 일이었을 수도 있지. 그녀는 귀족이고 그는 평민이었으니까."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었군요."
"그래, 그랬지. 그래서 그는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기사가 되어 공을 세우면 귀족이 될 수 있단 생각에 없는 돈을 모아서 수도로 출발했지. 나는 도둑길드의 마스터가 아닌 그의 친구로서 그를 수도까지 안내했다. 하지만 수도에 도착한 그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지. 그가 가진 돈으로 기사 학부에 입학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말야."
헤인리스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데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는 다시 돌아와 그녀의 남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무모했지. 상대는 집안 대대로 무가였으니까 말야.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투에서 그는 목숨을 잃었지."
데슈는 헤인리스의 얘기가 자신과 관련된 내용이란 것은 겨우 눈치챘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데슈의 의문을 풀어주듯 헤인리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의 죽음은 정식 결투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주검을 안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 그의 주검을 화장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사랑했던 그녀가 남편에게서 내쳐졌단 얘기를 들었다. 그녀가 낳은 아기가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고 했더군."
데슈는 헤인리스의 얘기가 거의 윤곽이 잡힘을 느꼈다.
"후, 그렇게 내쳐진 그녀는 친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혼자서 아기를 키우기 시작했고 그 후로 7년이 지난 후, 한 아이가 도둑길드를 수소문하고 있더군. 그게 바로 자네였지. 내게 그의 아들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갖고 왔더군."
데슈는 자신이 그저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허나 헤인리스의 얘기를 들은 후 자신의 출생과 그에 얽혀진 내용을 알게 되자, 그 충격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참 나쁜 여자지. 그를 죽게 만든 것에 모자라 하나뿐인 그의 혈육인 널 키우는 것도 포기하고 내게 넘겼으니……."
"어, 어머니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녀는 이곳을 떠났다. 찾지 않는 게 그녀를 위하는 거겠지. 내 얘기를 듣고도 어머니라 부르고 싶은가?"
데슈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신을 버린 사람이지만 어디까지나 어머니였기에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랬었는데, 지금 헤인리스의 얘기를 들으니 그의 어머니란 여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이었다. 또 그런 아버지의 하나뿐인 혈육인 자신을 버리고 살길을 찾아 떠났다는 것에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증오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너도 이제 성인이 되었고, 또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서이지. 아까 시드가 와서 얘기하더군. 기사가 되고싶다고……."
헤인리스의 말에 충격에서 헤어나 정신을 차린 그는 반문했다.
"도둑길드원이 아닌 기사 말입니까?"
"내가 그동안 시드의 꿈도 모른 채, 내 뜻만 강요했었지. 그런데 아까 녀석이 얘기하더군. 기사가 되고싶다고."
데슈는 시드가 기사가 되고싶어 한다는 것에 적이 놀랐다. 그저 마스터의 아들이기에 당연히 마스터의 뒤를 있는 도둑을 꿈꿀 줄 알았지만 도둑과는 거리가 먼 기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도둑길드 마스터의 아들이 발데르트의 기사가 되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데슈였다.
헤인리스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그가 기사가 되기 위해 수도를 향할 때 그를 안내하던 것이 나였는데, 이젠 반대로 내 자식이 기사가 되려하고 그의 아들이 안내를 하게되었군."
"그럼 수도로의 일정은……."
"동일하네. 허나 시드는 도둑길드가 아닌 발데르티아 기사학부로 들어가야겠지. 그나저나 괜찮은가?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얘기해주는 바람에 적잖이 놀랐을 텐데."
데슈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어릴 적의 기억은 없습니다. 그저 어머니란 분에 대해 실망했을 뿐입니다."
데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찌했던 간에 지금에 와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는 14년을 혼자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비록 부모이긴 하나 1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기억에도 없는 사람에게 슬픔이나 증오를 느끼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래, 그럼 일정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지. 여기서 말을 타고 출발하면 수도 발데르티아까지 대략 12일 정도 걸린다. 음, 특별히 일정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 그저 수도에 도착하면 네페티스 대저택을 찾아가면 되니까."
헤인리스의 설명에 데슈는 의아함을 느꼈다. 대저택이라면 귀족들이나 사는 곳이 아닌가?
"귀족의 집에는 무슨 일로……."
"참, 자넨 몰랐겠군. 사실 발데르티아의 도둑길드 마스터는 귀족이야. 치안이 엄격한 수도에서 그는 도둑길드를 정보를 수집하여 판매하거나 의뢰 받은 일을 처리하는 정도로 이끌고 있지."
"그렇군요. 귀족이 마스터라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처음엔 놀랐었지. 귀족이 마스터라니 말야. 어찌 했던 시드를 잘 부탁하네. 그 녀석 아직 어리니까 말야. 그리고 출발은 내일하고 오늘은 떠날 준비를 해놓게. 이건 여행경비 겸 준비금이네."
데슈는 헤인리스가 건네주는 주머니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새벽에 시드를 자네 집으로 보낼 테니 그리 알게. 그럼 이만 가보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데슈가 마스터의 방에서 나간 후, 헤인리스의 얼굴엔 감회의 미소가 서려있었다.
[친구, 저 아이가 벌써 저렇게 컸다네…….]
데슈는 도둑길드를 빠져나와 상점가를 향했다. 헤인리스에게 준비금을 넉넉히 받았기에 그는 여러 상점을 돌며 여행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도, 밧줄, 나침반, 침낭, 식기도구는 집에 있고… 또 뭐가 필요하지?]
그렇게 한참동안 상점을 돌며 준비물을 모두 구입한 그는 허기가 짐을 느끼며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집에 도착한 그는 준비물들을 내려놓고는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군.]
그가 책장에서 꺼낸 책의 제목은 "인기 있는 남편의 사랑 받는 요리 3선" 이었다. 그는 그 책을 들고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딴에는 심각한 생각에 빠졌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먹을까…….]
그는 요리가 즐거운가 보다.
새벽이 되어 데슈는 자신의 집에 못질을 하고 있었다. 꽃샘추위인 듯 아이헨의 차가운 봄바람이 그의 몸을 쓸어가며 곧 떠날 그에게 아쉬움을 표했다. 그가 못질을 마치자, 말발굽이 땅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슈!"
데슈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드, 잘 맞춰 왔구나."
시드는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네, 뭐하고 계셨어요?"
"문에 못질을 하고 있었지. 못질도 다했으니 이제 떠나야겠지?"
데슈는 미리 꺼내놓은 짐들을 자신의 말과 시드의 말에 매달았다.
"그런데 그 검은 예전에 보던 검이 아닌 듯 하구나."
데슈는 시드의 혁대에 매여있는 검을 가리켰다.
"아, 이건 아버지가 주신 검이에요. 샤프니스(Sharpness)란 마법이 걸려 있다나?"
시드의 검은 겉보기엔 평범한 롱소드에 불과했지만 매일 부싯돌로 갈 필요가 없이 항상 엄청난 날카로움을 간직하는 마법검이었다. 물론 마법검이라 해서 모든 마법검이 불을 뿜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간단히 검을 가볍게 해주는 경량화 마법이 걸려있다 해도 그 검은 마법검이고, 헬파이어를 시전 하게 해주는 검도 똑같은 마법검이다.
시드는 검집을 만지작거리며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좋겠구나. 비록 샤프니스의 기능뿐이지만 마법검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지. 하지만 그렇다고 소중히 다룬다며 실전에서 사용하지 않거나 하진 않겠지?"
"에이, 데슈는 농담도. 그럼 이제 출발할까요?"
"그래, 일단 북문으로 나가자."
말에 올라 탄 데슈와 시드는 북문을 지나 정들었던 아이헨 영지를 뒤로한 채, 지도를 통해 봐두었던 폴란 마을 방향으로 말을 몰아갔다. 폴란 마을은 아이헨 영지에서 수도 발데르티아로 가는 길에 첫 번째로 들리는 마을로 아이헨 영지처럼 영주가 다스리는 대도시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있고 그들 중에서 촌장을 뽑혀 운영되는 마을로 이러한 마을들은 발데르트 왕국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데슈와 시드는 아이헨 영지에서 폴란 마을로 이어지는 대로를 달리며 낮이 되어 시원해진 봄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물론 뒤에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었다면 시원한 봄바람 대신 먼지를 뒤집어썼을 테지만.
"데슈, 이제 좀 천천히 가요!"
그들은 두 시간 전 아이헨 영지를 떠난 뒤 줄 곧 달려왔기 때문에 꽤 지쳐있었다. 시드는 아직 15살이었고, 도적단에 있으면서도 아이헨 영지 근방을 크게 벗어나 본 적이 없었기에 이 만큼 말을 타고 계속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물론 데슈도 마찬가지였지만 데슈는 시드보다 6살이나 많은 21살의 성인이었다.
데슈는 시드를 따라 말의 속도를 걸어가는 정도로 줄였다.
"힘들지? 천천히 가면서 좀 쉬자꾸나."
"헉헉, 데슈는 힘들지 않아요?"
데슈는 시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와 난 여섯 살이나 차이가 난단다. 기본적인 체력이 다르지."
"그런데 여섯 살 밖에 차이가 안 나면서 말투는 꼭 이십 년은 차이나는 거 같아요."
시드가 그의 말투를 비꼬듯 말하자, 그는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가? 책을 많이 읽다보니 내 말투도 책처럼 딱딱해졌나 보군."
"앞으로는 그 말투를 좀 고치는 게 좋겠어요. 꼭 아저씨 같은 말투잖아요."
아저씨 같다는 말에 표정이 데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그래? 음, 그럼 앞으로 말투를 고치도록 노력해볼게."
그렇게 하여 데슈는 말을 달리다 쉬면서 천천히 가게 될 때마다 시드에게 말투를 교정 받았다. 달리고 쉬고 달리고 쉬고를 몇 번 반복하자, 해는 중천에 뜨고 그들은 허기가 짐을 느끼며 말을 세웠다.
데슈는 말에서 내린 후, 짐에서 식기도구를 꺼내며 시드에게 부탁했다.
"시드, 저기 가서 장작으로 쓸만한 것들 좀 주워와 줄래?"
데슈가 가리키는 곳은 나무숲이었다.
"네, 금방 가져올게요."
시드는 말에서 내려 나무숲으로 들어가고, 데슈는 말들을 풀밭의 나무에 묶어 놓은 뒤, 밀가루 등의 음식 재료를 꺼내놓고 시드를 기다렸다. 잠시 후 시드가 장작을 주워 돌아오자, 데슈는 팬케익을 굽기 시작했다. 그런 데슈를 바라보며 시드는 군침을 흘렸다.
"무척 기대되는 걸요? 야외에서 즐기는 팬케익이라!"
"저도 기대되는 걸요! 야외에서 얻어먹는 팬케익이라!"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데슈와 시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황량한 벌판과 그 사이에 나있는 대로뿐이었다.
"루나의 빛을 따라 걸어가는 그대에게 축복을! 안녕하세요?"
목소리는 나무숲이 있던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데슈와 시드가 나무숲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무숲을 갓 빠져나온 듯한 백의의 여인이 보였다.
"베푸시는 축복 속에 기쁨의 보답을. 루나의 프리스트시군요."
데슈가 화답하자, 루나의 프리스트라 불린 여인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파이란누 공작이 하이프리스트 니스에와 만났을 때의 대답이군요."
데슈는 미소를 지었다. 항상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그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내용이 담긴 "발데르트 왕국역사 외전" 을 꽤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고, 예전부터 달의 여신 루나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지금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데슈 카리엔입니다."
데슈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손을 잡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루나의 미약한 빛인 라포 아크샤루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소개를 하자, 시드도 입을 열었다.
"저, 전 시드 마이어예요."
노란 생 머리가 허리까지 닿는 그녀는 쌍꺼풀이 진 제법 큰 눈에 우주를 담은 듯한 검은 눈동자와는 반대로 백옥같이 흰 피부를 가진 범접하기 힘든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존경심 외에 별 감정을 느끼지 못한 데슈와는 달리 시드는 말까지 더듬으며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런 시드에게 라포가 손을 내밀자, 시드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왜 그러시죠?"
"서, 성녀이신가요?"
시드의 말에 라포는 웃으며 대답했다.
"마이어군, 저 정도에게 성녀라고 한다면 이 세상은 이미 성녀로 넘쳐났을 거예요."
시드는 멍한 얼굴로 라포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시드를 보며 라포는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많이 놀랐나봐요?"
시드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에, 에 그러니까… 네."
어느새 팬캐익을 다 구워낸 데슈는 접시에 팬캐익을 담아 라포에게 내밀었다.
"아크샤루양, 괜찮으시다 면 이것 좀 드셔보시지요."
데슈가 팬캐익을 담은 접시를 내밀자, 라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접시를 받아들었다.
"와아."
성스러움은 어디 가고 먹을 것에 정신 팔린 라포였다.
"시드, 여기 네 몫."
정신을 차린 시드는 데슈가 내미는 접시를 받아들고는 라포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허겁지겁 팬캐익을 먹기 시작했다.
"아크샤루양, 시드. 더 있으니까 많이들 드세요."
"너우 마이어오."
"아크샤루양, 입에 있는 거 드시고 나서 말씀하세요."
그렇게 세 사람은 식사를 마친 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풀밭에 앉아 포만감에 취했다. 먹을 때는 아이 같던 모습의 라포는 식사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프리스트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처음엔 말도 더듬던 시드는 라포의 식사모습을 구경하고는 용기를 내어 친근하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아크샤루씨는 나이가 몇이에요?"
"23살. 그냥 라포라고 불러줘. 나도 시드, 데슈라 부를테니까. 카리엔군 괜찮죠?"
"네, 괜찮습니다."
데슈의 대답에 라포는 정색했다.
"어머, 괜찮습니다가 뭐예요. 아저씨같이."
"풉, 거 봐요. 아저씨 같다고 하죠?"
시드에 이어 라포 마저 자신에게 아저씨 같다는 소리를 하자, 안 그래도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 더욱 굳어져 가는 데슈였다. 허나 곧 안색을 펴고는 라포에게 물었다.
"어디 가시는 길인가요?"
"아, 전 특별히 목표로 하는 곳은 없어요. 신전에서 수행을 나왔거든요."
라포의 대답에 데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포, 그럼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어때요? 우린 지금 발데르티아로 가는 중이에요."
식사 한끼 같이 한 인연으로 어느새 동행을 묻고 있는 시드였다.
"미안하지만 난 말이 없어. 그저 걷고 있는 거지."
그러자 시드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우린 말이 두 필이에요. 나눠 타면 될 거예요."
"어차피 난 수행 중인걸. 그리고 두 사람에게 불편을 주긴 싫어요."
라포가 또다시 사양하자, 시드는 아쉽지만 더는 말못하고 포기했다.
"후아, 덕분에 오늘 잘 먹었어요. 팬캐익이 이렇게 맛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군요."
대화하는 사이 배를 다스린 라포는 풀밭에서 일어섰다.
"벌써 가시려고……."
"벌써 가시려고요?"
데슈와 시드가 따라 일어서며 아쉬움을 표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하죠? 아쉽지만 다음 번 만남을 기약해요."
라포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시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루나의 빛을 따라 걸어가는 그대에게 축복을."
"베푸시는 축복 속에 기쁨의 보답을."
라포는 데슈의 인사를 받고, 처음 나타났던 나무숲으로 걸어간 후, 잠시 후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라포는 왜 나무숲으로 가는 걸까요?"
시드의 질문에 데슈는 대답했다.
"루나는 나무숲을 그녀의 길로 제시했겠지."
3. 복수의 화신
"…그렇게 파이렌누 공작은 하이프리스트 니스에가 펼친 신의 권능으로 사크라크 왕국의 언데드 군단을 격파했지."
"죽은 병사들을 언데드로 만들다니……."
"그건 죽은 자에 대한 모독이었어. 언데드 군단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고, 결국 사크라크 왕국은 악의 왕국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가진 주변 국가들에 의해 멸망을 길로 들어섰지."
데슈는 시드에게 "발데르트 왕국역사" 의 마지막 부분인 사크라크 왕국의 멸망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헨 영지를 출발한 지 하루가 지나 이틀째에 접어들었다. 데슈는 쉬면서 천천히 갈 때면, 시드를 위해 "발데르트 왕국역사" 등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시드는 그의 말을 경청하며 데슈의 지식수준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든 시드를 보며 데슈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여기까지. 이만 달려야겠지?"
"아직 시간 괜찮은데……."
데슈는 아쉽다는 듯 지신을 바라보는 시드를 외면하곤 먼저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시드도 말을 달려 데슈의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데슈와 시드가 멈춰선 것은 대로를 막아선 채, 한 사람과 대치하고 있는 오크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글레이브를 꼬나들고는 대치중인 인물을 두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고 있었다.
"취익, 인간이 더 늘어났다 취익."
말에서 내린 데슈와 시드는 오크들을 무시한 채, 그들과 대치중인 인물을 바라본 후, 자신들과 낯이 익음을 느꼈다.
"라포!"
그녀는 라포였다.
"어라, 시드! 너희들 어쩐 일이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오크들에겐 신경을 끊은 체, 이쪽으로 달려오는 라포였다.
"라포야말로 어떻게 된 일이에요? 웬 오크들이죠?"
데슈와 시드는 도적단으로 생활하면서 오크들과 몇 번 조우한 적이 있었고, 그 때마다 오크들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말살했기 때문에 복수의 화신인 오크의 추격을 받을 일은 없었다. 허나 한 마리라도 살아 돌아간다면 죽을 때까지 오크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내용을 대현자 지그와이어의 저서 "종족에 대한 고찰"에서 본 적이 있는 데슈였다.
라포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올리며 두 손바닥을 펴 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잘 가고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거야."
데슈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당신의 물건을 노리나보군요. 오크들은 인간을 살해한 뒤, 인간의 물건을 가지길 좋아한다고 합니다."
데슈는 대현자 지그와이어의 "종족에 대한 고찰"을 통해 각 종족의 특성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다.
데슈의 설명을 들은 라포는 그렇지 않아도 흰 얼굴이 더욱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럼 어떡하죠?"
"도망치던가, 말살시키던가 둘 중 하나지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오크들은 쑥덕거림을 끝내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취익, 인간. 너희들이 갖고 있는 것들을 내놔라 취익."
오크들에 의해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사라졌다.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면 곧바로 공격을 해올 것이었다.
"칠 대 삼이라… 아니, 칠 대 이인가."
라포는 데슈가 자신을 빼자, 옷에 가려져 있던 메이스를 꺼내들었다.
"프리스트의 메이스도 만만치 않다구요."
그렇게 라포가 나서자, 데슈는 왼손엔 대거를, 오른손엔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시드?"
시드는 이미 검을 뽑아 날카로운 칼날을 오크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취익, 인간들이 겁을 상실했군 취익."
한 오크가 글레이브를 꼬나들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돼지머리들이 말이 많군. 빨리 덤비기나 해라."
데슈는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만에 하나 말살시키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도적단의 생활 이후 오크 서너 마리 정도는 너끈했던 것이다. 좀 더 무리해서 다섯 마리 정도를 상대하면 나머지 두 마리는 시드와 라포가 처리해 줄 것이라 믿었다.
데슈의 말에 흥분한 돼지머리들(?)은 글레이브를 세워 달려오기 시작했다.
"취익, 저 인간을 죽여라 취익."
오크들이 달려오며 글레이브를 내밀자, 데슈는 백스텝을 밟아 그들의 공격을 회피한 후, 왼쪽에서 육박해오는 오크의 글레이브를 막으며 오크의 팔에 대거를 박았다.
"취, 취에엑."
팔에 대거가 박히자, 그 고통으로 글레이브를 놓친 오크의 배에 롱소드를 찔러 넣은 데슈는 오크에게서 대거와 롱소드를 동시에 뽑으며 백스텝을 밟았다. 그가 있던 자리엔 목표를 잃은 글레이브 세 자루가 허공을 찔렀고, 그 사이 주위를 돌아본 데슈의 눈에 오크 두 마리와 고전중인 시드와 그저 허공을 향해 메이스를 휘두르며 오크 한 마리와 사투를 벌이는 라포가 들어왔다.
"아악, 루나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다른 길을 제시할게요!"
루나의 권능이 펼쳐진 것일까, 라포와 사투를 벌이던 오크는 싸우는 길이 아닌 도망가는 길을 선택하고 동료들을 내버려둔 채 벌판의 갈대밭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데슈는 남은 오크들을 한 마리씩 처리하고 있었고, 시드는 자신을 도우러 온 라포와 함께 오크 두 마리를 몰아붙였다.
"취에에엑."
남은 한 마리의 목에 대거를 쑤셔 넣은 데슈는 재빨리 대거를 뽑고는 시드와 라포에게 달려갔다.
"취, 취익 사, 살려다오 취익."
시드와 라포는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처리하고, 남은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자신의 동료들이 모두 당하자 위기감을 느낀 오크는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널 살려준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오크의 추격을 받아야 할걸."
취에에엑.
평소의 차가운 얼굴로 오크의 목을 벤 데슈는 자신을 멍청하게 바라보는 라포와 눈이 마주쳤다.
"뭐 잘못된 일이라도……."
"저, 저기 죽을 때까지 오크의 추격을 받는다는 게 사, 사실인가요?"
라포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렇습… 그래요. 대현자 지그와이어의 저서 "종족에 대한 고찰"에 그렇게 나와있었지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자신의 대답을 들은 라포의 얼굴이 굳어져가자, 뭔가 문제가 있음을 느낀 데슈는 주위를 둘러보며 시체가 된 오크의 숫자를 세어본 후, 굳어진 얼굴로 라포를 바라보았다.
총평입니다. 전개력, 어휘력, 묘사력 어느 것 하나 크게 부족한 것 없어보입니다. 단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면 소설의 전체적인 뼈대(스토리 흐름)를 보았을 때, 살점이 좀 덜 붙어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살점이라함은 좀 더 심도 있는 서술이 되겠지요. 저만의 느낌입니다^^ 개인적의 취향의 차이지만, 전 판타지를 읽을
모든 소설이 가져야 할 과제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나 판타지는 더욱 그런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취약해 보이는 소설은 무척이나 조악해 보이지요. 고유의 관념적인 세계. 그런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자신만의 세계를. 어쨋든 합격입니다. 발전하는 모습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흐음 ㅇ_ㅇ;/ 건필하세요오~^ㅡ^ [좋다는 -_ㅠ;]
저는 이미 초급저자란에 올라온 이 소설을 보았을때도 충분히 중급저자란에 들어설만 하다라는 평을 남긴걸로 기억합니다.
소설이 가져야 할 가장 큰 요건은 작품성 따위가 아닌 '흥미도' 입니다. 그런면에 이 소설은 제법 상당한 점수를 받을 수 있겠지요. 소재도 특이하고 특히 사건을 끌어가는 필력이 상당해 보입니다. 퇴고가 잘된 모습 또한 저에게 크게 어필이 되었구요.
총평입니다. 전개력, 어휘력, 묘사력 어느 것 하나 크게 부족한 것 없어보입니다. 단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면 소설의 전체적인 뼈대(스토리 흐름)를 보았을 때, 살점이 좀 덜 붙어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살점이라함은 좀 더 심도 있는 서술이 되겠지요. 저만의 느낌입니다^^ 개인적의 취향의 차이지만, 전 판타지를 읽을
때 문맥속에 자연스럽게 세계관이 느껴지는 소설이 좋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주인공의 갈등과정과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사건을 풀어가게 되고 그 전개를 통해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 중에서 독자들이 저절로 그 세계에 흡입되는..
모든 소설이 가져야 할 과제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나 판타지는 더욱 그런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취약해 보이는 소설은 무척이나 조악해 보이지요. 고유의 관념적인 세계. 그런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자신만의 세계를. 어쨋든 합격입니다. 발전하는 모습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ㅇ_ㅇb 문맥 속에 세계관이 느껴진다라;; 그럼 저는 아직 멀었군요 - _- [먼 산;] 그럼 데시님 건필하시길 ㅇ_ㅇ//
헉 감사합니다. 스크롤바의 압박을 회피하지않으시고 읽으셔서 평가해주신 愛....님 선물드리겠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참, sork님이 오늘부터 중급저자에 올리시는 것을 보니 저도 오늘부터 올려도 되는 것인가 봅니다.
푸핫핫핫!!ㅡ.ㅡ 안되는 것이었나..제 성격이 급한 편이라..핫핫
이런이런 -_-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_- 토요일날 한꺼번에 수합해서 올린단 말입니다.=_=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는 군요. 뒷목에 혈압이 -_-....
그 것은 공지에 올리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지웠으니 화내지 마시지요. 무턱대고 그러시면 저도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에고 저도 모르고 올렸다가 지웠습니다.^^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