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4. 들살이 5일차
오늘은 드디어 쉬는 날이다. 다른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늘은 오랜만에 늦게까지 자다가 일어났다.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자니 몸이 개운해서 좋았다. 체크아웃을 하고 근처 비건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를 먹었다. 한식을 먹으니 자꾸 집이 생각이 났다. 사실 초반에 너무 힘들어서 집 생각이 12년 동안 학교에서 들살이를 가면서 가장 많이 났다. 1학년 때도 집 가고 싶어서 운 적 없는 것 같은데;;;
맛있는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대전으로 출발했다. 기차 안에서는 다음날 갈 하림공장에 대해 조사를 했다. 하림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동물복지 농장을 시작했고, 하림은 계약농가로 양계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계약 농가는 우리나라 전체 양계장에 90%를 차지하고 있는데, 닭값에 변동이 없어 모두 계약농장을 선호한다고 한다. 여러 기사에서는 계약농가와 하림 사이에 갑질 문제로 얘기가 많았다. 또 하림은 닭을 도살 전 기절시키는 가스스터닝 방법을 편안하게 잠드는 과정으로 말하고 있었고, 스트레스 없이 건강한 닭을 계속 말했다.
동물복지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니 한 기사에서 동물복지는 인간 중심적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사육장 암모이나 수치 제한 기준을 돼지가 아닌, 인간 중심으로 정한다든가. 또 병들거나 기형인 농장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도태'라고 표현하는데, 이 도태시키는 방법도 동물복지 기준으로 나와 있었다. 예를 들어 자돈에 경우 머리를 때려 죽일 수 있다든가. 동물복지 기준에서도 다 허용하고 있었다.
대전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좀 쉬다가 카페로 다시 나왔다. 전체적으로 일정을 다시 보고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일지를 올리는 날이라 정리 작업을 했다. 근데 1일 차 일지가 날아가고, 수정본이 날아가는 등 문제가 많았다. 졸리고 피곤한데, 계속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하루가 그렇게 끝이 났다.
2022.9.5. 들살이 6일차
어제 조금 늦게 자기는 했지만, 오늘 9시에 일어나는 날이라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익산에 있는 하림 본사에 가는 날이다. 그동안 해오던 작업과 반대되는 하림 견학을 통해 하림에서 어떻게 도계장 시스템을 홍보하는지, 하림의 동물복지는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물어보러 간다.
함열역에 가기 위해 서대전역으로 갔다. 시간이 좀 떠서 카페에 들어가 일지 정리와 하림 질문을 정리했다. 사전에 우리가 정한 질문은 두 가지이다. 하림에서 도살 전 닭을 편안하게 재우는 시스템인 '가스스터닝' 이후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 하림의 동물복지 농장과 일반 농장은 무엇이 다른 건지 이다. 다른 기사에서는 가스스터닝을 한다고 해도 다시 깨어날 가능성이 있고, 어제 일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물복지 농장 기준은 인간 중심인데, 하림은 어떻게 답할지 궁금했다.
견학을 진행해주시는 분은 하림의 직원분이니 너무 적대적인 태도는 취하지 않기 위해 질문을 다듬기도 했다. 하림에서 원하는 목적은 홍보일 텐데, 그 목적과 전혀 반대되는 의도를 가지고 방문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이 공간 안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쫓겨나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무궁화호를 타고 도착한 함열역은 정말 작은 역이었다. 근처 김밥천국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번 들살에서 완전 비건을 지향하면서 매끼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했다. 오늘은 비건 식당도 아닌 일반 식당이라 꽤 고생하며 메뉴를 골랐다. 그래도 늘 예상치 못하는 반찬이 나와서 실패할 때도 있다. 오늘은 김치. 그래도 사장님께서 계속 물어보고, 알려주셔서 감사했다.
하림까지는 버스가 잘 다니지 않아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 하림 본사에 도착하자 도계장에서 나는 비린내가 났다. 그리고 보안팀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보안실로 들어갔는데, 견학 온 사람이 아니라 무슨 잘 못 들어온 사람인 줄 알았다. 분위기가 무겁고, 무서웠다. 가는 길도 어려워서 헤매다가 갔다.
견학 진행 전 기념사진 같은 걸 찍었다. 기념 사진을 찍는 기분이 이상했다. 단순한 투어 체험으로 온 것이 아닌데, 그런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계속 습관처럼 반응하고 웃었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 너무 이질감이 들었다.
또 하림 견학을 신청하며 가장 먼저 닭 시식에 대한 부분을 가장 먼저 물어본다고 한다. 이 견학에서는 중간마다 하림 제품을 무료로 시식하는 시간이 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왔다는 말로 시식 과정을 사전에 안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래서 되게 의아해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튼, '열려라 하림' 이런 멘트를 던지며 견학이 시작됐다.
하림의 역사를 보고, 닭의 성장 과정, 도계 과정들을 갤러리 형태로 볼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갔다. 가스스터닝에 대한 얘기가 나와 준비했던 질문을 했다. 직원분 말씀으로는 절대 깨어날 일이 없다고 하셨다. 편안하게 다들 잠든 상태에서 진행된다고 하셨다.
또 동물복지에 대한 설명을 추가로도 듣고 싶었는데,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냥 하림은 동물복지 기준을 잘 맞추고 있고, 창이 없는 무창 계사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동물복지든 뭐든 일반적으로 모든 양계장은 창이 없다.
하림은 다른 농장과 다르게 닭이 건강하게 키워진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정작 견학 내용에 동물복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그냥 마케팅으로 쓰이는 것이 아닐까. '건강한' 닭이라는 것도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하림 계약농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쓰여있는 책에서는 없었다. 병들고, 상처 나고, 골절된 닭만 있었다.
다음은 하림 회장 김홍국에 대한 영상이 나왔다. 하림 회장이 강조하는 건 초등학교 도덕책에 모든 배움이 들어있으니, 이걸 따라야 된다는 거다. 그러면서 계속 윤리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축산업 자체가 윤리적인 것과 벗어나는데, 뭐가 윤리적인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윤리적인 것을 말하는 건지. 하림과 계약농가 사이에 갑질 문제도 있던데. '윤리적'이라는 단어는 좋아 보이지만, 도대체 어떤 윤리적인 것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도계장 안을 직접 볼 수 있는 과정도 있었다. 도계장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창으로 견학이 진행되었다. 도계과정 순서로 하나씩 설명하고, 보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이번에도 하림의 기술을 설명하는 위주였다. 방혈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잔인하기 때문에 없다고 한다. 도살이 잔인한 것을 다들 다 아는데, 왜 자꾸 숨기는 건지. 안 보이면 닭은 안 잔인하게 그냥 바로 삼계탕 같은 닭이 되는 건가? 닭은 창 밖으로 우리가 아는 '고기'의 형태로만 갈고리에 달려 지나가고 있었다.
도살 전 닭을 직접 만져보고, '닭 해체쇼'라는 닭을 자르는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진짜 하림은 도계를 그냥 홍보 목적으로, 즐거운 거리로 소비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 이게 다 재밌나?
견학이 마무리되니 기가 다 빨렸다. 평소였으면 진행자분에게 열심히 반응했을 텐데, 전혀 다른 반응을 하기 되니 진행자분 눈치를 계속 보게 되었다. 홍보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자'라는 자체만으로 계속 눈치가 보이고,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정말 피곤했다.
2022.9.6. 들살이 7일차
오늘은 아영이와 그동안 찍은 영상과 사진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비건 카페에서 오랜만에 맛있는 라떼를 먹으며 작업을 했다. 결과물로 영상을 만들기로 했는데, 영상의 방향성을 먼저 잡았다. 그리고 나중에 만들 영상을 생각하며 영상과 사진을 정리했다. 계속 디지털 화면만 보고 있느니 오랜만에 눈이 정말 아프고 피로했다.
점심을 먹고 또 작업하니 자료 정리는 다 마무리가 되었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정해서 추석 때 공부해 오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은 거의 하루종일 결과물 작업을 했다.
2022.9.7. 들살이 마지막 날
벌써 들살이 마지막 날. 팀원들끼리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이다. 대청호에서 피크닉을 하기로 했다. 점심으로 김밥을 싸서, 대청호로 향했다. 도착하니 약간 천국같이 조용하고, 고요한 호수와 파란 하늘만 있었다. 아, 그곳에 풀을 뜯고 있는 거위가 있었다. 진짜 맛있게 먹어서 그 맛이 참 궁금하게 만들었다. 평화로워서 좋았다. 김밥도 맛있었다.
원래 나중 계획이 대청호 산책이었는데, 햇볕이 너무 강해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계속 그늘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다시 대전 시내로 돌아왔다. 시장 구경을 좀 하다가 성심당 쪽으로 이동해서 각자 둘러보다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성심당에서 빵과 비건 버터를 샀다. 맛있겠다.
숙소로 돌아와서 인사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노을이랑도 인사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길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벌써 집에 와있다는 게 뭔가 이상하다.
나에게서 타자로 옮겨갈 때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타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는 순간 타자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며, 대신 우리라는 신기한 집합이 탄생한다.
- <아무튼, 비건> 중
나의 들살이 제목이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연결하기'였다. 이번 들살이를 통해 그 존재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계속 잊지 않고 연결되어 있고 싶다. 이 연결성을 생각하며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존재든지 쉽게 타자화 하고 싶지 않다. 단절되어 각자만의 삶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우리'라는 세상이 있어야 나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