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진첩.
- 아버지가 바라던 며느리감. 결혼- 사진 : 24매 (12~11)
□. 아버지가 바라던 며느리감
-. 허심탄회한 성품의 아버지
고향에서도
그 이후도 그랬던 일이 있었지만,
내가 아는 여자에 대하여
몰래 약속장소에 오셔서 보시고는 후에 평가를 하셨다.
그때 그시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는
자식의 친구들을 내 자식같이 여기고 악수를 나누시고,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과 막걸리도 함께 나누시며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대화를 하신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뿐만 아니고,
황강리 집에서 아버지 손수 음식을 챙겨
가족과 같이 즐겨 식사를 했던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 아버지가 바라던 며느리감
아버지 생존시에 여러차례 하신 말씀 중에
"명종이 아내가 될 사람은 명종이가 몸이 약하니
얼굴은 대문짝 만하고, 키는 전봇대 같이 크고, 발은 소 도둑놈 같고,
몸집은 드럼통같이 튼튼한 여자라야 한다." 라고 하셨다.
늘 하시던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욕심이었겠지만,
며느리가 튼튼해야 건강한 후손을 낳을 수 있지 않겠나, 라고 하신 말씀이었다.
□. 결혼
-. 약 1년 6개월의 교제
공군
간부후보생 동기인
지금은
고인이된 김동일(金東一. 중령 예편. 아들 김기환)의 소개로 이루어진
4촌 처제
박정자(朴靜子1948년생. 키 168Cm)와
약 1년
6개월여의 교제 끝에 결혼을 했다.
-. 결혼
공군 고참 소위였던
1970.
1. 10.(토) 12 : 00시 (음력 12. 3).
찬바람이
간간히 부는 날씨에
하늘에서 눈이
풀풀 날리며 내리는 날
대전시 중구
대흥동 소재 대전예식원(大田禮式苑) 1층에서
당시 대전시장
이완종(李完鍾)님의 주례와
자별했던 친구
및 공군 선후배와 동기생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하였다.
이제 평생 동안 나누는 긴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아쉬움은
아버지께서 생존해 계셨더라면,
친장모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운명을
어찌할 수 없는일이 아닌가 ? 라고 생각도 해 봤지만,
세상에 더 이상 없이 즐거운날이라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셨을 아버지의 존안이 그리워짐을 평생토록 가슴에 묻고 살아 왔다.
그 시절엔
결혼식에
참석하신 일가친척과 하객들에게 식사 제공은 물론
사은품(謝恩品)을 주었는데 프라스틱 세숫 대야를 하나씩을 드렸다.
2016. 1. 10(일) 12 : 00시 대전에서 이명종
추신 :
이글을
쓰는 지금 시각으로부터 46년 전에 결혼을 하였으니,
반세기가 가까워 오는 결혼생활을 뒤 돌아 보면,
흔히들
일컫는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가운데 난관(難關)이 많았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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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설명 :
-. 앞줄 좌측으로부터
앉아 계신분 신부의 혼주 故 박팔복(朴八福) 장인,
4톤 처남 朴龍洙, 서울 셋째 누님 외아들 金基永(金章錄의 외아들), ? , 이고,
-. 두번째 줄 좌측으로부터
서있는 어린이 작은외숙 두째 아들 정영민, 검은색 교복 차림인 나의 남동생 이인종,
충주에서 온 8촌 형님 이종권(李鍾權, 현재 충주댐 화암리를 지나 좌측에 거주),
하얀색 ? , 큰외숙 셋째 아들 鄭升永, 큰외숙 정경용(鄭慶鎔)이고,
-. 셋째줄 좌측으로부터
3명 ? ,
-. 넷째줄 통로 건너편,
여자분이 함암리 이순재 아저씨의 부인 아주머니(충중 13회 동기 李忠雨 큰누님),
통로 우측으로부터
? , 얼굴이 3분 2만 보이는 한수면 황강리에서 오신 안기동(安基東) 어른,
함암리 이순재(咸岩里 李順載) 아저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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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설명 :
-. 앞줄 좌측으로부터
장정현(대전 대흥동에서 인쇄업), 간후 57기 윤석구 소위,
사복차림의 청주고 및 고려대 후배 59기 민인기 소위,
청주고 33회 동기 김근학(청랑회원, 충북 및 대전시 부교육감, 초원대 교수, 33회 서울 동기 회장),
신랑 이명종, 신부 박정자, 신부 친구 강보비, ? , ? , 등이고,
-. 두번째 줄 좌측으로부터
청주고 33회 성기훈(대전일보 편집국장, 중도일보 고문),
김구부(구명 김용혁,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인, 자유시민연대 대표),
간후 56기 동기 ? , 신랑 뒤 간후 동기 이윤우 소위,
신부 뒤 사복차림 간후 56기 동기 강순권 소위, 신부 친구 3명,
-. 세번째와 네번째 줄 좌측으로부터
? , 얼굴만 보이는 박삼용(충주박씨 대전지역 조친회장, ? ,이고,
역시 얼굴 3분의 2만 보이는 고 유선웅(고 유선웅, 유성면 복용리 2구 새터마을 옆집),
아내의 4촌 형부 간후 56기 동기 고 김동일 소위(중령 예편, 처음 소개한 이),
그늘에 가린 얼굴 한수초 33회 고 권희청(고 권희청, 나의 집에서 약 19년동안 같이 지냄),
넥타이 맨 사복 차림의 간후 동기 ? 소위), 간후 동기 ? , 간후 55기 구자 ? ,
청주고 선배 시설대대 문관 김남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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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665294556989AD00E)
![](https://t1.daumcdn.net/cfile/cafe/2723394056989FC21B)
![](https://t1.daumcdn.net/cfile/cafe/277F84415698A0E62E)
![](https://t1.daumcdn.net/cfile/cafe/25782A3F56989CC739)
위 사진 설명 :
-. 1970. 1. 2일
대전시 서구 괴정동 139~7번지 본가
(감나무집 : 백운초등학교 옆. 공군 소위 때 건축)에서
큰아들 李承洙의 백일 잔칫날 참석하신 분들입니다.
-. 앞줄 좌측으로부터
처 고모. 장모. 아기 승수를 아고 있는이 아내. 처 작은어머님.
어머님. 작은 외숙모. 의형수. 의형(林承德)이 안고 있는 아이는 의형의 두째 아들.
남동생 李錫鍾. 자전거 타고 있는이 처 작은 집 처남 朴良洙.
-. 뒷줄 좌측으로부터
장인. 李明鍾. 작은외숙 鄭完鎔. 충주중학교 13회 동기 李武一. 그의 친구 등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546B455698A02123)
![](https://t1.daumcdn.net/cfile/cafe/2209554056989D2104)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CD44056989D8F39)
위 사진 설명 :
-. 1971. 1. 2. 큰아들 이승수(李承 洙)의 百日(100日) 잔치
대전시 서구 괴정동 139 ~ 7번지 본가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97D445698A59403)
위 사진 설명 :
-. 이승수의 100일 기념 사진을 1970. 12. 25.
대전시 중구 대흥동 "내 모습 사진관"에서 찍었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0F93E56989B9835)
![](https://t1.daumcdn.net/cfile/cafe/2634AA425698A8500E)
위 사진 설명 :
-. 1972. 10. 2. 서울 남산 팔각정 앞에서
큰아들 이승수의 2살 생일날이고 작은 아들 이장수는 100일이 아직 안된 때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C37465698A8CD03)
위 사진 설명 :
-. 1973. 5월 대전시 서구 괴정동 139 ~ 7번지(감나무집 : 백운초 옆)
본가(1968년 봄 여름까지 건축한 집 : 대지 84평. 건평 28평)의 거실 창문에 앉아 찍은
가족 사진입니다.
첫댓글 확실히 브로조아? 댁이라 그 당시에 저러한 결혼식을 하신거지 한수면 거주인의 대부분은 저러한 결혼식은 꿈도 꾸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동네잔치하며 식사대접하기를 빈 사랑방이나 건조실 같은 남는 공간에 다과방을 만들어 다과를 곱게 쌓을수 있는분들이 계속하여 다과접시를 만들어 놓으면 아주머니들이 나르고 상차려 손님대접했고 가마타고왔거나 또는 걸어서온 신부는 넓직한 큰 흰 수건을 포개 두손에 두르고 하루종일 고개숙이고 앉아있었지요..신부 구경갔던 어린 저희들은 신부앞에 잘 차려진 다과상에 부러움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채 마냥 이뻐보이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며 친구들끼리 킥킥대곤 했었구요~
그나마 우리 서운리에서 신식 결혼식을 한적이 있는걸 본적이 있는데 폐교된 분교 교실에 빙둘러 빤짝이들 두르고 색종이로 꽃만들어 치장해놓고 흰 면사포쓰고 결혼했던분이 있는데 이젠 이름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신부는 제 동창친구 언니이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