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전국 10대 고고학 최종 평가 대상: 산둥성 텅저우시 시멍좡 룽산문화 유적
출처: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시멍좡 유적은 산둥성 텅저우시 지에허진 시멍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자오허 고속도로 건설에 협력하기 위해 유적지를 고고학적으로 발굴했으며 발굴 면적은 총 2,500제곱미터로 비교적 완전한 보존과 비교적 명확한 구조를 가진 룽산 문화 취락이 밝혀졌습니다.
▲ 서맹장 유적인 용산문화유적분포도 유적은 현존하는 지층의 퇴적이 비교적 단순하며, 다수의 지역유적 현상이 표토층 아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시대에는 개별 전국, 한나라의 묘를 제외한 나머지는 용산 문화 초중기에 속하며 담장, 환구, 집터, 회갱, 묘소, 가마터 및 다량의 기둥구멍이 발견되고 분포조합이 극히 규칙적이며 단원을 이루면서 담장취락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발달은 층위관계 등에 따라 하층 사각 담장 단계와 상층 원형 담장 단계로 나눌 수 있으며, 사각 담장 기홈은 원형 담장 바깥쪽 환구 아래에 있습니다. 초기:사각형 담장 단계.벽체는 이미 남아 있지 않고, 기초 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전체는 정사각형으로 북서-남동향이며 면적은 2,200㎡에 가깝습니다.기둥구멍은 기홈 입구에서 조밀하게 발견되며, 기홈 바닥에는 기둥구멍이 파여 있는데, 기둥구멍의 대부분은 이러한 기둥구멍에 있습니다.기둥 구덩이는 기본 홈을 따라 '벽 기둥'을 따라 배치되어야 합니다.이 추측에 따르면 사각형 담장의 건축 단계는 기본 홈을 파는 단계, 기본 홈 바닥의 깊은 기둥 구덩이를 파는 단계, 기둥을 심는 단계, 기본 홈을 메우는 단계, '벽 기둥'을 세우는 단계, 벽을 쌓는 단계일 수 있습니다.
남쪽 담장 한가운데에 빈틈이 하나 남아 있는데, 아마도 현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동쪽 벽과 서쪽 벽의 남쪽 부분에 각각 집터가 있고, 문이 안쪽으로 나 있습니다.또한 동벽에는 바깥쪽으로 돌출된 '오목'자형 구조의 건물이 있는데, 규모가 매우 작아서 담장 위의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말기: 둥근 담장 단계로 그 바깥이 얕은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 집터가 많고, 회갱 등이 소량 남아 있습니다.원형 담장은 방형 담장 안에 딱 들어맞고 평면은 원형이며 지름 36m, 면적 약 1,100㎡입니다.벽체도 남아 있지 않고, 기홈과 주갱이 남아 있으며, 건축 방식·형제 구조는 방형 담장과 유사합니다.
원형 담장의 남쪽에 1개의 결점이 남았는데, 현관이 위치해야 합니다.결구 안쪽에는 큰 기둥 구덩이가 무리지어 있는데, 아마도 문도 부속 건물로 보입니다.고리골은 원형 담장 바깥쪽을 감싸고 있으며, 평면 형상이 불규칙하고 얕은 골 모양으로 평평하게 쌓여 있습니다.
고리 도랑에 채워진 토양은 대부분 흑회색 미사이며, 그 중 토기 조각, 숯 부스러기, 소토 알갱이, 조개 껍질 및 짐승 뼈가 많이 출토되어 생활 쓰레기로 간주됩니다.종합하면, 환구의 형성은 담장을 쌓고 흙을 채취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담장 이내의 집터는 총 34기가 확인되며, 주갱·주동이 다수 확인됩니다.집터는 방형 바닥식 목골 진흙벽 건물이 많으며, 단·쌍·3칸으로 구분되며, 면적은 15~25㎡가 많습니다.집터가 많아 보존이 잘 되지 않고, 받침토층만 남아 있을 뿐 활동면이나 아궁이 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 방형담장의 남벽기조 내 주심은 지층관계와 출토유물로 보아 방형담장 또는 용산초기에 축조되어 용산초기단까지 사용되었으며, 초기 말기에는 원형담장으로 대체되어 용산중기 원형담장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이때도 활동하여 회갱과 개별묘장, 가마터, 그리고 주초(陶础)의 일부만 남아 있는 주춧구멍이 소량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서맹장 용산문화취락은 면적이 작지만 완전하지만, 유적현상은 담장과 집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다른 종류는 극히 적고 출토유물은 종류가 단일하고 몸집도 작습니다.
이런 것들이 용산문화의 한 기층 취락으로 인정하기보다는 당시의 특수한 취락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이것이 당시 저변 취락의 한 형태를 반영한다면, 용산문화 저변 취락의 구조를 이해하고, 용산문화 저변 취락에서 사람들의 생활·생업 방식을 해독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1차 자료가 될 것입니다.이것이 특수한 취락이라면 그 성격의 인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용산문화기 취락이 비경제적 의미의 기능적 분화를 보였음을 처음으로 밝혀냈으며, 당시의 사회 발전 정도를 분석하고 추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또한 시멍좡 유적지의 군집 형태도 아침저녁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변화하여 그 발전과 진화의 과정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도 그 특성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쨌든 어느 속성이든 서맹장 용산문화취락의 발굴은 학술적 가치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가 그 당시의 한 취락을 처음으로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대표하는 사회단원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용산문화의 사회형태를 인식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 원형 담장 부분 (위 동)
▲ 원형벽내주심
▲ F3
▲ F9
▲ F29
▲ 왼쪽부터: 서맹장유적출토도정서맹장유적출토도정서맹장유적출토 鬶 전문가들이 앞서 발견한 몇백만, 몇십만㎡의 유적에 비해 서맹장용산문화취락면적은 작지만 완전하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취락 형태의 아침과 저녁의 변화는 비교적 명확하고 그 발전과 진화의 과정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그것이 대표하는 사회 단위에 대한 충분한 연구에 도움이 되며 용산 문화 기층 사회의 취락 형태와 사회 조직 구조를 연구하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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