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평론가가 공포영화 같은 일을 겪었다. 아파트 아래층 일층에 중년 여자가 혼자 살았다. 여자는 평론가의 남매가 시끄럽게 뛴다며 걸핏하면 올라와 현관문을 차댔다. 앞뜰에 물 주던 호스를 이층 평론가 집 베란다로 돌려 퍼부었다. 평론가네 식구는 까치발로 걸어 다녔다. 두께 4㎝ 놀이용 매트를 거실과 방마다 깔았다. 그래도 여자는 유치원 가는 남매를 붙들고 다그쳤다. 집 커튼 뒤에 서서 남매를 노려봤다.
▶겁이 난 평론가가 경찰을 불렀다. 집에 온 경찰관이 바닥 매트를 보더니 "이런 걸 깔고 어떻게 사느냐"며 혀를 찼다. 악몽은 평론가가 이사하고서야 끝났다. 주변 어떤 이는 외국 살 때 아래층 사내가 대걸레 자루로 천장을 찧어대는 데 질렸다. 그래서 서울 아파트 위층 아이들이 뛰어도 낯 붉히지 않는다. 반면 자기가 조금만 소리를 내도 아래층 남자가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높인다. 외국서 살다 온 남자다.
▶미국 아파트는 입주할 때 서명하는 임대 계약서에 소음 조항을 두는 곳이 많다. '밤 10시 넘으면 샤워하지 않는다'거나 '파티는 밤 11시 전에 끝낸다'는 식이다. 뉴욕에서 이 조항을 세 차례 어기면 쫓겨날 수 있다. 독일 공해방지법은 밤 10시~아침 7시엔 이웃의 잠을 방해하는 악기 연주와 음향기기 사용을 금한다. 시끄러운 집안일과 정원 일은 월~토 오전 8~12시, 오후 3~6시에만 하도록 한다.
▶폐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은 서로 조심하며 산다. 이사 가면 맨 먼저 아랫집부터 찾아가 "잘 부탁한다"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 일본에서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는 사건이 있다. 1974년 가나가와현에서 중년 남자가 아파트 아랫집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며 일가족 세 명을 살해했다. 이 '피아노 살인 사건'이 지난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층간 소음에 부대끼다 이웃을 죽이고 찌르고 불 지르는 일이 잇따랐다.
▶정부가 층간 소음 법적 기준을 dB 숫자를 달아 구체적으로 정했다. 이를테면 낮에 몸무게 28㎏ 어린이가 뛰어다닐 때 아래층에 울리는 소리가 43dB을 넘으면 층간 소음이라고 봤다. 처벌 기준이 아니라 분쟁을 조정할 때 쓸 기준이라고 한다. 층간 소음과 다툼을 막을 대책은 아닌 셈이다. 하루아침에 층간 소음이 심해진 것도 아닌데 봇물 터지듯 이웃 사이에 삿대질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배려할 줄 모르고 각박해졌다. 열에 일곱이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 주택에 산다. 삼가지 않으면 누구든 가해자 되고 피해자 된다. 식탁 의자 하나부터 조심스럽게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