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1
[의지] -영화스토리(맨오브오너)
(민 23:19, 합 2:3)
영화 [맨 오브 오너]는 미 해군의 심해 다이버인 실존인물, 칼 브래셔의 감동적인 휴먼스토리이다. 그는 1960년대 최초의 흑인 구조자였는데 인종차별의 벽에 직면해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다이버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그를 탈락시키려는 공작에도 불구하고 물속에서 9시간의 사투를 이겨낸다.(학교장은 그를 졸업시키지 않기로 결심하여 최종 시험인 물속에서 기계조립하기 테스트를 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부품들을 강바닥에 흩어놓아 조립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두세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그는 저체온증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9시간만에 해낸다.) 브래셔는 임무수행 중에 사고로 다리절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으로서 현역에 복귀하여 마침내 마스터 다이버가 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쓰러지는 것은 죄가 아니다. 쓰러진채 주저앉아 있는 것이 죄악이다"
우리는 의지와 관계하여 두 가지 종류의 기억을 갖고 있다. 하나의 기억은 어느 날 나의 현실을 돌아보니 내 머리 속에 그려졌던 모습들이 현실로 드러난 것에 놀라게 된다. 또 하나는 나의 계획과 희망들이 장애에 부딪쳐 좌절되거나 흐지부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섭리자의 의지를 생각해야 한다. 먼저 그의 뜻인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의 뜻이라면 섭리자의 의지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확고한 의식을 갖지 않을 수없다. 그림은 내 머리 속에 있더라도 실현의지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나의 감정적 변화와 상관없이 그것은 실현된다.
예화2
[시테크]-시간은 돈이다.
(시143:8)
미국 위싱턴 근교의 국립항공우주국(NASA) 연구소 사무실 벽 게시판 한 곳에 연구원들의 이름과 외출시간, 간단한 외출사유가 적혀 있다. 고객상담 등 업무와 관련한 외출이 대부분이지만 그런데도 외출사유를 분명히 밝히는 이유는 6개월 마다 실시되는 근무고과에서 낮은 평점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개인이나 기업에서나 시간은 돈이다. 금 같은 시간을 서로 아껴주는 게 현대인의 기본이다.
이에 따라 생겨난 것이 한국에는 생소한 집중근무시간제(Core Hour)이다.
하루 8 시간씩 일하는 이 연구소의 집중근무시간은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2시까지 이 시간에는 반드시 연구소 안에 있어야 한다. 정보를 교환하고 합동작업을 하며 부서 회의도 이 시간대에 열린다.
직원들에게 세가지 선택이 주어져 있다. 첫째는 계속 일하기, 그렇다고 굶는 것은 아니며 일하면서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 허용되어 있으며 , 둘째 30분짜리 점심먹기, 셋째 1시간짜리 점심먹기다. 물론 매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많은 직원들이 점심시간에도 일하는 것은 그 만큼 일찍 퇴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면 텅 비어 있는 한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집중근무시간과 8시간 근무만 지키면 출퇴근 시간은 자유. 교통체증이 싫은 사람은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오전 6시 반 ∼오후 3시 근무를 한다. 또는 오전 9시 반 출근, 오후 6시 퇴근을 선택한다
미국 기업 대부분이 이런 근무방식을 시행중이다. 대충하면 되겠거니 생각하다간 큰 코 다친다. 개인별 근무시간을 일일이 기록하는 매니저의 눈길이 매섭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보다 더 소중하다.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계획표가 자신의 인생철학과 삶의 방향성을 담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별로 의미가 없으며 스스로 지우는 멍에 리스트에 불과하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주님의 섭리줄이 자신의 세밀한 삶의 스케줄과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 함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매일 매일의 삶의 시간표에서 중요한 것은 계획한 대로 진행시키는 시간 경영이 아니라 주님과의 싸이클이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름할 수 있는 "각도"에 대한 감각이다. 세상에서는 이를 목표의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피로현상을 수반한다. 반면에 각도감각은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피로현상이 없다.
예화3
[연단-안주함]-히딩크, 가격분석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무한 경쟁.’ 히딩크 감독은 27일 이집트를 꺾고 우승한 뒤 “어느 선수도 포지션을 확정하지 않고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투입한 게 주효했다”고 말한 바 있다. 대표팀에 선발된 뒤에도 자신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면 그라운드에 나서기 힘들다는 것. 25일 이란전에서 윤정환(28·세레소 오사카)이 수비에 허점을 보이자 27일엔 과감히 벤치에 앉혔고 박지성(20·교토 퍼블상가)을 그 위치에 투입했다. 동아일보 4월29일
무한경쟁이란 이런 것이다. 안이함과 구태의연, 복지부동은 어울리지 않는다.
상권분석, 가격분석이라는 말은 마케팅 시장에서나 있는 말인줄 알았는데,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어떤 사이트에는 술값, 봉사료 등의 가격분석을 통해 ‘2차행 여부’를 확인해주는 상담코너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술먹고 기분 좀 낼려는 사람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각오를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역시 안팎에서 무한경쟁으로 몰아넣는 시대환경을 말해주는 예라고 하겠다. 그러나 무한경쟁이란 창조적 발전의 원동력이며 사람을 훈련시키시는 섭리의 주요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신앙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이러한 체재로 밀어넣는 사람들은 대게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그러나 불안하지 않느냐? 뭔가 안정되지 못하고 보장되지 않아서? 라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보장을 받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무한경쟁이라 해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구조까지 유동적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소유하려는 의식이 영속적인 소유구조를 만드는 일에 환장하게 하며 기득권을 얻었다 싶으면 거기에 안주하고자 하여 그것이 창조적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이 된다.(눅12:16-21,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그렇기 때문에 무한경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소유양식의 삶이 아닌 존재양식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삶을 살려는 사람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은 신앙의 무기가 될 것이다.
예화4
[행복과 불행]-버려진 인생
전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분은 이문동에서 동장을 하셨뎐 분이었다. 동민들이 권유하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고 두 번 떨어지는 동안에 모든 재산을 날리고, 건강을 잃었으며, 가족과의 불화로 가족까지 잃고 말았다. 거기에 중병까지 얻게되자 가족들이 병든 자신을 귀찮게 여겨 이곳 기도원에 버리다시피 하고는 떠나버렸다. 기도원이었지만 돌봐줄 사람도 없고 약을 쓸 형편도 못되어 오늘내일하며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이렇게 부르짓게 되더라는 것이다. "행려병자로 죽을 형편인데 그래도 기도원에서 죽으면 교인들이 와서 찬송과 기도를 해줄 것이고 나의 영혼이 천국 가도록 인도해줄 것 아닌가? 나는 버림받은게 아니다. 가족, 자식들이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버린게 아니다." 하고는 인근의 시냇물을 마셨는데 온몸의 병이 다 사라지는 듯한 그 달고 시원한 맛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경험을 하고는 오히려 건강을 되찾고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더 가까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인생 최고의 보물이 되었다고 한다.(하나님이 일으키신 사람들, 진흥. 56쪽)
형통한 날의 기쁨은 교만스런 기쁨이 아닌 겸손한 기쁨이다. 욥의 파산을 생각해보라. 그 일이 당신의 부를 무너뜨리는 예표가 될 지도 모른다. 곤고한 날의 생각은 선택의 여지는 전혀없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게는 절망과 분노의 강을 넘지 않고는 이런 생각에 이르지 못하는게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나 할까?
예화5
[인내, 끈기]-정주영 일화, 도마뱀
히브리서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정주영의 배고픈시절--그렇게 객지생활을 시작한 정주영이 인천 부두에서 막일을 하고 있을 때 그곳의 노동자 합숙소에는 빈대가 우글거렸다. 낮에 힘들게 일을 하고 나서 고단한 몸을 누일라치면 빈대가 극성을 부려 견딜 수가 없었다.
정주영은 다시 꾀를 내어 탁자 다리를 물이 가득한 양푼 네 개에 담가놓고 그 위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빈대들로선 탁자에 오르려면 양푼에 빠져 익사할 판이라 탁자 다리를 타고 오를 수 없게 된 것. 그날 밤 정주영은 간만에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틀밤을 넘기지 못했다. 다시 빈대들이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이놈의 빈대들이 어떻게 탁자 위로 올라왔을까?”
정주영은 불을 켜고 살펴보았다. 빈대들은 탁자 다리로 기어오른 게 아니었다. 빈대들은 장애물로 설치한 양푼을 통과하다간 물에 빠져 죽을 위험이 있으니까 아예 벽을 타고 우회해 천장으로 올라간 다음 공중낙하를 시도한 것이다
그 후 정주영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빈대철학’을 되새기며 ‘빈대만도 못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현대자동차의 탄생--한국에서 포드가 시장조사를 끝내고 돌아간 뒤에야 정보를 입수한 정주영은, 마침 단양시멘트 1차 확장 공사를 위한 차관 교섭차 미국에 가 있던 동생 정인영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포드와 자동차 조립 기술 계약을 맺으라고 말했다.
“아니, 그런 일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합니까?”
정인영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했다. 그러자 정주영이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해보기나 했어?”
‘해보기나 했어?’는 그가 전매특허처럼 쓰는 말이었다.(신동아 2001.5월호)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어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 되는 집을 헐게 되었다.
막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려는데, 꼬리쪽이 못에 박혀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인부들은 집주인을 불러 이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집을 짓던 3년 전에 박은 것이 분명하다는 대답이었다.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혀 움직이지도 못했을텐데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하며 모두 혀를 내둘렀다. 사람들은 이 신기한 사실의 까닭을 알기 위해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도마뱀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다.
그 도마뱀은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못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들 위해 먹이를 가져다 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계속했던 것이다.
참 아름다운 도마뱀의 우정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 가장 절실한 것은 끈기이다. 참아내야 한다. 2절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권면이다.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참은 효과가 나올 때까지는 참아야 되는것아닌가? 그런데 참는 데에 있어서 참으면 된다는, 끈기있게 나가면 된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 분이 나에게 확신을 주신다. "참아라" "참겠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
예화6
[분열] -가뭄역행-분열의 씨앗
(엡4: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가뭄에 집단외유 `철면피 공직자`
온 국민이 가뭄 극복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가운데 피해가 극심한 수도권 지역 일부 공직자와 공공기관이 집단 외유 및 술판 행사를 벌여 비난을 사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매송농협과 비봉농협 등 지역 내 6개 단위농협은 남양반도 농협인 체육대회를 열었다.
농협 관계자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준비해온 행사라서 취소할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지역 주민들은 술과 여흥으로 흥청거린 이날 행사에 대해 “진정 농민을 위한 농협이라면 사상 최악의 가뭄속에서 행사를 벌일 수 있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충북 보은군의 김종철 군수는 지난 5월 15~31일 300만원의 군비를 들여 미국 연수를 다녀와 구설수에 올랐다. 김군수의 가뭄 속 장기외유는 이후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역시 극심한 가뭄지역인 경기도 안성시의 공무원 15명과 퇴직공 무원 3명도 지난 2일부터 집단휴가를 내고 4박5일간 부부동반 중국관광을 다녀왔다.
일행 중에는 가뭄 수습의 주무 과장인 농림 과장 이모씨를 비롯해 축산과장 오모씨, 일죽면장 김모씨, 삼죽 면장 이모씨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의정부시도 시의원 2명, 공무원 4명, 외부인사 7명으로 구성된 해외연수단을 꾸려 지난달 30일부터 8박9일간 미국 자유의 여신 상 및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센트럴 파크, 브로드웨이 등지를 둘러보는 외유를 다녀왔다.
또 4일과 11일에는 각각 10명의 용인시 공무원들이 호주와 일본 등지로 외유를 떠난 데 이어 12일 에는 25명이 사기진작을 위해 금강산관광에 나섰고 오는 18일에도 벤치마킹단 10명이 중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 자치단체의 변명은 한결 같았다.
안성시 관계자는 “공직자로서 상황에 맞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계획돼 있던 휴가를 다녀온 것이라 달리 징계할 수는 없다”고 했고, 용인시쪽 도 “이미 계획됐던 사업들이라 어쩔 수 없이 시행하고 있다”고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문화일보 6월12일)
분쟁이 있는 곳에는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화평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진다. 그러나 진정한 화평은 분쟁이 있기 전부터 사전에 관리하겠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사실 분열은 분쟁이 있기 전부터 불씨의 형태로 존재한다. 가뭄에 자제하지 못하고 민심을 배반하는 행위는 당장의 분쟁이나 분열을 만들어 내지 않을지 몰라도 이미 분열의 씨앗이 잉태되어있다.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지 않으면 이런 틈새가 벌어지게 된다. 더구나 분열이 있는 곳에 이런 불씨가 계속 떨어지면 화평과 하나됨은 더욱 멀어지고 만다. 가뭄이 나하곤 직접관계가 없을지 몰라도 그래서 분열의 씨앗이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말씀의 실천은 요원해진다.
예화7
[가족은 내몸이다]-엽기사건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엽기>행실의심 아내 다리절단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전기톱으로 아내의 다리를 절단한 사건이 발생, 충격을 주고 있다.
전남 여수경찰서는 21일 전기톱으로 아내의 다리를 절단한 혐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전남 여수시 연등동 김모 (44)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새벽 1시께 집 안방에서 처 김모(41) 씨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벌이다 김씨의 양발을 쇠사슬로 묶어 놓고 전기톱으로 왼쪽 무릎아래 다리를 자른 혐의다.
어선 선원인 김씨는 출어로 집을 비울 때 아내 김씨가 자주 집을 비우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중 이날 안방에서 같이 술을 마시 던 김씨가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 부부는 7년전 결혼했으나 아직 자식이 없어 단 둘이 살고 있으며 평소 아내 김씨의 외출문제로 자주 다퉈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경찰 진술에서 “평소 주변에서 처의 품행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었는데다 맡겨둔 돈을 내 놓으라고 했으나 줄 수 없다 고 말해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가 인근 밭에 버린 잘린 다리를 찾아(?) 여수 전남병원 에서 응급조치후 광주 기독병원으로 후송해 오전 5시30분부터 봉합수술을 받도록 했다.
한편 김씨는 사고를 낸 뒤 119에 신고하고 경찰에 자수했다.(문화일보 6월21일)
가족은 내 몸이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결혼식때 많이 쓰는 말씀-아직 이말씀을 못 써보신 분은 조만간 쓰게 되기를 축원한다. 그런데 여기 한 몸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여기에서 첫날밤(?)만 생각하면 안된다. 한 몸이란 바로 가족이 내 몸이라는 말씀이다. 창 46:26에는 야곱의 가족이 육십육명인데 이게 다 야곱의 몸에서 나왔다고 기록한다. 내 몸이기 때문에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내 몸이기 때문에 내 소유가 아니다. 내 소유라는 생각은 결국 자기 몸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화8
[긍정과확신]-연말 모금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음은 믿음의 확신에서 나오는 자세이다. 확신한다는 것은 내 하는 일에 주님의 인증을 받았다는 믿음이다. 확신한다면 거기에서 긍정적인 태도가 나온다. 수고가 헛되다는 의심, 수고가 헛되다는 부정적인 태도는 확신에 이르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긍정적이라는 것은 반드시 확신의 바탕 위에서 나온다. 확신이 없는 자는 확신이 있는 자의 지배를 받게된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지배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선한 믿음에 근거한 확신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여부는 그리스도인의 몫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연말연시의 계절에 한 여인이 고아들을 위하여 모금함을 들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돌고 있었다.
그녀는 이윽고 손님이 바글바글한 맥주집에 들어가 조용히 손님 곁으로 다가가서 고아들을 위하여 헌금할 것을 간절하게 그러나 정중하게 요청하였다. 그렇게 돌다가 한 사나이 앞으로 갔다. 그녀는 기왕의 간절한 부탁을 그에게도 하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손을 들어 귀찮다는 표현을 하였다. 그래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나이는 그만 화가나서 마시다 남은 맥주를 여인의 얼굴에 뿌려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런 봉변에 나온 짧은 비명소리에 갑자기 맥주홀은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잔을 나르던 종업원도 술집 주인도 모두 숨을 죽이고 사건의 현장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내쉬더니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으면서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위하여는 맥주를 주셨는데 고아들을 위하여 뭘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사나이는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자신의 지폐를 모금함에 넣었다.
이를 바라보던 홀안의 사람들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긍적적인 태도가 무엇인가에 답해야 한다면 바로 이 여인의 태도가 설명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이력이 배어나오는 여인의 태도를 통해 긍정적인 자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예화9
[성장-목표]-양과 염소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사람의 요소별 성장속도는 지능, 육체, 사회연령, 정신연령의 순으로 발전하며 가장 늦게 발육되나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것은 영적 연령이다. 신앙으로 살면서 성장에 대하여 열려있다는 것은 무한한 축복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 인생의 목표 또한 '자라 가야'할 부분이다.
이런 우화가 있다. (몇년전 기독교세계에 게재된 내용)
어느날 숫 염소가 양을 찾아와서 물었다.
"너는 나와 다르게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니?
나도 내 가죽과 멋진 뿔을 사람에게 남기는데? 음메에---"
그러자 양이 대답하였다.
"나는 살아서 내 털을 주지만 너는 죽은 후에 빼앗기기 때문이지! 메에---"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면서 산다.
있는 사람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면서 산다.
빼앗기기 전에 베푼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에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여기에까지 자라가야 한다.
예수께서 하신 일은 그리고 그 분의 은혜와 그 분에 관한 지식은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데에 귀결된다.
예화10
[속사람의 강건] -윤락녀의 비극, 천생연분
(엡3:14-16)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2000년 9월 군산 대명동 윤락업소에서 불이 나 윤락녀 다섯이 타 죽었다. 화재로 5명이나 죽었으면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남긴 일기장 내용을 신문에서 보니 너무도 비참했다. 그 젊은 여성의 소원 한 가지가 혼자 마음대로 동네 목욕탕에 가 보는 것이었다.
쇠사슬에 매이다시피한 노예가 그것도 성노예가 엄연히 이 시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인권을 외치는 수많은 인사들과 단체가 관심 둘 만한 일은 아닌가 보았다. 경찰은 그보다 더 급한 일들 때문에 아마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보도매체들도 한 신문을 빼고는 단 한 번 기사화하고 시선을 거두었다.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은 데도 있었다.
감금하고 성을 착취하여 젊은 여성을 절망에 빠뜨린 것은 어떤 권력기관도 아니다. 보통 사람이 한 짓이다. 그 보통 사람은 제 자식을 귀여워하고 이웃과 어울려 술도 마시며 노래방에 가서 가창 솜씨도 뽐낼 것이다. 인간을 짓밟는 보통 사람이 대명동 한 군데만 있겠는가. 오히려 보통 사람의 보통 사람에 대한 위해는 더 직접적이어서 더 무서울 수 있다
사지육신 멀쩡하기 때문에, 겉사람만 흥왕할 때에 일어나는 일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속사람이 강건해야 한다. 멀쩡한 육신이 저지르는 죄악과 실패들이 치유받고 교정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속사람의 강건해짐에 있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금실이 좋은 부부가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그만 죽을 병에 걸려서 다 죽게 되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하여 지성으로 간호하였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면서 남편은 "나 죽으면 좋지? 새 남자 만나서 잘 살거니까" 하고 비아냥거렸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날이 갈수록 남편의 심술은 그 도를 더해갔다. 참다못한 아내가 드디어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고 일을 저질렀다. 자신의 코를 베어버린 것이다. 남편은 너무도 감격하여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의 지극 정성과 진심이 하늘에 닿았는지 남편은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코구멍이 보이는 아내를 주저하더니 나가서 바람을 피기 시작하였다. 너무도 억울한 아내는 고을 원님을 찾아가 고소하였다. 사정 얘기를 다들은 원님은 남편의 코를 베어버리라고 하였다. 그후 남편은 아내를 보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히히히.
겉사람의 강건함만 있으면 위험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그러나 속사람의 강건은 겉사람도 강건케한다.
(요삼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