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주제로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대화하는 ‘2013년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이 열렸다.
5월 31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이 포럼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주제로 천주교 전통과 개신교 전통 안에서 각각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대화를 나눴다.
개신교에서는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천주교에서는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가 주제발표를 하고, 암브로시우스 대주교(한국정교회)와 홍경만 목사(남부루터교회), 박태식 신부(성공회대)가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 앞서 나눈 인사말에서 김희중 대주교는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새로운 생명으로 건너가는 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죽음은 형태만 다를 뿐 삶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천주교와 개신교는 다른 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면서 “오늘 포럼에서 개신교와 천주교가 상장례를 어떻게 하는지 공유하면서, 우리의 사생관(死生觀)이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이제까지 우리는 다른 점만 캐기 위해 노력해오지는 않았는가. 공통점을 발전시키고 차이는 조화시키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일치를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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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와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문양효숙 기자 |
“죽음이 화해 · 용서 · 치유의 시간 되도록 돕는 게 목회자의 직무”
첫 번째 주제발표에서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는 자신의 목회 경험을 기반으로 죽음에 관해 성찰했다. 김 목사는 사람들이 죽음을 꺼리고 죽음과의 대면을 연기하려 하는 이유는 “모든 삶의 연속성이 단절된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경험하지 않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근원적 공포, 그리고 자기 ‘몸’을 무방비 상태로 남겨놓고 간다는 사실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교회는 105년 된 교회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께 ‘남은 생의 소망이 무엇이냐’ 여쭤보면 ‘잘 죽는 것’이라고 답한다. 아프지 않고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내다보며 잘 준비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길 바라지만 그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드물다. 느닷없이 닥치는 질병, 사고, 재난 등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특히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내면의 인과관계를 무너뜨리는 현실이다. 즉, 선한 사람은 편안하고 안락한 죽음을, 악인은 그에 합당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런 기대를 배신한다.”
김 목사는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 후, 노인들이 죽음과 친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던 모임을 언급했다. 김 목사는 모임의 취지에 대해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묵상하고, 늙음을 상실이 아닌 성숙의 계기로 삼도록 돕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서 김 목사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죽음을 대면하기 어려워하는 노인의 모습을 만났다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은 노년에 이르렀을 때가 아니라 죽음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별 거부감이나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노인들을 위로와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하며, 삶과 죽음의 신비에 대해 깊이 바라보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영원한 결별이 아니라 더 큰 생명 속으로의 진입이다. ‘나’라고 하는 자기 심성이 해체되는 순간 더 깊은 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해 나가야 한다.”
김 목사는 “죽음의 자리를 화해와 용서, 치유의 시간이 되도록 돕는 것이 목회자의 직무”라며 마지막 순간을 잘 마무리하도록 돕는 의식을 소개했다. 끝으로 김 목사는 “남아 있는 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두 가지 감정을 ‘애도’와 ‘우울’로 요약했다. 이 두 가지 감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 애도 의식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그는 울어야 한다. 그래야 고인과 작별할 수 있고, 이런 적절한 애도 의식을 거쳐야만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상실한 사람과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는 사람이다. 이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다. 사랑으로 채우는 것은 중요하다. 곁에 있어주고 음식을 함께 나누기도 하면서 그의 회복을 기다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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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1일 제13회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이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
천주교, 토착화된 장례예식서와 자살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 필요해
두 번째 주제발표에서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해 먼저 신학적으로 고찰했다. 윤 신부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성서를 기반으로 죽음이 ‘육신과 영혼의 분리’이며 ‘죄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 신비를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므로 죽음은 하나의 통과 의식이며, 부활을 위한 전초적인 단계인 동시에 죽음 후의 심판과 부활을 위한 하나의 시작 단계로서 큰 의미를 제시해 주지 못한다. 죽음은 극복 대상이지 그 자체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죽음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부활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죽음이 긍정적일 수 있다.”
이어 윤 신부는 성서와 초대교회, 중세에 이르기까지 예식을 설명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장례예식을 역사적으로 고찰했다.
“8세기 이후, 죽음이 부활의 희망을 향하는 여정 중 하나의 과정이라는 파스카적 성격이 사라지면서 속죄와 참회의 신학이 발달했다. 장례예식도 심판 때에 하느님의 징벌을 피하기 위해 자비에 호소하는 쪽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죽은 영혼을 위한 속죄의 표시로 위령 미사가 집전되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오 성사집>에 기록된 성인호칭기도의 후렴은 ‘그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다. 이는 죽은 영혼의 속죄와 죽음 후의 심판과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강조된 결과다.”
윤 신부는 이후 장례예식에서 다시 파스카적 성격이 되살아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장례예식서를 통해서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 예식서에 담긴 위령 미사 신학에 대해 △초기 그리스도교의 부활 신앙을 회복했다는 것 △토착화와 적용을 위한 개방성 △집전자의 위로자 역할이 강조됐음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끝으로 윤 신부는 토착화된 <장례예식서>, 예식적 차원에서 자살자에 대한 본당 주임의 사목적 배려 등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 신부는 또한 “윤회설에 입각한 49재는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일”이라며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있는 성령강림의 50일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2000년 시작해 올해 13회를 맞는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은 그동안 구원, 결혼, 성례전, 기도, 생태영성 등을 주제로 한 교회간 대화를 통해 한국 그리스도교를 새롭게 하고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을 제시해 왔다.
이번 포럼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천주교, 한국정교회가 함께 준비했다. 이 모임은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증진을 위해 일치기도회, 일치포럼, 신학대화, 신학생 교류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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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효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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