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김경화씨(75). 사람 얼굴 크기만 한 수박을 나르느라 허리를 쉴 틈이 없었다. 오랫동안 허리가 계속 아팠는데 5년 전부터 통증 강도가 세지고 횟수도 많아졌다.
무거운 물건을 들면서 허리에 무리가 가는 수박농사 특성상 김씨의 몸 상태는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엑스레이(X-ray)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해보니 신경이 지나는 통로인 척추관이 좁아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다리로 가는 신경이 눌려 통증을 유발했다. 전형적인 ‘척추관협착증’이었다.
특히 골반·다리로 향하는 신경과 연결된 4·5번 디스크(추간판) 협착이 심했다. 김씨가 허리 외에도 골반·다리 통증을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발목 굽혔다 펴기]
김씨의 몸 상태를 살펴본 결과, 간단한 시술로는 호전되기 어려워 보였다. 이에 ‘미세현미경 신경 감압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미세현미경 신경 감압술은 눌린 신경이 다시 자유로워지도록 좁아진 신경 통로를 넓혀 협착 부위를 풀어주는 수술이다. 2㎝ 정도의 미세 절개로 비교적 간단하게 인대나 뼈를 제거할 뿐 아니라 전신마취를 하지 않아 고령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척추관협착증 치료에 가장 오랫동안 사용해온 수술법이며, 추간판 탈출증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수술 부위를 10∼15배 확대해주는 수술용 현미경과 첨단 레이저 장비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안정성이 뛰어난 수술법으로 알려져 있다. 또 척추유합술 같은 수술법과 달리 수술 다음날 움직일 수 있고, 4∼5일 안에 퇴원이 가능할 정도로 환자 회복이 빠른 편이다.
김씨는 밤마다 붓고 시리고 저린 다리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김씨처럼 다리 통증에 허리 통증까지 동반되면 단순히 척추관협착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리 통증은 척추질환뿐 아니라 혈관질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래서 환자가 다리 통증을 호소하면 혈관영상의학센터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게 한다.
초음파 검사 결과, 김씨 다리에선 정맥 역류가 1초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혈관은 크게 동맥과 정맥으로 구분한다. 혈액을 심장에서 팔과 다리로 보내는 길이 동맥, 반대로 팔과 다리의 혈액이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이 정맥이다. 정맥에서 역류가 발생해 혈액이 심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다리에 정체되는 현상을 ‘정맥 부전’이라고 한다. 정맥 부전으로 혈행이 원만하지 못하면 혈관벽이 늘어나 저림 증상과 통증을 유발한다. 이때 심하게 늘어난 혈관벽이 피부 바깥으로 돌출되는 증상이 흔히 아는 ‘하지정맥류’다.
[하늘자전거 타기]
지금까지 진료실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났다. 경험적으로 다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10명 가운데 1명은 척추 외 다른 조직에서 문제가 발견된다. 정맥 부전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정맥류 환자는 지난 4년간 1.5배가량 증가했다.
문제는 척추관협착증과 정맥 부전의 증상이 유사해 두 질환의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리 통증이 느껴지면 척추·혈관 질환 전문의 협동진료가 원활한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다리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할 수도 있다.
김씨는 정맥 부전이 심하지 않아 간단한 시술을 시행했다. ‘베나실’이라는 생체 적합 접착제를 사용해 문제가 된 혈관을 막는 방식이다. 신경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데다 시술 후 의료용 압박스타킹을 착용하지 않아도 돼 환자의 부담이 덜하다. 김씨는 정맥 부전 치료까지 마친 뒤에야 비로소 다리가 저리고 시린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원에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여기 와서 허리에 다리까지 한번에 다 치료하니 얼마나 좋아요!”
김씨처럼 지방에서 농사짓다보면 아파도 무작정 참는 일이 허다하다. 병원 방문 한번으로 아픈 곳이 전부 낫는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척추 전문의로서 수술 후에도 다리 저림 증상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안타깝다. 더 많은 환자가 허리와 다리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시 신발끈을 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