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하는 나날
박래여
농부가 있으나 없으나 일어나는 시간은 똑 같다. 이불을 개키고 일어나면 심장 약부터 먹는다. 상쾌한 아침이다. 이슬이 촉촉한 마당을 걷는다. 아들이 풀을 깎아놓고 갔지만 금세 또 자란다. 장마철 풀 자라는 것을 누가 막겠나. 소나무 아래 주홍색 말나리와 주황색 원추리가 피었다. 원추리 줄기에 애벌레가 송송 붙었다. 진액 다 빨리면 꽃을 피우기나 할까. 털어주려다 그냥 둔다. 하루살이 애벌레도 생명이다. 먹어야 탈바꿈을 하지. 삶은 공수래공수거다.
오이 두 개를 땄다. 달걀 프라이와 오이와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적게 먹으면 속이 편하다. 농부 없는 사이 단식을 해 볼까 싶었지만 포기했다. 먹는 즐거움을 어찌 거부하랴. 빨랫감도 없고 청소할 필요도 없다. 책 보는 시간이다. 페트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를 삼탕 중이다. 소설이라기보다 잔잔한 일기 같다. 어느 작가의 오후 일상을 묘사한 내용은 줄거리도 없다. 주인공 작가의 눈으로 본 주변 묘사가 뛰어나다. 소설 속 작가는 글쓰기를 작업이라고 한다.
눈이 침침해진다.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슬그머니 책을 덮고 커피를 진하게 타서 이층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점심때가 다가오자 공기가 더워진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쾌하다. 온갖 새들이 합창을 한다. 새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나도 일기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 날마다 똑 같은 하루의 반복이지만 어제와 똑 같을 수 없는 하루다. 똑 같은 강물에 발을 담가도 어제 흐르던 강물이 아니라는 말을 떠올린다. 오늘은 늘 새날이다. 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도 건성으로 보면 어제와 같지만 조금만 세밀히 보면 어제와 다르다.
컴퓨터와 놀다보면 시간을 잊는다. 다시 허리가 아파오면 일어나서 움직일 때다. 컴퓨터를 끄고 계단을 내려온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뻐근한 몸을 푼다. 관절은 어느 마디나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경직이 온다. 가볍게 풀어주는 것이 몸을 위하는 일이다. 텃밭 가에 나가 풀을 뽑는다. 강아지풀, 바랭이, 쇠비름 등, 며칠 새 훌쩍 자랐다. 불그레하던 옥수수수염도 노르스름해진다. 거무스름해지면 옥수수 알이 알맞게 익을 때다.
풀을 뺄 때면 박완서 작가의 수필『호미』나 『두부』를 생각한다. 글을 쓰겠다고 전원으로 들어갔지만 풀 뽑다가 지치고 날벌레에 정나미 떨어졌다고 하던가. 전원생활도 몸에 익어야 할 수 있다. 깔끔한 성격은 온종일 일하다 지치는 곳이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이다. 일을 하려면 끝이 없다. 나는 게으름뱅이라 대충 산다. 한때는 잔디만 살리려고 악착스레 잡풀을 뽑아냈었다. 잡초를 뽑다보면 이웃 고장의 스님이 생각난다. 법당 앞 너른 마당에는 잡초 하나 없다. 스님은 새벽예불이 끝나면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마당의 잡풀을 뽑는 것이 일과라고 했다.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절이라고 감탄할 정도면 스님의 노고가 얼마나 될까.
우리 집 마당은 잔디보다 잡초와 토끼풀 꽃밭이다. 해가 바뀔수록 잡초와 토끼풀이 자리를 잡아간다. 그래, 그래, 함께 살자. 잔디밭이면 어떻고 토끼풀 밭이면 어떤가. 어우렁더우렁 살다 가자. 품어버리면 내가 편하다. 저 풀을 뽑아야 하는데. 꽂히면 내가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내가 못하면 아예 무심해지는 것이 상수다. 창고 앞에 한 무더기 자라던 범부채도 꽃송이를 맺는다. 며칠 새 주홍 꽃잎에 검은 반점이 있는 꽃이 필 것 같다. 어디서 날아와 싹을 틔웠는지 이태 째 핀다. 농부가 예취기로 풀을 벨 때도 ‘그건 범부채 꽃이니 베지 마세요.’ 부탁을 한다. 사랑방 지붕에는 능소화가 피었다. 뚝뚝 떨어지는 꽃송이도 곱다.
마당을 돌아다니면 배가 고프다. 냉장고에 든 반찬 이것저것 꺼내 양푼에 밥을 비빈다. 양푼을 들고 쪽마루에 나가 앉아 밥을 먹는다. 새들에게도 던져주고 벌과 나비에게도 던져준다. 나누어 먹어도 든든하다. 점심 먹고 잠깐 제습으로 냉방기를 돌린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습도가 높다. 뽀송뽀송하고 시원한 거실에서 인터넷으로 영화를 본다. 내가 즐겨보는 시리즈는 마법의 세계를 그린 판타지물이다. 생각 안하고 눈으로 즐기는 것, 눈의 피로를 풀다가 오히려 눈이 피로해지기도 한다. 한 시간 정도 드라마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수영장 간다.
물에서 놀다 집에 오면 우리 집은 해거름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다지만 아직 우리 집은 서늘하다. 집 옆의 골짜기를 흐르는 우렁찬 물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느낌이다. 어둠살 내리는 마당을 바라보며 앉아 있어도 좋다.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안온하다. 허기를 느낀다. 오늘은 국수를 삶았다. 오이 물김치에 국수를 말아 시원하게 먹었다. 오이물김치도 조금 남았다. 설거지를 하다가 오이 물김치를 다시 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따놨던 오이가 있다. 오이지를 담글까. 누굴 갖다 줄까 하던 참이다. 뚝딱뚝딱 오이 대여섯 개, 양파 서너 개, 매운 고추 대여섯 개, 마늘 대여섯 쪽, 재료를 다듬어 먹기 좋게 엇 썰기하고, 굵은 소금 한 주먹 넣고 새우젓 한 숟가락 넣어 버무려 놓고 밀가루 풀을 팔팔 끓여 다듬어 놓은 재료에 부었다. 뒤적거려 간을 본다. 매콤하면서 약간 짠 것 같다. 익으면 간이 맞겠다. 빨간 고추가 없어 아쉽다. 고명으로 넣으면 눈이 호강할 텐데.
하루가 저물었다. 집안의 불을 몽땅 끄고 희끄무레한 창밖을 바라본다. 눈을 감고 귀를 연다. 검은 등 뻐꾸기가 울고 휘파람새가 울고 쑥국새가 울고 온갖 새들이 내 주변을 둘러앉아 관현악을 연주한다. 상주작가가 보내주신 『혁명과 사랑』소설책과 희곡집 두 권과 『내일을 여는 작가』가을 호가 왔다. 읽을거리가 생겨 기분 좋은 날, 『내일을 여는 작가』에는 『사할린에 핀 벚꽃』내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조용히 관조하는 나날이 연일 계속된다. 평화롭다. 남편의 부재가 고마울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