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
초기불교 명상은 두 범주가 있는데,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이다. 사마타 명상은 부처님 이전부터 실천되고 있던 명상법이고, 위빠사나 명상은 부처님이 발견하신 길(道)이자 불교 고유의 명상법이다. 사마타 명상은 삼매와 신통지를 얻지만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기 때문에, 열반의 증득을 통해 깨달음과 삼계 해탈이라는 최종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위빠사나 명상을 해야 한다고 초기불교는 분명하고 일관되고 주장한다.
사마타(samatha)는 ‘고요’, ‘평온’, ‘멈춤’이란 뜻이다. 번뇌나 망상 같은 다섯 가지 거친 장애(五蓋)인 탐욕, 성냄, 게으름, 들뜸, 의심이 강한 집중력에 의해 가라앉아 마음이 고요하고 맑고 평온하여 고도로 집중된 삼매나 선정의 상태를 ‘사마타’라 한다. 사마타 명상법에는 40가지 명상 주제들이 있는데, 대상에 따라서 명상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집중 대상에 따라 방법에 차이는 있지만,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마음챙김하며 근접삼매나 본삼매를 성취하려는 것만은 똑같다.
초기경전에서는 삼매(三昧, samādhi)를 ‘마음의 하나 됨(心一境性)’이라고 했다.『청정도론』에서는 ‘선한 마음의 하나 됨(善心一境性)’이라고 정의했다. 이렇듯 삼매는 ‘마음이 명상 대상과 하나가 된 상태’이다. 그렇게 하나가 된 마음 상태는 산란함이나 동요, 방황함이 없이 지극히 고요하고 청정한 상태이다. 삼매에 들기 전에는 집중하려는 마음과 집중 대상이 별도로 존재했으나, 삼매에 들면 마음과 대상이 서로 흡수되어 일원성이 된다. 이런 삼매의 상태는 희열과 행복감이 내재된 지복(至福)의 상태이다.
삼매는 근접삼매, 본삼매, 찰라삼매로 나뉜다. 근접삼매와 본삼매는 사마타 명상과 관련되고, 찰라삼매는 위빠사나와 관련된다. 근접삼매는 색계 초선정에 근접해 있는 삼매로서 다섯 가지 장애가 가라앉고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이라는 선정의 다섯 가지 요소(五禪支)들이 발현된 상태이다. 본삼매는 욕계선정인 근접삼매의 상태에서 색계 초선정에 도달한 몰입삼매인데, 색계 초선정에서 4선정까지와 무색계 공무변처에서 비상비비상처정까지 8선정을 의미한다. 찰라삼매는 위빠사나 수행에 필요한 삼매로서 몸과 마음이 끊임없는 생멸변화를 찰라마다 온전하게 집중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청정도론』‘11장’에 보면, 본삼매를 닦으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고 하였다.
첫째, 금생에 행복하게 머무는 이익을 준다. 둘째, 위빠사나의 이익을 준다. 삼매수행은 통찰지혜의 가까운 원인이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의 기반과 토대가 된다는 의미이다. 셋째, 수행자에게 신통지(초월지)를 얻을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넷째, 색계 선정을 성취하기 때문에 범천에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가진다. 다섯째, 8선정을 성취한 성자들의 본삼매 수행은 멸진정에 들 수 있는 이익이 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명상 수행과 열반의 가르침을 전하셨다. 무명과 갈애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고, 생로병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명상 수행과 열반의 증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명상 수행을 통해 부처님도 자유롭고 청정하게 뭇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는 삶을 몸소 보여주셨고, 제자들이 그 뒤를 이어왔다. 그래서 불교는 명상 수행의 종교, 자기성찰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위빠사나(Vipassanā)는 ‘꿰뚫어(vi) 봄(passanā)’, ‘분리해서 꿰뚫어 봄’, ‘통찰’이란 뜻이다.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겉모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현상 속에서 본질(本性)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이다. 주석서에는 ‘여러 측면으로 봄’, ‘다양한 방법으로 봄’이라고 하였다. 다양한 방법으로 본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무상·고·무아로 본다는 뜻이다. ‘위빠사나’라는 용어는 ‘명상 수행법’이라는 의미와 ‘통찰이 잘 되는 성성한 마음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념처경』은 위빠사나 명상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초기경전인데, 빨리(Pali)어로 ‘마하사띠빳타나숫따(Mahā-satipatthāna-sutta)’라고 한다. 마하(mahā)는 ‘큰’, ‘긴’, ‘위대한’이란 뜻을 지닌 접두사이다. 사띠(sati)는 ‘마음챙김(알아차림)’이란 뜻이다. 빳타나(patthāna)는 ‘기반이나 토대’, ‘영역’이라는 의미와 ‘확립’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념처경’은 ‘마음챙김의 기반에 대한 큰 경’, ‘마음챙김의 확립을 위한 긴 경’이란 뜻이다.
사띠는 대상에 정확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챙겨서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고 정확하게 관찰하여 아는 마음이다. 그래서 사띠가 있으면 명상하는 것이고, 사띠를 놓치거나 잃어버리면 명상하지 않는 것이다. 사띠가 순일하게 잘 이어져서 대상을 놓치지 않고 성성적적하게 관찰이 잘 되면 ‘사띠가 빳타나되었다’ ‘마음챙김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몸과 느낌, 마음과 법이라는 대상에서 마음챙김을 확립해가는 사념처 명상이 바로 위빠사나 명상이다.
잘 알려진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자귀의 법귀의(自歸依 法歸依)’의 구체적인 실천방법론이 사념처 명상이다. 위빠사나 명상은 ‘통찰 명상’, ‘지혜 명상’, ‘관찰 명상’이다. 찰라생 찰라멸하는 몸과 마음의 모든 현상을 마음챙김으로 관찰하여 통찰과 지혜를 얻는 명상이기 때문이다. 사마타 명상이 현재 의식에서 작용하는 탐진치 번뇌들을 다루고 제거한다면, 위빠사나명상은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된 미세번뇌와 무명을 다루고 제거한다.
부처님은『대념처경』서문에서 법의 핵심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길은 유일한 길(道)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부처님은 4념처 명상이 ‘유일한 길’이라 했는데, 사띠(正念)와 삼빠자나(正智)를 최대치로 계발하는 4념처 명상의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아니라 한 길이라는 것이다. 무리 지어서 왁자지껄하게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고, 혼자서 가는 길이고, 뛰어나신 부처님이 가르친 수승한 길이고, 열반으로 가는 길이기에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4념처 명상을 닦는 이유와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생들을 청정하게 한다. 탐진치, 무명과 갈애 같은 번뇌 때문에 인간은 생사윤회를 반복하며 고통받는다. 그런데 4념처 명상을 하게 되면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와 오염원들을 새롭게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묵은 업들까지 없애서 중생의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둘째, 근심과 탄식을 건너게 한다. 근심과 탄식이란 슬픔이나 비탄, 고뇌와 절망 등의 정신적 괴로움이다. 이런 고통스런 감정과 느낌을 수시로 느끼고 겪는다. 그런데 4념처 명상을 통해 느낌이나 감정, 마음과 생각의 본성을 무상·고·무아로 통찰하여 궁극적으로 정신적 고뇌들을 다 극복하게 된다.
셋째,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한다. 인간은 생로병사 등 다양한 육체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러나 명상을 통해 몸을 조복받고 정신적 희열이나 행복감이 일어나면 몸의 고통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극복이 된다. 명상은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육체적 고통도 사라지게 한다.
넷째,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옳은 방법이란 8정도를 의미한다. 4념처 명상을 한다는 것은 8정도와 계정혜 3학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게 된다는 의미이기에 궁극적으로 출세간의 8정도를 터득하게 된다.
다섯 번째, 열반을 실현하게 한다. 열반(涅槃)은 출세간 도과(道果)의 마음이고 최상의 행복이라고 불리는 무위법(無爲法)의 경지이다. 부처님이 45년간 법을 설한 이유와 제자들이 한평생 수행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열반을 증득하기 위함이다. 열반을 증득할 때가 바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고 견성의 순간이며, 범부종성에서 성자 종성, 부처님 종성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