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인 줄 알았던 게 갑옷인 걸 어떤 나비는 눈치챈다
속살 겹겹 멍울진 부드러움이
억겁의 상처 더미라는 건 누가 알아챌까
온몸에 가시를 두르고 너를 부른다
껴안으면 네 안의 불이 켜지고
손 놓으면 살갗이 더 붉어져
해의 초점이 뿌리에 닿는다
울음소리는 때로 파랗다
수맥이 흐르는 어느 집 담벼락에 사슬을 두른 채
문틈으로 기어드는 계절의 추파를 노랗고 빨간 미소로 물리치니
나는 생명이지만 죽으려고는 않는 거대한 시간의 방패
또 그렇게 영원히 죽은 채
시간의 마디에 독침을 쏘는 환생의 색조
유혹인 줄 알았던 게 물리침이었음을 어떤 나비는 안다
사랑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
모든 계절이 지금 이자리에서 뱅글뱅글 색색의 전파 따
라 한 송이 무덤으로 솟는다
바람이 분다
가지는 흔들려도 가시와 입부리는 언제나 매콤하게 눈먼
자의 눈을 쫀다
어둠 속에서 새가 튀어나온다
오로지 꽃이 낳은 물체만이 세계를 굽어볼 줄 안다
전쟁은 다시 여름날 이후의 과거
눈이 내린다
호랑이를 태운 나비가 사람 키만한 꽃송이를 낳고 있는
거다
[웃어라, 용!], 문학동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