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오전은 집에서 보냈습니다. 어제 잠을 많이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일찍도 일어납니다. 물론 노림수가 있지요. 애들이 호주로 떠난 뒤 두녀석 모두 생일이 지나갔고 해서 어제 오후 뉴캐슬 대학 구경가기 전에 쇼핑몰 들러서 레고를 하나씩 선물로 사 줬었거든요.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국의 건쉽'과 '스피더'를 하나씩 사줬었죠. 어제 저녁에 잠도 안자고 만들려고 헐떡대는 걸 겨우 말려서 재웠는데,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만드느라 야단입니다. 우리도 덩달아 일어났습니다. 애들은 레고 만드느라 정신없는 동안 저는 애들이 쓰고 있는 노트북 컴퓨터를 살펴 보았습니다. 컴퓨터는 있어야 되겠는데, 호주에서 데스크 탑을 구입할 경우 나중에 처분도 문제되고 해서 한국에서 노트북을 하나 사가지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 물건이 가는 도중 충격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가자말자 작동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윈도우를 새로 깐다 어쩐다 하며 그동안 꽤나 애를 먹였습니다. 주위에서 도와줄 사람도 별로 없고 하여 제가 한국의 A/S 센타와 통화한 뒤 다시 국제 전화로 가르쳐 주는 방법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듯 고쳐서 겨우 제 기능을 찾긴 했습니다. 그러나 응용 프로그램을 다시 까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깔아 갔던 프로그램들의 원본 파일들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 있어 손을 좀 보아야만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DVD ROM이었는데, DVD를 구동해 주는 소프트 웨어의 원본 파일을 가져가지 않는 바람에 애들이 좋아하는 DVD를 하나도 못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프로그램을 다시 인스톨 시키니 정상적으로 작동됩니다. 덧붙혀서 두 개의 스피커와 하나의 우퍼로 구성된 외장 스피커 세트도 장착을 했습니다. '깽깽'거리는 노트북 자체 스피커 보다 소리가 훨씬 좋습니다. 그 밖에도 한국에서 가지고 간 몇 개의 프로그램을 더 깔았고, 전번에 윈도우 새로 깔면서 날아간 한국에서 찍은 사진 데이터 파일도 다시 옮겨 심었습니다. 어제 찍은 사진파일들도 하드에 갈무리 해 두었습니다. 다행히 나머지 기능들은 다 제대로 작동이 되고 있더군요. 인터넷은 그동안 느려터진 전화선을 이용했었기 때문에 답답하기도 했고, 인터넷 사용 중에는 전화도 쓸 수가 없었는데, 며칠전 ADSL이 드디어 들어왔답니다. 시험해 보니 한국보다 조금 느린 것 같지만 그런데로 쓸만 합니다. 이제는 컴퓨터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이 된 것 같아 보입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형섭이가 수학 문제집을 가지고 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간 '왕수학'이라는 문제집인데, 그동안 스스로 풀다가 도저히 못 푼 문제를 저에게 가지고 옵니다. 요즘 초등학교 5학년 수학, 장난이 아니게 어렵더군요. 두 문제 같이 풀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풀 수 있는 문제더군요. 벌써 시간이 제법 지났군요. 집사람이 점심 식사 주문하랍니다.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 해 주겠답니다. 할 줄 아는게 뭐가 있는지 물어볼려다가 참았습니다. 호주니까 봐 주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김치 볶음밥이 먹고 싶어집니다. 김치가 많지는 않지만 남은 김치 다 동원하면 가능하다고 하네요. 뉴캐슬은 한국 교포들이 별로 없는 도시라 한국 음식을 구하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아시안 샾에 가면 한국보다 조금 비싸서 그렇지 대부분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김치는 물론 있구요. 집사람이 떠난 뒤로는 한 번도 김치 볶음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김치 볶음밥의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합니다. 집사람의 요리 실력이 늘어서인지, 시장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어서인지 몰라도 하여튼 김치 볶음밥의 맛은 기가 막힙니다. 점심 식사는 원래 많이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엄청 먹었습니다. 애들도 냠냠대면서 잘도 먹습니다. 이제 오후 스케줄이 남았습니다. 원래는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포트 스테판'이란 해변을 구경하기로 했었는데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해변이라면 어제도 봤고, 또 이틀 후 골드 코스트에 가서도 많이 볼 것이므로 집 주위에서 그냥 놀면서 쉬기로 했습니다. 집사람과 애들이 블랙벗과 수영장에 가자고 합니다. 블랙벗은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원시림 수준의 아주 큰 숲으로 어제 들렀던 교수님 집도 이 숲에 접해 있습니다. 이 숲 입구는 공원과 동물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고 하네요. 잠시 차를 타고 블랙벗 공원에 도착하니 휴일 오후를 즐기는 시민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공원 내의 잔디 운동장은 크리켓을 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크리켓은 우리 나라에는 생소한 운동이지만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라고 합니다. 얼뜻보면 야구와 비슷하게 보이는데, 사용하는 방망이의 모양이 넙적한 것이 야구 방망이와 많이 다르고, 투수처럼 보이는 사람이 공을 원 바운드로 던지는 것이 좀 다릅니다. 다른 룰도 많이 다르겠지만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이나라 사람들은 남녀 노소 누구나 즐기는 운동이고 TV에서 가장 많이 중계하는 운동 경기도 크리켓이랍니다. 이 크리켓 경기가 미국에 건너가서 야구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크리켓을 하는 사람들 옆으로는 야외 바비큐 시설이 있는데, 소풍나온 사람들이 고기와 햄, 소시지 등을 굽고 있습니다. 금방 밥을 먹고 나왔지만 군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애들과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노인 한 분이 말을 걸어 옵니다. 공원 안쪽을 손짓하면서 저쪽으로 가면 아주 넓고 경치 좋은 곳이 있다고 친절하게도 안내해 줍니다. 우리가 동양인이고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우리가 여기에 처음온 사람으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저야 물론 처음이지만 우리 식구들은 여러번 와 본 곳인데 말입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미끄럼틀, 시소, 정글짐등 어린이들의 놀이 시설이 있고 더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 전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장소가 나옵니다. 큰 연못이 나오고 연못 주위에는 벤치와 테이블들이 놓여 있어 시민들이 앉아서 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연못 너머로는 블랙벗의 깊은 숲이 보입니다. 이 공원에는 작은 규모의 동물원이 딸려 있습니다. 호주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종류의 새가 전시되어 있었고 코알라, 월러비, 캥거루, 에뮤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형형색색의 새들은 그 화려한 색으로 관람객들의 관심을 독차지합니다. 아래 사진을 한 번 보세요. 무척 아름답죠? 사진에 미처 담지 못한 많은 새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더군요. 코알라 관에는 여러마리의 코알라가 있습니다. 코알라는 캥거루와 더불어 호주의 상징입니다. 6,500만년 전 호주 대륙이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뒤 그후 오랜 세월동안 이 대륙의 생태계는 화려한 고립을 유지하면서 독특한 동식물의 분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독특한 생물이 바로 유대류입니다. 유대류는 어린 새끼를 키우는 새끼 주머니가 있는 것으로 대표되는 생물 종류의 하나인데, 코알라나 캥거루가 모두 이 유대류에 속합니다. 이 유대류들은 그 개체의 취약성 때문에 딴 대륙에서는 벌써 멸종되고 없는 생물종인데, 이 호주 대륙에서만 유일하게 번성하고 있습니다. 이 대륙에서는 이들 생물을 위협할 만한 육식 동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알라는 행동이 매우 느리고 잠이 많습니다. 코알라가 주식으로 삼는 유칼립투스 나뭇잎은 영양분이 아주 적어서 코알라는 먹는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답니다. 더군다나 그 속에는 수면 작용이 강한 알콜 성분 비슷한 물질이 들어 있어서 이녀석들은 하루에 16-20시간이나 잠을 잔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계속 먹기만 하구요. 또한 이녀석들은 야행성이기도 해서 보통 사람들이 코알라를 볼 때는 거의 자는 모습만 볼 수 있습니다. 설사 자고 있지 않더라도 움직임이 매우 느려서, 저는 이곳 뿐 아니고 시드니에서도 더 많은 코알라를 봤지만 한 녀석이 1m 이상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코알라의 이런 행동 특성 때문에 요즘 호주에 많은 산불에서 이들이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합니다. 굼뜬 행동과 많은 수면 시간으로 인해서 불이 근처에 올 때까지 피하지를 못한다는 군요. 더군다나 불이 아주 가까이 오면 놀란 코알라들은 서둘러 피하기 보다는 몸을 공처럼 둥글 게 말아 버린다는데, 산불이 지나가고 나면 이상태로 타서 죽은 코알라가 많이 발견되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주 통통하고 귀여운 아이에게 코알라라는 별명을 붙이지지만(우리집 작은 녀석도 옛날에 코알라라는 별명을 가진 적이 있답니다.) 호주에서는 코알라같다고 하면 아주 게으르고 미련한 사람이란 모욕적인 언사가 된다고 하네요. 아마 우리가 잘 모르는 코알라의 행동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코알라 관을 지나니 월러비가 있습니다. 월러비는 캥거루와 거의 흡사한데, 캥거루 보다는 많이 작습니다. 작은 캥거루라 생각하면 됩니다. 동물원을 빠져 나오니 연못 오른쪽에는 야외에 큰 울타리를 쳐 놓고 에뮤와 캥거루를 풀어놓고 키우고 있습니다. 에뮤는 타조와 비슷한, 날지 못하는 큰 새인데 역시 전 세계적으로 호주에서만 살고 있답니다. 생물학적으로 타조와 비슷한데, 옛날 원시 판게아 시절 호주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이 서로 인접해서 붙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멀리 떨어진 이들 대륙에서 비슷한 생물종(남미 대륙에도 타조나 에뮤와 비슷한 날지 못하는 큰 새가 있다고 합니다.)들이 분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애뮤는 캥거루와 더불어 호주 정부의 전통 문양에 새겨지기도 하는, 호주의 상징과 같은 동물입니다. 캥거루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호주의 상징이죠? 튼튼한 꼬리가 세 번째의 다리 역할을 하고, 꼬리와 다리를 이용해서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형태의 이 생명체는 호주라는 나라와 동일한 이미지로 전세계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캥거루의 이름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답니다. '캥거루'라는 말은 이 대륙의 토착 원주민인 '에보리진'들의 말로 '모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호주 대륙에 영국인들이 처음 상륙하여 처음보는 동물인 캥거루를 보고 에보리진들에게 무슨 동물이냐고 물었는데, 에보리진들은 영국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당신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라는 뜻으로 '캥거루'라고 이야기 한 것을 영국인들은 이 동물의 이름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캥거루들은 지금은 너무 숫자가 많아져서 농작물 피해 등 여러 가지 피해를 끼쳐 호주 정부를 골치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매년 일정한 숫자를 사냥하고 있지만 캥거루 숫자는 자꾸 늘어나고 있어 애를 먹는다는 군요. 캥거루가 가장 힘들어하는 동작이 무었일까요? 바로 뒷걸음이랍니다. 크고 무거운 꼬리가 앞으로 도약을 할 때는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지만 이 꼬리 때문에 뒷걸음질을 치지 못한답니다. 호주 정부의 공식 문양에 캥거루가 사용되는 것도 호주가 세계를 향해 전진만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네요. 브랙벗 구경을 마치고 나와서는 근처에 있는 맥커리 호수를 다시 한 번 찾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의 그 곳이 아닌 딴 곳입니다. 맥커리 호수는 워낙 커서 이 도시에서 맥커리 호수변은 수십 킬로 미터에 걸쳐서 조성되어 있습니다. 어제보다 좀 더 시내 중심가에 인접해 있어서인지 이곳은 사람들도 좀 더 많고 주위에 상가도 더 많이 발달해 있습니다. 이 곳은 평소에 아내와 애들이 자주 오던 포인트라고 합니다. 호수 주변의 풍경은 어제와 비슷합니다. 호수 주변을 천천히 산책해 보았습니다. 시내 중심가와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좀 더 많습니다. 이곳은 요즘 한 여름이기 때문에 이네들 옷의 노출이 장난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은 물론이고 30-40대 여성까지 배꼽티는 거의 기본이고 가슴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패션으로 활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치마나 바지도 골반에 겨우 걸처져 있고, 미니 스커트는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짧습니다. 체형이 좋은 사람뿐만 아니라 아랫배가 나온 사람까지도 그렇게 해서 다닙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지경입니다. 이 나라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선그래스를 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맨발로 다니는 사람도 보입니다. 특히 이곳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라 의상이 더 자유 분방 하더군요. 조금 걷다 보니 근처에 '키위'라는 상표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옵니다. 우리 애들이 아주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해서 온 식구가 하나씩 사 먹었습니다. '키위'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뉴질랜드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인데 맛이 좋더군요. 특히 아이스크림 아랫쪽의 콘의 재료가 되는 와플을 직접 가게에서 구워서 만들기 때문에 콘 부분을 씹어 먹는 맛이 각별합니다. 이제 다시 차를 타고 뉴캐슬 대학의 실내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오래간만에 애들과 함께 수영을 즐겼습니다. 어제 구경한 적 있는 그 수영장입니다. 깨끗하게 관리된 국제 규격의 큰 풀에서 오랜만에 수영을 즐겼습니다. 워낙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라 몇바퀴 돌자 금방 지치더군요. 애들은 수영보다는 물장난에 더 열중입니다. 열어놓은 수영장 창문으로 새들이 들어와 레인 주변에 앉기도 합니다. 수영장 주변으로 자연 그대로의 수풀이 무성한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호주의 모든 인공물들은 이렇게 항상 '자연 친화적'이란 키 워드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 친화적 노력의 흔적들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영을 하고 났더니 배가 출출합니다. 집사람은 우리를 피자헛으로 데려갑니다. 이곳에도 미국이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맥도널드, 버거킹, 피자헛, KFC등의 패스트 푸드점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피자헛은 한국과는 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피자 뷔페'입니다. 일정한 돈만 내면 이곳에 조리되어 있는 각종 피자와 스파게티, 애플파이, 샐러드 등을 무제한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가지 맛의 피자만 주문해서 먹는 것보다 다양한 맛을 즐길 수가 있어서 좋더군요. 피자와 스파게티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여서 마음껏 먹었습니다. 피자 가게를 나오니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집에 돌아와서 더 어둡기 전에 집 주위의 동네를 한 번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뉴램튼 초등학교'입니다. 생각보다 이 학교의 역사는 오래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 뉴캐슬 지역은 호주의 주요한 석탄 생산 지역인데, 이 학교는 이 지역에서 석탄 광산이 한창 개발될 무렵인 1880년 처음으로 문을 열었으니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에 이 학교는 석탄 광산의 중심지에 세워졌으나 지금 이 지역은 뉴캐슬의 주요한 주거 지역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한 블록인데 불과 3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걸어서 5분도 채 안걸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입니다. 그 학교 학생 중 제일 가까운 데 사는 애들일 겁니다. 대부분의 애들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데, 스쿨버스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등하교 시간에 학생들이 차를 차면 모두 무료라고 합니다.
학교는 크지는 않고 아담합니다. 겉으로 보면 한국의 초등학교 보다 더 허름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겉모양이 아니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에 있는 법입니다. 모든 것이 학생들 위주로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고, 주 5일 수업을 하는데다가 금요일은 오전 수업만 마치면 오후는 '스포츠 데이'라고 해서 농구, 배구, 크리켓, 수영, 에어로빅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골라서 하도록 되어 있으니 실제 수업은 일주일에 4일 반인 셈입니다. 게다가 매주 수요일이면 '웬즈데이 스페셜'이라고 해서 특별한 메뉴의 음식을 장만해서 애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을 하는데 이날은 모든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 돈을 들고 와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이것 저것 사 먹는 즐거움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주일 내내 학생들이 항상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므로(교장 선생님도 막대기에 꽂힌 큰 사탕을 빨아 먹으며 학생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군요) 애들에게는 방학이 오히려 지겨운 시간이라고 합니다. 학교 주위로 자그마한 상가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뉴캐슬은 대부분 개인 주택들이 드문드문 지어진 형태의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생필품을 구하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가 사는 이곳은 주위에 2,3 블록에 걸쳐서 식당, 은행, 잡화상, 우체국, 도서관, 이발소, 식육점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자질구레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설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여서 무척 편리합니다. 물건 값이 대형 쇼핑몰보다는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소포장 단위로 살 수 있고, 무엇보다 사소한 것 때문에 차를 타고 구하러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없어서 좋습니다.
거리를 걷다보니 스포츠카의 배기음 소리를 닮은 차량들이 많이 지나갑니다. 스포츠카인가 하고 돌아보면 대게가 아주 오래된 차들입니다. 이 곳의 차들은 10만 Km 정도 탄 차는 새차 취급받습니다. 10-20년 된 차들은 아주 흔한 편이고 그것보다 더 오래된 차들도 많습니다. 1950-60년대의 올드카들도 깨끗이 관리된 채 시내를 달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량에서 나는 배기음 소리가 마치 스포츠카처럼 우렁차더군요. 실용 정신, 절약 정신등이 느껴져서 좋아 보입니다. 옆집의 피터 할아버지 차도 20년 넘은 일제차라고 합니다. 우리들도 차를 좀 오래 타야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집과 벽을 맞대고 살고 있는 피터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현직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입니다. 당신의 손자와 손녀가 우리집 애들과 비슷한 또래인 이 할아버지는 우리 애들을 무척이나 귀여워 하신답니다. 우리 애들과 너무 장난을 많이 쳐서 할머니의 핀잔을 들을 정도입니다. 또한 할아버지의 손자와 손녀는 이미 우리 애들과 좋은 친구가 되어서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올 때면 항상 우리 애들과 논다고 하네요.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이 도시에서 가장 장식이 잘 된 집을(딴 도시에서도 구경오는 이 도시의 명소랍니다.) 구경시켜 주기 위해 일부러 우리 식구를 데리고 직접 차를 몰아서 다녀왔다고 합니다. 자신은 이미 그 전날 따님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요즘은 우리 애들이 할아버지에게 피아노 레슨까지 받고 있어서 더욱 이 할아버지와 친해졌다고 합니다. 이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는 날이면 할아버지가 우리 애들을 태워서 자신이 근무하는 고등학교까지 가서 레슨을 하고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때는 우리 애들 때문에 자신의 차보다 훨씬 새차인 아내의 차를 이용한다고 하니 참 고마운 분이지요? 할아버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한국에서 사가지고 간 우리나라 전통 문양이 들어 있는 티스푼, 포크 세트를 드렸더니 무척이나 고마워하십니다. 연신 'It's So Lovely!!'라는 말을 연발하십니다. 간단한 음료수와 다과를 대접받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면서(주로 할아버지 내외분과 집사람이 대화했고 저는 듣는 쪽이었지만) 제법 시간을 보냈습니다. 써머타임 땜에 거의 9시가 되어야 컴컴해 지므로 어두워지고 조금만 지나면 밤중입니다. 채 어두워 지기 전에 방문을 했었는데 집을 나오니 벌써 9시 30분입니다. 원래 앞집에 있는 프랭크 할아버지 집도 방문하려고 했어지만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 내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내일은 또 내일대로 빠듯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리하고 자야겠습니다. 이틀째 밤이 깊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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