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하사가 아래 김해수 회장님의 '자유게시판' #7853 글 "일장춘몽" 이라는 글을 접하니 문득 생각키우는 글이있다.
(동영상) 홍집사가 작년 "프랑스기도선교" 갔을적에 '에펠탑' 앞에서 함께 찍은사진이다.
♧ No, 4362
♧ 이름: 홍진흠 (coala48@naver.com)
♧ 2007/9/12(수)
♧ 조회: 3786
"와이프 이야기"---(5)
그런데 이튿날 식당을 가보니 그분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혼사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하잖다. 신중하신 그분이 이제까지의 일을 취소하자니? 왜 갑자기 그러신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번엔 내가 달아올랐다.
내 성격은 그렇다. 한번 결정 할 때가 힘들지 일단 결정하면 그다음엔 아무리 큰 장애요소나 손해가
있더라도 각오한다. 이 모든 걸 결정할 당시에 여러 정황을 미리 감안하고 정해야 함은 당연하다.
자꾸 추궁(?)하여보니 그 이유가 일방적으로 한쪽이 너무 치우친단다. 양쪽 집안이 비슷해야지 치우치는 결혼은 이다음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원인이다. 난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잘 살아도 형님이 잘살지 나완 아무 상관이 없고 우리집안은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그런 집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간신히 며칠을 설득한 끝에 겨우 반쯤의 허락을 받았더니 이번엔 언니가 브레이클 건다.
그 정도 되는 집안에 그 정도 인물에 아직까지 장가를 가지 않은 게 이상하고 한번 실패한건 아닌지? 숨겨둔 여잔 없는지? 뒷조사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며 부엌언니의 심상치 않은 눈치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형부는 또 어떤가? 극구 반대하는 표면상 이유론 작은 키였지만 후일에 알고 보니 그는 같은 동향의 후배에게 처제와 혼인시켜 사업자금을 좀 융통(?)하려던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김이었고 영감님은 술 한잔쯤은 해야지? 샌님같은 맹꽁이 성격일거라는 대세에 편승하는듯한 이론을 늘어놓으면서 반대 아닌 반대를,
또한 오빠는 단하나 밖에 없는 누이를 제대한 후 자기가 돈을 벌어 시집 보내준다는 게 이유로 - 당시 그는 말년 휴가나온 병장이었으며 태권도 교관으로 곧 미국을 들어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니 반대하였다. 사실은 매제될 사람이 나이도 자기보다 많고 계급도 높으니 나중 함부로 대하자니 좀 껄끄러웠을것이다. 그렇지만 그 집 전체의 잡음을 잠재울 수 있는 분이 바로 그분이었다.
한집안의 경제를 쥐고 계신 내주장의 뜻이 강경하니 어쩔 수 없이 수그러드는듯 하다. 일찌기 여름이면 어김없이 부대뒷산 계곡에서 된장이나 바르고 (솔직히 자기들 스스로 하는 게 아니고 애매한 병사들을 시켜 무식하게 뭉둥이로 때려잡고), 술이나 마시고 이 또한 조용히 음미하며 술 마시는 애주가면 오죽 좋겠는가마는 꼭 뒷 끝엔 싸움이 벌어지게 마련이기에 난 그게 싫어 혼자 시내 나와 영어 학원등록하고 나름대로 앞날에 대비도 하곤 했다.
오래전 영감님이 산판에서 막소줄 큰 대접에 놓고 숨 한번 안 쉬고 마시곤 소금 한 알 입에 탁 털어놓곤 난 이런 사람입네 라고 가우다시(갑자기 적당한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네)를 세우던 그런 타입이었고 해병대 나온 큰사위 역시 공수부대의 어린 처남과 더불어 4~5차 새벽까지 마시며 술김에 남의 지붕위를 올라 도둑으로 몰려 경찰서를 불려가는 등 꽤나 말썽 핀 저력의 집안으로 술 때문에 학을 뗀 분이셨는데 특히 그들이 나를 가장 꺼려하는 부분이 바로 장모님껜 오히려 내가 술을 못 마신다는 말에 솔깃하지 않을 수 가 없었을 거다.
더욱이 연약한 딸이 뭐 늦게까지 수발들 시어른이 있나? 잔소리 할 시누이가 있길 하나? 그렇다고 말썽 필 시동생이 있음도 아니고? 제사를 모시나? 속 썩힐게 하나도 없는 부담 없는 막내이니--- 그런 걸 다 염두에 두신 장모님이시겠지만 ---그 후 부터 우린 장모님께 등 떠밀리면서 데이트 아닌 데이트가 시작 되었다. 서로 이모, 삼촌이라 부르면서 사실상 연애시절이 시작 되었다.
거의 대부분은 내가 먼저 가서 그녀가 준비해 나올 시간을 기다리는 게 더 많았고 이를테면 배춧닢 몇 개는 그분이 딸의 빽에다 찔러 넣어주는걸 목격했지만 난 한번도 그녀가 부담하도록 놔두질 않았다. 주로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찻집이나 빵집을 거쳐 야구장이나 극장 아님 탁구장 등이 대체로 우리가 가는 코스 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혼전에 얼굴은 한번 봐야하지 않겠느냐해서 자취방에서 정식으로 대면할 기횔 만들었다. 이른바 상견례 자리- 서울에서 대구에서 영천에서 매형, 형님들께서 참석하시고 결혼날짜까지 거의 잡아뒀다. 사실 나로선 아무것도 준비할게 없었다. 내 자취방엔 모든게 준비되어있다. 몸만 오면 된다. 그렇지만 장모님은 하다못해 장롱이나 이불 한채라도 마련해야 된다면서 내년 가을쯤으로 하자 하신다.
양가에 허락이 있었고 날짜까지 잡혔으니 사실상 약혼 한 셈이다. 자연스레 내 자취방에도 드나들고 밤 늦은 시간에도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가니 영천 매형께선 고추장 찍어 발랐을거라며 으례 내 여자가 된것으로 착각하셨는데---사실상 난 생각이 달랐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차잇점이 그것이다.
모두 다 인정한 내여자지만 난 억지로 눕히는 그런 안훼어한 행동은 스스로를 용납치 않는다. 어디가지나 파인플레이다. 뒷 동산의 밤이 익으면 절로 벌어지듯 충분히 이 여자가 나를 알아줄 때 까지를 기다린다. 흔히 억지로라도 살을 섞어 내 것으로 만들면 무슨 말못 할 사정이라도 은근쓸적 넘어가는 그런 더티한 방법은 난 통하지 않는다는 신념이다.
당시 난 제일 좋다는 미도파 백화점에 가서 원피스도 사주고 종로에서 뽀족 구두도 사 주곤했다. 신발은 사주면 도망간다고 꺼린다는 설도 있건만 차라리 인연이 안 되려면 일찌감치 미리 가버리라고 각오하면서 사줬다. “숙” 인 나의 500번째 여자야" 라고 입버릇처럼 말해뒀다. 그 어떤 기대도 갖지 말란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바람을 피웠다던가 많은 여자와 방탕한 생활을 한건 아님은 안심시켰다.
다만 내 맘속에 단 몇 시간이라도 맘을 설레게 만든 여성이라면 모두 내 리스트에 올라오게 되었고 또한 난 많은 여자와 데이트도 해봤으며 맘속에 잠시라도 들어왔다 사라진 여자는 부지기수라 했고 첫사랑 얘기도 진지하게 고백했는데 그녀는 들으면서 나와 같이 함께 울어주었다.
당시 나의가장 큰 약점인 재판얘기도 해 줬다. 당시 난 전국적으로 있은 업무상 보급품 횡령사건에 휘말리어 재판을 받고 있었고 어쩜 명예스럽지 못한 체 군생활을 끝낼지도 모른다는 그 얘기도 당연히 해줬다. 럭키 세븐의 ‘77년은 잃는 게 11년의 軍 이라면 얻은건 婦 이어라.(나중 자세히 글을 올릴것임) 그럴 즈음 계획한대로 청량리로 이사했다. 장모님은 앞날의 계획을 물으신다.
장래 희망이 서점을 경영 하는것인데 그러기위해선 우선은 책점에서 배달부터 하고 싶다고 했다.
장사를 하려면 지게 지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게 아닌가?
청량리의 큰 서점인 “홍진서적” - 이름도 나와 비슷한 멋진 이름이 아닌가? 내가 장차 이집을 인수해야지! 그런 꿈을 안고 시작했다. 그 서점의 살림집 중 조그마한 골방을 구했다.
장모님께선 그 집 주인 할머니께 약혼한 사이니 잘 부탁한다며 일부러 오셔서 처녀아이가 함부로
들락거림을 미리 양해를 구하신 것이다. 처음 서울 왔을때(’66년)에도 당시 이화동(서울대 앞)의 한 책점에서 자전거로 배달을 한바 있었지만 책은 언제나 보기보담 무거웠다.
간혹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면 미스 최가 밥 해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장모님이 보내주신 밑반찬을
잔뜩 담아 와 가지고 깜깜한 밤에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주전자로
또는 바케츠로 추어탕을 가득 담아 교외선(당시 의정부에서 송추를 거쳐 청량리가 종점)타고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해는 바뀌어 1978년 9월하고도 30일- 이리하여 Ms. 최는 아무것도 모른체 (라면 하나 끓이지도 못한 체) 내게 모든 걸 의존하면서 시집왔었다. 그녀는 친구중에서 가장 빨리, 난 친구중에서
제일 늦게 결혼을 하게된 셈이었으니 사실 지금에야 얘기지만 어린 신부를 데려온 죄로 늘 양보만
하고 살아왔다.
오죽 했으면 어제도 강원도 두류산행을 마치고 귀경길의 버스안에서 진행요원이 자리순으로 노랠
부르게 한바 "어느소녀의 사랑이야기" (민 해경노래)를 신청하길래 난 거길 맞춰 "어느 소녀에게 바친사랑" 을 부르려고 제목부터 호흡을 맞춰주는등 매사가 이런 식이다.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반찬솜씨는 커녕 김치한번 담가보지 못한체 매년 어머님댁에서 그리고 각 형님댁에서 얻어만 먹었고 겨우 몇년전쯤인가
부터 담그기 시작했다. 또한 결혼 후에도 큰애가 뱃속에 5개월째 있은
사실조차도 모르고 자꾸 뚱뚱해 진다고 하길래 난 줄넘기를 사줘 매일
마당에서 스키핑을 하게 만들었다.
어느날 큰집갔다가 형수님이 병원을 데려가 알게 된바 의사왈
"왜 열달 되거던 오지 그랬어요?" 하드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둘 다 무지했지만 좌우간 이런 여잘 데리고 사는 나는 오죽 했겠는가?
신혼 초 중곡동의 전셋집 화장실서 귀뚜라미가 자꾸 나와 일을 못 본 W.는 결국엔 변비가 생긴 해프닝은 또 어떻고--- 이런 점 등으로 이제까지 삼십년 동안 못마땅의 연속이기도 했지만 어찌됐거나 이제까지 별탈없이 함께, 산 타고 남들 갈때 휴가 같이 갈 정도로 건강하고 애들 잘 키워주니 고맙게 여기지만 엊그제도 장사가 잘 안된다며 내게 돈을 또 융통해간다. 마이너스 통장이 푸~울이지만 W.탓이라기 보담 잘못된 세상 탓으로 돌리고 다독거려주며 걱정없이 그냥 하루하루 웃으며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사실 처음엔 태국에서 찍은 사진을 그냥 올리기가 뭣하여 몇자 핑계겸 올리려했는데 자꾸 시간이
갈수록 쓸데없는 지겨운 소설이 되는듯해서 마칠까한다. 못다한 이야기는 이 다음 "결혼 이야기" 에 마저 하기로 하고 이만 줄여야겠다.
전우님들! ~(대충) 이러하니 다음 부턴 제발 좀 장가 잘 갔다 소리대신 시집 잘 왔다소릴 해 주시기 바란다. 이상 ---와이프 이야기----끝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All for the love of a girl)
황진순: 그동안의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홍하사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을빌면서..노래 저가 좋아하는곡
따라불러보면서... -[09/12-14:13]-
bat29: 이런걸 천생연분인가 하나봅니다. 늘 행복하시길! -[09/12-15:41]-
홍 진흠: 사진 설명 1. Pattaya 시티투어중에 일행들('07/7/15)-- 2. '06/12/9(토) 조카손주(심 소명) 돌잔치(방학동 동성웨딩부페) 왼쪽부터 홍하사, 연주(애기 엄마), 와이프, 박 금자 홍 태흠 부부-용산의 사촌 작은형님 내외분* 백 하사님 언젠가 남대문 금은 시계방에서 술(시바스) 주시던 분입니다. 기억 나시죠? 뒷줄(좌)로 부터 용인조카 홍 연규(#라이파이 #3027 의 글) 작은아들 홍 연일, 사위친구와 조카 사위 심 서방(沈根善) 3. 강화도 해명산('07/6/10) 등반을 위해 섬을 가는中에--- 4. 연애시절 당시('77년 11월-금강 휴게소) 5. 결혼식 "폐백" 中에 (78/9/30) 6. 신혼여행 중에 Walker Hill 에서 친구들과--- 7. '84년 12월(주한미군 군속으로 입사시)- 당시 7년 동안에 "개인사업" 한답시고 13년의 퇴직금(11년의 군생활 +월남 인정 2년)과 모아둔 돈 몽땅 떨어먹고 빚진체 기술직(목수)으로 취직함. -[09/12-18:25]-
홍 진흠: 이 밖에 "에메랄드 사원" 과 "Chao Phraya River" 과 "새벽사원(왓 아룬,67M 높이)" 그리고 파바솜뎃(푸미폰)아뚠라 야뎃(태국)국왕의 궁궐등 많은 곳을 다녔으나 생략함을 이해 해 주십시오. -[09/12-18:38]-
최덕종: 그냥 재미있게 읽기만 했는데 홍 전우님의 와이프 이야기가 끝나는것 같이 수고 하셨다는 말씀 드립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 자주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09/12-20:32]-
장영호: 재미있는 추억의 한장면을 하나씩 들쳐보는 홍전우님의 와이프이야기 멋진 추억을 보고 있습니다 늘 행복하시길 바라며 다음글 기대 합니다 -[09/12-21:04]-
류 지현: 홍전우님. 너무 파고 들면 다칠까봐 그만 둘렵니다.ㅎㅎㅎ 앞으로 많은 살아 가실 날에 늘 행복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음악 잘 들었습니다. -[09/12-22:13]-
안영일: 잘읽었읍니다, 함경도분의 집안의 따님이면 홍형은 세상을 사시는데 참으로 모든것을 수월하게 오셨을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북사람들의 집안분들 많은 본받을 일들이 많습니다, 최소한 따라지 (실향민) ?라는 저희들은 자기들의 식구만은 정식으로 제대로 거느리며 일생을 삶니다, 거의 한눈을 팔지를 안고 오직 성실이 몸에밴 8.15이후 고생을 많이한 세대입니다, 재미나게 잘읽었읍니다, 건강 하십시요. -[09/13-04:49]-
백동기: 대단원의 막을 내려셨습니다.천생연분이기에 와이프 사랑이 대단하십니다.두분 내외 오래 오래 화목하게 사시길 빕니다. -[09/13-09:32]-
심대흥: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두가지 불원(不願)이나 감청(敢聽)할수 밖에 없는것이있습니다. 바로 먹고사는일(事
攝生)과 처자식을 꾸리는 일(事家庭)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야 원하던 않하던 나의 선택 밖의 일이라지만 배우자를 얻는일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선택에 속하는 일이지요. 전우님의 이 글을 한번도 빠짐없이 읽으면서 '만약 내가 이런글을 쓴다면 우리 마누라를 어떻게 평했을까?'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글속에는 이런 속셈(?)이 은근슬쩍 엿보입니다. 얼핏 보면 와이프에 대한 소원함을 섭섭해 하는듯 하면서도 그 깊은 곳에는 짙은 부부애와 서로의 존경심을 표현해 냅니다. '신발을 사주면 도망간다는 속설이 있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인연이 않될바에야 차라리 일찍암치 가버리는게 낳기때문이다....'이 글속에는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 스며있습니다. 이 신뢰감이 나중 둘이 살아오면서 어려운난관에 봉착해왔을때마다 큰 버팀목으로 작용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탁월한 전우님의 '와이프 선택'안목에 찬사와 경의를 표합나다. 그래도 이말은 꼭해야겠습니다.「장가 정말 잘갔소이다..」ㅎㅎㅎ -[09/13-10:36]-
정재성: 구석구석 묘사하신 홍전우님의 글은 많은이들에게 행복은 결코 먼곳에 있지않음을 지적해 주시는 군의 FM같은 견본중의 견본입니다. 부디 두분 모두가 건강하셔서 더 멋진 인생의 휘날레를 장식하시기 바랍니다. 도중에 건강이 나빠진 아내를 돌봐야 하는 제게는 글속의 모든것이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09/13-11:33]-
최성영: 부산에서 서울오는 열차칸에서 진주에서 서울오는 고속뻐스 에서 시드니 노보텔 Hotel 에서 파노라마 같은 홍전우의 압축된 인생여정을 듣고 읽고 그간 곰 새기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두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09/13-11:51]-
보라매: 홍하사님 지금가지 연애 시절부터 살아온 상항을 리얼하게 올려주어 마치 나와 비슷한 상항 이였음을 음미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난글을 쓸줄몰라 재미있게 쓰지못함을 아쉬워합니다 홍하사님 부부가 건강히 더욱 행복하게 영원히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09/13-20:30]-
홍 진흠: 많은 전우님들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리며 1~5 회의 답글중에 오로지 유일하게 제편이 되어주신 jky님에게 특별인사 드립니다. 맹호! 또한 미국의 안선배님은 결국 3,8 따라지란 말씀은 이북에서 넘어온 실향민을 의미한것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대구 "칠성동" 이 본적이며 와이프는 "남산동"이 본적입니다. 좋게 해석해서 대구남산동에서 태어난 와이프가 흘러
흘러(서울등을 거쳐) 의정부에서 다시만남이 어쩜 천생연분의 만남이 아니었나 감히 생각해 봅니다. -[09/15-02:04]-
홍 진흠: 또한 어제 송별식을 해준 파주에서 출퇴근하던 K 선배님은 재수없게도 한번도 정년연장을 못하고 퇴임하게된 바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많은 실력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력 하지않아 도중하차 하게된것입니다. 세상 모든일엔 최선을 다하며 끝가지 포기하지않고 노력해야 된다는 사실을 어제의 일에 또다시 경험을 했습니다. 또한 동료중의 Mr. Han 이란 친구는 사회에서 보컬그룹의 리드 싱어였는데 제가 2차 노래방에서 부른 "사랑의 밧줄" (김 용임 노래) 을 듣곤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는 2년간 소리공부 (폭포,산속등을 돌아다니며)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젠 정말로 태워주기 싫은후배(술취해 취프에게 행패(?)부린 동료)집까지 태워주면서 언제까지 이짓을 해야하는가? 하면서 제일 늦게 귀가했답니다. 왜 사람들은 평소 할말 있으면 맨정신으로 당당하게 의사표현을 하지못하고 술 힘을빌려 불만을 토로하는지(깽판을 놓는지)?---그레서 저는 술을 싫어합니다. -[09/15-02:48]-
류 지현: 홍전우님!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입니다. 술도 마찬가지, 추하게 마시면 한없이 추해지고 ((부시고, 싸우고, 안하무인, 울고, 옷을 벗고(아가씨포함), 싸고 등)) 그리고 우아하고 격조 높게 마시면, 멋진 파티가 되고,모든것이 이루어질수도 있고, 삶의 원동력이 될수있으며 작가들이 취하면 좋은 작품이, 시인이 취하면 멋진 시 한수가, 농민이 마시면 좋은 오곡백과를 만드는힘 농주가 될것입니다.
아직도 취프에게 행패부리는 몹쓸 주정뱅이보다 심전우님과 같은 주신(찬 음주가)과 버금가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같은 물을 마셔도 독사가 마시면 독을 만들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를 생산 합니다. 홍전우님! 술을 너무 미워 하지 마십시요. "씨바스 홍님!" 씨바스 홍이란 닉이 있어 씨바스를 엄청 좋아 하시는 분인가 보다 했습니다,ㅎㅎㅎ -[09/15-11:29]-
홍 진흠: 류 선배님! 사실 위 본문에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냥 술이나 조용히 마시며 인생을 논하고 세상살일 얘기하면 오죽 좋겠습니까만(이분들은 심전우님처럼 애주가라고 칭해야겠지요) 거의대부분 사람들은 술김에 사고(?)를 내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꽁하고 있다가 술만 마시면 그걸 못참고 밖으로 표출 해내니 제가 보기엔 참 비겁한 사람으로 보일수밖에 없지요.겉으로 보기엔 남자답게 술한잔 먹고 툭 털어버린다지만 실제론 술 마시잖은 저같은 사람보다 더 소심하고 밴댕이 속을 가지고 있드라 그말씀입니다.
저도 사실 전우님들이 "시바스 홍"이 라는 닉을 부쳐준 이유가 모임때마다 한병씩 갖고가면(어느 단체모임에나 언제나 거의 대부분은 꼭 들고갔음) 그냥 술 못마시는 사람이라도 한병갖고오면 성의로 고맙게 마셔주면 될것을 꼭 거기에 이상하게 토를 달거나 (이 다음 무슨자릴 노리려고 작업한다거나 미군부대 근무하니 그냥 생기는거로 착각하고 몇병 구할수 없냐느니---)다른 무엇을 생각하드라구요. 그레서 No More 라고 다짐한 것입니다. 또한 제 형편이 그렇게 여유가 되는편도 못되고요. 어제도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산소를 다녀왔습니 -[09/17-05:22]-
홍 진흠: 다. 자그만치 일천 팔백리 길을 말입니다. 여섯가구가 십이인승 프레지오를 빌려 다녀왔는데 갖고간 팩의 술은 물론 깎고난 잔디위에 다 뿌려졌구요 왕복 상하행선 길엔 집안모두 좋아하는 G/S 게임으로(인생은~#2779('05/6/8)-"재산을 공개합니다." )스트레쓰를 풀면서 다녀왔답니다. 저는 비록 모처럼 1000원 땃지만 잃은 큰 형님은 무려 14만원을 잃었다 아닙니까?
시종일관 운전해준 기사팁으로 25000원(사대부고 나온 13년위의 큰 형님댁 조카),임시총무를 맡은 우리막내에게 10000원을 제수음식 장만 해주시고 솜씨가 기막힌 작은형수님께 20000원의 팁을, 특별 출연한 우리 W.에게 10000원을 그리고 가구당 선물로 호두과자와 기타 팁으로 각각주니 남는게 없고 가끔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우린 살아갑니다.
4대째 술은 못하지만 잡기엔 모두 한가락씩 한답니다. 온통 비와 땀으로 뒤범벅이된 하루였지만 마음 뿌듯한 하루였고 W에게 "단대목 밑에 하루장사 더 한다고 팔자 펼일도 아니니 조상 섬기는게 더 좋지않겠는가" 한 말에 더 힘이 실린 하루였습니다. 연이튿 부족한 잠이었고 피로한 상태지만 후회없는 시간입니다. 끝으로 저희 산악회 주 -[09/17-05:58]-
홍 진흠: 소는 cafe.daum.net/qlemfri(비둘기 산악회) 입니다. -[09/17-06:00]-
검은베레: 고향 군위에 벌초 잘다녀 가셨군요. 날짜를 잘잡으신건지 정말 지난 일요일날 벌초하기 좋은 날씨 였습니다. 그전날 늣게까지 비가와서 염려 했는데 아침되니 말짱 하다가 오후에야 시작된 비가 밤새도록 왔습니다. 월요일 아침되니 또 말짱하고, 우예된 심판인지 기상청이 예전 보담 영 파이고 비싼 돈주고 들여논 대형 기상 컴퓨터, 비자금 챙기고 가짜배기 들여 놓은 것인지, 김동완씨가 예보 할적보담 안맞네요.
"단대목에 하루 장사 더 한다고 팔자 펼일도 아니니 조상 섬기는게 좋지 않겠는가" 그말씀 공감 합니다. 내외분 같이 다녀 가셨군요. 본문 끝에 보고, 마꾸마! 장개 디기 잘가쁘고, 시집 디기 잘 오신 기라. 매일 매일 깨가 서말 쏟아 지도록 행복 하게 사이소. -[09/17-12:35]-
방학동형수: 글 잘보았습니다 총각때 고생도 많았네요 고생끝에 낙이온다고 이제는 훌륭한 부인도만났고 두명의 아들도 부모에게 효도하고형제간에 우애있게 잘지내니 앞으로 좋은일만 있을겄입니다 -[09/25-19:16]-
역쉬, 울 작은아빠 화이팅입니다. -[09/26-18:20]-
김선주: 홍전우님과 몇번의 부부동반 만남으로 드라이브. 식사 극장관람 노래방등 두루 곁에서 지켜봤던 홍전우부부, 제 결론은 시집을 잘온것 맞습니다.맡고요... 그림상으로 얼핏보고 평가하는것보다 곁에서 보고 느끼고 직접 체험한 제가 보장합니다 누가 뭐래도 .. 인간성을 비롯해 장점도 훨 많은 우리의 홍하사 아입니까? -[09/27-20:37]-
홍 진흠: 정말 그날은 검은베레님 말씀처럼 날씨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태풍이 온다기에 취소할까도 했지만 워낙 오래전부터의 계획이기에 강행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벌초 끝나니 비가 쏟아지드라구요. 암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방학도 형수님도 어려운 꼬리글 고맙구요 연주도 소명이 잘 키우기 바래. 아울러 김 전우님도 가평전적지엔 오늘 함께 못 갔지만 다음 기횐 꼭 그분들께 보답할 기횔 줄수있길 기대합니다. -[09/30-02:13]-
김창배: plemflrl 와이프 이야기!! 1-5까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비둘기 산악회의 회장직을 맏고 있는 김창배 입니다 이 글 보면서 우리 아우님의 10대 소년시절에 스리퍼에 12열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서 어린나이에 산전 수전을 겪고 직업군인으로 생활하다가 천하일색인 지금의 제수씨을 만난 이야기등 그때나 지금이나 구김없이 세상을 사는 이야기 가족과의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의 소개등 그동안 너무나 몰랐던 이야기에 저로써는 글에 탄복했다기보다도 지금의 홍 전우가 아닌 홍진흠의 아우님을 알았다는거에 저로써는 너무나 행복감을 느낌니다. 아우님! 진심으로 고맙구 앞으로도 더욱 제수씨를 사랑해주세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09/30-15:20]-
홍 진흠: 김 창배 비둘기산악회 회장님: 긴 꼬리글 감사합니다. 자칫 해산될뻔했던 "비둘기산우회" 를 다시조직 "비둘기산악회" 로 명칭을 바꾸고 회장직을 순순히 맡으심으로 십자가(?)를 혼자 짊어지신 님에게 거듭 감사드리며 이글을 드립니다. 보잘것없는 제글에 얼굴 붉어지게 칭찬을 주시니 거듭 송구하구요 심 고문님을 비롯해 우린 회장님께 열심히 참석함으로써 예우를 다하겠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3439 에 심고문님과의 산행얘기도 나와있고 자유게시판 #12563 "빛바랜 사진첩" 에도 제 얘기가 나와 있답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 홈 주소를 잘못 입력해서 혼동이 생긴겁니다. 다시한번 알려드리면 cafe.daum.net/qlemfrl 입니다. -[10/02-03:14]-
작은아들: 아부지~잘 보고 갑니다. -[10/15-14:40]-
홍 진흠: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All for the love, of a girl.) 을 부르고 일찍 요절한 Johnny Horton 은 이 한곡만 남기고 세상은 뜬 아까운 가수입니다. "인생은 즐겁게" #4151 에 홍하사가 직접부른 동영상이 나옵니다. -[11/17-21:02]-
홍 진흠: #4103 "베트벳 노래방"~ (2006/11/15) 에 있습니다. 조 선생님! -[09/15-07:34]-
심비남: 재미있게 잘 읽어보았습니다. 역시 옛말이 틀림없음. 팔불출~ㅋ -[10/08-22:31]-
프랑스기도선교기획3 - 곡조 있는 기도로 프랑스에 울리다!
https://youtu.be/Zpj_LFwsCZs
첫댓글 우리 최집사가 부른 "어느소녀의 사랑이야기" 나 홍하사가 신청한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
모두가 용케도 열자씩의 긴 제목글이라 누군가 "참 인연이다"란 말도 해 주었습니다" 홍집사
'Johnny Horton' 이 딱 이한곡만 "All for the love, of a girl" 남기고 요절했기에 더욱 좋아해~
남편은 아내를 중전같이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대우받지요 아내 사랑하지 않는 남자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정상이 아니지요
아내를 중전같이 모셔야 한다면 아내는 서방님을 어떻게 모셔야합니까?
대왕처럼 모셔야할테지요? 요즘의 추세라면 자고 눈떳다고 학대를? ㅎㅎ
(사라진 글)연주: 작은아빠, 저도 잘 보고 갑니다. 우리 사진이 이렇게 실린 거네요..중년에도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다른 분들의 귀감이 되는 모습 역쉬입니다.울 작은아빠 화이팅입니다.-[09/26-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