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건강과 행복
전홍준(의학박사,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외과과장. 지금여기 편집위원)
지난 해 가을 나의 진찰실에는 심한 복통과 흉통을 호소하는 40대 남자가 찾아 왔다. 그는 부인의 부축을 받고 있었는데 환자의 얼굴은 장기간 병에 시달린 흔적이 뚜렷했다. 당시 그는 인근의 대학병원에 입원예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한 친지의 소개로 왔다는 것이다. 환자는 나에게 별로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고 부인에 의해 억지로 끌려온 눈치였다.
이 환자의 지난 15년간은 병원과 함께한 생활로 병원이란 지긋지긋한 곳이었다. 15년전 뇌출혈로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에 입원한 것을 시작으로 그 뒤 또 한차례 뇌졸증으로 입원한 적이 있고 이어서 심근경색증으로 수 십회 응급실에 실려 가야만 했다
그의 문제는 심한 변비, 심근경색, 고혈압, 중풍속발증 등이었다. 본인의 말로는 국내에 심혈관 계통의 유명한 의사, 한의사는 거의 다 만나보았고 심지어 좋다는 민간요법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한 번은 어느 교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 입원하여 단식을 하다가 언어장애가 생겨 중단한 적도 있었다. 이런 판에 시골의 나같은 풋내기 의사와 마주보고 있으니 양에 찰 리가 없다.
나는 끈질긴 난치병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에게서도 중요한 단서가 나왔다.
그가 처음 뇌출혈로 입원하기 약 1년전 지금의 부인과 결혼할 날을 받아놓고 있었는데 한때 좋아지내다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갔던 옛 여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자기 남편과 도저히 마음이 안 맞아 못 살겠고 그래도 당신이 제일 좋다는 것이다. 혼인날을 앞둔 채로 불륜의 관계가 시작되었고 이 관계는 결혼식을 치른 후에도 계속되었다.
어느 날 서울의 한 여관에서 같이 지내다가 남자가 발작을 일으키고 혼수에 빠졌다. 인근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켰으나 여자의 눈에 환자는 곧 사망할 것처럼 보였다. 뇌출혈이었다. 남자 가족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살고 있는 나를 이 남자가 자주 불러내서 만나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그 뒤 여자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신혼 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처가쪽의 항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환자의 부친은 평소에 중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건 후 얼마 안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몇 개월후 환자는 가까스로 회복되었으나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달아난 그 여자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감, 세상을 뜬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 처와 처가 쪽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중삼중으로 괴로워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얼마후 정말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흉통발작이 일어났는데 심근경색증이 발병한 것이다. 그 뒤 또 한차례 뇌졸증으로 입원하게 되고 심근경색으로 수없이 병원신세를 지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항상 어둠 속을 헤메게 되었고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이 환자의 신분은 지방공무원 이었는데 직장에서도 대인관계가 좋을 리가 없고 항상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자살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나는 어두운 마음이 신체에 병을 만들게 되는 원리와 경험 사례들을 그에게 일러주었다.
이때부터 그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지금까지 누구하고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나는 그에게 예약된 병원의 입원을 잠시 미루고 먼저 어두운 마음지우기부터 하도록 권유했다. 방을 따로 거처하고 세명의 괴로운 대상자를 머리에 떠올리며 무조건 용서를 구하고 축복하는 말을 주문 외우듯 계속하도록 한 것이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었습니다』자신의 귀에 들릴 만큼 계속하다보면 말의 힘이 크게 작용하여 가슴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원리이다. 이 방법은 가끔 다른 나라 의사들이나 심리요법가들에 의해 사용된 것으로 슬픔과 증오의 대상을 떠올리며 계속하다 보면 심리에 큰 변화가 오게 되고 따라서 신체에도 즉각 변화가 오는 것이다.
그는 불면증으로도 시달리고 있었다. 『잘 되었습니다. 잠도 안오고 하니 오늘밤 날이 샐 때까지 세분의 얼굴을 번갈아 상상하면서 계속 소리내서 외우십시요. 그리고 내일 아침 다시 오십시요.』이튿날 오전 두 부부가 다시 찾아왔다. 환자의 얼굴이 밝아져 있는 것이 나도 놀랄 정도였다.
『어떻게 했습니까?』『시키는 데로 방에 홀로 앉아 그 여자, 아버지, 처의 얼굴을 번갈아 상상하면서 '용서하십시요. 당신을 존경합니다'를 계속 소리내어 외웠더니 뜨거운 눈물이 많이 쏟아 졌어요. 평소 같으면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5시간쯤 계속하니까 몸이 축 늘어지고 나도 모르게 쓰러져 깊이 잠들어 버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흉통과 복통이 현저히 좋아졌다. 모처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고 쾌변도 보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 날이 금요일이었는데 나는 일요일까지 이 방법을 밤낮없이 계속하고 다음 월요일에 다시 오도록 하였다. 월요일에 전화가 왔다. 예약병원에 입원할 필요도 나에게 다시 올 필요도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우 편안해 졌다는 이야기다.
이때로부터 두달후 연하엽서 겸 편지를 보내왔다. 내가 의사가 된 후 환자로부터 이처럼 절실하게 감사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한달쯤 후 그가 다시 나의 진찰실로 찾아왔다. 나는 내심으로 또 통증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고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반대였다. 자신은 병원에 갈 필요도 약을 먹을 필요도 없을 만큼 좋아졌는데 우리 병원에 교통사고로 입원중인 한 환자를 잘 보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이 사고환자의 배경도 재미있다. 사고환자는 30대 후반의 부인이었는데 평소에 시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나쁜 처지였다. 사고당일 밤 시댁에 제사를 모시러 갔다가 시어머니와 다투게 되었다. 일가친척들이 많아서 며느리는 꾹 참으려 했으나 너무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제사도 지내지 않은 채 충돌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집을 나와 차를 몰고 가다가 다리난간에 차를 들이받아 중상을 입고 입원하게 된 것이다. 사고와 당사자의 심리적 배경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법이다.
이 때로부터 약 3개월 후에 그는 다시 찾아왔다. 나는 혹시 통증이 재발한 것이 아닌가 하고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왜 또 오셨어요?』『오늘은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직접 드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어서 직접 왔습니다.』『무엇이 그리도 감사한가요?』『선생님을 뵌 후 저의 건강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분은 지난 10년 가까이 시골의 한직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늘 불만이었는데 도청 소재지로 전근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번번히 실패였다. 지난 6개월동안 원망과 죄책감의 대상이었던 세 사람에 대하여 그 감정을 지우기 위해 줄곧 노력한 결과 세 사람에 대한 감정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그토록 밉게 보이던 직장 동료들이 다 곱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근래에 만나는 직원마다 당신 얼굴이 너무 좋아졌고 또 많이 변했다고들 한다는 것이다. 이 쪽 마음이 좋아지니까 상대편이 좋게 보이고 따라서 상대도 나를 좋게 대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도 갈망하던 도청 소재지로의 전근발령이 났고 그것도 제일 원하던 부서로 옮기게 된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은 뜻밖의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시골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 했고 따라서 아파트를 팔아야만 했다. 이 아파트는 평소 잘 팔리지 않는 지역에 있었는데 여차로 아파트 주변 전봇대에다 『아파트 급매도』하고 종이에 써서 몇 장 붙여 놓았더니 며칠 안되어 임자가 나타나서 기대했던 것보다 높은 값에 팔리게 되었다. 이것도 상상 밖의 일이다.
또 전학한 딸아이는 그 도시에서 제일 좋다는 학군에 배치되었다. 그 뿐아니라 집을 사기에는 돈이 좀 부족해서 전셋집이나 얻을까 했는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옛날에 알던 은행직원을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집사정을 듣더니 자기은행에서 관리하는 미분양 아파트가 있는데 장기할부로 입주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도 돈이 남게 되었다.
짧은 기간에 정말 놀라운 일이 연속 일어난 것이다. 주변사람과 세상만물이 다 곱고 좋게만 보였다. 여섯달 전만해도 지옥 같았던 자신의 처지가 이제 천국으로 바뀐 것이다. 마음한번 바꾸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 환자가 나를 만난 후 좋아졌다고 해서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고 어두운 마음 지우면 건강도 운명도 밝아질 수 있다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가 이 분을 특별히 도와주었다고 할 것도 없고 다만 이책 저책 보던 가운데 대체 이런 방법도 있구나 싶어 환자에게 권유해본 것뿐인데 환자분이 잘 믿고 열심히 실천해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으니 이 환자가 훌륭한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주변과 조화롭지 못할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고 건강해진 예가 없다고 한다. 모두를 다 곱게 보고 주변과 조화로우면 인생이 밝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는 잘하고 있는가? 지난날 너무 잘 못했기 때문에 이것은 우선 나부터 해당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고질적으로 건강이 나쁘거나 고통스런 일을 당하고 있으면 그 원인을 밖에서 찾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자신이 그 동안 어떻게 마음을 쓰고 살아왔던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마음은 영화의 필름에 해당하고 자신의 운명은 스크린의 활동사진과 비유할 수 있다. 밝고 건강한 내용이 담긴 필름을 끼우면 밝은 모습을, 어둡고 괴로운 내용의 필름을 끼우면 고통스런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필름을 돌릴 것인가 즉 어떻게 마음먹고 살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되면 그 대상이 피해를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피해를 입는다. 이러한 어두운 마음은 쇠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두들기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인생의 목표는 어두운 마음지우기, 즉 마음 다스리기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깊이 공감이 됩니다^^
긴 글이지만 편집 없이 다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공감 감사해요~~
모든 것이 내 맘 속에 있군요~~감사합니다~*^^*
네~ 크고 작은 많은 번뇌들..
감사와 참회로 많이 평화로우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렇게 경험을 나눔으로서 더 많은 이들이 힐링이 되는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카페, 이 글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것도 참 큰 인연인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좋은글에 감동을 받게 되네요
많은 환자들과 의사들이 이 글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는것이군요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몇년전 읽었던 거울이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지난날의 사건과 실타레처럼 연관되어 있고. 무언가를 알게 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라는 내용이었는데요.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본질은 비슷하나 봐요
좋은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