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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전문 자료방 스크랩 고려인삼 관련문헌
심메마니 추천 0 조회 49 08.03.27 16: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려인삼 관련 문헌
고려인삼에 관련된 유래 또는 이야기는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고려인삼을 약용으로 사용한 역사를 기술하며, 유래에 관계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고려인삼 이야기”에 별도로 기록하였습니다.

인삼에 대한 역사적 첫 기록은 중국 전한 원제(前漢元帝) 시대(BC 48∼BC 33) 《사유(史遊)》의
<급취장(急就章)>에 삼(參)이라 나와 있고, 후한 헌제(後漢獻帝) 건안연대(AD 196∼220) 장중경(張仲景)《상한론(傷寒論)》에도 인삼의 처방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 후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펴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모든 약을 상·중·하로 분류하고 그 약효를 설명하였는데, 상약 120종, 중약 120종, 하약 125종으로 나누고 인삼은 상약 중에 편입하였다. 도홍경은 이를 해설하기를 "상약은 군(君)이 되어 양명(養命)을 주재(主宰)함으로써 천(天)에 응(應)한다. 무독(無毒)이며 많이 복용하거나 오랫동안 복용해도 사람을 상하지 않는다. 경신익기불로연년(輕身益氣不老延年)을 욕망하는 자 상경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 후 의약도 점차 진보되어 인삼의 약용 수요가 중가되고 상품화되기 시작하였다. 수(隋)를 거쳐 당대(唐代)에 이르러서는 문화도 더욱 향상됨에 따라 의도 일층 진보하였는데 처방과 약재도 복잡하여졌다. 따라서 인삼을 배합하는 처방도 늘어갔다. 이 시대에 발간된 처방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은 《외대비요방(外臺秘要方)》의 6,900여 방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처방서와 처방수가 증가함과 동시에 인삼의 사용도 급격히 증가되었다. 송대(宋代)에 이르러서는 의사행정이 크게 진흥되고 제도의 완비, 관의의 배치, 의원의 교육양성기관 등이 갖추어졌고 역대의 제왕이 의사(醫事)에 깊은 관심을 보여 각종 본초서(本草書)가 출간되었다. 약물학의 규명과 위생치료의 혜택을 민생에 미치게 하였는데 이러한 방서 중에는 인삼 사용이 많았으며 특히 부인과·소아과·두과(痘科) 구급방 등의 처방에 인삼을 사용하는 것이 전대에 비해 증가하였다.

금(金)·원(元)을 통하여 250년간은 송의학을 발판으로 하여 명의가 배출되었다. 그 중 갈가구(葛可久)·이동원(李東垣)·주단계(朱丹溪)는 인삼과 가장 깊은 관계가 있다. 갈가구는 《십약신서(十藥神書)》를 저술하고 10방 중 허로토혈의 증세를 치료함을 전문으로 하였는데, 그 처방 중에 인삼을 가한 것이 3방이 있다. 이동원은 비위전문으로 보약을 강조하였으며, 주단계는 양음설(養陰說)을 주창하였다. 동원·단계 두 사람은 고금 인간의 기질과 체격 등은 차이가 있다 하여 옛날 처방을 쓰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처방을 창안한 것이 많으며 그 처방 중에는 인삼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많다.

고려인삼의 본고장으로 자처하는 한국은 원래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며 경제생활이 빈곤할 뿐만 아니라 귀족계급과 서민으로 나뉘어 모든 문화생활은 귀족들의 점유물이었고 일반 백성의 의약사상은 매우 뒤떨어졌다. 의술도 중국의 고의서(古義書)를 통해 용이하게 습득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상태였다.

인삼약용은 인삼의 본고장이었으므로 일반적으로 널리 보급되었어야 하지만 일반 백성은 그 혜택은 커녕 도리어 그 징수와 주구(誅求)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하기만 하였다. 고구려·백제·신라에서는 당시 풍부하게 인삼이 산출되었고 《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 《신라법사방(新羅法師方)》이라는 처방서도 있었다고 한다. 고려 초기에는 전의시(典醫寺)라는 관청을 두었고 고려 목종(穆宗) 대를 전후하여 많은 의서들이 출간되었다.

한편, 조선 초기에도 의학은 크게 진흥을 보지 못하였으나 세종(世宗) 이후에는 문운이 점차 융성해지고 의학문화도 향상되어 갔다. 그리하여 의학관계 서적도 저술되었는데, 그 중 대저(大著)는 《향약집성방》《동의보감》이다. 인삼의 인공재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모두 자연생으로서 그 가격이 매우 고가였기 때문에 상류층에서만 사용되었고 일반 서민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던 것이 인삼의 인공재배가 창시된 이후 그 산출이 증가되고 가격도 저하됨에 따라 서민들도 이용하게 되었다.

근대의학이 극도로 발달된 오늘날에도 내과 치료는 한방의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인삼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서구 의약계에서도 인삼의 특유작용에 착안하여 그 성분과 효능에 관한 연구가 활기를 띰으로써 한국산 인삼과 인삼제품의 수출이 증가되고 있다.

인삼은 자연생 인삼과 산양삼(山養蔘) 및 재배인삼 등 그 생육환경에 따라 구별하기도 하나 원래는 동일한 종이며 입지조건에 따라 사소한 차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이를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른바 아메리카인삼은 한국산 인삼이 아닌 별종이며 러시아에서 생산된다는 시베리아인삼이나 일본의 죽절인삼(竹節人蔘)이라 호칭되는 것도 물론 우리가 말하는 인삼과는 다르다.

인삼은 약용으로 쓰는 뿌리의 처리방법에 따라 홍삼과 백삼(白蔘)으로 나누어진다. 홍삼은 채굴한 수삼을 탈피하지 않고 화력에 의하여 건조한 갈홍색을 띤 인삼이며, 백삼은 수삼의 외피를 벗겨 태양열로 건조한 인삼으로서 미황백색이다.

◇ 《급취장(急就章)》

당시의 상용 한자 약 1,900자를 31장으로 나누고, 물명(物名)과 인명 등을 3자구(字句) 또는 7자구로 배열한 후 각운(脚韻)을 달아 암송하기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 압운(押韻)은 음운사(音韻史)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런 종류의 완존(完存)하는 책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 장중경 [張仲景, 150~219]
중국 한(漢)나라 말기의 의사. 본명-장기(張機)/국적-중국 한(漢)/활동분야-의학/출생지 -중국 허난성 난양/자-중경/ 허난성[河南省] 난양[南陽] 출생.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의 저자이다. 창사[長沙:湖北省]의 태수(太守)를 지냈으나, 그의 일족이 열병으로 목숨을 잃자 의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문헌에 그에 관한 행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상한잡병론》의 저자가 진(晉)나라의 신선가(神仙家)인 갈홍(葛洪)의 증조부 갈현(葛玄)이나 오(吳)나라의 장사태수였던 장선(張羨)이라는 설도 있다.

◇ 상한론 [傷寒論]

중국의 의서(醫書)/저자 장중경(張仲景) / 시대 중국 후한(後漢)
-《금궤요략(金要略)》과 함께 한방(漢方)의 쌍벽을 이루며, 한의학의 중요한 원천이다. 한의학을 상한론의학이라고 일컬을 정도이며 그 연구서목만도 500종을 넘는다고 한다. 중국의학에서 약물요법의 대성자라고 지목되는 후한(後漢)의 장중경(張仲景)이 저술한 것이라 전하며, 원래는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이란 이름으로, 급성열성전염병과 그 밖의 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나타낸 것이었다. 3세기 말에 진(晉)의 왕숙화(王叔和)가 이것을 상한(傷寒)과 잡병으로 나누어 하나는 《상한론》, 또 하나는 《금궤요략》이라 개정(改訂)하였다 한다. 이 책은 수(隋) ·당(唐)의 의서에도 인용되고 있으나, 중요시하게 된 것은 북송(北宋) 이후의 일이다. 송나라 초기에는 국가에서 직접 개정출판하여 총 10권 22편으로 된 이른바 송본(宋本) 상한론이 나왔는데 모두 397조로 기재되고 처방수(處方數)는 중복된 것을 제외하고도 112종에 이른다. 그러나 이 송대의 실본(實本)은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것은 후세의 번각본(飜刻本)이다. 상한이란 외감(外感)을 원인으로 하는 병의 총칭이며 책의 내용은 이들 각종 병증(病症)에 대하여 경험상 알려진 약재의 처방법을 지시한 것으로 어디까지나 실용 위주의 문헌이라 할 수 있다.

◇ 도홍경 [陶弘景, 456~536]

중국 남조(南朝)의 양(梁)나라 학자. /호 은거(隱居) /별칭 자 통명(通明) /국적 중국 남조(南朝) 양(梁) /활동분야 문학, 의학 / 출생지 단릉말릉
주요저서 《진고(眞誥)》 《등진은결(登眞隱訣)》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 자 통명(通明). 호 은거(隱居). 단릉말릉(丹陵陵:江蘇省 南京) 출생. 아버지가 첩에게 살해된 사실로 인하여 일생을 결혼하지 않고 지냈다. 일찍이 관직을 사퇴하고 구곡산(句曲山), 즉 마오산[茅山]에 은거하여 학업에 정진하였으며, 유 ·불 ·도 삼교(三敎)에 능통하였다. 특히 음양오행(陰陽五行) ·역산(曆算) ·지리(地理) ·물산(物産) ·의술본초(醫術本草)에 밝았다. 양나라 무제(武帝)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국가의 길흉 ·정토(征討) 등 대사(大事)에 자문역할을 하여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고 불리었다.

도교관계 저서로는 경전으로 존중되고 있는 《진고(眞誥)》(20권) 《등진은결(登眞隱訣)》(3권) 《진령위업도(眞靈位業圖)》 등이 있고, 문집에 《화양도은거집(華陽陶隱居集)》(2권)이 있으며, 의학 ·약학의 저서에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가 있다. 이 밖에 천문학에 관한 《제대연력(帝代年曆)》도 저술하였다.


◇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

중국의 후한(後漢)에서 삼국시대 사이에 성립된 본초서(本草書).
구분 의학서
시대 중국 후한~삼국시대
- 양(梁)나라의 학자 도홍경(陶弘景)이 6세기 초에 교정(校訂)하여 《신농본초경》 3권으로 하고, 다시 주를 가하여 《신농본초경집주》 7권을 저술하였다. 후세의 본초서는 모두 이것을 조술(祖述)한 것으로서, 송(宋)의 《증류본초(證類本草)》는 그 발전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맨 앞에 10조로 된 총론이 있고 이어서 365종의 약품을 상 ·중 ·하의 3품(品)으로 나누어 각각 기미(氣味)와 약효(藥效)와 이명(異名)을 서술한 간단한 약물서이다. 현재의 《신농본초경》은 명(明)나라의 노복(盧復), 청(淸)나라의 손성연(孫星衍) 등에 의하여 각각 재편집된 것이다.

◇ 산부인과 [産婦人科, obstetrics]

- 임신·분만·여성의 성기에 관계있는 병을 취급하는 임상과목.
출산연령에 있는 여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부인과라고 하지 않고 산부인과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 생식에 관한 사항은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별도로 산과로 독립시키기도 한다.

산부인과는 본래 각 연령층의 여성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특히 성숙한 부인, 즉 출산연령에 있는 여성을 대상의 중점에 둔다.


◇ 소아과 [小兒科, pediatrics]

- 어린이의 내과적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의학의 한 분과.
이 경우의 소아는 출생 후부터 14~15세의 사춘기까지를 가리킨다. 소아는 성장기에 있으므로 같은 병명의 질환이라도 그 증세 ·경과 ·예후가 다른 경우가 많으며, 특유한 질환도 있고 치료 등의 대책도 성인의 경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19세기 후반 내과에서 분리되어 독립하였다. 전문 의학과목으로는 소아내과(소아과) ·소아외과 ·소아정신병과 ·소아안과 ·소아치과 등이 있고, 오늘날 산부인과와 협력하여 태아의 단계까지 연구 분야를 넓히고 있다. 소아내과는 미숙아 ·신생아 ·순환기 ·호흡기 ·내분비대사 ·혈액 ·감염알레르기 ·신경 등의 분과로 나누어진다.


◇ 구급방 [救急方]

조선 세조 때 왕명으로 편찬된 의서(醫書).
구분: 의서
시대: 조선 세조 연간
- 편자 미상.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466년(세조 12) 6월 《구급방》 각 2건(件)을 8도(道)에 반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1479년(성종 10) 2월에도 세조 때의 《구급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또 1585년(선조 18)에 나온 《고사촬요(攷事撮要)》의 <8도책판(八道冊版)> 청주판(淸州版) ·평양판(平壤版)에 구급방이 실려 있었으나 없어져 찾아볼 수가 없고, 다만 1607년(선조 40)에 명의(名醫) 허준(許浚)이 《구급방》을 언해한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2권 2책)이 현전(現傳)하여 그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 인삼 [人蔘, ginseng]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두릅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 Panax ginseng
분류: 두릅나무과
- 깊은 산의 숲속에서 자라며 약용식물로 재배한다. 높이 60cm이고 줄기는 해마다 1개가 곧게 자라며 그 끝에 3∼4개의 잎이 돌려난다. 잎은 잎자루가 길고 잎몸은 5개로 갈라져서 손바닥 모양 겹잎을 이룬다. 작은잎은 바깥쪽의 것이 작고 가운데 3개는 길이 4.5∼15cm, 나비 3∼5.5cm로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는 가는 톱니가 있다. 잎 앞면의 맥 위에는 털이 있다.

여름에 1개의 가는 꽃자루가 나와서 그 끝에 4∼40개의 연한 노란빛을 띤 녹색의 작은꽃이 산형꽃차례에 달린다. 꽃잎과 수술은 5개이며 암술은 1개로 씨방하위이다. 열매는 핵과로 편구형이고 지름 5∼9mm이며, 성숙하면 선홍색으로 되고 가운데에 반원형의 핵이 2개 있다.

뿌리는 약용하며 그 형태가 사람 형상이므로 인삼이라 한다. 인삼은 예로부터 불로·장생·익기(益氣)·경신(輕身)의 명약으로 일컬어진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인삼의 뿌리는 비대근(肥大根)으로 원뿌리와 2∼5개의 지근(支根)으로 되어 있고 미황백색이다. 지근의 수는 토질·이식방법·비료·수분 등에 의해서 차이가 있으나 분지성이 강한 식물이며 그 뿌리의 형태는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고 수확은 4∼6년근 때에 한다.

한국 전매품인 홍삼의 원료로 쓰이는 것은 모두 6년근이다. 6년근의 동체는 길이 7∼10cm, 지름 2.5cm 내외이고 뿌리 길이는 34cm, 무게 80g 정도이다. 인삼은 매년 땅속줄기에서 싹이 나오고 가을에는 줄기와 잎이 고사(枯死)하는데 고사한 줄기의 흔적이 남는다.

◇ 백제신집방 [百濟新集方]

백제시대에 편찬되었다고 하는 의서(醫書).
구분: 의서(醫書)
시대: 백제시대
- 중국 약방문(藥方文)에 의거하지 않고 백제인들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요법을 수록한 것이다. 현재 책은 전해지지 않고 약간의 약방문만이 몇몇 사서(史書)에 전해진다. 백제는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여러 나라로부터 우수한 의서를 수입했는데, 《백제신집방(白濟新集方)》에 이들 의서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백제시대에는 중국처럼 의사와 약사가 구분되었다. 그 결과 독자적인 개발을 통해 《백제신집방》을 저술했다고 한다. 이 저서로 인해 백제 의학이 특유의 독자적 발전을 이루고, 우수한 승의가 배출되어 일본의학을 지도·육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원왕 영관 2년(고려 성종 3)에 단파강뢰(丹波康賴)가 편술한 《의심방(醫心方)》과 그의 증손 단파아충(丹波雅忠)이 저술한 《의략초(醫略抄)》에 그 내용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으므로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백제신집방》의 의약처방들이 위와 같은 일본의 의서에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은 물론 일본에까지 한국의 의약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신라법사방 [新羅法師方]

신라 때 간행된 의서(醫書).
저자: 미상
시대: 신라시대
- 도술(道術)에 능통한 어느 법사(法師)가 각종 처방(處方)을 기술한 내용으로, 중국의 처방을 모방하지 않고 신라 사람들 자신이 체험한 약방(藥方)을 수렴 ·정리한 것이다. 현재 책은 전하지 않고 약방 한두 가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 전의시 [典醫寺]

고려시대 의료업무를 맡아본 관청.
설립연도: 고려시대
설립목적: 의료업무
- 목종 때 처음으로 설치하여 태의감(太醫監)이라 하던 것을 1308년(충렬왕 34) 사의서(司醫署)라 하였다가 뒤에 전의시로 고쳤다. 속관(屬官)도 처음에는 판사(判事:종3품) 1명, 감(監:정4품) 1명, 소감(少監:정5품) 2명, 종8품의 박사(博士) ·승(丞) 각 2명, 종9품의 의정(醫正) 1명, 조교(助敎) 2명, 주금박사(呪博士) 1명과 이속(吏屬)으로 의침사(醫針史) 1명, 주금사(呪師) ·주약(注藥) ·주금공(呪工) ·약동(藥童) 각 2명을 두었다. 충렬왕 때 다시 직제를 바꾸어 제점(提點:정3품, 겸관) 2명, 영(令:정3품) ·정(正:종3품) ·부정(副正:종4품) ·승(丞:종5품) ·낭(郞:종6품) ·직장(直長:종7품) 각 1명, 박사(博士:종8품) ·검약(檢藥:정9품) ·조교(종9품) 각 2명을 두었다.

◇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

향약(鄕藥)과 한방(韓方)에 관한 책.
저자: 권채, 유효통, 노중례, 박윤덕
시대: 1433년(조선 세종 15) 간행
소장: 국립중앙도서관
활자본이며, 85권 30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431년(세종 13)에 권채(權採) ·유효통(兪孝通) ·노중례(盧重禮) ·박윤덕(朴允德) 등이 재래의 여러 의서를 참고하여 편찬, 1433년에 간행한 것으로 1488년(성종 19)에 부분적으로 된 한글 번역본이 간행되었고 다시 1633년(인조 11)에 중간(重刊)되었다. 수록 내용은 병증(病症) 959종 ·약방문(藥方文) 1만 706종 ·침구법(鍼灸法) 1,416종 ·향약본초(鄕藥本草) ·포제법(製法) 등으로 되어 있다.

모든 질병을 57대강문(大綱門)으로 분류하고 다시 그것을 959조의 소목(小目)으로 나누어 각 강문과 조목에 해당되는 병론(病論)과 방약(方藥)을 출전(出典)과 함께 일일이 논거(論擧)하고 있다. 그 밖에 책머리에는 자생경(資生經)에서 가려 뽑은 침구목록을, 책끝에는 향약본초의 총론(總論)과 각론(各論)을 각각 첨부하고 있는데, 특히 총론 중에는 제품약석포제법(諸品藥石製法)이 실려 있다.

57대강목의 명칭을 보면, 근세 임상의학의 각과(各科)가 총망라되어 있지만 그 분류법이 전문 과별로 되어 있지 않고 대개 병증을 중심으로 한 병문(病門)과 인체의 부위를 중심으로 한 과문(科門)이 혼합되어 있다. 각 병문의 아래에는 그 병증에 필요한 조목을 낱낱이 종류별로 나누어 해당되는 병론(病論)과 치방(治方)을 빠짐없이 망라하였을 뿐 아니라 그 출전도 명시되어 있다. 이 출전 가운데는 한(漢) ·당(唐) ·송(宋) ·원(元) 등의 의방서(醫方書)와 고려 후기 이후에 발전되어 온 한국 향약방서들이 거의 포함되어 있다.

◇ 동의보감 [東醫寶鑑]

1613년(광해군 5) 허준(許浚:1546~1615)이 저술한 의서.
저자: 허준
시대: 1613년(광해군 5)
- 개주갑인자본, 25권 25책이다. 1596년(선조 29) 왕명에 의해 내의원(內醫院)에 편찬국을 두고 허준·양예수(楊禮壽)·이명원(李命源)·정작(鄭)·김응탁(金應鐸)·정예남(鄭禮男) 등이 한(漢)나라 때에 체계화를 이룬 한의학을 중심으로 동방의학의 총집성과 더불어 민족의학을 정립시키는 대역사(大役事)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1년 후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일시 중단되는 곡절이 있었지만, 허준만은 자신의 일생 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결심하고 집념으로 저술에 임하였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증적 학구의 자세와 명민한 관찰력, 그리고 고전에 대한 해박한 학식을 토대로, 풍부한 임상경험을 살려 기본학리가 임상에 직결되기까지 일관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의술의 구체화를 이룩하였다. 그 결과 14년 후인 1610년(광해군 2) 8월 6일 마침내 25권이라는 방대한 의서가 완성되었고, 《동의보감》이라 이름하여 1613년 11월에 개주갑인자로 인쇄, 간행되었다.

이 책은 내과에 관계되는 내경편(內經篇) 4권, 외과에 관한 외형편(外形篇) 4권, 유행성병·급성병·부인과·소아과 등을 합한 잡병편 11권, 약제학·약물학에 관한 탕액편(湯液篇) 3권, 침구편(鍼灸篇) 1권, 목차편 2권, 계 25권으로 되어 있다. ☞

☞ 동의보감 편술의 특색
첫째, 도교적 공리(道敎的功利)와 실용주의적 사상을 적용하여 정확성과 실용성에 중점을 두어 그때까지 번잡다기(煩雜多岐)했던 많은 의서의 의술적 통념을 취사선택하여 정수(精髓)만을 골라 의술이론과 임상에 완벽을 기하였다.

둘째, 허준의 의학사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정(精)·기(氣)·신론(神論)에 근본을 두고 내장기(內臟器)의 생리적 기능변조(機能變調)와 그 직접적인 병증을 일괄하여 내경편(내과)에서 새로 다루었으며, 이것은 지금의 정신신체의학[心·身]과 같다. 즉, 의술의 본의(本義)를 정신수양과 섭생에 두고, 복약과 치료는 2차적 의의라고 하였다. 이것이 《동의보감》 전편의 일관된 중요한 특색으로서 350여 년 전에 현대의학의 선구적인 학설과 치료법이 이미 강구되었다는 사실은 경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고, 《동의보감》이 한방(漢方)이면서도 한방적(韓方的)이라는 의의가 여기에 있다.

셋째, 당약(唐藥:중국에서 나는 약재)이 아닌 한국에서 나는 약재를 권장하였으며, 탕액편에 나오는 약물학의 약재는 속명(俗名)을 일일이 한글로 부기하여 채약(採藥)과 사용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넷째, 각 고방의서(古方醫書)를 고증할 때 인용한 학설이나 처방의 출처를 명시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억설이 아님을 밝혔고, 후학들에게 연구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다섯째, 각 처방약의 용량에 대한 관심인데, 고서에 표시된 것은 용량이 너무 많아 우리 체질에 적당치 않음을 지적하였으며, 오랫동안의 임상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살려 표준용량의 기준을 만들어 적의(適宜)를 가감하도록 하고, 그 복용법까지 명시하였다.

이와 같이 《동의보감》의 저작은 환웅유업(桓雄遺業) 이래로 한국적 의학의 우수성과 민족적 재능을 과시한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의학계의 뜻있는 학자들 간에 한방(漢方)이 아닌 한방의학(韓方醫學)을 정립하고자 하는 학술운동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이와 같은 의의를 중요시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동의보감》의 의학술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몇몇 나라에서 번역·출판됨으로써 세계적인 의서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저술자인 허준 사후(死後)에는 '보국숭록대부양평군(輔國崇祿大夫陽平君)'이라는 시호(諡號)가 추증(追贈)되었다.

출처:자연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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