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적,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 / 욘 1:17 – 2 :10
하나님은 의로우기 때문에 인간들이 악을 계속 행하면 공의를 드러내시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심판하기 전에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래서 홍수심판 때는 노아를, 소돔심판 때는 아브라함을, 애굽 심판할 때는 모세를, 마지막 심판 때는 두 증인들을 보내어 공의를 들어내십니다.
그 이유는 예고 없이 심판하면 그 심판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거나 운명으로 돌리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죄인들을 사랑하사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섭니다.
그런데 요나는 사람의 생각을 앞세워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바다에 던졌는데
그 때 곧바로 물고기가 요나를 삼킨 것이 아닙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는 순간에 큰 바람과 풍랑이 순식간에 잠잠해졌고 그것을 목격한 선원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며 제물을 드리며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주의 파도가 바다 밑으로 몰아가면서 그 영혼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의 몸은 바다풀이 넘실거리는 바다 밑바닥 돌 사이에 낌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떠나 계속 내려가다가 스올까지 내려갔습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욥바로 내려가 배를 탓는데 그 배 밑층으로 내려가 잠을 자다가 바다에 던져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갔는데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물고기가 그를 삼켰고 스올까지 내려갔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려가면 안 됩니다. 내려가는 신앙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등지는 것입니다. 룻기에 보면 엘리멜렉이 가족들을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내려갔다가 자기도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계속 내려가는 인생이 되어 살다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지옥까지 내려가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독수리처럼 올라가야 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올라가려면 계속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얼굴에서 모든 은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날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내려가다가 결국엔 바다 밑까지 내려감으로 바다에 수장되어 몸은 물고기 밥이 되고 그 영혼은 스올로 가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평안을 누렸을 터있데 불순종함으로 계속 내려가다가 짠물만 배불리 먹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이런 상황을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피곤해질 때 주의 성전을 바라보며 여호와를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보낸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킴으로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바다 밑바닥 바위 사이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소에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데 기도할 시간에 세상 것을 즐기고 살다가 고난의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빨리 깨닫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는 불순종하는 생각이 일어났을 때 육신의 생각을 부인하고 기도해야 했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내려갈 때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배 밑바닥으로 내려갔을 때, 기도했어야 했고 늦었지만 제비뽑기를 통해 자기 죄가 탄로 났을 때 회개하고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들을 다 놓쳐 버리고 최고로 좋지 못한 환경에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최고로 고통스런 환경이었지만 그곳이 그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간절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자리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요나를 교훈삼아 좋은 환경에 있을 때 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요나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까요?
ㄱ.감사의 기도입니다.
자신이 죽을 상황에서 구원 받은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죽기를 작정했지만 막상 사망의 고통이 영혼까지 엄습해 오자 그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물고기를 보내어 바다 밑바닥 해초사이에서 구원해 주심으로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했던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사는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힘이나 공로로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모든 인간은 죽을 죄를 짓고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사는 것입니다.
사형수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두렵고 무엇을 해도 아무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호출을 받고 나갔다가 길이 사형장 쪽으로 바뀔 때 주저앉게 됩니다.
두건으로 눈이 가려지고 단두대에 세워져 오라 줄이 목에 걸리며 덜컹 소리와 함께 밑바닥이 떨어지면서 몸이 공중에 매달림으로 사망의 고통이 온 몸과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아 죽는구나 하는데 갑자기 목에 걸린 줄이 풀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요나의 상황이고 우리가 구원받은 상황입니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서 구원받은 것을 알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구원받은 것을 잊지 말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살다가 힘들 때,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사라질 때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ㄴ.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요나는 사망의 고통에서 구원받은 것이 나무 좋아서 큰 소리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지만
자신 처한 상황과 현실이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의 바다 속에서 요나를 구원해 주었지만 그에게 주신 물고기 뱃속의 환경은 냄새가 나며 어두었기 때문에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때 좋은 환경에 있을 때 구원받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하여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끌려 나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때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평안을 맛보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예배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결단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애통한 마음으로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결단을 합니다.
금방 환경은 변하지 않지만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내가 변화됨으로 삶과 환경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ㄷ.서원하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이 감동을 주심으로 울면서 자기 죄들을 고백하며 신앙의 결단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것을 해결해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서원을 합니다.
그 때는 감동을 받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을 서원을 하는데 기도가 끝나고 몇일 지나면 현실이 만만치 않음으로
서원한 것을 지키지 못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실망하는 것입니다.
요나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서원을 했지만 그것들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요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서원한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며 오직 구원은 야호와 하나님께 속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찬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요나는 기도하며 밤낮 3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하나님의 명을 받은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냄으로, 산자들의 땅을 밟으며 서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나가 밤낮 3일 동안 있다가 살아난 것을 요나의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바다에 던져짐으로 죽게 됩니다. 그의 몸은 주의 파도가 바다 밑바닥으로 끌어가 땅의 빗장이 그를 가둘 때 여호와를 생각합니다.
그 때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는데 요나는 그곳을 스올의 뱃속이라고 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서원을 갚겠다고 하면서 구원은 여호와께 속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해냄으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실제이신 예수님은 (마12:40-41)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땅속은 무덤이 아니라 땅 중심부에 있는 스올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 날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14일 날 오전 9시에 십자가 못 박히어 피를 흘리며 죽으시면서 7번 말씀하셨습니다.
제일 마지막엔 큰소리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몸은 아리마대 무덤에 장사되었고 그 영혼은 죽은 영혼들이 있는 스올로 갔습니다.
(벧전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리라
(행2:31-32) 미리 본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구약 때에는 의인이나 악인들이 죽으면 다 스올로 내려갔는데 그곳을 만드신 예수님은 그 스올이 큰 구렁을 두고 의인들이 있는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하는 곳과 또 악인들이 갇혀있는 스올로 나뉘어져 있다고 계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혼도 의인들이 있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밤낮 3일 동안 있다가 성경대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승리 하심으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취하신 것입니다.
스올은 영혼의 감옥으로 죄를 지은 자들이 갇히는 곳이기에 죄가 없으면 가둘 수가 없고,
만약 죄가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습니다. <마5:25-26>
예수님은 죄가 없었지만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짐으로 죄인이 되어 죽었지만 죄가 없음으로 그곳에 있을 수가 없고 가둘 수가 없기 때문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행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에 메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그래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의인의 영혼들도 예수님께서 피흘림을 통해 죄 값을 넉넉히 지불하심으로 그곳에서 나와서 하늘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로부터 신약의 성도들이 죽으면 그 영혼은 하늘낙원으로 들어가 부활 때가지 안식을 누립니다.
(히12:22-24)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경의 중심 주제요, 우리에게 최고로 기쁨소식입니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의롭게 되어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복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이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