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위해 강원도 진부로 간 여름 얘기
약초와 나물을 캐며 사는 후배가 집 한 채를 임대 내어 진부 외곽에 살고 있습니다.
진부에 가면 방 세 칸에다 마당과 조그만 뒤뜰과 농기구
보관 창고 등을 갖춘 전형적인 농가인 그 후배 집에서 편안하게 숙식을 해결합니다.
진부에서 정선으로 이어지는 59번 국도 변에 소재하여 교통도 편하고 국도 바로
옆으로 오대산에서 발원한 여는 강에 버금가는 규모의 오대천이 흐르고 있어 언제라도
반도(뜰채)를 들고 나가 천렵을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장소입니다.
게다가 ‘꽃피는산골’ 이라는 맛깔스런 음식과 차를 유상으로 제공하는 멋진 쉼터도 바로
이웃해 직접 하는 취사행위가 지겨우면 동동주와 오대산 산채 등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후배 집에 들릴 때마다 방문하여 비록 상주하진 않지만 주인 내외완 이웃사촌이 돼버린 지 오래입니다.
진부에 가기 위해 일요일(8. 7) 오후 1시경 동해남부선 기장 역 앞에 도착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개 혓바닥처럼 늘어진 이파리들을 단 플라터너스 가로수 몇 그루가 서
있는 역전은 상권이 썰물처럼 빠져버려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십 여분 지나도 차 한대도 접근하지 않아 무료함에 빈 가게의 쇼 윈도우에 비친 반바지
차림으로 후줄근하게 서 있는 낯익은 한 사내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자주 접하지 못하는 차 한 대가 옆을 스쳐 지나갔다가 유턴하며 멈추더군요.
만나기로 약속한 엿재이의 후배인 윤선초임이 직감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생면부지라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 윤선초의
차에 편승했는데 차종이 Jeep에서 출시된 연식이 좀 오래된 감청색 cherokee였습니다.
(체로키는 인디안 한 부족임)
본네트 가장자리의 도색이 군데군데 벗겨져 마치 백반증을 보는 듯 한 다소 아쉬운 느낌에도 불구하고 들판을 종횡무진 달리는 다리가 늘씬한 야생마의 이미지는 감추지 못했습니다.
늘 무쏘나 카니발같은 차량만 타다가 비록 좀 낡았지만 오프로드 전용인 체로키의
조수석에 앉으니 내 엉덩짝에 새겨진 몽고 반점도 증거하듯 감춰진 야성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군요. (맘이 약간 달뜨면서...^^)
찬찬히 훑어 본 차 안은 지저분하지는 않았지만 틈만 나면 들이나 산으로 쏘다니는 사람다운 분잡함이 배여 있었습니다.
근데 오너인 윤선초, 다소 유별스런 이름과 함께 첫인상이 결코 만만치 않더군요.
짧게 절단한 머리칼과 면도를 했지만 얼굴 가장자리를 온통 다 차지한 검푸른 수염
자국들로 인해 체로키의 야성을 훌쩍 뛰어 넘는 야성미가 물씬 풍겼드랬습니다.
게다가 훌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하며 단을 말아 올린 반바지는 압권이었습니다.
선초의 야성미에 보조를 맞추느라 저도 슬그머니 반바지 단을 말아 올리고 또한 티셔츠
소매마저 말아 올렸습니다.
부산에서 강원도 진부까지는 대략 5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진부로 가는 동안 선초의 인상에
주눅 들어 그의 진면목을 파악하느라 말도 못 꺼내다가 진부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겨우 말문을 열 정도였지요.(사 나흘간 겪어 봤더니 인상과 달리 성격이 멍게 속살처럼 부드럽더라구요 ^^)
여름 휴가를 낸 산골소년과 엿재이는 경북 팀들과 조인하여 하루 먼저 후배 집에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엿재이와 소년과는 사 개월여 만의 해후여서 매우 반가웠고 특히 비슷한 연배의 엿재이는
언제나 넉넉한 고향 후배를 보는 것 같아 내 맘까지 넉넉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경북 팀들과 인사를 나눈 후 여장을 풀고 짬도 없이 선초가 준비해온 아나고(붕장어)와
곰장어(갯장어)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석쇠 위에서 몸을 뒤틀며 구어지는 산 곰장어와 벌건 양념장을 뒤집어 쓰고 지글거리는
아나고를 경북 팀들은 심상찮은 표정으로 지켜보더군요.
엿재이와 선초와 산골소년은 모두 해안가인 기장에 살기 때문에 해물을 자주 접하고 다루는
솜씨 또한 능숙한 편입니다.(물론 엿재이는 고등어 밖에 몬 먹는 유별스런 체질이지만...)
해물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경북 팀들은
잘 구어진 곰장어의 껍질을 능숙하게 벗겨내고 먹기 좋게 살을 쭉쭉 찢어대는 산골소년을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권해도 젓가락질을 주저하기만 했습니다.
곰장어의 구어진 모습이야 조금 그로테스크하지만 소금 친 참기름에 살짝 찍어 입에 넣어
차근히 씹어보면 그 구수하고 담백한 맛은 상상 이상인데 선뜻 내켜하지 않는 내륙지방 출신들...
전 절 생활 넉 달만의 휴가라고 강조하면서 곰장어를 게걸스럽게 먹었답니다.
집으로 귀가하는 경북 팀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어둑해지는 마당 가운데 비취 파라솔
식탁에다 저녁상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이슬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한결같이 반바지나 팬티만 걸쳐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의 복장과 비슷했다고나 할까요.
젊은 후배들이야 야성이 넘쳤지만 빈약한 제 몸은 야성이라고 표현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였지요.^^
나이 들면 나이 살이 붙는다든데 전 아직 군 살 하나 없어 넉넉한 몸피가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근데 마른 장작이 화력이 더 좋다는 말 핀잔이 아니고 칭찬이 맞죠? 헤헤
엿재이와 산골소년은 전날의 과음으로 이슬을 아꼈지만 선초와 나는 잔을 빨리 비웠습니다.
마시다가 간혹 올려다보는 저녁 하늘은 중국 상해로 상륙한다던 무슨 태풍 탓인지 거무튀튀한 비구름듫이 빠른 속도로 북동진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간간히 암청색 하늘이 열리고 그 새로 별들이 보이다가 이내 사라지더군요.
내 기억의 바다도 보이다 사라지는 별처럼 점점 빛을 잃어가고 빛을 잃은 자리마다 이슬이
출렁이고 후배들과 어울려 만든 한여름 밤의 풋풋한 기억들이 출렁이는 이슬 위로 하나 둘
표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날에 이어진 채심 산행과 오대산 모 계곡에서 천렵, ‘꽃피는산골’ 의 고혹적인 안주인이 합석한 별밤의 이슬파티와 진부 다운타운 공략 등등의 무수한 애기감이 있으나 지면 관계상 첫날 애기만으로 마무리합니다.
이제 처서가 지나 조석으로 서늘하여 엊그제 그 불같은 더위가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집니다.
여러 회원님들 앞으로 맞을 가을과 그 가을의 첨병인 한가위를 건강하게 보내시길 소원해봅니다.
첫댓글 전처사님 며칠전 사진으로 뵙고 글을 접하니 건강하시리라 믿습니다 ....
전처사님 글을 읽으면 글 속으로 완전히 빠져드는 마력에 환한 미소를 지어봅니다...늘 건강하세요...^^*
하하 정말 재밌네요~~
구미가 당기는 아니.... 감칠만 나는 글솜씨가 좋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전처사님 반갑습니다. 대단한 표현력과 글 솜씨에 실물처럼 생생하게 전해옵니다. 다음에 함 뵈올날이 있겠지요.
좋은글 잘읽었어요 너무 실감나게 서술하셨네요 좋은산행 많이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한편의 수필같은 산행기 참 재밌네요
글 잼나게 잘 읽엇씀니다 ^^ 또다른 공부 함니다 ^^ 셩실 ^^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말이 절절이 와 닿습니다 ^^
전처사님 지금 집에 계신가요,,토곡에 사시는 친구분께서 술 한잔 하자고 하시던데요^^ 내일 연락해서 시간이 맞으면 토곡사장님하고 만납시더^^
재미나게 잘읽고요 건강하시지요
^^* 넘 간만이십니다.........
웰캄투동막골 영화에서 연합군이 멧돼지 사냥해서 구어먹는 장면이 있는데 꼼장어 구이와 별밤에 이슬이랑 오대산 모계곡에서의 천렵 넘 멋있습니다 전처사님의 글 잘 읽었슴니다 언제 한번뵈올수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랜만에 전처사님 글 접하네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거 같아, 많이 반갑습니다. ^^*
전처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건강하시죠 ...언제쯤 부산에서 뵐수 있으려나 ...반갑습니다 ...^^*
꽃피는 산골과 그옆 아담한 집.....눈에 션~~합니다....좋은시간 보내셨군요....맑은물 바위밑에서 작살로 잡아서 회쳐서 먹던 그맛도 일품이지요....^^
처사님 ... 정말 재미 난 시간 이었습니다. 건강 하십시오.
처사님 건강하시죠
전 처사님의 필력에 잠깐이나마 빠져들어 한편의 영화를 본듯 하네요, 잘~`보았읍니다 꼭한번 뵙고 쉽군요....
처사님 절간에 손님은 다 가셨는지,,,,그날 홀로 계시게하고 떠나는 지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더이다,,,,,,
처사님 인기가 어젼하십니다요..절에 있으나 무간지옥에 있으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