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된 모 방송국의 '스카이 캐슬'이란 드라마가 이채로운 흥미를 끌면서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정말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너무나 다른 세상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일 것이다. 상위 1% 사람들의 모습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입장에선 경이로운 세상이었지만 닮고 싶지는 않았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입시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좋은 대학(SKY)에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한민국에 사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다. 자녀가 있는 공통된 부모의 고뇌와 입시지옥에 갇힌 아이들의 모습이기에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세계적으로 수능일에 온 국민이 집중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수능일에 아이들이 시험장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출근시간이 조정되고, 교통경찰이 수능생을 픽업하여 시험장까지 수송하고, 시험장 주변에선 헬기도 비행을 하지 못한다. 2017년 수능일에는 대통령이 승용차로 행사장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우리는 왜 이리도 아이들의 입시에 집착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부모의 재산이나 지위가 그대로 세습되는 문화와 사회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겼다. 그 경계로 인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경계 밖의 사람들은 경계 안으로 쉽게 진입하지 못한다. 다 같이 못 살던 시절에는 머리가 뛰어나거나, 부지런히 노력하거나, 무언가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드라마에서 아이들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려놓으려는 아버지가 있다. 그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뛰어난 두뇌와 노력으로 스카이 캐슬에 입성했다. 그 자신이 밑바닥을 기어서 획득한 사회적 위치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피라미드의 정점을 가리키며 주입시킨다. 아버지는 자신의 교육관을 주입시키기 위해 자식 앞에 피라미드를 놓는다. 피라미드는 하나의 조직을 보여준다.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다수가 있고, 그들 위에 관리자가 있고, 그들을 통제하는 권력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정점에 최고의 권력이 있다. 피라미드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위로만 올라가라고 등을 떠민다.
'스카이 캐슬'에는 자신들만의 성채에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양한 가족들이 살아간다. 2대째 서울 의대를 나와 자신의 딸을 서울 의대에 보내려는 전형적인 신분 세습형 부모, 가난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 없이 자수성가한 출세지향의 부모, 잘 나가는 그들을 쫓아가는 게 제일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방식을 흉내 내는 부모,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자율적인 부모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부모들을 닮아가는 아이들과 그런 부모를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 부모의 구속을 벗어나려는 아이들,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이의 모습들이 나온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한다. 그리고 그들을 유혹하는 서울 의대 합격 전문인 입시 코디가 있다. 입시 코디는 부모의 맹목적인 마음을 이용하고, 아이들의 영혼을 마음대로 조종한다. 그리고 자신을 전적으로 믿으라고 부모와 아이들을 세뇌하면서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아이들이 서울 의대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그 후 그 가정마다 불행이 닥친다. 불행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나 원인은 하나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꼭대기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 근원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입시 뒷바라지 때문에 학교로 학원으로 밤낮없이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야말로 가을 낙엽처럼 정착지를 모르고 떠돌던 시절이었다. 모든 결정은 아이들이 알아서 했고, 나는 오로지 운전대만 잡았다. 평일에는 학교가 멀었던 큰 아이의 통학을 시켜주기 위해 7시가 되기 전에 출근하고, 야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운동장에서 아이를 픽업해 왔다. 주말에는 두 아이의 학원 주변을 맴돌았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했던가. 가진 게 없으니 오직 해 줄 수 있는 게 운전뿐이었다.
그 당시에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그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받은 재력도 없었고, 직장 맘인 엄마에게선 정보력을 기대할 수가 없었고, 오로지 아빠의 무관심만 있었다. 그런 연유로 좋은 대학도 원하는 대학도 들어가지 못했으나, 열심히 자신의 방법으로 길을 찾아서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에겐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나와 세대를 같이한 엄마들이 할머니가 되어서일까. 할머니의 기획력이 더 필요하고, 아빠의 무관심이 아닌 인맥까지 필요하다니 대학 들어가기엔 바늘구멍도 크다는 느낌이다.
최근 수년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 대한 갑질 논란이 우리 사회를 갑과 을로 양분화하고 있다. 흔히 갑이라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을에 위치한 사람들을 대함에 거침이 없다.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안 된 사람들이다. 더욱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건 배운 바가 없기에 기대할 수가 없다.
특히 얼마 전 모 언론사 사장 손녀의 갑질은 대중들의 분노를 샀다. 10살 소녀가 50대 운전기사에게 '아저씨는 해고야. 진짜 미쳤나 봐.'와 같은 말을 서슴없이 해왔다는 것이다. 성인들도 쓰기 어려운 단어인 '해고'라는 말의 의미를 이 아이는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으며, 적절한 상황에서 적확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 아이에 의해 운전기사는 해고를 당하기까지 했다.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수십 년을 일해 온 아저씨는 얼마나 많은 해고의 상황을 거쳐왔을까. 하루하루가 해고의 위기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들의 갑질은 아들딸과 며느리,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고 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스카이 캐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계급장을 달고 지상에 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살고자 한다. 자신은 다른 계급이란 생각이 뼛속 깊이 자리한 사람들이다. 갑과 을의 관계도 아닌 봉건사회의 주종제나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처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권력을 휘두르고자 한다.
드라마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서야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치는 부모에게 아이가 되묻는다.
'그런데 왕은 피라미드의 중간에 있어요. 왕도 중간이 좋아서 거기에 있는 거 아닌가요?'
중학생 아이의 평범한 물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꼭대기에 앉아본들 모든 시선이 거기에 닿아있으니 자유롭지 않고, 그곳에서 끌어내리려는 자들이 도처에 있으니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지상에 집을 짓고,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잘났어도 하늘에 발을 딛고 살 수는 없다. 스카이 캐슬을 사는 그들에게 젊은 날에 좋아했던 칼릴 지브란의 싯구를 들려주고 싶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물론 좋은 말을 들려준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어야 할 테니 소용없는 일이다. 크고 높은 자리의 화려함보다 작고 낮은 자리의 소중함, 눈에 보이는 실리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걸 그들은 모를 테니까.
어차피 벽돌 한 장 없이 시작한 '성채'이기에 누구나 처음부터 쌓아올려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부모가 물려준 벽돌로 제아무리 멋진 성을 쌓는다 한들 그것이 제 것이 될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손이 언젠가 그 성을 무너뜨릴 것이다. 제 힘으로 쌓아 나가는 과정이 없다면 쓰러진 성을 어찌 다시 쌓을 것인가.
첫댓글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문제겠죠. 저렇게 살아갈수록 행복지수는 형편없이 바닥을 치고 , 지본주의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터이니 입시제도의 개혁을 바라는 수밖에요. 행복한 나라 부탄에서 배워야 하는디
입시문제에서 놓여나면 취업문제, 찌들은 청년들은 꿈이 없고, 개혁은 답보...
군사정권과 그 경제 족벌 이득 세력들이 만들어낸 한국판 상류사회라지요? 다양성 부족의 작금 드라마 풍자는 참다운 인간성 회복을 위해 부려져야 할것 같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 학생들과 선량한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그 여파는 교육과 예술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궁핍과 한편 책임감으로 다가옵니다.
판이 바뀌어야 하는데, 언젠가 뒤집힐 날 있을까요?
예전엔 드라마는 허구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완전히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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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행복의 자리는 너무 많은데, 모두가 꼭대기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디서 들은 건데 서양의 교육체계의 다양성을 설명하며 우리나라 교육은 한 줄로 세워 뛰게 한다.
자연스럽게 100명이 뛰면 1등과 100등까지 등급이 매겨진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100명을 뛰고 싶은 곳으로 뛰게 하는데 모두 1등일 수 있다는 얘기였죠. 공감이 가더군요~
완전 공감이 확 드네요. 다양성 부재.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달리는 좀비들 같아요.
남의 맛에 홀릭하는 건 아니실 테죠. 내게 맞는 옷이 편한 줄 우린 알잖아요.
뭐, 줘도 안받는다 호기를 부려봅니다.
요즘 우리 딸이 쉬는 날 몇 회씩 한꺼번에 몰아서 보는 드라마가 '스카이 캐슬'이었네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낸,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을 반영하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성찰하게 하는 좋은 드라마가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게 문제입니다
성찰이 안되는 사람들이니까요
비뚤어진 사고와 배타적인 행동과 이기적인 사회를
한 동화작가의 노력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주요 시청요소로 보면서 문학이 가야할 길을 보게 됩디다.
역시 현상을 꿰뚫고 계시네요.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화해로 마무리가 되긴 했지요
강 작가님... 수필도 잔잔하고도 통렬하게 잘 쓰시옵니다..
문학 부문에서는 강 작가님이 거의 피라미드 정점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 잘 읽었습니다..
피라미드 정점보다 중간에서 작가님들 더불어 마음을 나누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
저도 그 드라마 정규방송으로는 못봤지만
다시보기로 다 봤네요
일단 흥미로와서 재미있었고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이라서
씁쓸하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