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스테드먼 존스의 <우주의 거장들>을 읽고 있다
5장.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의 등장 1945~1971
흔히 케인스주의하면 큰 정부를 대표하기에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대부정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케인즈 정책을 적극 활용함에 따라 뉴딜주의의 시조로 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데 이 책 저자에 의하면 케인즈가 적극 정부 개입을 주장한 가장 큰 이유는 역으로 사회주의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사회주의를 막기위해 큰 정부를 주장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싶은데, 이거야말로 케인즈가 살았던 시대를 감안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될것같다. 즉 케인즈는 양차대전을 겪으며 경제가 초토화된 유럽에서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그 사회는 공산화의 길을 가게될 확률이 높으니 이를 막기위해선 엘리트 관료가 경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만큼 케인즈가 주장하는 정부 정책은 국가가 재정을 확대하여 정부 지출을 늘려서 (설혹 국가부채가 증가하더라도) 일자리를 만들어 수요창출을 해야한다는 국가 중심의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이를 적극 받아들인것이 바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케인즈는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케인주의= 큰 정부 혹은 재정확장 정책으로 자연히 사회주의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는데 확실히 케인즈가 살았던 당대 시대배경을 듣고보니 케인즈나 하이에크 둘 다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자본주의 옹호론자였다는 이 책 저자의 말도 이해는 된다. 다만 한가지 케인즈는 여전히 경제 관료들이 최고 엘리트이기에 이들이 (자유시장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계획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어떤 의미에선 결국 플라톤의 초인정치가 떠오르는 관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렇기에 케인주의는 어쩔수없이 개인의 자유는 당연히 국가에 의해 한계지어지고 규제받을 수 밖에 없는 정책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고 이것이 바로 진보 정치인들이 케인스를 마치 자신들의 시조인양 받아들이게 만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참으로 경제가 경제로만 쓰이지 않고 정치로 넘어가니 원 사상이 이렇게 변형되기도 하는구나 싶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케인즈와 하이에크는 원 뿌리가 다르다기보다는 자본주의 수호라는 같은 뿌리를 놓고 서로 다른 방식을 주장한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케인즈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반비례 현상임에도 1970년대 미국 경제에서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며 경제사에서 왕좌의 타이틀을 밀턴 프리드먼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고. 즉 프리드먼은 케인즈 이론에 반대하기보다는 포괄하고 더욱 발전시킨거라는 주장이다.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정책을 좀더 공부하면 케인즈와 프리드먼이 진정 같은 뿌리인지 아닌지 좀더 명확해질 것 같다
첫댓글 경제를 경제의 관점으로만 볼 수 있어야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현명한 정책들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 감정을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말의 의미가 다가오는 내용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이다.
뉴딜정책이라는 공공사업을 벌린 큰 정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케인즈. 그의 정책이 결국 사회주의를 막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결국 당시 유럽의 사례로 인해 대량실업이 공산화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이기에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그가 초인정치, 관료정치와 연결되는 부분은, 그런 정부 위주의 공공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이런 정책을 실행하는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인가 하고 나름 연결지어 본다.
보면 볼수록 '진보'정치인이란 단어 참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나도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