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차 정기답사(서귀포의 기억들) 후기

[고영철]

2022년 11월 13일은 제문답 제341차 정기답사일이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은 되었지만 ‘오늘 많이 와 버리면 내일 내릴 것이 남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바심을 쳤는데 과연 날씨는 좋았다. 서귀포 지역은 오히려 따뜻하고 맑은 날이었다. 한라산을 넘어 중문 지역을 지날 때에는 한라산 정상을 뒤덮은 구름이 특이했다. 마치 껍데기 씌우지 않은 솜이불처럼 정상으로부터 동서쪽을 포근히 내리감싸듯 얹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다른 차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세우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한라대 주차장에 모인 회원 12인과 서귀포 첫 답사지에서 합류한 4인 등 모두 16인이 윤아님의 해설에 기대감을 가지고 답사를 시작했다. 주제를 ‘서귀포의 기억들’이라고 한 것은 안내자의 고향이 서귀포이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서귀포에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서귀포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현재의 서귀포는 몇 만 인구가 사는 곳이지만 조선중기까지는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곳이었다. 선조22년(1589) 이옥 목사가 서귀진을 설치하고 이곳으로 이주하는 주민에게 목장을 나눠 주고 조세를 감면하는 정책까지 썼지만 19세기말까지도 인구는 모여들지 않았다. 1904년 인구조사를 보면 풍덕리(현 서귀동)에 410명이 거주할 정도였다.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수산업의 良港으로 서귀포를 주목하면서 일본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1917년에는 일본인 심상소학교를 개교할 정도로 인구가 늘었고, 1928년에는 제주성내 다음으로 인구가 많아졌다.

새연교 아래에는 새섬에 거의 닿아 있는 방파제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1925년에 만든 것이다. 항구가 좋아지자 곧 이어서 서귀포항은 고래잡이 기지로 전락했다. 1930년초에 동양포경주식회사가 일명 ‘고래공장’을 세운 것이다. 1937년 11월 조선일보에는 ‘10월 한 달 동안 4척의 포경선이 고래 44마리를 잡았다’는 기사가 있다. 제주도 근해에 참고래가 득실대고 있었다는 말이다. 고래를 해체하면 그 피가 바다로 흘러들어 해녀들이 물질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33년에는 포경선 1척이 조난당했다. 다른 배는 고래를 잡았는데 ‘도처환(稻妻丸 이나즈마마루)’은 빈 배였다. 傲氣로(?) 다시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 배에 탔던 선장, 포수, 운수사, 수부, 화부, 賄夫 등의 이름이 적힌 추도비가 남아 있다. ‘賄(회)’자는 ‘뇌물, 선물, 예물을 주다’는 뜻을 가진 글자인데 일본에서 대학교수하는 고교동창에게 물어보니 일본에서는 주방에서 밥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중에 한국인 이름은 金長旭, 金元鐘, 金又根, 劉兆子 등이 보인다. 주방 일을 보는 劉兆子는 여자 이름으로 보이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서귀본향당은 이중섭거리에 있다. ‘서귀 본향당 신화’는 특이하게도 자매간에 남편을 놓고 다투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ᄇᆞᄅᆞᆷ웃도가 홍토나라에서 천하미인을 발견하고 그 아버지와 바둑에 이겨서 딸과 혼인하게 되었는데 막상 신방에 들어온 딸은 자기가 본 미인의 언니였고 박색이어서 동생과 야반도주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들어온 곳이 서귀·동홍리인데 쫓아온 언니가 서로 경계를 나누어 서홍리를 차지하고 두 마을은 서로 혼인을 할 수 없고 원수처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집은 황당하게 만들어졌다. 벽을 돌로 쌓았는데 제주도 돌담 모양이 아니고, 돌벽이 너무 높다. 게다가 지붕은 초가 모양을 본뜬 플라스틱이다. 초가로 하면서도 제주 전통 초가의 공간구성을 따르지도 않았다. 유리창도 없는데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다.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았으면 살아 숨쉬고 있을 텐데 죽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바로 옆에 있는 이중섭 거주지는 그대로 초가니까 두 집을 모두 초가로 하고 1년에 한 번씩 초가집 이는 행사를 축제처럼 하면 많은 관광객이 모일 것 같은데 참으로 아쉽다.

서귀본향당에는 커다란 후박나무가 신목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2007년에 찍었던 그 나무가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서귀포 토평동에는 1930년대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성대학 생약연구소 건물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유명한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이 근무했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긴 했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죽은 공간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석주명 선생은 제주학 연구의 시초를 열었으며 제주 방언에도 관심을 가져 저서를 남겼다. 그는 스스로를 반은 제주인이라고 했을 정도로 제주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가 국군에게 총맞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1950년 10월 6일 서울 수복 전 미군의 폭격으로 불타버린 국립과학관의 재건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친구가 고구마를 삶았으니 먹고 가라고 붙잡는 통에 시간을 지체해서 허겁지겁 뛰어가다 대낮에 술을 먹던 국군 무리 중 하나와 부딪쳤는데 그 자가 양복을 입은 석주명을 보고 "저기 인민군 소좌가 간다" 라며 붙잡아 총으로 쏴죽이고 빨갱이 두목을 잡아 죽였다고 낄낄대며 시신은 가마니로 싸서 개천에 던졌다고 한다. 행인들 중에는 석주명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총 든 자들의 기세가 무서워 감히 변호해주지 못했다 한다. 죽기 직전 그는 "나는 나비 밖에 모르는 사람이오."라고 외쳤고 그게 그대로 유언이 되었다. 국내 생물학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은 이렇게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나는 제주시에 생활근거지를 두고 있어서 서귀포극장이나 삼일극장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서귀포극장은 1993년 화재로 영화상영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간판도 그대로 있고 다음프로 벽보도 그대로이고 상영중이란 글자도 그대로 남겨 두었다. 공공용도로 개방하고 있어서 들어가 보니 높은 벽으로 가려진 야외무대가 일품이었다. 지금도 작은 규모의 공연은 자주 이어진다고 한다. 삼일극장은 웨딩홀로 개조되어 밖에서만 구경했다.

소남머리 학살터에서는 4·3 당시 죄없이 불쌍하게 쫓겨다니가 붙잡혀와서 학살당한 사람이 밝혀진 숫자만도 247인. 알려지지 않은 영혼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 영혼이 주위를 맴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있는데 절벽을 바라보니 오싹해졌다. 저 절벽으로 떨어지면 총에 맞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목숨을 건질 수 없었겠다. 회원 중에 4·3 정명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 지 20년이 지나도록 정명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

정방폭포 주차장 동쪽에는 남영호 조난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큰 사고가 나면 거의 인재라는 판정이 나는데 남영호도 인재였다. 정원(321명)을 훨씬 초과하는 승객(338명)을 태웠고, 화물은 허용량의 4배를 초과한 840톤을 실었는데다가, 서귀항을 출항할 때부터 15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화물 결박 상태까지 엉성해서 갑작스런 강풍에 그만 배가 기울어 버린 것이다. 조난신호를 받고 달려온 배는 대한민국 해경이 아니라 일본 해상보안청 배와 어선이었다고 하는데 그들이 한국 해경에 사고 소식을 알렸지만 무시해 버렸다. 한국 해경은 12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으니 어떻게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겨우 3명을 구했을 뿐이고 일본 배가 구한 사람까지 모두 합해도 12명밖에 안 되었다. 당시 생존자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났는데 해녀들이 바다에 익숙해서 살았다는 걸 강조했던 게 기억난다.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내무부장관과 교통부장관이 사표를 냈지만 반려되었다. 선장과 선주도 짧은 기간 금고형을 받고 끝났다.

대한민국의 대형 사고를 조사해 보았다. 1953년 창경호 침몰(300명), 1963년 연호 침몰(140명), 1967년 해군 구축함과 충돌한 여객선 한일호 침몰(90명),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34명),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166명), 1993년 구포역 열차 전복(78명), 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68명), 서해훼리호 침몰(292명), 1994년 성수대교 붕괴(32명), 충주호 유람선 화재(25명), 1995년 대구 상인역공사장 화재(101명),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502명), 1999년 씨랜드 화재(23명),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192명), 2014년 세월호 침몰(304명), 2022년 이태원 압사(157명) 사고가 날 때마다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계속 반복되고 있다.

처음에 만든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은 서귀포항에 있었다. 임항도로 건설과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1982년 상효동 외진 곳으로 옮겨졌다. 지자체 당국조차 한동안 관리에 손을 놓아 수풀만 무성해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지금의 위령탑은 2014년에 신축한 것이다.

안내자는 소라의성을 답사 대상지로 포함시켰다. 나는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의아했다. 그런데 건물 모습을 보니 연상되는 건물이 있었다. 용담동에 있던 제주대학 건물이다. 건물 외형에 각보다는 곡면을 이용한 것이 특징인 건물이다.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했을 것이란 추정이 매우 합리적이다.

2022-11-15

제주흥사단 문화유산답사회장 고영철

[윤아]

회장님
감사합니다. ~^^

[芸香]

개인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상세한 후기가 현장에 있는듯 합니다.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