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유 스위스 IMD 교수는 올해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뛰어넘다(Leap: How to Thrive in a World Where Everything Can Be Copied)'라는 저서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바로 기업이 한 분야에 대한 지식에만 고정되지 않고 이를 뛰어넘어 다른 분야의 지식도 습득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초 제조 전문가였던 윌리엄 프록터와 비누 제조 전문가였던 제임스 갬블이 만나 1837년 설립된 미국 소비재 기업 P&G는 사업 초기에 기계공학 부문에만 집중했다. 공동 창업자들은 노동력 소비를 줄이고 공장의 생산량을 확대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데 힘썼다. 이렇게 집중한 결과 1870년대 P&G 생산공장은 16개로 늘었고 직원도 300명이 넘었다.
하지만 윌리엄 프록터와 제임스 갬블의 아들인 할리 토머스 프록터와 제임스 노리스 갬블이 P&G 사업을 맡기 시작했을 때에는 가스등의 발명으로 이미 양초 사업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다. 더 이상 기계공학 부문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P&G는 자사의 강점이던 기계공학 분야에서 소비자심리 분야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들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수많은 하얀 비누들 중 사람들이 왜 P&G의 비누를 구매해야 하는지에 대한 광고를 한 것이다. 이 광고는 P&G의 대표 제품인 아이보리 비누가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최근 매일경제 비즈타임스는 유 교수와 인터뷰를 하며 기업들이 한 지식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뛰어넘는 '리핑(leaping)'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봤다. 유 교수는 "특허를 받아도 좋은 디자인과 훌륭한 아이디어는 모방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번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존에 중점을 둔 지식 분야(knowledge disciplines)에서 다른 지식 분야로 뛰어넘어 이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유 교수와의 주요 일문일답 내용.
―지식 분야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뛰어넘는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업이 속한 산업에 대한 지식이 정체(stagnant)된다면 해당 산업에 먼저 들어온 선도 기업들은 후발주자들의 공격에 흔들리게 된다. 선도 기업들은 경쟁사 때문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른 지식 분야로 이동해야 한다. 제품 제조 방법, 서비스 제공 방법 등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쌓기 위해 다방면에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후발주자들에게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시장 경쟁은 등산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경쟁사들은 산 정상에 도달하려 한다.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 변화가 천천히 이뤄지는 산업에서는 후발주자가 결국 기존 주자처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이는 퍼스트무버의 장점은 금방 사라진다. 그러나 헬스케어, 제약산업과 같이 지식 변화가 빨리 이뤄지는 산업에서는 그 누구도 정상에 도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경험과 이전에 축적했던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 산업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기존 기업들은 지식 분야를 뛰어넘는 데 더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
―특허제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모방되는 것을 완전하게 막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이 지속적 이득을 보장받기 위해 차별점을 찾는 것은 헛된 망상(illusion)이다. 지식재산권, 시장 포지셔닝, 브랜드 인지도, 제조 규모, 유통 네트워크는 한 기업이 타사와 경쟁하는 것을 장기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아무리 특별하고 차별화된 무엇인가가 있어도, 다른 기업들이 이를 '건드리는 것'을 피해갈 수는 없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번창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기존의 지식 분야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제품을 제조하는 새로운 방법이나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일본의 '리크루트 홀딩스(Recruit Holdings)'가 지식 분야를 뛰어넘어 모방의 시대에 살아남은 기업 중 하나다. 1960년대 초에 설립된 리크루트 홀딩스는 구인구직 광고 잡지로 시작했다. 이후 (잡지만 발행하다) 인터넷 혁명이 일어나자 리크루트 홀딩스는 사업을 수직화하며 부동산, 여행, 미용, 식당 등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리크루트 홀딩스의 디지털 플랫폼이 인기를 얻게 된 2015년 이 회사는 고객 행동과 결제와 관련된 방대한 양의 온라인 데이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AI) 리서치센터를 설립했다.
이렇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한 지식 분야에서 다른 지식 분야로 '뛰어넘은' 것이 리크루트 홀딩스가 모방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방법이다. (리크루트 홀딩스는 1996년 졸업생을 위한 구인구직 온라인 사이트 '리크루트 내비(Recruit Navi)'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드 카피 발간에서 온라인 발행으로의 이동이 자사 매출에 큰 타격을 줬지만 점차 온라인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리크루트 내비를 시작한 지 약 4년 만에 수익을 예전 수준만큼 다시 맞출 수 있었다. 이후 리크루트는 여행, 식당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했다. 그 결과 2015년 기준 리크루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1000명이 넘었고 이들이 관리하는 웹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각각 200개, 350개가 됐다.)
―특허가 모방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점 외에 특정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던 기업이 후발 주자에 자리를 내주는 이유가 있다면.
▷한 산업에 대한 지식이 '성숙'되면 모방가들은 선도 기업을 따라잡는다. 대부분의 경우 후발 주자는 더 낮은 가격 정책을 택한다. 그러기에 선도 기업에 많은 부담을 안긴다. 피아노 제조업체인 스타인웨이앤드선스(이하 스타인웨이)와 야마하의 이야기가 대표적 사례다. 스타인웨이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밴 클라이번 등 90%의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택했던 그랜드피아노 제조업체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스타인웨이는 스타인웨이다. 이 세상에서 스타인웨이와 같은 피아노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명성에도 불구하고 스타인웨이의 성과는 수십 년 동안 하락했다. 1926년 스타인웨이 피아노 판매량은 6294대였는데, 2012년은 2000대를 겨우 넘겼다. 그리고 1972년부터 1996년까지 스타인웨이의 소유주는 세 번 바뀌었다.
스타인웨이가 이런 변화를 경험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 야마하라는 피아노 제조업체가 등장했다. 공간이 넓지 않은 일본 집에 맞춰 야마하는 스타인웨이처럼 그랜드피아노가 아닌, 집 안용의 소규모 피아노를 만들었다. 그런데 스타인웨이와 야마하는 피아노 규모에서만 차이가 난 것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으로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제조되었다면, 야마하의 피아노에는 사람의 손길이 최소한만 들어갔다. 그 대신 공장에서 같은 모양으로 (스타인웨이보다 빠르게) 피아노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스타인웨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피아노 제조산업에 뛰어든 야마하가 1966년 콘서트 그랜드피아노 부문에 뛰어들었을 때 이 회사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피아노 제조업체가 됐다. 매년 20만대의 피아노를 제조하며 스타인웨이의 기록을 깼다. 선도 기업이었던 스타인웨이보다 더 다양한 기술을 갖췄기에 야마하는 마케팅, 유통, 채용, 생산 등의 분야에서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야마하는 (소규모 피아노인) 저가 부문에서 시작해 수익을 거둔 이후, 선도 기업인 스타인웨이가 1등을 차지하고 있던 고가 부문에 진입해 성공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 지식 분야에서 다른 지식 분야로의 이동을 언제 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언제가 적기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른 지식 분야로의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기업들은 시간이 아직 자사의 편에 있을 때 다른 산업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변화는 상당히 천천히 일어난다. 기술이 불러온 변화를 보자. 이 '파도'는 다가오기 전부터 보인다. 우리는 그저 어떤 파도를 탈지 잘 선택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혜롭게 (어떤 기술로 이동할지) 잘 선택한다면, 변화는 천천히 따라온다. 몇 년에 걸쳐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잡스가 2년 동안 브로드밴드가 오길 기다렸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 말이다.
2년의 기다림 끝에 브로드밴드가 드디어 나왔을 때 그는 아이팟을 선보였다. 애플 이전에 MP3 플레이어를 선보인 기업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온라인을 통한 음악 공유가 불법이었고 한 앨범을 다운로드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불안정한 인터넷 연결로 인해 아무리 디자인이 예쁜 MP3여도 다운로드를 할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잡스는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온전한 브로드밴드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
―한 지식 분야에서 다른 지식 분야로 이동할 때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미국 P&G 이야기를 예를 들어 말하겠다. 1946년 세탁세제 타이드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를 돌이켜보자. 타이드는 세계 최초의 합성세제로, 타이드가 나오기 전에 나온 비누들은 동물성지방이나 식물성지방으로 만들어진 비누였다. 합성세제인 타이드를 사용하면 '흰색 옷이 더 하얗게 보인다'는 강점으로 타이드는 1949년 최고의 세제 브랜드가 됐다.
그러나 사실 P&G 내부에서는 합성세제 연구에 대한 걱정이 심했다. 관리자들은 합성세제가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던 아이보리 비누의 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윌리엄 쿠퍼 프록터 회장은 합성세제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타이드) 합성세제는 비누 사업을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비누 사업을 망치는 회사가 있다면, 반드시 P&G여야 한다."
외부 사람이 봤을 때 P&G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경영진의 행동 중 하나는 분명하다. 바로 '자기잠식'을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개 경영진은 이익률이 낮은 자사의 신제품이나 서비스가 기존 제품의 매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 두려워한다. 가장 잘 팔리고 이익이 남는 제품에 투자해서 자사 전체의 이익에 타격이 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을 기억해보자. "자기잠식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자사를 삼켜버릴 것이다(if you don't cannibalize yourself someone else will)."
―기업이 한 지식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이동할 때 넘어야 할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분야로의 투자 결정을 긍정적으로 예측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업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만이 정당하게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아. 그냥 실행하자'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는 경영진이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이동해 성공을 거뒀다. 노바티스가 첫 표적지향성 약물(targeted drug)인 글리벡을 개발할 당시 이 약물 사용자인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는 많지 않았다. 매년 미국에서 약 8200명의 성인이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리는 반면, 전립선암 환자는 16만5000명이고 유방암 환자는 25만명이다. 이 때문에 노바티스 경영진은 글리벡의 수익성이 매우 적을 것이라 걱정했다.
이때 당시 노바티스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다니엘 바셀라가 강력하게 글리벡 개발을 지지했다. 그는 "노바티스는 사업체고 많은 경우 사업체의 결정은 통계분석과 수익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경영진으로서 의학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제품이 있다면, 해당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의무가 있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기술 운영진에게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실행하자'라고 말하며 글리벡을 세상에 알렸다(2012년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 산업은 47억달러 규모의 비즈니스가 됐고, 글리벡은 노바티스의 베스트셀러 제품이 됐다).
―한국 기업 중 한 지식 분야에서 다른 지식 분야로 잘 뛰어넘어 성공한 곳이 있다면.
▷삼성이 떠오른다. 삼성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전자산업에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무역업, 보험업 등을 거쳐 전자산업에까지 진출했다. 이후 삼성은 확실한 브랜드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었다.
▶▶ 하워드 유 교수는…
홍콩 태생인 하워드 유 교수는 홍콩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스위스 IMD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5년 MBA 전문지 'Poets and Quants'에서 선정한 '40세 이하 최고 교수 40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 미래 조직 관리와 운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가장 많은 30인의 경영사상가 리스트인 '싱커스50 레이더'에도 선정됐다. 그의 저서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뛰어넘다(Leap : How to Thrive in a World Where Everything Can Be Copied)'는 경영전문지 'Inc.'에서 '2018년 최고의 경영서적' 중 하나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