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여객 청사 2층 490평 규모의 내국인 면세점. 면세점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하루 평균 내장객수는 3500명선.
면세점은 지난해 4월 1일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 시행 후 운영돼, 싱가포르처럼 국제자유도시로 발돋움하는 제주의 모습을 가장 먼저 확인케 한다.
제주도 내 면세점은 이곳과 제주항 2곳 등 모두 3곳. 지난해 12월 24일 개점 후 지난달 23일까지 총매출액은 212억원으로 하루 2억원 넘게 팔려 성공이란 자평이다. 제주발전연구원(원장 고충석 제주대교수) 양덕순 박사는 “앞으로 연간 600만명의 여행객이 해외에서 지출하는 70억달러의 일부를 흡수, 국부 유출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보다 면적이 세 배 큰, 인구 55만명의 제주도에 국제자유화 ‘마포름(열풍의 제주도 방언)’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특별법 시행 후 제주항과 서귀포항으로 선적(船籍)을 옮긴 우리나라의 국제 선박은 모두 375척. 물론 이전에는 한 척도 없었다. 대상 선박 432척의 87% 수준으로, 농어촌특별세, 취득세 등을 면제받아 연간 62억원의 혜택을 보고 있다. 반면 제주도에 들어오는 수입은 현재 등록세 1억6700만원뿐이지만, 앞으로 외국 선박의 유치, 제주 홍보, 선박 금융과 보험 등의 유입 등 그 효과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난해 제주 관광객수는 450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존 최고치(97년 436만명)보다 2% 이상 늘었다. 올 1월 한 달간 관광객은 38만404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5.6% 증가해 올해도 기록 경신이 예상된다.
지난해 4월 골프장 이용료 인하 후 골프장 내장객수도 52만262명으로, 2001년보다 28% 급증했다. 이 중 외국인은 5만7600명으로 이 또한 전년에 비해 2% 늘었다. 제주도 관광협회 정윤종 기획홍보팀장은 “면세점과 함께 골프장 이용료 인하는 항공료 부담을 덜어줘 제주관광의 매력을 한층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자본 투자 유치도 적극적이다. 올해 투자유치 목표액은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 현재 13개 업체가 5조5501억원 규모의 투자의향을 보여 목표치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블랙스톤리조트 등 6개 업체(3447억원)가 개발사업 예정자로 지정됐다.
투자대상은 종합휴양업·골프장 등 관광개발분야. 블랙스톤리조트의 경우 북제주군 한림읍 금악리 일대 46만5000평에 1000억원을 들여 호텔과 27홀 골프장 건설을 추진 중으로 현재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밟고 있다.
외국인 투자는 중문관광단지 인근 100만평 땅을 매입 중인 SCI 등 3개 업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카지노 등을 운영 중인 SCI는 25억달러를 투자, 5000실 규모의 초대형 호텔, 해양수족관 등 종합리조트를 조성할 계획이다.
일반 주민들의 참여 열기도 높다. 김진숙(여·35·주부·제주시 연동)씨는 “부녀회관, 동사무소 문화센터 등에서 영어회화 교육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대 동아시아연구소가 지난 2000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도민의 67% 이상이 국제자유화도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99년 7월 이후 이승택 전 제주지사, 김형옥 제주대총장 등 지역원로, 시민단체 대표 등 77명이 협의체를 구성해 회의·공청회·설명회 등을 통해 도민 의견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각종 세미나도 연이어 개최돼 국제자유화도시에 대한 여론 기반을 단단히 다지고 있다. 지난 2월 21일에는 한국재정·공공경제학회와 제주발전연구원이 국제자유화도시 전략에 대한 토론을 벌였고 4일에는 중문관광단지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4300석 규모) 개관식을 기념해 제주국제도시포럼(공동의장 현명관 전경련부회장)과 제주발전연구원이 ‘제주 국제자유도시의 경쟁력’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지난해 5월 창설된 제주국제도시포럼에는 김세원 서울대 교수, 신용하 전 서울대 교수,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허태학 전 호텔신라 사장, 강문창 두산건설 사장, 이길현 제주도 관광협회장 등이 참여해 국제자유도시 건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제주의 평균 개인소득은 7122달러(2001년 기준)로, 이를 2011년까지 총 29조원을 투자해 2만달러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관광객 1000만명(외국인 관광객 107만명), 신규고용 9만명, 지역 총생산 8조원이 구체적인 수치이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공항·항만·도로뿐 아니라 세제·출입국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면에서 선진 제도를 도입해 동북아 관광·휴양 허브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변에 도쿄·베이징 등 인구 1000만명 이상 도시 5개와 오사카·타이베이 등 인구 500만명 이상 13개 도시가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지정학적 가치가 높다는 자평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그러나 그 방향만은 분명히 잡고 있다는 게 제주도민들의 확신이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제주 이익과 국가 이익을 동시에 달성하는 상생적 시각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이 외자(外資)를 ‘머슴’으로 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 3500여명 찾는 제주 면세점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해도 OK"
‘혼저 옵서예(어서 오십시요).’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여객청사 2층 내국인 면세점에서 근무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소속 오정옥(吳貞沃·여·28)씨는 세계로 나아가는 제주의 첨병이다. 제주대 관광경영학과를 나와 2년6개월쯤 도내 외국인 면세점에서 근무하다 30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곳에서 일한다.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제주공항을 거쳐 제주를 떠나는 탑승객 3500여명 중 25%가 그녀의 고객이다. “1회 구입한도액인 35만원어치만 사면 항공료가 빠진대요”라며 “국내 관광객은 물론 해외여행객을 유치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라대 관광경영학과 출신의 조명근(趙明根·26)씨는 “제주관광을 맨 처음 시작하는 곳도, 끝내는 곳도 여기”라며 “제주의 친절함을 심어 제주를 꼭 다시 찾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대 일어일문학과를 나와 5년여 동안 외국인 면세점에 근무했던 한근혜(韓根慧·여·29)씨는 “면세점 수익금이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에 쓰일 자금원이 된다는 자긍심에 신바람이 난다”고 웃었다.
면세점 상품은 유명 브랜드 170여개, 4000여 품목에 이른다. 1인당 평균 구매액은 7만2000원선. 인기품목은 단연 주류로 전체 매출액의 35%를 차지한다. 연간 목표액은 1000억원, 이 중 200억원 수익이 목표다.
유중희(柳重熙·49) 영업지원부장은 “4월부터 ‘인터넷 면세점’에서 미리 주문하고 공항·항만에서 물건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