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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째를 맞은 전두환 정부는...
1981년 5월 광주 사태 2주년을 맞이해 대학생 및 재야 단체들의 대 규모 투쟁과 5월 노동절에 맞춰..
학교,기업,금속 연맹,,,,등의 대규모 반 정부 시위를 예상하고..
이 시기에 대한 정부 대책을 고민 하던중..
전두환 정부 시절 3許로 유명했던 허문도 문공부 장관의 기획 아래...
(허문도는 훗날 전두환 정권 말기 레임덕이 가시화 되고 노태우의 87년 서울 항쟁시 대통령 직선제 발표 후 온나라가 시끌 시끌 해지자 김일성 동경에서 사망 이라는 황망한 기사로 모든 시선을 김일성에게 돌리기도 했던 전두환의 가신중 최고의 두뇌를 가진 사람 이었다.)
한참 개발 중이던 여의도 광장에 대대적인 문화 행사와 한민족 유사 이래 이 보다 더 클 수 없었던 전국민 축제의 場을 계획하고 만들기로 한다.
돌아가신 토지의 작가 故 박경리 선생의 사위 였던 詩人 김지하,
각 대학요 연극 동아리 및 풍물패들,,
이 행사를 총괄했던 KBS의 임진택 PD,,,등 각종 유명 문화 인사들을 섭외 하고자 했지만...
이 들은 모두 고사...
결국 임진택은 KBS에서 강제 퇴사 조치 되고 2000년 노무현 정권 시절 81년 KBS가 본인을 일방적인 해고라 주장하며 훗날 복권 되기도 했지만 20여년이 다 된 반백이 되어 명예 회복은 했다 지만 그 것이 다 무슨 소용이었겠는지....
할 수 없이 서울대 졸업생들로 구성된 연합 풍물 패를 가운데 세우고는 이름을..
(훗날 이들은 전두환 정권에 협력 했다는 이유로 서울대 후배들과 지금도 연을 끈은채로 모르쇠로 지내고 있다 한다)
"전국 대학생 민속 . 국학 큰 잔치...........이른바 국풍 81"의 개회를 선언하고 여의도의 초 여름 날씨를 보이던 5월 28일 부터 6월 1일간 민족의 대 축제 기간으로 잡고는 방송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 들을 매일 몇 천대식의 버스로 대절 시키며..
5일간의 짧은 기간에 3천명이라는 엄청난 관객들이 구경 하는 희대의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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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방송사가 KBS에서 MBC로 옮겨지고...
전두환과는 군 시절 인연을 맺었던 이환의 당시 MBC 사장의 지휘 아래 MBC는 연일 대대적인 홍보를 했고 정권의 나팔수 역활을 충실히 했다.
훗날 이환의는 문공부 장관과 MBC 청룡의 프로 야구단 구단주를 역임 하는 등..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많은 영화를 누렸지만 88년 청문회때는 이때의 일들로 엄청난 곤욕을 치루기도 했던 '사필 귀정'의 인생사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던 영욕의 인물 이었다.
당시의 걸개 그림에서 보듯이..
여의도는 한참 개발 중 이었고 걸개 그림이 걸려 잇는 곳이 현재의 사학 연금 회관 건물 자리이고..
맞은편 철골 구조물로 한참 공사 중인 건물이 현재의 전경련 회관 자리 이다.
당시 고 3이던 나에게는 국풍 81의 축제는 그저 신이 나기만 했던 축제의 장으로만 기억이 되었다.
나중에야 이때의 일들이 아~ 저런 사연이 있었구나 했지만...
축제 기간중 여의도에 가면 벚꽃 부터 해서 각종 유흥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고..
무엇 보다 근처 여의도 여고 및 영등포 여고 여학생들이 안내 해주는 그 광경들이 좋기도 했었다..^^
해서 국풍 81이 만든 스타가...
바로 경희 예술 전문 학교에 재학중 이던 이용의 '바람 이려오'가 이때 탄생 한다.
'바람 이려오'는 이 후 81년 대학생및 종로 음악 다방에서 젊은이들이 제일 많이 리퀘스트한 노래로 알려지며 이 해 최고의 노래로 선정이 되기도 할 만큼 이용의 당시 인기는 대단 했었다.
또한 시골 출신의 무명의 여 가수 이정희의 '그대여'란 노래도 이때 탄생이 되었고..
바로 뒤 KBS 대학 축제에서는 석미경의 물안개가 대상을 타며 세인들에게 알려지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추억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7080 가요중 많인 불리우는 노래들로 인기가 있던 노래들이 이때를 전후로 해서 탄생한 노래들 이다.
바로 위 형의 친구들인 연세대 출신의 경제학도들인 '혁과 준' 이라는 참가팀이 불렀던 '분내'라는 노래는 지금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까 싶지만 당시로는 가사 자체가 괭장히 클랙식 했고 한편의 詩를 읽는 듯한 멋진 가사로 진정한 아마 추어 리즘을 알리며 최고로 호평을 받기도 했던 노래 였다....
이 축제 기간을 이용...
전국의 대 규모 반 정부 시위와 시끄러운 정국을 엎었던 허문도는...
국풍 81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 국민을 프로 야구팀 창단 이라는 또 하나의 스포츠 이벤트로..
당시로는 프로야구 출범이 관제 스포츠라는 비난을 받으며 전두환 시절 상관 이었던 서종철을 KBO 초대 총재로 82년에는 역사적인 프로야구가 미국-일본에 이어 3번째로 한국에도 프로 야구의 시대를 맞이 하게 된다.
(서종철 총재는 2004년 노환으로 사망 했지만 서종철 총재의 손녀딸이 한때 유명했던 남여 혼성 그룹 '샵'에 서지영 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도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작금의 이런 빠른 디지털의 세대에 살다 보니 옛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칫 우리 역사의 큰 굴레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제 저녁 모처럼 만난 고교 동창들과 이런 저런 옛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제 우리도 늙었나 보다.........했던 말들이...
이런 엊그제 일 같았던 일들이 이제는 보통 2~30년전은 기본으로 흘러가 버렸다...
지방에 있는 모 대학에서 1960~1990년 까지의 현대사 정리를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이것 저것 스크랩 하던 중..
얼마 되지 않은 이 정도의 사건들은 우리들이 다시금 한번 쯤은 우리 역사의 지나간 헤프닝 성 기사로 기억해도 좋을 듯 싶어...
머릿말만에만 몇자 석어 두서 없이 자유 계시판에 적어 봤다...
첫댓글 우리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우~~~그때가 참 좋았는데^^ㅎ
레드 그때 교복 생각나나??
양갈래 딴 머리 역시...^^
생각난다,,,당시 KBS 인사부장하던 사람이 잘 아는 사람이여서 국풍행사를 여의도에서 했었는데..
감사패1000개 방송국으로 납품을 해서 원가 6,500짜리 16,500원에...
정사각 원목에 신주로 된판에 탈모양 부식으로 새겨넣어...기억이 새롭네여~!
지기님 저는 집에 지금도 그 기념패 어딘가 찾아 보면 있을 겁니다.
당시 국풍 뺏지,기념 페넌트,모자....에
기념패들도 많이 들 사고 했습니다..^^
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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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여 그시절 젊은날이 그리워라
ㅎㅎㅎ ...얼마 안된거 같은데..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죠...^^
아... 옛날이여~~~!!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벌써 내 나이도 어느듯......
제주도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비오는날 가야호(?)타고 배멀미 엄청하며 부산으로 와서 간단하게 식사하고...
한일고속버스(^^*)타고 곧바로 여의도로 직행... 그래서 국풍에 참여했던 친구들 얼굴 잠깐 만나보고...
늦으막하게 집으로 들어 갔더니...
3일 후에 논산훈련소에서 들어오라는 초대장(?)이 와 있더군요...^^*
제주도, 국풍과 미모의 고속버스 안내양 그리고 군입대... 아~! 1981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