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보았다
김지명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간다. 오르는 길은 다양하지만, 나는 대구에서 팔공로를 달려 팔공산 오솔길로 걷는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팔공산 갓바위, 건강을 기도하기 위하여 오른다. 오솔길 따라 팔공산에 오를 때 숲속의 맑은 공기는 기분을 아주 상쾌하게 한다. 도심에서 이산화탄소와 씨름하다 팔공산에서 풍부한 산소를 접하니 날고 싶은 기분이다.
삼복의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아득한 갓바위를 쳐다보면서 쉬엄쉬엄 발걸음 옮긴다. 고요한 산중에도 삼복의 강렬한 햇볕은 내려 쬐고 있지만, 어른 바람은 보이지 않고 아기 바람만 아장거린다. 산으로 오를 때는 반드시 계곡 따라 오르지만, 갓바위 가는 길은 능선으로 걸어간다. 자연의 소리에서 평화로움을 느끼면서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체험하며 걷는다. 숨이 가빠지자 맺히든 땀방울이 온몸을 적신다. 깔딱 고개에서도 숨찬 걸음 멈추지 않고 관봉을 향하여 발걸음 옮긴다.
갓바위는 통일신라시대에 원광법사의 제자 의현스님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천도하기 위하여 불상을 조성했다. 석조여래좌이 638년(선덕여왕 7년)에 완성하였다. 일본강점기에 사찰은 불타고 파괴되어도 갓바위는 그대로였다. 보물 제431호인 갓바위 높이 4.15m, 좌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 약 6m에 이르는 위대한 석불이다. 몸통과 대좌가 하나의 바위로 깎아서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우리가 갓바위라고 부르고 있지만, 학술상의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지구상에 하나 뿐인 석조여래좌상은 대구경북의 자랑이 아니라 한국의 명물이다.
한 점의 구름도 없이 강렬한 햇볕은 쉴 새 없이 내리 쬐이고 있지만, 목적지를 향하여 쉬지 않고 걸어간다. 앞에서 부르는 사람도 없고 뒤에서 어서 가자고 족치는 사람도 없으니 불경을 암송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오솔길 언저리 벼랑 끝에 선 노송이 수백 년이 지나도록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관암사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목탁소리는 염불을 업고 노송 그늘 속으로 신도의 마중을 나온다. 범종의 은은한 울림은 불법을 안고 너덜겅 속속들이 미물에게 전한다. 묵은 번뇌 벗기려고 돌계단을 밟으며 쉬지 않고 올라간다. 한 계단 올라서서 지장보살 두 계단 올라서서 관세음보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암송하며 올라간다. 가다가 쉬기를 반복하면서 깔딱 고개에서도 거북이처럼 어슬렁어슬렁 올라간다. 젊을 때는 팔공산 남쪽 봉우리 관봉까지 단숨에 올랐건만, 이순이라는 숫자가 보폭이나 속도를 아주 더디게 한다.
관봉이 가까워질 때 용덕암에서 안전을 기도하고 오른다. 암자의 마당 언저리에 생명수가 쫄쫄 흐르고 있다. 나는 목을 축이고 잠시 쉬었다가 갓바위를 향하여 다시 하체에 힘을 가한다. 경사가 아주 심한 계단이다.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깔딱 고개에서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갈 때 온 몸에는 땀이 옷을 적시고 있다. 힘겹게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눈앞에 펼쳐진 경치가 발목을 잡는다.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면 풍광명미에 취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동양화를 보듯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진기한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은 위대한 자연의 섭리다. 안개가 산을 임신하였다가 출산하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 안고 사색에 젖어있다. 안개와 산의 만남에서 얼마의 시간인지는 몰라도 에로틱한 분위기에 빠져 포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곁으로 안개가 다가오더니 조건 없이 애무하고 스쳐 간다. 반세기가 넘도록 살아왔지만, 산과 안개가 몸을 섞어 하나 되는 신비로운 광경을 처음 접하는 순간 감동에 혼신을 잃을 정도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 빠져있다. 등산하면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동양화의 진기한 풍경을 체험하면서 만심환희에 젖어있다.
바위틈에서 노송은 마른하늘에 이슬 먹고 외롭게 서 있다. 계곡에 자리 잡은 나무는 부유층에 속하지만, 능선의 척박한 땅에서 죽지 못하고 억지로 버티는 수목도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 번지 없는 오두막집에서 살아가는 서민 같은 느낌이 든다. 자연은 나에게 이토록 경이로움을 보여주지만, 나는 자연을 훼손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경관이 탁월한 기암절벽에도 잡목은 삶을 위해 버티고 있다. 동물과 식물의 삶은 아주 다르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아도 몇 세기를 살아가는데 자유롭게 활동하는 나는 겨우 한 세기를 넘길지가 의문이다. 말라가는 이파리를 볼 때 가뭄이 계속되는 자연 속에서 기다림을 배우고 햇빛을 받으려고 경쟁하는 식물에서 생존의 투쟁을 체험한다. 관봉석조여래좌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 모아 고개 숙여 무상(無想)에 빠져든다.
기도가 끝나도 내려갈 생각은 잊어버린 채 조망하기 좋은 곳에서 수도자처럼 도인이 되려는 망상에 빠져든다. 파란만장하던 젊음을 반세기 동안 고난과 역경 속에서 버티어 왔지만, 여생에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려고 산에서 심신을 수련해본다. 나는 수도승이 아니라도 자연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한다. 오로지 현재를 고집하면서 유한의 시공에서 벗어나 온각 잡념을 버리려고 기도에 열중한다. 스님처럼 속세를 벗어나려고 해도 실행이 되지 않는다. 생각이 부족한 탓인지, 가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갓바위를 등지고 발걸음 옮겨보지만, 깨달음 얻지 못하여 답답한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간다.
산은 숱한 세월에도 변하지 않지만, 수목들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나도 수목처럼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수도자처럼 오욕을 다 털어버리고 팔공산의 맑은 공기만 가득 채우고 싶다. 정신적인 피로를 씻으려고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도 생각하면서 마음을 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맑은 하늘에 해님이 빙긋이 웃듯 여생에 모두에게 웃음 주는 봉사정신으로 살아보려고 갓바위 찾아 기도하였지만, 당장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힘들게 올라 관봉석불여래좌상 앞에서 건강을 기도하고 조심스럽게 내려온 나는 저물어 가는 저녁시각에 하루의 여정을 피로와 함께 내려놓는다.
첫댓글 선배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반가버라
요즘은 산에도 못가서 보지도 못하여 많이 그립구나
흔적에 고맙데이.
지맹선배!
까딱하면 도사 되실려고~
될려다 말았다.
그렇게 되길 두 손 모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